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스키에 의하면 인간의 언어는 생득적 특성을 알아볼 수도 있지만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도 있다. 일명 ‘변형 생성 문법’으로 불리는 언어학적 연산은 구조 의존적이다. 외적 표출을 위한 감각운동 접합면에 있지 않고 개념-의도 접합면에 있는 언어들이 그에 해당한다. 이에 따르면 의사소통은 언어 빙산의 일각일 뿐이며, 언어·사고의 대부분은 수면 아래에서ㅡ서로 다른 두 개의 대상에 외적으로 작용하여 또 다른 형태를 생성하거나, 하나의 대상 안에서 내적으로 작용하여 또 다른 형태를 만들어내는ㅡ‘병합’을 하거나 어느 한 곳에서 발음된 구절이 그 위치는 물론이고 다른 위치에서도 해석이 되는 ‘전치displacement’ 속에 있다.
그렇다면 우연은 그런 구조 속에서 일어나는 것인가,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인가.

 

 

“우리는 누군가의 말소리를 듣자마자 마음속으로 말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리게 된다. 그리고 불과 몇 초 내에 온갖 종류의 조용한 정보들이 흡수된다. 성별, 대략적인 나이, 사회 계층, 출생지, 심지어는 그 사람의 피부색까지도. 우리가 볼 수 있다면, 눈을 뜨고 마음속으로 그린 이미지가 실제의 인물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알아보고 싶은 것이 자연스러운 충동이다. 그 두 가지는 비교적 근접할 때가 아닐 때보다 더 많지만, 때로는 전혀 틀리는 경우도 있다.”
    
“그때까지 나는 항상 일반화를 하려는, 사물들 사이에서 그것들의 차이점보다는 유사점을 찾아보려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특별한 사물들의 세계로 뛰어드는 중이었고, 그것들을 말로 일깨워 즉석에서 감각적인 데이터로 불러내는 일은 내가 미처 준비를 하지 못한 투쟁이었다. 에핑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플로베르를 시켜 자기를 밀고 돌아다니게 했어야 옳았다. 하지만 플로베르도 때로는 단 한 문장을 옳게 쓰려고 몇 시간씩 애를 쓰면서 골머리를 앓지 않았던가! 나는 사물을 정확히 설명해야 되었을 뿐 아니라 단 몇 초 내에 그 일을 해야 했다.”
    
“세상은 눈을 통해 우리에게로 들어오지만, 우리는 그 이미지가 입으로 내려가기 전에는 뜻이 통하게 할 수 없다. 나는 그 거리가 얼마나 먼 지를 올바르게 인식하기 시작했고, 어떤 사물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가기 위해 얼마나 멀리 여행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실제적인 의미에서 그 거리는 6, 7센티미터에 불과했지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고와 손실이 생겨나는지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지구에서부터 달까지의 여행이 될 수도 있었다.”


ㅡ 폴 오스터  『달의 궁전』 중

 

촘스키의 생성 문법을 보여주는 문장이 가득한 『달의 궁전』을 읽으며 나는 하루키를 떠올리다가 심보선을 떠올리다가 연상의 동굴을 자주 만났다.
특히 심보선의 시 「브라운이 브라운에게」는 폴 오스터 『달의 궁전』 변형 생성 문법 같다.
심보선 시인에게 직접 물어보면 끝날 일이지만 재미 삼아 인간의 특징답게 복잡하게 이 글을 쓴다.
두 작품이 연결되는 우연성에 나는 혼란스러웠다. 뉴욕 시가 배경, 주인공이 아버지 없이 어머니에게서 자라다가 어머니 사망 후 고아가 돼 삼촌에게 길러진 가정 상황, 비밀스러운 뜻의 이름(Then Brown(「브라운이 브라운에게」), 마르코 스탠리 포그(『달의 궁전』)) 등등.  
    


두 작품 다 우연히 가지게 된 포춘쿠키의 문장이 작품에서 중요하게 작용한다. 「브라운이 브라운에게」에서 덴 브라운은 <희망은 그대 영혼의 가장 비극적인 부분이다>란 비관주의적인 문구를 발견하고 고객 관리 담당자에게 문의한다. 이 사건 추적 속에 덴 브라운은 행운의 메시지 작가와 불행의 메시지 작가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의도적으로 고안된 ‘불량품’이 오히려 장인적 고뇌의 산물”이라는 역설에 감동하며 자신이 사실 그 불행의 글귀들을 모으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작가 이름이 Brown Gee라는 것에서 필연을 느끼고 자신의 비밀을 말한다. 포춘쿠키 속에 불행의 메시지를 몰래 넣는 Brown Gee는 폴 오스터 『거대한 괴물』에서 폭탄 테러를 벌이는 아나키스트적인 인물 ‘삭스’ 소심 버전으로도 읽히는데, Brown Gee가 Then Brown의 아버지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남겨둔 채 이 시는 끝난다. 심보선은 우연을 우연인 채 남겨두려 한 거 같다. 그러나 폴 오스터는 우연을 필연으로 만든다.
    
    
『달의 궁전』은 마르코 스탠리 포그, 솔로먼 바버, 토머스 에핑 삼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들은 서로가 가족인 줄 모르다가 사실을 너무 늦게 알게 된다. 마르코 스탠리 포그가 본 포춘쿠키 점괘는 포그 - 테슬라 - 에핑을 연결하고 있다.

 

“테슬라의 자서전인 『나의 발명들』을 보게 되었는데, 그 책은 원래 그가 1919년 〈전기 기술〉이라는 잡지사에서 출판한 것이었다. 나는 그 책을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본문을 서너 페이지쯤 읽다가 거의 1년 전쯤 달의 궁전의 쿠키에서 나온 점괘와 똑같은 문장을 보게 되었다.
〈태양은 과거이고, 지구는 현재이고 달은 미래이다.〉
그때까지도 나는 그 쪽지를 지갑에 넣어 두고 있었는데 그 말이 테슬라, 에핑에게 그처럼 중요했던 바로 그 테슬라가 한 말이라는 것을 알고 몹시 놀랐다. 나에게는 그 우연의 일치가 의미심장하기 그지없어 보였지만 정확히 어째서인지는 잘 알 수 없었다. 마치 내 운명이 나를 부르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내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고 할 때마다 알아듣지 못할 말로 바뀌는 것 같았다. 중국의 점괘가 든 쿠키 공장에서 일하는 어떤 노동자가 테슬라의 책을 읽었던 것일까? 아무리 보아도 그럴 것 같지는 않았지만 설령 그랬다 하더라도 그때 우리가 앉아 있던 테이블에서 그 특별한 메시지가 담긴 쿠키를 고른 사람이 하필이면 왜 나였을까? 나는 그 일로 이상한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불가사의한 일의 접합이어서 이상한 음모라든가 예견적인 신호, 전조, 찰리 베이컨의 세계관과 유사한 세계관 같은 어떤 미친 듯한 대답 이외에는 아무것도 그것을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테슬라에 관한 에세이를 그만두고 우연의 일치라는 문제를 탐구하기 시작했지만 거기에서 많은 진척을 보지는 못 했다.”


ㅡ 폴 오스터  『달의 궁전』 중

 

 

자신의 삶을 소진시키려고만 한 포그, 자신의 과거를 지우고 재창조한 에핑, 포그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혼돈 속으로 뛰어들었고 자신의 비대한 몸과는 다른 특별한 세계를 창조한 바버. 이 세 사람은 어떤 면에서는 운이 좋았고 어떤 지점에서는 운이 없었다. 자신을 도와준 소중한 인연들이 있었지만 상실을 자초하는 포그, 죽음의 위협에서 벗어나고 일확천금을 얻었음에도 불구, 맹인, 외톨이라는 극복할 수 없는 장애 속에서 산 에핑, 뛰어난 지성이 있었지만 초비만이라는 육체적 결함, 결코 얻을 수 없었던 사랑이 죽음의 원인이 되기까지 한 바버.
포그가 공원에서 노숙인으로 살면서 깨달음에 이르는 장면과 바버가 자신의 육체를 받아들이는 장면, 황무지에서 은자의 동굴을 발견하고 자신을 다시 발견하게 되는 에핑의 일화는 폴 오스터가 우연으로 배치한 게 아니었다. 우리는 재창조되는 공간을 가지고 있다. 아주 작은 포춘 쿠키만 하든, 공원이든, 황무지든, 머릿속이든.

 

 

“나는 전날보다 조금씩 조금씩 더 더러워지고 더 너저분해지고 더 혼란스러워져서 차츰차츰 나 이외의 모든 사람들과 달라졌다. 그러나 공원에서는 자의식이라는 짐을 지고 돌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공원은 내게 문턱, 경계선, 내면과 외면을 구분하는 방법을 제공했다. 길거리에서는 어쩔 수 없이 나 자신을 다른 사람들이 보는 식으로 볼 수밖에 없었지만, 공원은 나에게 내면적인 삶으로 돌아가 순전히 내면적인 관점에서 나 자신에 전념할 기회를 주었다. 나는 하늘을 가릴 지붕 없이는 살 수 있지만 내면과 외면 사이의 평정을 확립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공원은 나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었다. 어쩌면 그곳은 정말로는 집이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다른 피난처가 없었던 내게는 그곳이 집이나 거의 진배없었다."
ㅡ 포그 편
    
“그는 낯선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건 무시하고 구경거리가 되는 고통에 덤덤해지는 법을 배우면서 그 몇 달을 보냈다. 매일 아침마다 그는 러시아워의 유클리드 가를 따라 걸어가면서 자신을 시험했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반드시 웨이예 공원으로 나가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고, 입을 쩍 벌리고서 쳐다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못 들은 척하고, 자기에게 쏟아지는 눈길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오후 시간을 보냈다. 이제 그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외톨이, 자신의 비틀거리는 의식을 헤치고 터벅터벅 걷는 둥근 달걀 모양의 단세포 생물이었다. 하지만 그 일은 효과가 있어서 그는 더 이상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혼돈 속으로 뛰어듦으로써 그는 마침내 솔로몬 바버, 내로라하는 중요한 인물, 자신을 극복하고 스스로 창조한 세계가 되었다.”
ㅡ 바버 편
    
“나는 그걸 해 봤고 지금은 그게 모두 내 머릿속에 있어.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황무지 한가운데서 혼자 몇 달 몇 년 씩 살아 봤지…. 일단 그러고 나면 평생 동안 그걸 절대로 잊지 못해. 나는 어디로도 갈 필요가 없어. 거기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리로 돌아가 있으니까. 거기가 요즘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야. 아무도 없는 곳 한가운데로 돌아가서……."
ㅡ 에핑 편

 

 

에핑은 바버가 자식인 걸 알았지만 만나지 않았고, 포그가 자신의 손자인 걸 알지 못했다. 알았기에 행복하지도 않았고 몰랐기에 불행하지도 않았다. 바버는 부재했던 아버지의 소식을 전해듣고 분노도 행복도 느끼지 못했지만 포그가 자신의 아들인 걸 알고 행복과 슬픔을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포그는... 연인 키티, 바버, 에핑에게 그는 늘 미숙한 자였다. 에핑처럼 외적인 성취로 자신을 위장하지도 못했고,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자기 삶의 미스터리를 집요하게 파헤쳐 역사학자로서 지적 성취를 이룬 바버처럼 되지도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우리 대부분은 포그를, 덴 브라운을 닮았다는 것을.
우리는 브라운 지가 작성한 글귀를 다르게 작성할 수도 있고 덴 브라운과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태양과 지구와 달의 관계를 다르게 볼 수도 있으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다르게 인식할 수도 있다. 우리 모두는 인식 한계 속에 있다. 촘스키는 인지 능력의 한계가 지식 추구의 걸림돌만 되는 게 아니라 뉴턴의 중력 발견이 그 이후를 뒤바꿔 놓았듯 전혀 다른 걸 발견할 가능성이 될 수도 있다고 보았다. 우연이 필연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연히 발견한 것들이 우리 삶을 극적으로 바꿨던 것에 더 주목해야 하리라.

촘스키의 아나키스트적인 면모와 폴 오스터 세계 속에 아나키즘이 오늘은 특별하게 보인다. 우연하게도.
    
오늘 내게 온 포춘쿠키는 이 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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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6-03 2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의 5개 숫자는 로또 번호일까요? 5개까지 가르쳐 주고 나머지 1개를 안가르쳐 주는 것을 보면 1등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비극이 될 수 있음을 가슴 깊이 느끼게 됩니다.ㅋㅋ

AgalmA 2018-06-03 21:58   좋아요 1 | URL
네. 행운의 숫자래요. 로또 같은데 쓰라고 그런 듯ㅎ;
아이고, 겨울호랑이님 농담을 참 비극적으로 하시네요ㅋ

NamGiKim 2018-06-04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촘스키 책 읽어보고 싶군요.

AgalmA 2018-06-04 18:35   좋아요 1 | URL
아직 안 읽어 보셨다면 언어에 대한 책을 읽어 보시면 더 좋겠죠.
<촘스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는 촘스키의 최신작 <불평등의 이유> 읽기 전에 워밍업으로 읽은 건데요. 지금의 불평등에 대한 지식인으로서의 그의 노력, 아나키즘적 공공선을 추구하는 방향성이 어떻게 나왔는지 그림이 잡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