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ce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거울 나라의 앨리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5
루이스 캐럴 원작, 마틴 가드너 주석, 존 테니엘 그림, 최인자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루이스 캐럴과 나보코프... 그들의 소설을 읽었다면 당연히 연결 지을 수밖에 없다.

앨리스야 두말할 필요 없이 명작이지만 이 책은 주석 편집이 너무 난삽해서 2015년 사파리 출판사에서 나온 걸로 다시 구입해야 할 듯.

존 테니얼이 말벌 그리기 싫다고 <가발을 쓴 말벌> 빼라고 해서 초판엔 빠졌었다는 데 충격ㅎ 작가보다 파워가 더 세다니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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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10-16 0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부족해서겠지만, 책의 주석을 읽는 것이 본문 읽는 것보다 쉽지 않습니다.ㅜㅜ

AgalmA 2019-10-16 01:37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ㅜㅜ 앨리스 책에 나오는 문제와 퍼즐들만 모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추리파일> 읽다가 머리에 쥐나는 줄 알았어요. 깊이 읽으면 읽을수록 더 난해해지는 책. 그래서 명작이라나 뭐라나ㅎㅎ;
<어린 왕자>도 그렇고 아이, 어른이 다 봐도 다르게 읽을 수 있는 이런 책이 정말 좋은 책인 거 같아요^^
 
악스트 Axt 2019.9.10 - no.026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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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스 레싱을 페미니스트 작가라고 한정하기보다 카산드라 혹은 샤먼 같다고 하는 이유는 작가 특유의 어투로도 짐작 가능하다. 그녀의 글은 차갑고 명징하다. 그녀의 메시지는 저 심연의 기저에서 흘러나오므로 빨리, 쉽게 포착되지 않는다. 카산드라의 노래처럼 우회하지 않고 진실을 말하지만 너무 비극적이어서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을 듯하다. 카산드라의 언어는 치솟은 파도 너울 안쪽의 접혀진 음영 지대에 머물러 있는 어둡고 난해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나는 레싱의 글이 통속적이지 않아 좋다. 가령, 자식들에게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대는 어미 새들의 소음 같은 것이 들리지 않아 좋다. 남자에게 버림받은 한 여인이 낼 법한 자기분열적이고 자기파괴적인 신음이 들리지 않아 좋다. 욕망을 비운다고 하면서 욕망을 증폭시키는, 아직도 긴장과 흥분 상태 속에 있는 피곤한 글이 아니어서 좋다. 도리스 레싱은 그저 차갑게 예증할 뿐, 너무 자세한 해설을 보태지 않는다. 자기연민에 빠질 필요는 없지 않은가. 페미니즘적인 글쓰기는 무엇일까? 여성적인 글쓰기가 따로 있기는 한 건가?

(중략)

섹스라는 단어도 실상 어원대로라면 교합이 아니라 분리이다. 라틴어 섹수스(Sexus)는 암수 분리라는 뜻이다. 고대 로마의 황제 섹수투스는 분리와 통합을 이중적으로 구사하는 고도의 통치 능력을 염원하며 섹수스에서 파생한 ‘섹수투스’를 자신의 황제 명으로 정했다고도 한다. 결혼에 이은 이혼은 외견상 결정적 파국 같지만, 내적 논리로만 보면 유기적이고 연기(緣起)적인 수순 같기도 하다.

도리스 레싱은 늘 자신을 탈영토화함으로써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녀는 늘 ‘바깥’에 있었다.

ㅡ 류재화, <도리스 레싱 『다섯째 아이』>

만나는 건 쉽고 헤어짐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조언을 구하고, 상담을 하게 된다. 데이트를 하러 온 젊은 커플들이 가득한 한 카페에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한 정신과전문의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다. "이 사람과 결혼해야 하나요를 물으러 오지 않지만, 이 사람과 헤어져야 하나요는 물으러 오지요." 입사할 때보다 퇴사할 때 더 고민이 많고, 장사를 시작할 때보다 접을 때 더 헷갈리는 것처럼, 결혼과 이혼도 똑같단다. 그 의사 선생님에게 소설 「이혼 지침서」의 내용과 ‘이모들’로부터 받았던 조기교육의 내용을 이야기해드렸더니 이렇게 말했다. "삶의 에너지가 더 강한 사람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지요. 물론 의사인 제가 권장할 방법은 아니죠. 나도 상처를 입을 수 있으니까요."
영국의 대중저술가 로버트 롤런드 스미스는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Driving with Plato)』이라는 책에서 오늘날 이혼이 갖는 부정적인 의미가 많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혼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 이와 같이 말한다. "서로 헤어지는 데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헤어지려 하는 두 사람이 헤어지는 방법에 관해 강제적으로 동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ㅡ 김보경, <쑤퉁 「이혼 지침서」>

그는 마치 부활하는 것처럼 방의 일부가 되어버렸고, 이 시점에서 화자는 줄곧 ‘그’였던 것에서 ‘그녀’로 바뀐다. 그 방에 들어온 (아내임이 분명한)그녀는 누군가가 들어온 흔적을 알아채지만 잃어버린 것이 없다는 것에 곧 안도한다. 그리고 그녀는 잃어버린 것이 없는 대신 새로운 물건 하나를 발견한다. 여기에서 이 소설의 문장은 시간을 마구 뒤집어놓는다. 분명 새로운 물건을 발견했는데 "그 물건은 그녀가 매우 좋아했던 것이었으므로"라는 과거형으로 그 새로운 물건에 대해 얘기한다. 그로 미루어보건데 그는 이 집에서 아내의 남편이자 집의 일부인 가구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처음부터 가족이란 제도에서 남자 가장의 방은 없다. 남자에게 집은 가장 낯선 공간이다. 특히 가부장제는 오랜 과거에서부터 남자를 끝없이 집밖으로 내몰았다. 최인호의 「타인의 방」에서 아내의 외출은 상황을 전도시킨 그의 배제였고, 그 배제에서 그가 아내의 집에 계속 남아 있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가구가 되는 길뿐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메모지를 찢어 달필로 다음과 같이 써서 화장대 위에 놓았다.(생략)"

ㅡ함성호, <최인호 「타인의 방」>

최제훈 : 저는 기본적으로 소설뿐 아니라 모든 창작의 세계에서는 가급적 제한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미적가치는 어디서 싹을 틔울지 모르는 건데 밭 자체를 폐쇄해버리면 그만큼 세계의 인식 가능성이 줄어드는 셈이니까요. 극단적인 생각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무엇을 허용하고 허용하지 말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대중의 판단력 자체가 떨어질 수도 있고, 결국 필터를 자처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세계만 읽으면서 살게 될 수도 있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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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태도가 점점 확대되면 결국 우리는 비슷비슷한 인물이 등장하는 비슷비슷한 소설만 읽게 되겠죠. 소설은 어떤 지향점을 바라보기보다는 지금 여기를 파헤치는 데 특화된 장르라고 생각해요. 현실에서도 선한 사람들만 살아가면 좋겠지만 그건 바람일 뿐이잖아요. 왜 그렇게 되지 않는지를 소설은 냉정하게 보여줄 수 있어야죠.

ㅡcover story 최제훈+손보미, <이 세계에 사는 동안, 나는 계속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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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 이 단어 강박자 같으니라구. 조르주 페렉과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중에 누가 더 승자인지 모르겠네.

흐음, 월리스 문체가 워낙 까다로워 번역하기 쉽지 않다는 건 알지만 좀 더 자연스러웠으면 좋았을걸 아쉽다. 제임스 조이스나 윌리엄 포크너의 난감한 번역 문장을 만났을 때의 당황스러움이 있다. 그러나 기다리던 월리스 소설이 국내에 짠~ 하고 나타난 게 어디야ㅜㅜ
내겐 노벨 문학상 이슈보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소설 국내 출간이 더 놀라웠다구. 엉엉. 알마 출판사 큰일 했네~

미셸 우엘벡 신간도 10월에 나온다더니 올해 10월은 읽을 게 넘쳐나는 달이다. 이 겨울도 책으로 따땃하려나.







일곱 개의 케이크 빵이 피라미드처럼 쌓여 있었다. 제품은 얼핏 종이처럼 보이지만 비닐처럼 찢기는 트랜스폴리머 재질로 개별 밀폐 포장되어 있었다. 이 합성 재질은 M&M으로유명한 마스Mas사가 1980년대 후반 일대 혁신을 일으킨 ‘밀키웨이 다크 제품군에 처음으로 사용한 이후 대부분의 미국 과자 회사들이 일제히 도입했다. 제품 포장에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흰색과 파란색의 미스터 스퀴지 디자인이 적용돼있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세밀한 질감의 검정 선으로 표현된 교도소 창살 뒤에서 미스터 스퀴시 아이콘이 동그란 눈과 입으로 만화적 공포를 표현하고 있고, 밀가루 반죽 색의 통통한 양손으로 전 세계 수감자들의 보편적인 손동작을 재현하여 창살을 하나씩 말아 쥐고 있다는 것이다. 포장지에 담긴 고밀도의 촉촉해 보이는 짙은 색 케이크 빵의 상품명은 펠러니! relonist(*중범죄 뜻)였다. 사뭇 모험적으로 보이는 이 다면적인 이름은 건강에 민감한 오늘날의 소비자들이 대기업에서 만든 고칼로리 스낵을 소비할 때 느끼는 악덕, 탐닉, 일탈,
죄악의 감정을 함축하는 동시에 패러디하고 있었다. 이 상품명의 연상 매트릭스에는 ‘성인‘과 ‘성인의 자율에 대한 암시도 포함돼 있었는데, ㄴ‘과 ‘우- 음으로 점철된 귀엽고 만화적인 상품명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펠러니!라는 이름
ㅡ <미스터 스퀴시>

오드리 보겐에게 이 은어의 유래를 설명해야 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사나운 빗줄기가 19번 홀룸의 커다란 ‘퇴창‘을 맹렬히 덮치고 납틀 판유리를 따라 복잡하게 포개지는 여러겹의 번들거리는 면으로 흘러내렸다. 유리와 캔버스 차양을 치는 빗소리는 기계식 혹은 ‘자동식‘ 세차장 소리와 비슷했다. 고급 수입 목재, 어둑한 조명, 각종 주류와 애프터셰이브와 헤어 오일과 고급 수입 담배와 남자들의 젖은 스포츠 의류 냄새들로 가득한 19번 홀룸은 따뜻하고 아늑하고 안락‘
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비좁은 느낌이 드는 것이, 마치 위압적인 어른의 무릎 같았다. 일곱 달 가까이 시달려온 극심한 수면장애로 인한 동요와 감각지각의 왜곡 혹은 ‘변형‘이 네 번째 페어웨이에서 덮쳐와 민망한 모습을 보인 후 또다시 덮쳐온 것은 대략 이즈음이었다. 그 증상과 기분은, 대뇌에서 지진 혹은 ‘쓰나미‘가 일어나는 것 같다고, 정서적 스트레스와 만성 수면 박탈이라는 조건하에서 기능해야 했던 신경이 반발하여 ‘신경성 시위‘ 혹은 ‘반란‘을 일으키는 느낌과다르지 않다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이번에는 19번 홀룸에 있는 모든 사물의 색깔이 순식간에 제멋대로 밝아지고 채도가 높아졌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희미하게 떨리고 울렁거렸다. 개별 사물들은 역설적이게도 뒤로 물러나며 멀어지는 동시에 비정상적일 만큼 또렷이 보이며 윤곽이 매우 매우 세밀하고 분명해졌는데, 꼭 빅토리아 시대의 유화에 나오는 장면 같았다. 
ㅡ<오블리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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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 전작품이 그럴테지만 이 소설도 프로이트가 분석하기 좋아했을 작품. 꿈속 전이 같은 장면 전개, 성적 몽상 등. 이것과 더불어 만나는 여성마다 연애 분위기가 되는 것은 홍상수 영화와도 매우 흡사하다. 지금에서는 매우 흔하지만 카프카의 이런 플롯은 당시에는 혁신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파혼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 그의 여성관에 따른 여성 캐릭터는 전근대적인 게 흠이다.

기묘함이 진지한 상황과 함께 인물의 우스꽝스러움을 유발하는 것은 도스토예프스키와 참 유사한데 결과적으로는 부조리한 우화가 되는 게 카프카의 변별점이자 주 특징.




K는 홀의 끝 쪽에서 들려오는 째지는 듯한 외침 소리에 방해를 받았다. 그는 대체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손을 눈 위쪽에 갖다 댔다. 햇빛에 반사된 공기가 희뿌옇게 되어 눈이 부셨기 때문이다. 문제의 인물은 바로 그 세탁부였다. K는 그녀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는 순간 그녀가 소란의 장본인이리라 짐작했다. 이번 일의 책임이 그녀에게 있는지 아닌지 여부는 분명치 않았다. K는 다만 한 남자가 그녀를 문 쪽 구석으로 끌고 가 끌어안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그러나 비명을 지른 것은 그 여자가 아니라 그 남자였다. 남자는 입을 헤벌린 채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두 사람 주위로 작은 원을 그리며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근처의 회랑에 있던 사람들은 K가 조성했던 심각한 회합 분위기가 이런 식으로 깨진 것을 몹시 기뻐하는 것 같았다. K는 당장 그리로 달려가고 싶은 생각이 불쑥 일었다.

두 사람은 이미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K는 여전히 문간에 서 있었다. 여자가 그를 속였다고, 그것도 예심 판사에게 가봐야 한다는 말로 속였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심 판사가 다락방 같은 곳에 앉아서 기다릴 리는 없었다. 아무리 오래 노려본들 계단이 그에 대한 답을 주지는 않았다. 그때 K는 다락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조그만 표찰이 붙어 있는 것을 알아채고 얼른 그리로 가서 어린애처럼 졸렬한 글씨체로 쓰여 있는 글을 읽어 보았다. 〈법원 사무처 계단〉. 이 셋집 다락 층에 법원 사무처가 있단 말인가? 존경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시설은 아니었다. 그리고 피고의 입장에서 볼 때 법원이 가난하여 극빈자들이 쓰레기 같은 넝마를 버리는 이런 곳에 사무처를 두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이튿날이 되어도 K의 머릿속에서는 감시원들 생각이 떠날 줄 몰랐다. 일을 하려고 자리에 앉아 있어도 도무지 집중이 안 되어서 일을 끝내기 위해 어제보다 조금 더 사무실에 남아 있어야 했다. 귀가 중 다시 그 창고 같은 방 앞에 이르자 그는 습관처럼 문을 열어 보았다. 그가 예상했던 캄캄한 어둠 대신 다른 광경이 펼쳐져 있자 당혹스러웠다. 모든 것이 어제저녁 그가 문을 열었을 때 모습 그대로였다. 문가 바로 앞쪽에 있던 서식 용지들과 잉크병들, 회초리를 손에 든 태형 형리, 옷을 완벽하게 차려 입고 있는 감시원들, 선반 위의 촛불. 그리고 감시원들은 애걸복걸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K는 얼른 문을 홱 닫고 주먹으로 쾅쾅 두드렸다. 그렇게 하면 문이 더 굳게 닫히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는 거의 울상이 되어 사환들에게로 달려갔다.

「당신은 이 법정과 이 법정에서 자행되는 사기 수법을 꿰고 있군요.」 K가 말했다. 그러면서 자꾸만 밀착해 오는 그녀를 자기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이러니 참 좋아요.」 그녀는 그의 무릎 위에서 편하게 몸을 고쳐 앉으며 치마를 펴고 블라우스도 매만지며 말했다. 그러더니 양손을 그의 목에 두르고서 매달리며 몸을 뒤로 젖혀 오래도록 그를 쳐다보았다. 「만일 내가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나를 못 도와주나요?」 K가 떠보는 투로 물었다. 여자 조력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꼴이군. 스스로 놀라며 그는 생각했다. 처음엔 뷔르스트너 양을, 그다음엔 정리의 마누라를 그리고 이제는 이 조그만 여자 가정부를 말이야. 이 여자는 말할 수 없이 나를 원하는 것 같군. 원래부터 자기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 무릎 위에 앉아 있는 꼴 좀 봐! 「네.」 레니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면 당신을 도와줄 수 없어요. 당신은 내 도움을 원치 않는 것 같군요. 관심조차 없어요. 당신은 정말 고집불통에다 남의 말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아요.」 잠시 뒤 그녀가 물었다. 「혹시 애인은 있나요?」 「없소.」 K가 말했다. 「그럴 리가요.」 그녀가 말했다. 「그래, 사실은 있어요.」 K가 말했다. 「없다고 말은 했지만 사실은 사진까지 갖고 다녀요.」 그녀가 자꾸만 졸라 대자 그는 사진을 보여 주었다. 그녀는 그의 무릎 위에서 몸을 구부린 채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스냅 사진이었다. 뱅뱅 도는 춤을 추던 끝자락에 찍은 엘자의 사진이었다.

그러므로 엄격하게 보면 법원에서 인정한 변호사는 없는 셈이고, 법정에 변호사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볼 때 모두 엉터리 변호사일 뿐이다. 이런 사실은 변호사라는 직업 전체에 대한 모욕이 아닐 수 없다. K가 앞으로 법원 사무국에 가게 되면 사실 확인을 해볼 겸 변호사실에 한번 들러 보라.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아마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다. 그들에게 배정된 좁고 천장이 낮은 방 자체가 이미 법원이 변호사들에 대해 갖고 있는 경멸의 빛을 보여 준다. 그 방엔 천장에 나 있는 작은 들창 하나를 통해서만 빛이 들어온다. 그 들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려면 바로 들창 앞쪽에 있는 굴뚝 때문에 연기를 들이마실 수밖에 없고 얼굴까지 그을리는데 그마저도 천장에 너무 높이 달려 있어 먼저 동료 하나를 구해서 그의 등을 밟고 올라가야 한다. 그 방의 마룻바닥에는 ─ 이런 형편없는 상황을 알려 주는 또 다른 예를 하나 들자면 ─ 벌써 1년이 넘게 구멍이 하나 나 있다. 사람 몸 하나가 빠질 정도는 아니지만 다리 정도는 빠지고도 남을 정도의 크기이다. 변호사실은 다락의 2층에 있어서 누군가의 다리가 빠지면 그 사람의 다리가 다락방 1층의 천장에 달랑달랑 매달린다. 그곳은 바로 의뢰인들이 기다리는 복도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변호사들 사이에서 치욕적이라고 말하는 것도 과장은 아니다. 행정 관청 쪽에 불평해 봤자 아무 소용도 없다. 그렇다고 변호사들이 자기 돈으로 변호사실의 뭔가를 변경하는 것도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변호사들을 이렇게 대접하는 데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되도록 변호사의 개입을 배제하고, 피고가 모든 것을 직접 떠맡도록 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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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숨 : EXHALATION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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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 년 뒤의 미래에서 당신들에게 이 경고를 전송하고 있다. 이것은 백만 초 범위의 네거티브 딜레이 회로가 통신 장치에 장착된 이후 처음으로 도착한 장문의 메시지다. 다른 문제들을 다룬 다른 메시지들도 뒤따를 것이다. 그러나 나의 메시지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자유의지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라. 설령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어도, 스스로 내리는 선택에 의미가 있는 듯이 행동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무엇이 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당신이 무엇을 믿느냐이며, 이 거짓말을 믿는 것이야말로 깨어 있는 혼수상태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문명의 존속은 이제 자기기만에 달려 있다. 어쩌면 줄곧 그래 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자유의지가 환상인 이상, 누가 무동무언증에 빠지고 누가 빠지지 않을지 또한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이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 그 누구도 예측기가 당신에게 끼칠 영향을 선택할 수 없다. 누군가는 굴복할 것이고 누군가는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보내는 이 경고는 그 비율을 바꾸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런 일을 한 것일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ㅡ<우리가 해야 할 일>

이런 생각은 동물원 사육사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사람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하기 때문에 동물 쪽을 선호한다는—을 받아들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애나는 자기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노력한다. 동물과의 비非성적인 관계는 정상으로 보면서 왜 성적인 관계는 그럴 수가 없을까. 동물이 인간에게 해줄 수 있는 한정된 동의는 동물을 애완용으로 기르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되는데, 왜 그들과 섹스를 하기에는 충분치 못한 것일까. 이번에도 애나는 개인적인 불쾌감에 근거하지 않은 반박 논리를 찾을 수가 없다. 불쾌감이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을까."
ㅡ<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깨끗이 용서하고 모두 잊어버려라"라는 말도 있듯이 이상화된 우리의 관대한 자아에게는 그런 충고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에게 이 두 행위 사이의 관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용서할 수 있으려면, 그 전에 어느 정도 망각을 해야 한다. 과거의 심적 고통을 더 이상 생생하게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을 유발한 행위를 용서하기도 더 쉬워지고, 그 결과 해당 기억 자체가 덜 중요해지는 식으로 말이다. 과거의 당신을 격분케 했던 악행도 반추의 거울에 비춰 보면 용서할 만한 것으로 보이는 현상의 이면에는 바로 이런 심리적 피드백 고리가 존재한다."
ㅡ<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과학은 우리의 아픔을 경감해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그게 과학에 투신하는 유일한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저는 반박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진리를 탐구할 의무가 있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과학은 진리의 탐구만이 아닙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과학은 의도를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줄곧 진리와 의도가 동일한 것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가 동일하지 않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주여, 저는 이제 뭘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인 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저를 두렵게 합니다.
ㅡ<옴팔로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선택이 무의미해진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에 사로잡혔다. 그들이 취하는 모든 행동이 그들이 정반대의 선택을 하는 평행우주의 존재에 의해 상쇄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인간의 의사 결정은 양자적 현상이라기보다는 고전역학적 현상임을 지적했고, 따라서 선택한다는 행위 자체가 우주를 새로운 갈래들로 분기시키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갈래의 평행우주를 형성하는 것은 양자 현상이고, 각 갈래에서의 개인의 선택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의미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프리즘이 개인 행위에 수반되는 윤리적 책임을 무효화시킨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ㅡ<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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