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신당 홈페이지에 갔다가, 진보신당(http://www.newjinbo.org/) 비례대표 후보를 나선 김상봉 교수의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기사가 있어 옮겨 온다. 이쯤되면, 이번 총선에서 아 某 군은 진보신당을 찍어야 할 것 같다. '앗 이런 기사가 있었어요?'하면서 가장 관심을 표할 사람 말이다.

'현실참여' 철학자, 총선에 나서다
[인터뷰] '학벌 없는 사회' 김상봉 운영위원

학벌없는 사회 운영위원이자 전남대 철학과에 재직 중인 김상봉 교수 ⓒ 공숙영

"지금까지 철학은 세계를 해석해 오기만 했다. 문제는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낯설지 않은 문장이다. 읽고서 주먹을 불끈 쥔 청년들이 많았다. 저 문장을 쓴 철학자는 쓰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겠지만. 지난 23일 내가 만난 이 사람 역시 저 문장을 읽고서 주먹을 불끈 쥔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오늘날 이 땅에서 철학자는 과연 무엇으로 사는가, 이 사람을 만나면서 새삼 다시 묻는다. 김상봉, 3년 전부터 광주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이 사람. 
 
- 전남대에서 교편을 잡으신지 이제 3년째시죠?

"네, 벌써 그렇게 되었네요."

독일에서 칸트 철학을 연구하고 돌아온 김상봉은 1999년 해직교수가 된 후 약 6년 동안 '광야'에서 지내다가 2005년 7월 전남대 철학과에 교수 전원일치 결정으로 특채되었다.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아마도 한국 대학사회 '초유의 일'이자, 사람이 개를 문 것과 비슷한 '대사건'"이라며 "전남대 철학과 교수님들이 보여준 애틋한 마음이 진심으로 고맙다"는 뜻을 밝혔다.

전남대 철학과는 2007년 봄, 교수부터 학생까지 합심해 전남대가 정몽준 의원에게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수여하려는 계획을 철회하게 만들기도 했다. 

- 광주에서 청소년철학교실을 운영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곳인지 알려 주십시오.

"2006년부터 시작했어요. 중학생반과 고등학생반이 있습니다. 철학을 비롯하여 다양한 인문학적 교육을 시도하고 있는데, 저는 도우미고요. 철학과 제자들이 주도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최근에 여러 학자 분들과 함께 광주 5·18항쟁을 종합적인 시각에서 연구한 책을 내셨는데요. (김상봉은 이 책에 '그들의 나라에서 우리 모두의 나라로'라는 제목의 논문을 실었고, 이 제목은 책의 부제가 되었다.) 그 전부터 광주항쟁에 대해 철학적인 고찰을 해 오셨고요. 5·18의 독보성은 공동체의 완성을 통해 개인이 완전해진다는 데 있고, 인류가 지향할 것은 개인적 완성이 아니라 공동체적 완성이라고 주장하고 계십니다. 공동체적 완성이란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이 때 공동체란 '만남'을 의미합니다. 만남이 없으면 주체성도 없습니다. 일회적 만남이 아니라 규정된 형식과 외연을 얻을 때 만남은 비로소 공동체가 됩니다. 공동체적 완성이란 만남의 온전함을 뜻해요. 만남의 네트워크를 지향하는 거지요. 사물화된 관념으로서의 공동체를 뜻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광주 항쟁에서 그런 공동체의 이상적 전범을 보았습니다."

김상봉은 '전국 철학자 앙가주망 네트워크(PEN)'라는 철학자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이 모임은 작년 가을 삼성 특검법 도입 촉구 성명을 발표했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 정국, 이라크 파병 반대, 국가보안법 폐지, 송두율 교수 사건 등 주요한 시국 현안이 터질 때마다 계속 목소리를 내어 왔다. 철학자들이 연대하여 앙가주망 즉 사회참여를 하는 것이 놀라울 건 없지만 우리 풍토에서 신선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전국 철학자 앙가주망 네트워크(PEN)'의 삼성 특검법 도입 촉구 성명 발표 직후 이뤄진 언론 인터뷰에서 김상봉은 강한 어조로 삼성을 비판한 바 있다. 

"삼성 족벌체제가 무너진다고 해서 삼성이 망하겠습니까. 백번 양보해 삼성이 망한다고 해서 국가경제가 무너지겠습니까. 평소엔 세계 12위 경제대국을 자랑하다가도 매번 비리 척결 얘기만 나오면 유아기로 퇴행해버립니다. 언제까지 삼성의 협박에 끌려 다닐 건가요. 인간을 억압하고 노예화시키는 것은 국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도 할 수 있고 기업도 자본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이번 총선에서도 진보신당 비례대표 출마로써 '앙가주망'을 하고 계신데요.

"국회의원 되고 싶은 마음으로 수락한 거 아닙니다. 홍세화 선생께서 권유하시기에 정 제가 필요하다면 말석의 한 자리 맡겠다고 나섰습니다. '학벌 없는 사회'의 공동대표 직을 맡아 달라고 청을 드렸을 때 홍 선생께서 흔쾌히 맡아 주셔서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랬는데 제가 홍 선생의 권유를 마다할 순 없었지요. 홍 선생께는 늘 인간적인 존경심이 있습니다. 홍 선생이 전선을 열어가는 척탄병이 되고 싶다고 언젠가 쓰신 걸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고요." 

저서 <학벌사회>를 통해 한국 사회의 학벌구조를 질타한 김상봉은 학벌구조 타파를 위한 모임 '학벌 없는 사회'를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 지난 19일 상암동 <오마이뉴스> 스튜디오에서 열린 진보신당 비례대표 간담회에서 김상봉은 학벌차별 타파를 위해서 총선 후보들이 약력을 소개할 때 학력은 소개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보신당 비례후보인 김상봉 학벌없는사회 정책위원장이 19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스튜디오에서 열린 '진보신당 비례후보 추천자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권우성

- 진보신당 비례대표 간담회에서 함석헌 선생의 말씀을 인용해서 문둥이가 아이를 낳는 것처럼 어려운 여건에서 진보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출마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상인들은 문둥이가 뭐 하러 아이를 낳느냐고 하겠죠. 문둥이도 사람이니까 사람으로서 사랑도 하고 아이도 낳는다고 함석헌 선생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힘든 여건에 처한 진보 세력을 문둥이에 비유해 봤습니다. 정말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가만 있을 거냐, 그럴 수는 없다는 겁니다. 다른 분들도 많이 나서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노무현 정권 출범 후 배달호 열사 분신 사건이 있었던 즈음(고 배달호 열사는 2003년 1월 9일 새벽 6시 30분 창원 소재 두산중공업 노동자광장에서 분신했다) 민주노동당에 가입했고 지금은 진보신당에 몸담게 되었는데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분당에 대해 제 의견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대립이 적대적 당파적 대립으로 이해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피차간의 소통부재와 대안부재로 인해 빚어진 불가피한 객관적 결과라고 보입니다. 절대자본주의에 저항하고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아직 없습니다. 이 사회는 여전히 아래에서 통일을 과제로 하고 있는 사회입니다. 저는 종북주의자가 아니지만 한국 사회에서 왜 그런 흐름이 생기는지 현상만 가지고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종북주의적 흐름이 생길 수밖에 없는 객관적 필연성을 인식해야 합니다.

지금은 궁극적으로 지양되어야 할 잠정적 분열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인 새로운 비전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피차간에 겸손이 필요하고,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식의 일방적 자기주장보다는 과연 우리가 이 시대의 어떤 비전, 어떤 자기확신을 가질 수 있는지 진지하게 상상할 때입니다.

이명박 정권에 대해서도 의견을 말씀 드리고 싶은데요. 이명박 정권 출범 후 크게 두 가지입장이 있는 걸로 보입니다. 하나는 '비관'이고, 나머지 하나는 당선되긴 했지만 그래 봤자 30% 정권에 불과하다는 '자위'입니다.(지난 대선 시 투표율은 62%, 득표율은 48.7%로서 환산해 보면 총 유권자 중 30% 가 이명박을  지지한 셈이다.) 

저는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우리 근현대사를 길게 보면 30년 주기로 민중항쟁의 곡선을 그립니다. 1894년 동학, 3·1운동, 해방정국, 5·18광주민중항쟁, 거의 30년이 다 되어갑니다. 지금은 새로운 항쟁의 시작을 위한 새로운 극복대상이 정립되고 있는 시기입니다. 새로운 국가체제와 억압기구가 정립되고 있는 겁니다. 

이명박을 보십시오. 현대건설 사장이었고 또 교회 장로입니다. 자본과 교회의 합일, 즉 신격화된 자본입니다. 자본의 마지막 단계가 이명박이라는 개인으로 생생히 구현되고 있습니다. 신격화된 자본과의 싸움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5·18체제의 말기인 것입니다. 유신말기와 비슷한 때입니다." 

지난해 10월 7일 <오마이뉴스>에 실린 문학평론가 이명원과의 인터뷰에서 김상봉은 이미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지금의 절대자본주의는 이것대로 새롭게 등장한 항쟁의 대상이다. 우리의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자기실현을 가로막는 새로운 지배자들이고, 새로운 항쟁의 대상이라고 하는 것을 깨닫는 것이 첫 번째 단계다. 그런데 학자나 지식인들조차 아직도 민주화 또는 87년 체제의 망상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내가 전쟁상태 운운하면 '지금도 그 얘기하는 것이 너무 쌩뚱 맞은 얘기 아닌가. 아니면 너무 과격한 얘기 아닌가.' 이런 식으로 다들 섬뜩해하고 놀란다. 

이제는 좋은 시절 다 지나갔다. 다소 기만적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5•18, 6월 항쟁의 성과로서 우리가 누렸던 경제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그 자유로운 삶이라고 하는 것이 이대로는 오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자본의 노예다, 그리고 어렸을 적부터는 그 자본에 충실한 노예가 되도록 우리를 끊임없이 세뇌하는 학벌체제 속에서 경제적으로나 또는 정신적으로나 철저히 노예화 되어버렸다 라고 하는 걸 깨닫는 게 먼저다."

"국회의원 되고 싶은 마음으로 수락한 거 아닙니다. 홍세화 선생께서 권유하시기에 정 제가 필요하다면 말석의 한 자리 맡겠다고 나섰습니다." ⓒ 공숙영

- 국회의원 되고 싶은 마음으로 나온 거 아니라고 하셨지만 만약에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시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웃음)

"현실화되기 전에 가정법으로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만약 당선되면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상의해서 결정해야죠. 그들을 가르치는 책임이 저에게 있으니만큼 일차적으로 학생들과 상의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 어른들을 보면 왜 자기들은 희생하지 않고 나서야 할 때 나서지 않는가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제 제가 기성세대가 되었고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가 된 마당에 그런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좋은 학자가 되고 싶은 한편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 하려고 합니다. 철학은 약한 자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말해야 할 때 말하고 나서야 할 때 나서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최소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청년학생시민노동자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들이 이 시대의 주인이다, 나 같은 사람은 디딤돌 이상이 되기 어렵다, 그대들이 살아 나가야 할 세상이다, 새로운 방식으로 당신들의 역사를 만들기 바란다. 이렇게 말입니다."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분명한 어조와 논리로써 대화에 임하는 그의 진지하고 엄숙한 얼굴을 보며, 그의 어머니가 그의 얼굴을 보고 "쥐어짠 빨래, 다리지 않은 빨래"같다고 했다고 그가 어느 대담에서 말한 것이 기억났다. 이 이야기를 꺼내자 비로소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린 다음 엷은 미소를 머금고 사진찍기에 임해 주었다.

-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질문할 게 있는데요. 철학자 김상봉 교수님 인터뷰할 거라고 했더니 며칠 전에 제가 인터뷰한 배우 김부선씨가 대마초 비범죄화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신지 꼭 좀 질문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대마초 비범죄화 주장에 동의합니다. 그 정도는 교양입니다. 자유니 자율성이니 허울 좋은 이데올로기를 갖고서 국가가 자본의 폭력은 방임하면서 왜 개인의 취미생활에 개입하고 간섭하여 개인을 억압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국가가 진정 개입하여야 할 곳은 자본의 폭력이 발생하는 곳입니다."

김부선이 들으면 분명 기뻐할 대답을 남기고 그는 바쁘게 거리 속으로 총총 사라졌다. 학자는 '우는 사람'이라고,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씨알들을 위해 대신 울 수 있는 사람이 시인이고 학자"라고, 김상봉은 자신이 그토록 존경하는 함석헌의 언어를 소개한 바 있다. 우는 사람으로 척탄병으로, 세계를 해석함과 동시에 변혁하기 위해, 여전히 주먹을 불끈 쥐고서 그는 자신이 가야 할 '철학의 길'을 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공숙영 기자는 인터뷰전문웹진 퍼슨웹(www.personweb.com)의 편집장을 지냈고 현재 대학원에서 '국제법과 인권'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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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04-01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말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