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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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 없이 우리는 이 세계에 참여할 수 없다. ‘의식이 없다’라는 통보를 받을 때 우리가 참담해지는 이유이다. 줄리언 제인스는 “의식은 모두 언어는 아니지만 언어로 생성되고 언어로 접근된다”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문예반 선후배 사이였던 상희와 다언은 시를 쓰고 싶어 했지만 그리하지 못했다. 상희와 다언이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다언은 ‘참회록’ 비슷한 걸 쓰고 있다고 말했다. 십육 년 넘는 시간을 아우르며 과거를 회상하는 이 소설의 주요 화자가 다언이니 이 책이 그 결과물일 것이다. 이 소설에서 시인이 된 사람은 가장 어울리지 않을 거 같은 윤태림이다. 불안과 우울, 죄의식으로 가득한 채 구원을 바라는 심리 상담과 시의 내용이야말로 참회록이지만 온전한 의식이라 볼 수 없다. 이렇게 된 데에는 ‘한 사람의 죽음’이라는 사건이 있다. 알다시피 죽음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과거완료라 더 난공불락의 요새다. 어떻게 접근하든 더 많은 의미와 의문을 낳는다. 해언의 의문의 죽음도 그랬다.

 

 

 

사망했기 때문에 원래 이름이었던 ‘혜은’으로 개명할 수 없었던 해언의 자리를 어떤 식으로든 되돌리려 했고, 해언의 독보적인 매력이었던 아름다움을 다언이 자신의 성형수술로 복원하려 했지만, “아무리 찾으려 해도, 지어내려 해도” “무턱대고 시작되었다 무턱대고 끝나는 게 삶”이듯 다언이 언니 해언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은 돌연하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해언의 죽음 관련자가 적당한 죗값을 받은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난쟁이 엄마와 누이동생만 있는 가난한 집 장남이라 새 신을 사지 못해 신을 직직 끌고 다니고 열두 살 때부터 푼돈을 벌며 학교에 다녔고, 열아홉 살에 살인 누명을 쓰고 경찰에게 매를 맞고 이웃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학교에서도 쫓겨난 뒤 군대에 가서 육종에 걸려 늦은 조치로 불구의 몸이 되어 세탁공장에 취직해 화상을 입으면서도 베테랑이 되었지만 육종이 폐에까지 퍼져 서른 살에 죽는 한만우의 인생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한만우우우 이 세사아앙 야속한 임아”의 가사 때문에 별명이 「한오백년」이었던 소년에게 단 한순간도 신의 섭리나 온정은 없었다.

한계도 기한도 없어 상상이 실제보다 더 고통스럽다고 말하는 다언의 참회가 이 소설의 처음이라면, 해언이 죽음으로 향해가던 그 길에서 교차했던 한만우가 그의 짧은 생애 동안 처음 느꼈을 낯선 희열의 순간이 이 소설의 마지막인 것은 바로 이어지는 「작가의 말」에서 이해된다. “평범하게 태어나, 평화롭게 살다, 평온하게 죽을 수 없는” 사람 삶에 대한 연민. 평(平)하지 못한 삶의 복판에 있는 ‘당신의 삶이 평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가의 상상은 거기서 멈춘다. 그다음 상상은 우리의 몫이다.

 

다언이 선택한 복수와 참회의 방식도 최선이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2002년 해언을 잃었을 때는 “누군가 봄을 잃은 줄도 모르고 잃었듯이” 그랬지만, 2019년의 다언은 자신이 무엇을 잃는지 알고 있다. 신을 믿지 않더라도 아니 그래서 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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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도 못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513
김중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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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들은 새 작품 집필에 들어갈 때마다 처음 같은 난관에 봉착한다고 토로한다.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고 탄생시키려니 그럴 수밖에 없다. 시인은 어떨까. 알다시피 시는 관찰과 묘사로 완성되는 게 아니다. 시집은 단지 시 묶음이 되어서도 안 된다. 시는 단순히 허구의 이야기를 짓는 창작이 아니다. 시적 자아가 있더라도 한 권의 시집은 시인이자 한 인간이 살아낸 삶의 여행기이자 기록의 변형이기도 해 우리는 소설보다 시를 더 진솔하게 느끼기도 한다. 시는 당위가 아니라 삶의 난처를 말하기에 우리의 공감을 더 끌어낸다. 세계를 보는 뛰어난 통찰을 드러낸 시의 선례가 있었기에 독자들은 시인에게 선지적 역할 부담을 지우기도 한다. 독자의 공감을 끌어내는 생활 시를 쓰며 만족하는 시인이 아닌 이상 시인으로 사는 건 죽을 맛일 거 같고 한 편의 시를 쓰는 건 지옥에서 보내는 한철이자 편지 같을 거 같다. 1993년 『황금빛 모서리』 시집 이후 김중식은 25년 만에 두 번째 시집 『울지도 못했다』를 냈다. 첫 작품의 성공 이후 두 번째의 어려움을 말하는 소포모어 징크스란 말이 있지만 『울지도 못했다』를 읽고 나니 김중식 시인은 세 번째가 더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첫 시집에서 보여준 거침없는 비관주의를 25년간 이겨 내려 한 노력이 두 번째 시집에 역력한데, 종교적 응축으로 가득한 단장(短章)을 앞으로 효과적인 시어로 보여줄 수 있을까. 시인은 이런 의지를 밝힌다.

 

 

 

첫 시집에 대해 차창룡 시인이 “매우 실험적인 듯하면서도 시의 전통을 버리지 않았고, 시의 본령을 지키면서도 자유로웠다. 구어체가 주류인 듯하면서도 문어체도 근사하게 구사하였고, 서정적이면서도 풍자적이고, 격정적이다가 자조적이다가 냉정해지거나 차분해지기도”(p108) 한다는 평에 나도 동의한다. 두 번째 시집에서도 그 성향은 변함없으나 구조화에서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차창룡 시인의 애정 어린 해설은 이 시집과 시인에 대해 좋은 보충 설명을 해주었다.

 

 

 

 

인간이 왜 종교, 종교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나는 자주 생각한다. 창작이 다른 세계의 구축으로 현실을 말하듯이 종교도 이 세계의 극복을 위해 제3자의 관점에서 필요한 좌표일지도 모르겠다. 2차원에서는 3차원을 볼 수 없으니 말이다. 어느 차원의 어떤 존재로 있든 끝과 시작의 삶을 가진다면 고통의 번뇌를 피할 수 없으니 우리는 그것이 사라지는 천국이나 해탈을 희망한다.

시인은 “우는 이유를 잊을 때까지 우는” “우리는 가끔씩 울어야 한다”(「물결무늬 사막」)고 말하고 있다. 삶도 시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우리는 망각보다 더 심각한 상태인지도 모른다. 이유도 모른 채 '어떻게'에 골몰하며 살아가는데 익숙하다. 그래서 깨달음이 어려운 것이겠지만. 부질없음, 덧없음, 그 극복에 대한 노력이 우리를 살게도 하고 죽게도 하는데 시를 쓴다는 것은 한층 더 어려운 힘이 필요하다.

“단 한 번의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이탈한 자가 문득」, 『황금빛 모서리』)

김중식 시인의 이 문장은 그의 시들의 함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시인의 말」에서 “지상에 건국한 천국이 다 지옥”이었고, “천국은 하늘에, 지옥은 지하에, 삶과 사랑은 지상에” 라고 했다. 삶을 지옥으로 보든 천국으로 보든 우리는 삶에서 삶으로 이동하며 끝도 이곳에서 맞는다. 울지도 못하겠을 때 시가 함께 있어 그나마 다행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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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7-12 1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죽음 이후의 새로운 삶을 이야기하는 종교들도 결국 인과율에 따라 죽음 이후의 삶이 결정되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종교와 관계없이 현세의 삶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문제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느냐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겠지요....^^:)

AgalmA 2019-07-13 03:45   좋아요 1 | URL
요즘 드는 생각이... 열역학 1, 2 법칙이 참 중요한 걸 말했다 싶거든요. 사라지는 건 아닌데 다르게 방출되며 엔트로피를 막을 수 없다는 게 대표적 인과율 아닌가 싶습니다. 그걸 인간적으로 해석할 건 아닌 것 같지만 살아 있는 상황에서는 중요하겠죠^^
 
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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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잡> 방송에서 김영하가 각 나라의 묘지 산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이 작가가 여행기를 내면 재미난 에피소드가 많겠구나 했다. 정작 묘지 얘기는 하나도 없었지만ㅎ 그가 작가이자 여행자가 된 동기, 삶과 글쓰기와 타자가 밀접히 얽힌 이야기들이 김영하 판 오뒷세이아로 펼쳐져 끝까지 재밌게 읽었다.

 

“여행을 통해 뭔가 소중한 것을 얻어 돌아와야 한다는 관념은 세상의 거의 모든 문화에서 발견”(p27)되고, 우리는 여행기가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p19)이라 여긴다. 작가에게 치밀한 계획과 순조로운 여행은 반가운 일이 아니다. 추방자가 되어 떠난 지 하루 만에 되돌아오거나 괴상한 메뉴를 시켜 대실패를 겪으면 글로 쓸 수 있으므로 김영하는 은근히 그런 모험의 빌미를 만들기도 한다. 우리에게는 여행을 떠나기 위한 공식적인 이유인 ‘외면적 목표’도 있지만 마음속에는 숨겨진 ‘내면적 목표’도 있다. 여행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그것을 목도한다. 또한 ‘가지고 있는지조차 모르지만, 인물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일종의 신념ㅡ프로그램(노아 크루먼, p58)’을 타인에게서 내게서도 발견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전근으로 잦은 이사와 전학을 다녔던 김영하는 방랑의 습성을 일찍 가지게 되었다. 학생운동 시절 회유책으로 주어진 중국으로의 해외 첫 여행, 그 여정에서의 인연과 이후 대학원을 무사히 진학하게 되고 소설가가 된 과정까지 여행은 그의 인생을 바꾼 중요한 계기이기도 했다. 김영하는 자신의 여행벽이 어린 시절 원경험들이 쌓여 자기 안에 내장되어 있는 프로그램으로 발현된 것이며, 여행에서 정말로 얻고자 하는 것은 낯선 곳에서 거부당하지 않고 받아들여지는 “삶의 생생한 안정감”(p60)이라고 말한다. “초월의 경험은 시간이 충분히 흐른 뒤에야 언어로 기술할 수 있고” “언어로 옮겨진 후에야 비로소 그것은 ‘생각’이 되어 유통된다”(p81)는 점에서 삶과 여행과 글쓰기는 유사하다. 

 

인류는 모두 여행자의 피를 가지고 있다. “유전자에 새겨진 이동의 본능. 여행은 어디로든 움직여야 생존을 도모할 수 있었던 인류가 현대에 남긴 진화의 흔적이자 문화”(p92)이고, VR이나 AR 같은 가상현실 기술이 점점 발전하고 있지만 세계 여행 인구의 증가 폭증만 봐도 “호모 비아토르”(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이 정의한 ‘여행하는 인간’)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김영하가 출연했던 <알쓸신잡>은 우리가 늘 갈망하는 여행에 인문학적 소스를 버무린 프로그램이었다. <알쓸신잡>은 tv를 통해 대리 만족하는 ‘비여행’이 아니라 믿을 만한 정보원을 시켜 여행을 대신하게 하는 ‘탈여행’이었다. 김영하는 이 프로그램 제작 과정이 “수십 명이 프로그램에 관여하지만 이 여행의 전부를 경험한 사람은 아무도”(p104) 없는 카프카적 상황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한 회분이 완성될 때마다 프로그램 제작자와 출연진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은 “스스로 여행했을 때에는 놓칠 수 있는 것을 타인을 통해 경험”하고 “타인이 놓쳤을 어떤 것을 상상력을 동원해 복원하는”(p114) 정신적 과정을 함께 겪었다. 방송이 끝나면 시청자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리뷰로 정보도 나누고 방송 영향으로 여행 계획을 짜기도 하면서 시너지는 더욱 컸다. 이 과정을 김영하는 이렇게 마무리한다.

 

“내 발로 다녀온 여행은 생생하고 강렬하지만 미처 정리되지 않은 인상으로만 남곤 한다.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모호한 감정이 소설 속 심리 묘사를 통해 명확해지듯, 우리의 여행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더 명료해진다. 세계는 엄연히 저기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세계와 우리 사이에는 그것을 매개할 언어가 필요하다. 내가 내 발로 한 여행만이 진짜 여행이 아닌 이유다,”(「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 , p117)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노바디가 아니라 섬바디로 주목받고 싶은 갈망은 여행자의 욕망 중 하나이다.

 

“젊은 날의 나는 특별한 존재가 되기를 바랐지만, 나의 인종이나 국적에 따라 ‘특별하게’ 분류되고, 일단 분류된 이후에는 사실상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경험은 그전까지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여행자는 낯선 존재이며, 그러므로 더 자주, 명백하게 분류되고 기호화된다. 국적, 성별, 피부색, 나이에 따른 스테레오타입이 정체성을 대체한다. 즉, 특별한 존재somebody가 되는 게 아니라 그저 계별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여행자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 자’, 노바디nobody일 뿐이다.

실뱅 테송은 『여행의 기쁨』에서 괴테를 인용하면서 '여행을 할 때 나는 언제나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낚아챈다'라고 말한다. 이어서 그는 '여행은 여행자가 외부 세계에 감행하는 습격이며, 여행자는 언젠가 노획물을 잔뜩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약탈자다'라고 덧붙인다.”(노바디의 여행」, p155)

 

일상에서 결핍된 것을 찾으러 떠나는 여행과 관련해 김영하는 그런 메타포가 담긴 이야기도 소개한다.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 경우 악마에게 그림자를 팔아 사람들에게 배척받게 된 사나이가 그림자에 연연하지 않고 여행자/탐험가/방랑자로 살아가기로 한 결말, 『오뒷세이아』의 오디세우스가 신들의 저주로 10년간의 고생스러운 여행을 한 것이 아니라 그가 키클롭스에게 허영과 자만을 과시하다가 자초한 여정은 여행의 의미를 곱씹게 한다. 김영하가 말한 이 이야기들의 초점은 환대, 인정과 신뢰가 인간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삶의 가치이고, 여행이야말로 이 “환대의 순환”(p147)을 가장 잘 경험할 수 있는 체험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이에게 내가 받았던 친절과 환대는 내가 다시 누군가에게 베푸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p180) 삶도 생과 사 사이의 긴 여행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여행이 길어지면 생활처럼 느끼고, 안정 없는 생활은 유랑처럼 느껴진다. 오래 전에 우리 집에 초대된 한 지인이 내 집을 보고 곧 떠나도 이상할 것 없는 새 둥지 같다고 했는데, 요즘 집을 가득 채운 책을 보면 그런 소리는 못하리라. 김영하 작가처럼 나는 늘 안주할 곳이 있으리라 생각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여행을 시작할 때 마음이 더 편해지는 떠돌이 운명 같지도 않았다. 어디에도 귀환할 집은 없는 것 같은 느낌. 그 느낌을 김영하 작가와 공유하게 될 줄 몰랐다.

 

“'여행의 이유'를 캐다 보니 삶과 글쓰기, 타자에 대한 생각들로 이어졌다. 여행이 내 인생이었고, 인생이 곧 여행이었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이며, 타인의 신뢰와 환대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여행에서뿐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도 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에 굴러간다. 낯선 곳에 도착한 이들을 반기고, 그들이 와 있는 동안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다 가도록 안내하는 것, 그것이 이 지구에 잠깐 머물다 떠나는 여행자들이 서로에게 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일이다.”(작가의 말, 213)

 

우리는 모든 것을 총동원해 살아가고 여행을 하고 마무리할 것이다. 경험으로, 이미지로, 글로, 사진으로 무엇으로도 남기면서 자신을 잃어버렸다고 말할 사람은 없다. 여행을 마친 작가는 자신이 창조할 세계로 또 여행으로 떠날 테고, 조금 달라진 우리는 재차 살아갈 힘을 얻거나 다음 여행을 계획할 것이다. 우리는 여행에서의 경험이 아무리 사소해도 특별하고, 기대에 어긋난 것조차 여행의 요소이며, 일상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친절과 좋은 사람도 많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일단 누군가를 신뢰하기로 마음먹으면 우리의 정신 속으로 평안함뿐 아니라 자극과 흥분이 파고들어온다. 신뢰란 다른 생명체와 맺어지는 관계 가운데 가장 큰 기쁨을 준다. (…)”

(철학자 알폰고 링기스, p143) 

 

온갖 기억과 고통과 할 일로 가득한 집을 떠나 환경을 바꾸고 다른 이와 신뢰를 나누며 기쁨을 얻는 상황에 나를 둔다는 것은 아이의 유희 같기도 하지만 삶을 살아가는 근사한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의 절실함이 우리를 꿈꾸게 하고 우리를 영영 바꾼다. 생활 속에서 멀찍이 동경할 때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겪고 생각을 넓혀갈 때 여행에 제대로 도착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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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5-04 2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여행이 설레임을 주는 것은 틀림없지만, 여행 전후로 짐싸는 것과 정리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닥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저는 아무래도 인류보다는 나롯가에서 졸고 있는 고양이과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ㅋ

AgalmA 2019-05-11 15:15   좋아요 1 | URL
님 마음 충분히 공감합니다. 여행 다녀오면 이 고생을 내가 왜? 항상 그 생각을 하니까요. 언제나 하는 생각이지만 겨울호랑이님은 저보다 늘 현명한 고양이과ㅋ👍

겨울호랑이 2019-05-11 15:17   좋아요 1 | URL
ㅋ 아니에요. 여행은 그저 아무 생각없이 떠나는 것이 좋다 생각합니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면 떠나기 어려운 것 같아요. 결혼 전에는 혼자서 새벽에 캔커피 사서 해돋이를 보고 막히기전 돌아온다든지 하는 혼자 다니는 것을 좋아했는데, 가족이 함께 있으니 맘대로 여행하기가 참 어렵습니다..ㅜㅜ

AgalmA 2019-05-11 15:27   좋아요 1 | URL
요즘은 너무 예약문화라 계획없이 다니기가 힘들어졌죠. 기본적인 차편부터 숙소를 정하려면 일정 정리도 필요하니 그것부터 스트레스ㅜㅜ; 이번 전주영화제도 피크일 때 가서 적당한 숙소잡는 게 쉽지 않았어요. 전주는 자주 가서 그나마 좀 익숙한 편이지만 생소한 환경에 긴장해서 돌아다니는 여행은 매일이 녹초죠😭... 그래도 돌아오면 리프레시가 되는 게 있어서 가긴 갑니다만 제게 여행은 양가적 갈등이 있습니다.
가족이 있더라도 혼자 여행의 자유는 누리셔야죠!
 
2019 제10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박상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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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편의 수상작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이라고 해도 될 글을 이미상 「하긴」의 해설을 쓴 김녕 평론가(「내/네 뜻대로 되어라」)에게서 발견했다.

 

“무언가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사실 그것은 모든 갈등의 기본적인 뼈대이다.”(p353)

“분명한 건,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최우선시된 나’라는 괴물은 자신에 대한 비판을 이미 집어삼켜서 자기애로 치환시켰으며 이후로도 얼마든지 더 그럴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을 86세대라는 익숙한 비난의 대상에 집약시켜 각자 자신으로부터 추방하더라도, 그것은 죽지 않을 것이다.”(p357)

 

 

그렇다. 각각의 소설은 인물들의 실패, 차갑든 뜨겁든 관조하든 세밀하든 자기애와 자기비판이 혼연일체를 이룬다.

 

 

이미상 「하긴」은 하긴 하는데 온통 부조리로 가득한 86 세대 한 아버지가 딸을 대학생으로 만들려다가 한강 공원 공중화장실의 임신 테스트기 천사로 만든 풍자 풍속극이다. ‘새로운 폐단을 배태·답습하는 모순적이고 퇴행적인 기득권층……진보에 대한 유토피아적 꿈……엘리트의 선민의식……왜곡된 우월감과 의무감, 그리고 은근한 멸시를 중핵으로 하는 통제와 특권 행사의 욕망’(p354, 김녕)의 문제가 “대의명분이 대입명분으로 수렴”(p334)되는 한국 사회에서 그 세대만 해당되지 않을 거란 걸 시사한다.

 

한국이라는 공간을 벗어나도 우리의 생각은 속지주의(屬地主義) 자장에 있다. 백수린 「시간의 궤적」은 새로운 삶을 모색하기 위해 파리로 온 두 한국 여성의 녹록지 않은 타국의 삶과 그들이 평생 감내해야 할 상실을 말한다. ‘나’가 선택한 새로운 삶은 기대와 다르다. 프랑스인과의 결혼으로 새 삶이 펼쳐졌지만 '나'는 태어날 아이가 “언젠가 나의 모국어조차 아닌 언어로 나를 증오한다고 말하고 떠날”(p179) 것을 예감하며 타국에서 영원히 이방인으로서 느낄 공포를 떨칠 수 없다. 결혼 전 '나'와 파리 주재원이었던 언니의 폭우 속 우정은 기억 속에서는 빛나지만 현실의 빗속에서는 고독을 마주 보게 하는 거울로 남는다. 비가 그쳐도 다시금 올 것이기에 슬픔도 그러할 것이다.

 

 

박상영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에서 88년생 게이 소설가 ‘영’은 보수주의·가족주의·기독교에 갇혀 있는 엄마, 학생운동·민족주의·이데올로기(흔히 NL)에 갇혀 있는 12살 연상의 동성 연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열망을 결코 충족할 수 없다. 영은 “영영 용서할 수 없을 것”(p89) 같아 하면서도 “그저 나로 존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똑같은 인간에 불과하다”(p88)고 우주적 자장 속에 모두를 모은다. 이것은 단순히 ‘긍정’이나 ‘열린 결말을 위한 장치’가 아니다. 나를 분석하고 치유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실 모두가 필요하다. 모두가 어디까지인지는 각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정영수 「우리들」에서 정은과 현수가 자신들의 외도의 목격자이자 동조자이자 죄책감을 함께 나눌 동조자로 ‘나’를 필요로 했듯이 ‘나’도 연경과의 관계 설명을 위해 그들을 필요로 했다. 우리는 사랑과 희망을 쉽게 동치(同値)하지만 그것이 어긋났을 때의 결과와 감정은 우리를 성장시키기보다 백치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같은 실수와 실패를 거듭 겪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과가 명확히 해석되지 않는 이 세계에서, 존재하는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설명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존재하는 것을 설명하는 변주를 우리는 계속 겪어야 한다.

 

 

김봉곤 「데이 포 나이트」 도 그런 고심이 역력하다. “어째서 나는 지금 이곳에 있고, 그곳에 없을까? 그건 공간과 시간을 치환하거나 섞어 생각해버리는 내게 자주 찾아오는 질문이었는데, 결국 시간이 흘-렀-다, 는 단순한 답이 정말 답이기도 해서 음, 그렇긴 하지, 그러니까 지금도 좋아, 같은 준비된 대답을 매번 처음인 듯 내게 말해주었다. 물론 그것은 결론에 가까운 것이었지 답은 아니었고, 답 없는 것,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일을 나는 질리지도 않고 반복했다.”(p279)

영화에서 낮을 밤으로 바꾸는 필터 ‘데이 포 나이트’는 현실에서는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나’가 H 선생과 묘한 메일을 나누지만 아직 사랑이 아니고 될 가능성도 묘연하다. 종인 선배와의 잠자리는 폭력이지 사랑이 아니었다. 그들의 근접과 교환과 시간들은 사랑으로 변하지 않는다. 도대체 무엇이 필요한 걸까. “나는 내가 아는 만큼만 보이는 걸까? 내 수준에 맞는 만큼만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몰라서 불행해지는 걸까? 알고 싶었다. 도대체 그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고 싶었다. 내가 그만두지 않으면 언젠가는 가능한 일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무언가를 계속하는 것뿐이었다.”(p303) ‘나’는 “종인 선배의 무언가를 더 알기 위해, 기억해 캐내기 위해, 혹여라도 이해하기 위해, 애써 또 하나의 필터를 만들어 내게 덧씌우고 싶지 않았다. 그를 더는 알고 싶지 않았다.”(p305) 이 말은 우리의 앎이 열망, 기억, 필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도 설명된다. 눈을 가리는 것들, 삶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것들을 가려내고 발견하려면 정말 많은 것이 동원되어야 한다.

 

 

그것을 발견하고 물러난 정적인 태도를 취하지만 의지ㅡ“나는 …… 그동안 …… 나는 이제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다”(p219) ㅡ만큼은 가장 강경한 소설이 이주란 「넌 쉽게 말했지만」이다. “생계를 위한 일을 하거나 우는 시간을 빼고 나면 내게 남는 시간이 별로”(p224) 없는 서울을 떠나 ‘나’는 엄마-고향으로 왔고, “누나, 그렇게 살지 마세요”(p206), “너 진짜 인생 그렇게 살지 마라”(p225)라고 말하는 공격적인 언어의 세계가 아니라 공기나 휘파람 소리 같은 몽골 음악 ‘흐미’, 동네 아이들의 무용한 잡담, 시시하지만 서로를 살피는 엄마와의 대화가 마음을 채우는 세계다. 죽어도 알 수 없는 타인의 마음을 신경쓰면서 없는 시간에도 ‘죽느냐 사느냐’로 고민하던 공간을 벗어나 ‘붕어빵이냐 옥수수냐’ 하는 것만 결정하면 되는 공간으로의 이동이 회복의 유예 시간일지 바틀비적 방랑으로 계속될지 현재로서는 모호하다. 이주란의 다른 단편에서도 이 전환의 얘기가 이어지고 있는데, 작가가 극단적으로 감행한 이 휴식과 거부의 방법론은 비슷한 고민에 있는 독자들에게 대리 체험의 공감과 위안을 제공하리라 생각한다. 이주란의 소설은 리얼 버라이어티 방송의 소설 버전 같아 신선함을 주기도 하는데, 조용조용 자기 챙김의 과정이 독자를 매료시킨다.

 

 

김희선 「공의 기원」은 영국인 수병으로부터 축구공을 얻은 조선 소년이 고된 삶 속에서 축구선수가 되지 못한 실패부터 축구공의 기계 생산 시스템 도입으로 현대인이 노동에서도 축출되는 미래의 삶도 조망한다.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서사의 중첩으로 “문명이 만들어낸 나쁜 것과 좋은 것들이 온통 한데 뒤섞여 있는”(p123) 시대의 반복도 재현한다. ‘나쁜 것과 좋은 것들이 온통 한데 뒤섞여 있는’ 것은 시대나 이야기만도 아니고 지금의 나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 조선 소년이 자신의 증조부였다고 말하는 박흥수가 축구공의 시초인 토마스 굿맨사를 사들여 증조부가 만들고 싶어 한 완벽한 축구공을 만들 기계를 도입한 것이 ‘멋진 신세계’로 완결되지 않듯이.

 

타인이 “내 삶을 지연시키는 존재”(박상영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p88)로 생각되기 쉽고 “외로운 마음의 온도”(같은 소설, p24)가 우주의 밀도만큼 느껴지는 요즘이다. 우리는 ‘늘 하던 걱정… 그 걱정들을 정말 그만하고’(이주란 「넌 쉽게 말했지만」, p221) 싶다. “(나의 무의식이 조심스럽게 기억의 지뢰밭을 헤쳐 선별해낸) 가장 안전한 추억”(정영수 「우리들」, p246)만 떠올리며 그리움과 외로움에 허우적대며 평생 살 수는 없어 하면서 그리 살고 있다. 우리는 ‘나’만으로 치유될 수도 살 수도 없다. 김녕 평론가의 말처럼 “나의 소중함이 무사유적 자기애로 치달았을 때의 내적 파탄의 풍경. 그것은 누구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황무지다.”(p358) 우리는 서로에게 미지의 존재이지만 서로를 보듬는 우주라는 것을 더 자주 자각해야 한다. 외계 생명체도 살기 싫은 지구가 되는 건 비극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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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 이야기 세트 - 전4권
김은성 지음 / 애니북스 / 201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어피덩’은 이 책에서 ‘엄마’ 다음으로 많이 나오는 단어다. 함경도 사투리인 ‘어피덩’은 ‘어서’라는 뜻이다. ‘어피덩’은 고단한 삶에서 매일 자연스레 내뱉어졌고, 서로를 다독이며 함께 하기 위해서도 건넸고, 혼란한 시기를 이겨내려는 기합 같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산업화 영향으로 더 생활에 뿌리내렸을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를 생각하며 이 단어가 재밌는 북청 사투리로만 생각되지 않았다. 이 책의 울고 웃는 모든 순간에 '어피덩'이 등장한다.

 

 

 

*1~4부까지 '어피덩' 대사 종합 모음*

 

 

 

 

 

 

 

 

 

 

 

 

 

 

 

 

 

 

 

 

 

삶이 어피덩어피덩 흘러도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는 긴 세월이 걸린다. 영화를 찍고 싶었지만 잘 풀리지 않았던 작가는 『내 어머니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기 몇 해 전 엄마를 대상으로 홈 비디오를 찍는 작업을 했는데 그때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일제강점기에 함경도 촌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일본군 위안부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억지 결혼을 하고, 전쟁으로 부모와 생이별을 한 고통스러운 역사 속에서 살았지만,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한 사람을 일가친척 중에 두지 않았고, 일본인이 세운 학교를 즐겁게 다녔으며, 결혼한 지 닷새 만에 해방이 되어 남편이 군대에 끌려나가지 않게 됐다는 이유로 해방된 게 너무도 싫었다는 엄마의 얘기도 ‘역사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객관적인 역사와 엄마가 체험한 역사는 달랐지만, 주관적인 체험이 지닌 신선함이 있었다. 또 두 가지 역사는 어느 외길에서 만나기도 했으며, 그 길에서 엄마의 인생이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만화를 그려나가면서 나는 해외 입양아가 자신의 부모를 찾았을 때 느꼈을 것 같은, ‘저 멀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질기게 이어져 있던 ’끈‘을 스스로에게서도 확인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때늦은 확인이었지만 꼭 필요한 것이었다.”

 

아직까지도 고향과 부모님이 나오는 꿈속에서 놀라 깨는 이복동녀 여사에게 이 역사는 끝난 게 아니다. 이야기꾼이기도 한 이복동녀 여사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고 곁을 지키고 있는 작가에게 어머니(이야기)가 이대로 사라지는 게 몹시 안타까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작가는 전쟁으로 인한 이별과 피란으로 어머니의 얘기를 끝내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인생을 다 그렸을 때 현재의 어머니가 있게 된 원인과 배경들을 더 제대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게 돼 계속 그림을 이어갔다. 어머니가 언제 돌아가실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은 조급해졌다. 어머니의 기억력이 갑자기 떨어지셔서 모두를 놀라게 한 일 중 3부 김장 일화는 내 눈물도 쏙 빼놨다. 6.25로 어머니와 생이별하는 장면도 눈물이 터져 나오는 장면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격동의 시기를 보낸 어머니의 이야기는 작가에게까지 이어진다. 군부 정권과 민주화 운동, 학생운동 시절을 보낸 작가의 삶도 어머니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작업은 꼬박 십 년이 걸렸다.

 

* 1부의 명장면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로 이어지는...)

 

 

 

 

 

 

 

* 2부의 명장면 (생이별의 순간)

 

 

 

 

 

* 3부의 명장면 (서로 어머니 되기)

 

 

 

 

 

* 4부의 명장면 (화해를 위한 그림굿)

 

 

 

 

나도 어머니 얘기를 써보고 싶은 적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이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는지 더 궁금했다. 6.25 전쟁 전에 양친을 다 잃은 내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고생을 많이 하셔서 옛날 얘기를 잘 하시지 않았다. 어머니의 과거를 처음 인상 깊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맥주 반잔에도 힘들어하시는 어머니가 그날은 무슨 속상한 일이 있으셨던지 만취하신 채 불쑥 과거 이야기를 꺼내셨다. 내게 그 이야기는 은성 작가가 그랬듯 처음 듣는 ‘놀라움’이었는데, 어머니는 다음날 전혀 기억을 못 하셨다. 그 뒤부터 나는 어머니에게 옛날 얘기를 물어보곤 했다. 그중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는 어머니가 처음 음악을 들으셨던 얘기다.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던 때 밤 심부름을 하다 어느 담장에서 들려오던 아름다운 소리에 발길을 멈추고 한참 들으셨다고 했다. 그게 축음기에서 나오는 소리라는 것도 모른 채 홀린 듯 들으셨다. 고생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본능적으로 알아챈 그 순간은 지극히 인간적인 순간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것을 음미할 시간도 생활도 아니었다. 우리는 그런 수많은 기억들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존재다.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남의집살이를 하던 그 소녀는 먼 훗날 집에 하나둘 제 소유의 물건들을 갖추기 시작했다. 오디오 세트를 장만했고 나는 그것으로 라디오와 음악을 들었다. 내 첫 워크맨도 어머니가 사주셨다. 안타깝게도 어머니도 나도 자신이 처음 들었던 음악을 기억지 못한다. 기억력이 대단한 이복동녀 여사는 축음기로 춘향가를 들었던 기억을 우리에게 들려주셨다. 지금은 어떤 음악을 들으시는지. 나는 어머니에게 유튜브로 나훈아의 음악을 찾아듣는 법을 알려드렸다.

 

 

 

 

은성 작가가 어머니와 유머러스한 대화를 나누는 풍경은 삶의 소중함을 낱낱이 보여준다. 우리도 그럴 때가 있었고 이후 그 모든 순간을 사무치게 그리워할 거라는걸. “내가 죽으면 엄마가 그리워서 이 책을 읽을 것이다”라고 한 은성 작가의 어머니 예언은 적확하다. 작가만이 아니라 나도 엄마가 그리워질 때 이 책을 다시 펼쳐볼 것 같다. 세월에 따라 놋새, 복동녀, 보천개 사램, 동주 엄마 등 수많은 호칭으로 불린 은성 작가 어머니가 남 같지 않다. 몸에 이가 생길 정도로 어머니 간호를 했던 어린 시절 이복동녀 여사도 꼭 내 과거 이야기 같다. ‘어피덩’, ‘일없다’, ‘시이’(언니) 등 북청 사투리가 이 이야기를 친근하게 만들어서 더 그렇다. 이 이야기 속 많은 인물들에게도 연민이 간다. 시절 탓도 있었지만 그들이 다르게 살 수 있었을 순간들도 많았다. 이 책은 묻지 않으면서 우리에게 질문을 건넨다. “당신은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의 마음은 어피덩어피덩 달려가지만은 않겠다고 별빛처럼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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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5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9-02-25 22:28   좋아요 1 | URL
이 책 좋아요. 그림은 제 취향이 아니었습니다만ㅎ 아름다운 장면, 이야기 많아요😭

2019-02-25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9-02-25 23:11   좋아요 0 | URL
네, 읽다보면 이야기 때문에 그림이 더 살아요.
님 댓글을 읽고 각 권마다 제가 꼽은 명장면들을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