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語文隨想>

專門用語를 소리로만 읊는 젊은이들

金允溟(檀國大 電子工學科 敎授)


  <한국경제신문> 2006년 11월 11일자 제1면 上段에 보도된 것을 보면, ‘글로벌 人的 資源 포럼’에서 미국 하버드大學 로버트 배로 교수는 “교육의 質이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며, 科學과 數學 점수가 높은 나라일수록 경제 성장률이 높다.”고 강조했다. 교육의 質을 높이고 科學과 數學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의미가 분명한 學術用語들을 많이 가진 좋은 言語가 있어야 한다. 그런 面에서 言語는 국가의 가장 중요한 無形의 基盤施設(infrastructure)이다.

  우리의 학문이나 기술 용어 대부분은 西歐에서 만들어진 것이 日本에 들어와 漢字化의 과정을 거친 다음, 우리나라에 떠밀려 들어왔다. 그것은 우리에게 幸運인가, 不幸인가? 그것을 不幸이라 치고, 全面的으로 뜯어고칠 생각을 한번 해보자면, 그 일은 너무나 엄청나서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漢字 用語는 그냥 漢字로 적는다. 여기에는 아무런 反論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 한글은 대단히 우수하여 모든 용어를 한글로 적어도 괜찮다는 사람들이 있으나, 그것은 지나친 自慢이며 근거 없는 盲信이다. 한글은 생각만큼 그렇게 萬能이지 않다. 한글은 영어와 같은 표음문자이지만, 言語史的 상황과 현재의 사용 환경이 서로 다르므로 동일한 주장을 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영어는 거의 모든 용어를 알파벳으로만 적고 있지만,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같은 소리文字이면서도 한글로는 잘 안 된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영어는 소리문자라 하여도 알파벳 몇 字가 모이면 의미를 가지게 되어 있다. 漢字도 낱자마다 그 의미가 있지만, 그것을 소리문자로 바꾸면 갑자기 그 의미를 잃게 되거나 不分明하게 된다. 여기에서 용어를 영어와 한글로 쓸 때 근본적 차이가 발생한다.

  專門用語의 정확한 의미 전달은 교육에서 절반을 차지한다. 용어의 의미를 분명하게 알지 않고서는 아무리 공부하여도 별 효과가 없다. 뜻이 분명하게 이해되지 않은 용어는 정확하게 사용되지 않고 살짝 變質되거나 誤解되어 사용된다.(이렇게 해서 언어는 또 進化해 간다.) 엄밀하게 定義된 용어를 정확하게 사용해야 하는 학문 세계에서, 이것은 쥐약이다. 거의 모든 학술용어가 漢字로 된 우리나라에서 漢字 없이 학문을 擧論한다면 그것은 詐欺이며, 良心 不足이다. 용어의 정확한 의미 理解가 없이 ‘무어네, 마네’ 하면서 初 ․ 中 ․ 高 ․ 大學에서 敎育이라는 것이 行해지고 있다. 대학 교수들도 자기 세대는 한글 세대로서 漢字를 전혀 배우지 않았노라 하면서, 정확한 의미 解讀 없이 소리로만 전문 용어를 열심히 읊고 있다. 차라리 英語로만 가르치고 배워라. 그러면 自己欺滿은 避하리라.


  조상들의 가치관과 인생관이 녹아 있는 노래들의 深奧한 뜻은 漢字와 더불어 씌었을 때 더욱 감칠맛이 난다. 전통 사상이 잘 반영된 俗歌體의 頌佛歌詞이며, 지금도 放送으로 간간이 들을 수 있는 悔心曲의 첫머리를 純 한글로만 적어보겠다.


일심으로 정념 아 아미이로 타불.

억조창생은 다 만민시주님네 이내 말씀을 들어보소.

인간세상에 다 나온 은덕을랑 남녀노소가 잊지를 마소.

건명전의 법화경이로구나 곤명전의 은중경이로다.

우리 부모 날 비실제 백일정성이며 산천기도라.

명산대찰을 다니시며 온갖 정성을 들이시니

힘든 남기 꺾어지며 공든 탑이 무너지랴 지성이면 감천이라.

                                              (별회심곡)


  위의 歌詞에 한자를 쓰지 않아 이해되지 않는 곳은 없지만, 거기에 漢字를 섞어서 다시 적어보겠다.


一心으로 精念 아 阿彌이로 陀佛.

億兆蒼生은 다 萬民施主님네 이내 말씀을 들어보소.

人間世上에 다 나온 恩德을랑 男女老少가 잊지를 마소.

乾命前의 法華經이로구나 坤命前의 恩重經이로다.

우리 父母 날 비실제 百日精誠이며 山川祈禱라.

名山大刹을 다니시며 온갖 精誠을 들이시니

힘든 남기 꺾어지며 功든 塔이 무너지랴 至誠이면 感天이라.

                                              (別悔心曲)


  같은 노래 구절이지만 달리 적힌 두 노래를 읽어볼 때, 槪念이 구체화되어 마음에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確然히 다름을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 문화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세계에 대한 對應이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하여 언어가 基盤이 되어 받쳐주어야 한다. 自國 말과 글의 순수성을 주장하는 것은, 민족의 순수성을 주장하는 것과 같이 일종의 傲慢과 獨善이며, 언어적 鎖國이다. 우리말과 글이 풍족해지기 위해서는 일정한 분량의 漢字를 숙달시켜 잘 활용되도록 하고, 적절한 외래어들을 우리말의 일부에 편입시켜서 새로운 뜻을 정확히 나타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소리글자인 우리 한글이 세계적으로 널리 발음되는 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성싶다. 한글은 母音價를 나타내는 것에는 큰 부족함이 없는 것 같으나, 子音價를 나타내기에는 모자라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영어의 f, r, v, z 발음 및 발음부호 θ(theta)를 지금의 한글로는 정확하게 나타낼 수가 없다. 물론 소리를 제대로 표시할 수 없는 다른 자음들도 더 있고, 영어 아닌 다른 언어를 나타내기에 부족한 것들도 많이 있겠지만, 우선 영어 표기에 부족한 최소한의 몇 가지 音價를 생각해 보고, 이를 정확히 나타낼 수 있는 새로운 한글 子音 몇 개와 母音 한두 개 만드는 것을 語文學界에 제안하는 바이다. (<語文생활> 통권 제109호, 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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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기세덱 2006-12-13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학자의 얘기여서 그런지 귀에 거슬리는 부분들이 있기는 하네요. "자음 몇 개와 모음 한두 개 만드는" 게 과연 가능할까? 이런 정도는 그냥 흘려버리는 것이 나을 것 같다.
 

 

<卷頭言>

‘素錢’ 이야기

文珷永(仁荷大 國語敎育科 敎授)


  우리나라가 素錢의 주요 輸出國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단순한 製品일 것 같은데 그 規格이나 硬度 등 때문에 상당한 技術力이 요구되는 産業이라고 한다. 數十年 素錢을 만들어 왔고 輸出 商品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지도 꽤 여러 해 됐을 법한데, ‘素錢’이 아직 ꡔ표준국어대사전ꡕ(1999)에도 登載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대다수 言衆들에게는 여전히 新語인 셈이다.

  언젠가 專攻 授業 시간에 ‘소전’이 무엇인가 학생들에게 물어보았다. 분명히 ‘소’를 짧게 發音했음에도, 대뜸 ‘小傳, 小錢, 小戰’ 등의 뜻을 얘기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어떤 학생은 제법 ‘小篆’을 떠올리는 듯도 했다. 그러고 나서 칠판에 ‘素錢’을 써 주었다. 말로 물었을 때 기대했던 답이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미루어 학생들에게 그 槪念 자체가 없었음이 분명한데도, 한동안 잠잠하다가 그 逐字的인 意味를 가지고 正答에 가까이 가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하긴 漢字能力 4급 정도의 實力이라면 ‘素’의 ‘희다, 바탕, 소재…’와 ‘錢’의 ‘돈, 쇠돈…’의 知識을 가지고 기본적인 語義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할 터였다. 어쨌거나 그날 講義에 참여한 학생들은 앞으로 ‘素錢’에 관한 한, 얘기할 때나 글 한 구절 읽거나 적을 때, 산뜻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 것이다. 이것이 漢字의 造語力이고 漢字語의 힘이다.

  漢字는 너무 어려워서, 또는 남의 나라 글자여서 우리글에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머지않아 쉽고 과학적인 우리 글자 한글만 쓰게 되는 날이 올 것인데, 그때까지만 限時的으로 漢字를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말하는 이들도 많이 있다. 또 각종 出版物이나 印刷 媒體에 漢字 表記가 현저하게 줄어든 현상을 보고 한글전용이 定着 段階에 접어들었다고 誤判하기도 한다. 모두가 文字의 意義와 國語 語彙의 特性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말미암은 잘못된 생각들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漢字는 우리 글자이기도 한 것이고, 出版物이나 각종 媒體에 漢字가 줄어든 것은, 불필요하게 어려운 漢文투의 表現이 쓰이지 않게 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잘못된 文字政策과 國語敎育의 跛行으로 量産된 이른바 한글 世代를 겨냥하여 時流를 따를 수밖에 없는 出版界의 商術의 한 斷面이기도 한 것이다.

  年前에 우리나라 靑少年 非文解者의 비율이 20%라는 유네스코의 통계를 본 적이 있다. 全世界的으로 標準化된 기준을 적용해 조사한 결과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주어진 글을 읽고 그 내용을 제대로 理解하지 못하는 사람이 다섯 사람 중 한 명꼴이라는 얘기다. 한때 우리나라는, 가난하지만, 배우기 쉬운 한글과 義務敎育의 普及으로 文盲率이 4% 이하라고 자랑하던 때가 있었다. 아마도 初 ․ 中等學校에서 漢字를 제대로 敎育하던 時期의 얘기일 것이다. 쉽다는 한글도 어렵다는 漢字의 밑바탕이 있어야 그 眞價가 드러날 수 있다는 逆說的인 眞實을 가르쳐 주는 事例라고 할 것이다.

  漢字敎育은 한글專用 때까지의 過渡期에 ‘裁量活動’으로 대충 해도 되는 그런 일이 아니다. 漢字는 東北亞時代 中國 ․ 日本과 交流하고 경쟁하는 데 쓰려고만 공부하는 것도 아니다. 漢字는 우리 모두의 수준 높은 國語 能力을 든든히 하기 위해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 語彙力의 바탕인 것이다.(<語文생활> 통권 제109호,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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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에 눈을 봤습니다. 눈이, 함박눈이 내리더군요. 아침 집을 나서면서 골목길 옆에 주차된 차 지붕위에 얇지만 햐얗게 쌓인 눈을 보고서는 '아, 눈이 왔었네!'란 생각의 아쉬움을 달려주려는 듯, 그렇게 하늘에서 눈이 왔습니다. 올 겨울 들어 저에게는 첫눈입니다. 첫눈 소식은 몇 차례가 있었지만, 제가 깨어있는 공간에, 제 머리 위로 하얗게 소북이 내려 앉는, 그 눈은 오늘이 처음이랍니다.

참 아름답게 내리더군요. 함박눈이었습니다. 눈발이 휘날리는 거셈이 없이, 피부에 전해지는 추위의 싸늘함 없이, 어느 시인이 읊었던 시의 한 구절처럼, 그렇게 따뜻하게 내리는 함박눈이 하늘에서 내려와 지상에 뿌려지는 그 풍경, 그 설경이란 가히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제가 일하는 사무실에 앉아 있다가, 소리를 내지 않은 함박눈의 방문을 우연찮게 깨달았습니다. 순간의 비명과 함께 문을 박차고 달려 나갔습니다. 내 머리 위로 싸분히 내려앉는 함박눈은 아쉽게도 쉬 녹아버리더군요. 그래도 그게 어딥니까. 머리가 젖고, 옷이 젖어드는 것도 잊은체, 어린아이, 강아지처럼 주위를 뛰었습니다. 그냥 그대로 였어도 좋아겠습니다. 손바닥을 위로하고 내리는 함박눈을 내려받았습니다. 손 위에 손털처럼 가뿐히 내려앉은 함박눈 한 송이를 냉큼 입에 넣었습니다. 아무 맛도, 별반 차갑지도 않았지만, 내 속 가득히 산뜻해지고 시원해지더군요. 그 모습을 본 친구는 산성비가 어쩌구, 오염이 어쩌구 하더군요. 저라고 그걸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그때는, 저에게는 올 겨울의 첫눈이 그렇게 아름답게 내리는 그 순간에는, 그렇게 해보아야 했던 것이었습니다.

내일 모레에는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도서관에 틀어박혀서 시험준비에 여념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도 창밖으로는 그 광경을 보았겠지요. 저는 그들이 조금은 안타깝습니다. 무엇이 되었건간에, 우리가 누려야할 최소한의 낭만은 빼앗아 갈 수 없어야 하는게 아닐까요. 저는 그들이 대학생으로서 충분히 누려야할 낭만을, 푸르고 푸른 청춘의 시간에 가져야할 이상, 그런 것들을 무엇엔가에 이리저리 빼앗겨 버린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이땅의 젊은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이런 낭만을 회복시켜 줘야하지 않을까요? 내년이면 가수 김광석이 참 찡하게 불러낸 노래 '서른즈음에'에 제가 딱 걸려버립니다. 그래서인지 더욱 그런 생각들이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는 대학생이 이제는 아니지만은, 지난 대학생활을 돌아보면 무엇을 했던가의 회의보다는 어떤 낭만이 있었는가의 후회가 더욱 큽니다. 그런 아쉬움들 모두 오늘 제게 보내준 하늘의 함박눈을 맞으며 달래고 또 달랬던 것이지요.

푸념과 체념은 이것으로 족하겠습니다. 그것이 길어지면, 제 삶이 궁구해질테니까요. 이번 겨울은 왠지 예감이 좋습니다.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지만, 오늘 내려준 함박눈을 보면서, 그리고 내 머리위에서 사뿐히 내려앉아 녹아버린 그 함박눈이, 제게 그런 기분 좋은 예감을 가능케 합니다.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왼놈이 왼말을 해도" 제 맘 하나 꽉 붙들고 있으면 될 것입니다.

이번 겨울 저에게만은 첫눈인 이 함박눈이 내리는 설경은 내 생애 가장 아름다웠다고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무엇보다 제게 의미깊게 다가오는 그런 눈이었다고 말하겠습니다. 얼마남지 않은 시험에 제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다 잘 되었으면 좋겠구요, 이 겨울 모든 알라디너가 행복하고 평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겨울을 인내하여 봄을 기다리지 마시고, 겨울은 그 겨울의 모습 그대로 만나고 즐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에 이 겨울은 따뜻할 거라 생각해요. 오늘 이 함박눈처럼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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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2-01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멜기세덱님의 겨울도 따스하기를 바래요. ^^

이리스 2006-12-02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헛, 내년이면 서른 즈음.. 이시군요. ^^;
눈을 보고 이렇게나 좋아하시다니 감성이 풍부하신 분 같아요. 마음이 따뜻해지는 편지 한 통 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어요. 감사합니다~
 

문항 57~60은 비문학제재 언어학관련 지문이 출제되었다. 대략 3,000개의 토착어가 소멸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서 언어의 다양성이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출제된 문제들을 보면 내용 일치, 글의 성격과 관련한 글쓰기 전략, 글의 적용, 어휘 등에 대해서 묻고 있다.

[57~60]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언어는 배우는 아이들이 있어야 지속된다. 그러므로 ㉠성인들만 사용하는 언어가 있다면 그 언어의 운명은 어느 정도 정해진 셈이다. 언어학자들은 이런 방식으로 추리하여 인류 역사에 드리워진 비극에 대해 경고한다. 한 언어학자는 현존하는 북미 인디언 언어의 약 80%인 150개 정도가 빈사 상태에 있다고 추정한다. 알래스카와 시베리아 북부에서는 기존 언어의 90%인 40개 언어,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에서는 23%인 160개 언어,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90%인 225개 언어,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는 기존 언어의 50%인 대략 3,000개의 언어들이 소멸해 가고 있다고 한다. 사용자 수가 10만 명을 넘는 약 600개의 언어들은 비교적 안전한 상태에 있지만, ㉡세계 언어 수의 90%에 달하는 그 밖의 언어는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소멸할지도 모른다.

언어가 이처럼 대규모로 소멸하는 원인은 중첩적이다. 토착 언어 사용자들의 거주지가 파괴되고, 종족 말살과 동화(同化) 교육이 이루어지며, 사용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것 외에 ‘문화적 신경가스’라고 불리는 전자 매체가 확산되는 것도 그 원인이 된다. 물론 우리는 소멸을 강요하는 사회적, 정치적 움직임들을 중단시키는 한편, 토착어로 된 교육 자료나 문학 작품,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을 개발함으로써 언어 소멸을 어 정도 막을 수 있다. 나아가 소멸 위기에 처한 언어라도 20세기의 히브리 어처럼 지속적으로 ㉢공식어로 사용할 의지만 있다면 그 언어를 부활시킬 수도 있다.

합리적으로 보자면, 우리가 지구상의 모든 동물이나 식물 종들을 보존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언어를 보존할 수는 없으며, 어쩌면 그래서는 안 되는지도 모른다. 여기에는 도덕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들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어떤 언어 공동체가 경제적 발전을 보장해 주는 주류 언어로 돌아설 것을 선택할 때, 그 어떤 외부 집단이 이들에게 ㉣토착 언어를 유지하도록 강요할 수 있겠는가? 또한, 한 공동체 내에서 이질적인 언어가 사용되면 사람들 사이에 심각한 분열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가 있더라도 전 세계 언어의 50% 이상이 빈사 상태에 있다면 이를 그저 바라볼 수만은 없다.

왜 우리는 ㉤위험에 처한 언어에 관심을 가져야 하나? 언어적 다양성은 인류가 지닌 언어 능력의 범위를 보여 준다. 언어는 인간의 역사와 지리를 담고 있으므로 한 언어가 소멸한다는 것은 역사적 문서를 소장한 도서관 하나가 통째로 불타 없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또 언어는 한 문화에서 시, 이야기, 노래가 존재하는 기반이 되므로, 언어의 소멸이 계속되어 소수의 주류 언어만 살아남는다면 이는 인류의 문화적 다양성까지 해치는 셈이 된다.

57.  위 글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1점]

① 언어의 소멸 가능성은 사용 인구의 수와 연관이 있다.

② 언어의 소멸은 토착 언어 사용자들의 거주지를 파괴한다.

③ 언어의 소멸에는 전자 매체도 영향을 미친다.

④언어의 소멸을 막으려는 노력은 도덕적인 문제와 연관될 수 있다.

⑤ 언어의 소멸은 문화의 손실을 가져온다.

 

57번은 내용 일치 문제이다. 일치하지 않는 것을 고르는 것으로 정답은 ②다. "언어의 소멸은 토착 언어 사용자들의 거주지를 파괴한다."는 설명은 두 번째 단락을 보면 "언어가 이처럼 대규모로 소멸하는 원인은", "토착 언어 사용자들의 거주지가 파괴", "그 원인이 된다."라고 진술되어 있어, 토착 언어 사용자들의 거주지 파괴는 언어 소멸의 결과가 아니라 언어 소멸의 원인이 됨을 알 수 있다.

58.  위 글의 글쓰기 전략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실태를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고 있다.

②문제의 복잡성을 드러내기 위해 관점이 다른 견해도 소개하고 있다.

③대책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권위 있는 전문가의 견해에 기대고 있다.

독자의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 묻고 답하는 방식으로 주장을 제시하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기 위해 예측할 수 있는 미래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문항 58에서는 이 글의 글쓰기 전략에 대해 묻고 있다. 이 글은 토착 언어의 소멸에 대해 문제를 인식하고, 그것은 언어적 다양성, 나아가 인류의 문화적 다양성까지 해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임을 우려하고 있다. 여기에 쓰인 전략으로는 우선 토착 언어가 소멸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①)하면서 그에 대해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또한 그 현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도 소개(②)하고 있으며, 문답식을 방식(④)을 사용하고 있다. 마지막 문단에서는 "인류의 문화적 다양성까지 해치는 셈이" 될 것이라는 예측(⑤)을 하고 있다. 답은 ②로, 대책에 대한 전문가의 견해에 기대고 있는 것을 볼 수는 없다.

59.  위 글의 논지에 비추어 <보기>를 가장 적절하게 해석한 것은?

 

<보 기>

 

 

 

 

영어에는 1인칭 복수로 we 한 가지만 있으나, 자이세 어에서는 청자를 포함하느냐 제외하느냐에 따라 núyníy 구별되고, 체로키 어에서는 ‘화자+청자’를 가리키느냐 ‘화자+제3자’, ‘화자+복수의 타인’, ‘화자+청자+복수의 타인’을 가리키느냐에 따라 말이 달라진다.

①언어가 발전해 가면서 구분 체계도 복잡하고 정교해진다.

②언어 간의 차이는 인류의 언어 능력이 풍부함을 보여 준다.

문법적으로 더 세밀히 구분을 하는 언어일수록 생존에 유리하다.

④국제간의 원활한 교류를 위해서는 언어 간의 차이를 줄여 가야 한다.

⑤경제적 발전을 위해서는 더 널리 쓰이는 언어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59번에서는 제시된 지문에서 "언어적 다양성은 인류가 지닌 언어 능력의 범위를 보여 준다."는 진술을 토대로 <보기>에 제시된 내용에 적용해 볼 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 <보기>에서는 영어의 1인칭 복수는 한 가지밖에 없으나 다른 언어에서는 2가지, 3가지로 분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을 해석해 보면, "언어 간의 차이는 인류의 언어 능력의 풍부함을 보여 준다."는 ②의 설명이 적절하다.

60.  ㉠~㉤ 중, 문맥상 이질적인 것은? [1점]

① ㉠      ② ㉡      ③ ㉢      ④ ㉣      ⑤ ㉤

 

60번에서는 사용된 표현이 무엇을 가르키는 지를 문맥에서 파악할 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 ㉠, ㉡, ㉣, ㉤은 모두 토착어(토착 언어)를 가리키는 반면, ㉢공식어는 소멸되지 않는 언어, 즉 주류 언어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답은 ③이다.

지금까지 200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언어영역 문제분석을 해봤다. 역량이 부족하여 문제분석보다는 문제풀이 위주가 되었다. 전반적으로 이번 문제들은 난이도가 평이했다고 판단된다. 언어사용능력 위주의 평가 문항이 주로 출제되었음을 볼 수 있었다. 앞으로는 수능에서도 문학적 지식보다는 언어사용능력의 평가가 주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국어지식과 관련하여 붐이 일고 있는 것을 볼때, 어문규범 및 인터넷 언어사용적 측면이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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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항 51~56은 문학 제재다. 계랑의 시조와 조위의 가사, 그리고 국어학자 양주동의 수필이 출제되었다.

계랑의 시조의 경우 익히 잘 알려져 있고, 조위의 가사 또한 유배가사의 하나로 이해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 양주동의 수필 또한 쉬운 문장과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 전반적으로 지문 이해도는 높아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51~56]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 리(千里)에 외로운 만 오락가락 하노매

- 계랑의 시조 -


(나) 

이 몸이 녹아져도 옥황상제 처분이요

이 몸이 죽어져도 옥황상제 처분이라

녹아지고 죽어져서 혼백(魂魄)조차 흩어지고

공산 촉루(空山髑髏)*같이 임자 없이 구르다가

곤륜산(崑崙山) 제일봉에 만장송(萬丈松)* 되어 있어

바람비 뿌린 소리 임의 귀에 들리기나

윤회 만겁(輪廻萬劫)하여 금강산 학(鶴)이 되어

일만이천 봉에 마음껏 솟아올라

가을 달 밝은 밤에 두어 소리 슬피 울어

임의 귀에 들리기도 옥황상제 처분일세

한이 뿌리 되고 눈물로 가지 삼아

임의 집 창 밖에 외나무 매화(梅花) 되어

설중(雪中)에 혼자 피어 침변(枕邊)*에 시드는

월중 소영(月中疎影)*이 임의 옷에 비치거든

가엾은 이 얼굴을 네로다 반기실까

- 조위, 「만분가(萬憤歌)」 -

*공산 촉루: 사람 없는 산중의 해골.

*만장송: 만 길이나 되는 소나무.

*침변: 베갯머리.

*월중 소영: 달빛에 언뜻언뜻 비치는 그림자.


(다)

우리 집 이웃의 늙은 부부는 늦게야 아들 하나를 얻었는데, 자기네가 목불식정(目不識丁)*인 것이 철천의 한이 되어서 아들만은 어떻게 해서든지 글을 시켜 보겠다고, 어려운 살림에도 아들을 서당에 보내고 노상 “우리 서당 애, 우리 서당 애.” 하 아들 이야기를 했었다. 그의 집 단칸방에 있는 다 깨어진 질화로 위에, 점심 먹으러 돌아오는 예(例)의 서당 아이를 다리는 따뜻한 토장찌개가 놓였음은 물론이다. 그 아들이 ꡔ천자문ꡕ을 읽는데, ‘질그릇 도(陶), 당국 당(唐)’이라 배운 것을 어찌 된 셈인지 ‘꼬끼요 도, 당국 당’이라는 기상천외의 오독을 하였다. 이것을 들은 늙은 ‘오마니’가, 알지는 못하나마 하도 괴이하여 의의(疑義)를 삽(揷)한즉*, 늙은 영감이 분연(憤然)히,

“여보 할멈, 알지도 못하면서 공연히 쓸데없는 소리 마소. 글에 별소리가 다 있는데, ㉢‘꼬끼요 도’는 없을라고.

하였다. 이렇게 단연(斷然)히 서당 아이를 변호한 것도 바로 질화로의 찌개 그릇을 둘러앉아서였다. 얼마나 인정미 넘치는

태고연(太古然)한 풍경이냐.

사랑에 놓인 또 하나의 질화로는 이와는 좀 다른 풍경을 보였다. 머슴, 소배(少輩)들이 모인 곳이면, 신 삼기, 둥우리 들기에 질화로를 에워싸 한창 분주하지마는, 팔씨름이라도 벌어지는 때에는 쌍방이 엎디어 서로 버티는 서슬에 화로를 발로 차 온 방 안에 재를 쏟아 놓기가 일쑤요, 노인들이 모인 곳이면, 고담 책* 보기, 시절 이야기, 동네 젊은 애들 버릇없어져 간다는 이야기들이 이 질화로를 둘러서 일어나는 일이거니와, 노인들의, 입김이 적어서 꺼지기 쉬운 장죽은 연해 화로의 불돌 밑을 번갈아 찾아갔었다. ㉣그리하여 기나긴 겨울밤은 어느덧 밝을 녘이 되는 것이다.

돌이켜 우리 집은 어떠했던가? 나도 5, 6세 때에는 서당 아이였고, 따라서 질화로 위에는 나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찌개 그릇이 있었고, 사랑에서는 밤마다 아버지의 담뱃대 터시는 소리와 고서(古書)를 읽으시는 소리가 화로를 둘러 끊임없이 들렸었다. 그러나 내가 다섯 살 되던 해에 ㉤그 소리는 사랑에서 그쳤고, 따라서 바깥 화로는 필요가 없어졌고, 하나 남은 안방의 화로 곁에서 어머니는 나에게 ꡔ대학(大學)ꡕ을 구수(口授)*하시게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마저 내가 열두 살 되던 해에 그 질화로 옆을 길이 떠나가시었다. 그리하여 서당 아이는 완전 고아가 되어, 신식 글을 배우러 옛 마을을 떠나 동서로 표박(漂泊)*하게 되었고, 화로는 또다시 찾을 수 없는 어머니의 사랑과 함께 영영 잃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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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주동, 「질화로」 -

*목불식정: 글자를 한 자도 모를 정도로 무식함.

*의의를 삽한즉: 의문을 제기하니.

*고담 책: 옛날이야기 책.

*구수: 학문이나 지식 따위를 말로 전하거나 가르쳐 줌.

*표박: 일정한 주거나 생업이 없이 떠돌아다니며 지냄.


51.  (가)~(다)의 공통점으로 적절한 것은?

①상황이 개선되리라는 기대가 나타나 있다.

②대상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가 드러나 있다.

③작품의 바탕에 절대자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다.

④부정적인 현실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보여 주고 있다.

⑤일상적 소재를 위주로 하여 삶에 대한 성찰을 보여 주고 있다.

 

51번. 세 글의 공통점을 찾는 문항이다. (가) '이별한 임'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가, (나)에서도 임금으로 추정되는 '임'에 대한 그리움이, (다)에서 질화로를 매개로한 옛 시절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이 담겨 있다. 따라서 이것을 공통점으로 지적한 ②의 설명이 정답이 된다.

52.  (가)와 (나)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표현상 특징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① 계절적 이미지를 활용하여 시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② 감정을 절제한 표현으로 화자의 처지를 부각하고 있다.

③ 점층적 강조를 통해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④ 동일한 시어를 반복하여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⑤ 단호한 어조로 화자의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52번은 (가)의 시조와 (나)의 가사의 표현상 특징을 찾는 문제이다. (가)와 (나)는 모두 '임'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가 절제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②의 설명은 잘못. ③의 점층적 강조도 나타나고 있지 않다. ④의 동일한 시어의 반복은 (가)의 시조에서 찾아 볼 수 없다. (가)에서 "저도 날 생각하는가" (나)의 "네로다 반기실까" 등의 표현으로 미루어 시적화자의 태도는 확신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⑤의 단호한 어조는 잘못이다. (가)에서는 '이화우 흩뿌'리고 '추풍낙엽'의 가을이 (나)에서는 '설중'의 겨울이 계절적 배경으로 설정되어 시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정답은 ①이다.

 53.  (가)의 ‘꿈’과 (다)의 ‘추억’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한 것은?

① ‘꿈’과 ‘추억’에는 모두 교훈적 의미가 담겨 있다.

② ‘꿈’의 내용이 현실적이라면, ‘추억’의 내용은 환상적이다.

③‘꿈’과 ‘추억’ 모두 화자의 현실적 고난을 극복하는 계기가 된다.

④‘꿈’이 하나의 대상에 집중된다면, ‘추억’은 다양한 대상과 연관된다.

⑤‘꿈’과 ‘추억’은 모두 화자가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53번. (가)에서의 '꿈'은 '임'과의 만남을 의미하고, (나)에서의 '추억'은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의미한다. 이 들에 교훈적 의미가 있다고는 할 수 없으므로 ①의 설명은 적절하지 못 하다. (가)에서 '임'과의 만남을 꿈꾸는 시적화자의 처지를 볼 때 이 꿈은 현실적이라 하기 어렵다. (나)에서 어린시절의 '추억'은 경험에 바탕하고 있으므로 '환상적'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②의 설명도 잘못이다. '꿈'과 '추억'에서는 현실적 고난을 극복하는 계기를 찾을 수 없다. ③의 설명 또한 적절하지 못하다. 또한 삶에 대한 반성도 보이지 않으므로 ⑤의 설명도 알맞지 않다. 정답은 ④로 (가)에서의 '꿈'은 '임'이라는 하나의 대상을, (나)에서의 '추억'은 어린 시절 전반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54.  (나)의 시어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옥황상제’는 화자가 자신의 처지와 심정을 드러내기 위해 설정한 존재이다.

②‘공산 촉루’, ‘외나무’는 화자의 외로운 심정을 보여 준다.

③‘만장송’, ‘금강산 학’은 임을 향한 화자의 변치 않는 마음이 투영된 대상이다.

④‘바람비 뿌린 소리’, ‘두어 소리’는 임에게 전하고자 하는 화자의 마음을 담고 있다.

⑤‘침변에 시드는’은 임이 처한 현재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문항 54에서는 시어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고 있는가를 묻고 있다. 적절하지 않은 것을 고르는 문제이다. 정답은 ⑤로, '침변에 시드는'은 시적 화자의 상황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므로, '임이 처한 상황'과는 관련 없다.

 55.  ㉠~㉤에 대한 감상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 ‘한’과 ‘눈물’의 관계를 ‘뿌리’와 ‘가지’에 비유하여 형상화했군.

②㉡: 화자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군.

㉢:아버지가 아들에게 사랑과 신뢰를 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야.

㉣: 겨울밤이 무척이나 길고 무료했다는 뜻이군.

⑤㉤: 화자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

 

문항 55에서는 글에 쓰인 표현에 대한 적절한 감상을 묻고 있다.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④로, "그리하여 기나긴 겨울밤은 어느덧 밝을 녘이 되는 것이다."라는 표현은 기나긴 겨울밤은 '어느덧' 금방 지나감을 표현하고 있다.

56.  (다)의 ‘질화로’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1점]

① 글 전체에 통일감을 부여하고 있다.

②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물이다.

③ 가난을 환기하는 소재로 설정되어 있다.

④ 정감이 넘치는 풍경을 연상시키고 있다.

⑤ 다양한 감각적 이미지와 결합되어 있다.

 

56번에서는 양주동의 수필에서 소재인 '질화로'에 대한 설명을 묻고 있다.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③으로 질화로는 가난을 환기하는 소재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추억을 환기시키는 매개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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