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문학동네 시인선 96
신철규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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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라는 관계에서 원인인 나와 네가 그럴 의사가 없다면 제3자인 구원 투수를 기대하긴 어렵다. 아버지나 어머니의 상징적 의미가 그러하고 거기 다른 누군가를 둘 수 없듯이. 그럴 수 있었다면 종증조모처럼 아아머니나 어버니라 부르는 누군가 있었을 것이다. 역할극을 하듯 바깥은 그러하고 우리 안은, 누군가를 마음에 둔다는 것은 상대의 절대성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가장 원하지 않는데도 들어오고 무너진다. 애초에 이 만남은 우리가 아주 먼 궤도를 도는 별들이라서 가능한 짜릿함이었는지 모른다.
"너와 나의 국경은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외곽으로 가는 택시」)
    
우리는 공명통이었다. 아이가 자신을 보고 웃을 때 자연스레 마주 웃는 그러한 사람들이었다. 그걸 진화적 사회본능이라고 차갑게 내뱉더라도 우리를 감싸는 온기를 부정할 수는 없다. 이 주고받음이 너무도 계산과 거래가 되어버린 지금 우리는 그 감각을 많이 잃었다. 그만큼 우리의 공허도 절망도 커졌다.
“나는 너를 채우고 너는 내게서 빠져나간다./우리는 번지면서 더욱 뚜렷해진다”(「데칼코마니」)
“어제는 서로에게 몸을 주고 마음을 얻었다/오늘은 서로에게 마음을 주고 몸을 잃는다”(「밤은 부드러워」)
    
“내가 얼마나 메말랐기에 너는 그처럼 밀려오는가”(「해변의 진혼곡」)처럼 사방은 너무도 건조해 모래가 이 시집 가득 휘날리는데, 더 이상 흩어질 곳이 없어 "그때부터 우리는 벽"(「벽」)이 되려 했다. 궤도를 따라 도는 행성처럼 움직이는 벽이다. 실밥이나 모래 같은 끊어지기 쉬운 결로 "점성의 독방"(「벽」)을 만들어 "하루종일 벽을 따라 걷는 독방의 수인"이 되는 운명을 거부할 수 없다. '모든 것이 가만히 있는 지옥'(「검은 방」)만은 거부하기 위해. "어떤 짐승도 가만히 엎드려 재앙을 기다리지 않"(「단종」)기에.
    
이 시집엔 모래만큼 비만큼 가볍고 흩어지기 쉬운 "구름" 오브제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자연이다. 현실 속에 구름이 늘 떠있듯 꾸밈이 아니라 당연하다고 봐야 할 정도다. "지구가 생기고 난 뒤 한 번도 멸종된 적이 없는 구름"(「무지개가 뜨는 동안」)과 우리는 무척 닮기도 했고, '지구의 자전의 속도로 흐르고 중력을 겪는 것'(「공회전ㅡ동식에게」), "살점을 떼어내며 형체를 잃어가는"(「기생」) 마지막도 마찬가지니 구름과 우리는 가족 같다. "서로의 등뒤에서 눈이 내려도 돌아볼 것 같지 않은 사람들"(「등과 등 사이」)이기도 하면서 "같은 표정에 도달해야만"(「기념사진」) 벗어날 수 있다는 듯이 모여서 웃다가 먹구름처럼 뭉쳐 한 덩어리가 되는 증오와 슬픔을 겪는 것도 변함없다. "링거줄 같은 비행운이 한참 공중에 떠"(「손톱이 자란다」) 있는 걸 보지 않은 자 없고 타인의 죽음을 겪어보지 않은 자도 없다.
    
"반에서 유일하게 생일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아이는 지구만큼 슬펐다고"(「슬픔의 자전」) 하듯 우리는 대체로 누구에게도 초대받지 못한 아이로 자라 어른이 되고, 부모도 형제도 친구도 연인 뭐가 되든 다 잃어서 처음 태어났던 순간처럼 혼자로 돌아간다. 어쩌면 성취가 아니라 끝 간 데 없이 잃고 슬퍼 봐야만 사람이 되는지도 모른다. 눈물과 물방울이 왜 이렇게 닮았는지 이해하려는 노력과 마음속에 사람이 태어나는지도 모른다. “슬픔의 과적 때문에 우리는 가라앉았다"라고 말하는 「검은 방」 등 세월호 관련 시들, “우비를 뒤집어쓰고 등을 돌린 채 직사의 물대포를 맞고 있는 사람이 있다/ 죽은 물고기를 씻어내는 수돗물처럼 얼음 탄환이 쏟아진다"라고 말하는 「연기로 가득한 방」 등 집회와 투쟁 관련 시들은 이 세계의 모든 슬픔과 폭력을 직시하려는 마음속에서 탄생했다. 그의 2011년 등단작 「유빙」부터 그러한 징후가 가득했다. 앞서 얘기한 「검은 방」 과 「연기로 가득한 방」 이 이 시에 이미 계시되어 있었다.
    
“눈물 속에 한 사람을 수몰시킬 수도 있고
눈물 한 방울이 그를 얼어붙게 할 수도 있다
…(중략)…
시계탑에 총을 쏘고
손목시계를 구두 뒤축으로 으깨버린다고 해도
우리는 최초의 입맞춤으로 돌아갈 수 없다”
ㅡ「유빙」
    
그럼에도 누가 누군가에게 천사도 구원 투수도 되지 못한다. 그런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 것들이 모두 모이지 않는다면. 내 손으로 잡는 것이 아니기에 우연이다. 내가 지금 당신의 한 손을 부여잡는다 해도 반드시 “다른 손은 빈손이 된다.”(「생각의 위로」) 그래서 우리는 왼뺨도 내밀고, 모두가 모두의 손을 잡을 수 있도록 기도도 한다.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우리는 암모나이트처럼 몸을 말고”(「구급차가 구급차를」) 밑바닥으로 낙하하길 바라기도 하고, “돌처럼 단단한 눈물방울”(「눈물의 중력」)이 되어 모든 통과를 거부하고 싶기도 하다. “손톱이 손등을 파고들 만큼 간절한 기도도/팔을 날개로 바꾸지는 못”(「구급차가 구급차를」) 했으니까. 그러나 울음이, 기도가, 투쟁이, 시가 이 행성을 구하고자 하는 공명통으로 해처럼 달처럼 나타나는 것은 중단되지 않는다. “체온을 잃지 않기 위해 점점 뾰족”(「밤의 드라큘라」)해지기보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먼 곳으로 마음을”(「연인」) 보내고도 서럽지 않을 별이 되어야 하겠다. 사람이 되는 것은 이토록 어렵다.

 

 

 

한승석 & 정재일 - 자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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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8-06-10 2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좋네요!!^^

AgalmA 2018-06-14 16:23   좋아요 1 | URL
반갑네요! 저도 그장소님 좋아해요*-.-*)....난데없는 고백.
이 무슨 시츄에이션)))

[그장소] 2018-06-15 00:10   좋아요 1 | URL
ㅎㅎㅎ우리 사랑 이대로???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