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卷頭言>

‘素錢’ 이야기

文珷永(仁荷大 國語敎育科 敎授)


  우리나라가 素錢의 주요 輸出國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단순한 製品일 것 같은데 그 規格이나 硬度 등 때문에 상당한 技術力이 요구되는 産業이라고 한다. 數十年 素錢을 만들어 왔고 輸出 商品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지도 꽤 여러 해 됐을 법한데, ‘素錢’이 아직 ꡔ표준국어대사전ꡕ(1999)에도 登載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대다수 言衆들에게는 여전히 新語인 셈이다.

  언젠가 專攻 授業 시간에 ‘소전’이 무엇인가 학생들에게 물어보았다. 분명히 ‘소’를 짧게 發音했음에도, 대뜸 ‘小傳, 小錢, 小戰’ 등의 뜻을 얘기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어떤 학생은 제법 ‘小篆’을 떠올리는 듯도 했다. 그러고 나서 칠판에 ‘素錢’을 써 주었다. 말로 물었을 때 기대했던 답이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미루어 학생들에게 그 槪念 자체가 없었음이 분명한데도, 한동안 잠잠하다가 그 逐字的인 意味를 가지고 正答에 가까이 가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하긴 漢字能力 4급 정도의 實力이라면 ‘素’의 ‘희다, 바탕, 소재…’와 ‘錢’의 ‘돈, 쇠돈…’의 知識을 가지고 기본적인 語義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할 터였다. 어쨌거나 그날 講義에 참여한 학생들은 앞으로 ‘素錢’에 관한 한, 얘기할 때나 글 한 구절 읽거나 적을 때, 산뜻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 것이다. 이것이 漢字의 造語力이고 漢字語의 힘이다.

  漢字는 너무 어려워서, 또는 남의 나라 글자여서 우리글에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머지않아 쉽고 과학적인 우리 글자 한글만 쓰게 되는 날이 올 것인데, 그때까지만 限時的으로 漢字를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말하는 이들도 많이 있다. 또 각종 出版物이나 印刷 媒體에 漢字 表記가 현저하게 줄어든 현상을 보고 한글전용이 定着 段階에 접어들었다고 誤判하기도 한다. 모두가 文字의 意義와 國語 語彙의 特性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말미암은 잘못된 생각들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漢字는 우리 글자이기도 한 것이고, 出版物이나 각종 媒體에 漢字가 줄어든 것은, 불필요하게 어려운 漢文투의 表現이 쓰이지 않게 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잘못된 文字政策과 國語敎育의 跛行으로 量産된 이른바 한글 世代를 겨냥하여 時流를 따를 수밖에 없는 出版界의 商術의 한 斷面이기도 한 것이다.

  年前에 우리나라 靑少年 非文解者의 비율이 20%라는 유네스코의 통계를 본 적이 있다. 全世界的으로 標準化된 기준을 적용해 조사한 결과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주어진 글을 읽고 그 내용을 제대로 理解하지 못하는 사람이 다섯 사람 중 한 명꼴이라는 얘기다. 한때 우리나라는, 가난하지만, 배우기 쉬운 한글과 義務敎育의 普及으로 文盲率이 4% 이하라고 자랑하던 때가 있었다. 아마도 初 ․ 中等學校에서 漢字를 제대로 敎育하던 時期의 얘기일 것이다. 쉽다는 한글도 어렵다는 漢字의 밑바탕이 있어야 그 眞價가 드러날 수 있다는 逆說的인 眞實을 가르쳐 주는 事例라고 할 것이다.

  漢字敎育은 한글專用 때까지의 過渡期에 ‘裁量活動’으로 대충 해도 되는 그런 일이 아니다. 漢字는 東北亞時代 中國 ․ 日本과 交流하고 경쟁하는 데 쓰려고만 공부하는 것도 아니다. 漢字는 우리 모두의 수준 높은 國語 能力을 든든히 하기 위해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 語彙力의 바탕인 것이다.(<語文생활> 통권 제109호, 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