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U 방한 경기 열리던 그날 … 편협한 민족주의 사라졌다 [중앙일보]
`한국팀` 골 먹어도 환호 승패보다 경기 자체 즐겨 젊은 세대 문화 진화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FC 서울을 4-0으로 대파한 20일 서울 상암동의 서울월드컵경기장. 경기가 끝난 뒤에도 젊은 팬 상당수가 자리를 뜨지 않고 회복운동을 하는 맨U 선수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한국 팀 서울은 잉글랜드 팀 맨U에 전반에만 세 골을 허용하는 등 지리멸렬한 경기를 했지만 예전 같은 야유는 없었다.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는 맨U 선수들에게 보내는 환호만 있었다.

'대한민국 영 파워'에게 편협한 민족주의는 없었다. 맨U는 21일 출국했지만 그들이 남긴 것은 '탈(脫)민족주의'의 확인이었다.

2005년 7월 아르헨티나의 명문팀 보카 주니어스가 방한했다. 역시 FC 서울과 친선경기를 했다. FC 서울의 서포터스든 아니든 관계없이 관중은 모두 "서울"을 연호했다. '한국 팀=우리 팀'이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국내 신문의 스포츠면 헤드라인 대부분도 'FC 서울, 보카 주니어스에 석패'였다.

그러나 2007년 7월 이 도식이 깨졌다.

이날 경기에 맨U의 박지성은 출전하지 않았다. 맨U를 한국과 이어줄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닫혀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경기는 100% 외국선수로 구성된 맨U와 서울을 연고지로 한 한국 팀이 맞붙은 경기였다.

그러나 젊은 축구팬들은 전 국가대표 골키퍼인 김병지가 지키는 골문에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사진)와 잉글랜드의 웨인 루니가 골 세례를 퍼붓는데도 박수를 보냈다. 맨U의 골문을 지킨 에드윈 판데르사르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한국을 5-0으로 대파한 네덜란드의 골키퍼였다. 예전 같으면 "한국의 자존심" 등의 이야기가 나왔겠지만, 이번에는 아예 들을 수조차 없었다.

경기 도중 전광판 화면에 알렉스 퍼거슨 맨U 감독의 얼굴이 비치자 팬들은 경기장이 떠나갈 듯 환호를 질렀다. 터키 출신인 셰놀 귀네슈 서울 감독이 소개될 때도 열렬한 환영의 박수가 나왔다. 맨U 선수의 활약뿐 아니라, 서울의 이청용이 큰 페인트 모션으로 맨U의 프랑스 국가대표 출신 수비수 미카엘 실베스트르를 넘어뜨리는 장면에서도 큰 박수가 터져나왔다.

FC 서울을 응원하던 서울의 서포터스도 "이벤트 경기였고 즐겁게 응원했기 때문에 충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축구 칼럼니스트이기도 한 장원재 숭실대 교수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승패보다는 경기 자체를 즐기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이번 맨U 방한 경기는 한국 젊은 세대의 '탈민족주의'성향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2007년 7월 23일자 기사 중에 참 황당하다 싶어서 퍼왔다.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에서 중앙일보를 구독하기에 가끔씩 보게 되는데, 이 기사는 그 중 젤 황당하지 싶다.

과연 젊은 세대들에게서 민족주의가 살아졌다는 것을 이번 맨유 방안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가? 맨유에 박지성이 없었더라도 그랬을까? 어쩌면 그랬을 수도 있다. 세계 최고 리그의 최고 팀이니까.

이 기사를 쓴 기자나, 축구 칼럼니스트라는 장원재 숭실대 교수의 단순한 건지, 무식한 건지 모를 탈민족주의 운운은 솔직히 너무 우습다.

맨유는 어느덧 한국팀이다. 한국 프로축구 최고 인기팀의 대결은 찾아보지 않아도, 새벽이나 밤늦게 중계되는 맨유와 첼시와의 경기는 꼭꼭 찾아보는 사람들이 많다. 영국의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는 우리나라 축구선수들에 따라 그들이 뛰는 팀은 어느덧 우리나라 팀이 된 것이다. 따라서 이번 맨유와 서울의 경기는 외국팀과 우리나라팀의 대결이 아닌 우리나라팀과 우리나라팀의 대결이었다. 국대와 청대의 대결 정도의 이벤트라고나 할까? 보카주니어스나 남미의 유명 프로팀이 또다시 방안하여 경기한다고 했을때에도 이런 모습이 보여질 거라고 생각하면 많이 오산은 아닐까? 여기에 민족주의 운운하는 것은 또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국수주의는 둘째 치고, 어쩌면 사대주의에 더 가깝지 싶다. 축구 사대주의. 기실 축구팬들의 보는 눈이 높아짐에 따라, 우리나라 프로팀간의 경기는 정말 눈에 안찬다. 우리나라 젊은 축구팬들이 프리미어리그 같은 세계 유명 프로리그에 열광하는 데 반해, 한국의 프로축구팀에는 여전히 외면하는 행태는 어떻게 봐야 할까? 동시에 아시안컵 대회에서의 동남아시아 팀을 보는 우리의 시각, 아랍권 국가를 대하는 우리의 인식 등에서 여전히 민족주의, 오리엔탈리즘 등은 잔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전히 축구는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최고의 스포츠다. 맨유의 이번 방안에서 더욱 잘 확인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 탈민족주의 운운은 결국 축구의 종말하고나 어울릴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것도 기사라고 내보내니 참 웃기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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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7-23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 저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저건 너무너무 확대해석, 과대포장 했군요.

멜기세덱 2007-07-24 00:53   좋아요 0 | URL
서울이 4:0으로 졌나요? 맨U니까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도 좀 쪽팔리다는 생각도 들고, ㅋㅋ 아직도 저는 민족주의에 찌들어 있는 것일까요?ㅎㅎ

Mephistopheles 2007-07-23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계 유명 프로축구팀이 홍보와 선전을 위해 억소리나는 선수들을 이끌고 소위 말하는 "선진축구"를 보여줬기에 우리나라 사람들 감탄한 내용을 가지고 참 가지가지 같다가 붙이는 재주도 용하군요...

멜기세덱 2007-07-24 00:55   좋아요 0 | URL
재주도 재주 나름이죠. 메피님처럼 적재적소 알차게 갖다붙이는 재주가 진짜 재주지, 이 기자양반은 이게 뭔 재준지 모르것어요.ㅋㅋ
 

<프레시안>에 실린 기사를 옮겨 온다. 그간 프레시안에서 수차례 예비군 폐지에 대한 기사들을 내왔다는 사실도 새삼 알았다. 이 글은 그간의 예비군 폐지 논의를 정리해 주고 있는 듯 하다. 예비군 폐지 논의에 적극 동의하면서 그러한 논의가 보다 활발히 이뤄지기실 기대해 본다.

예비군, 이제는 폐지하자

[인권오름] 1971년 대선을 끝으로 잊혀진 '예비군 폐지론'

  최근 '군 복무 가산점제'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공무원 시험에서 제대군인에게 가산점을 주는 '군 복무 가산점제'가 지난 1999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의원입법으로 발의된 '개정안'의 형태로 다시 부활할 조짐을 보이면서부터다.
  
  실제로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군 복무 가산점제'를 찬성하는 발언을 했던 전원책 변호사는 단지 그 이유만으로 누리꾼들의 대대적인 찬사를 받았다. 늘 그렇듯 '전원책 어록'이 순식간에 만들어져 온라인 공간에 퍼졌다. 그리고 '호통 개그'로 유명한 개그맨 박명수 씨에 빗댄 '전거성'이라는 애칭까지 얻었다. 반면 같은 프로그램에서 '군 복무 가산점제'를 반대하는 발언을 했던 송호창 변호사는 심한 비난을 받았다. (☞관련 기사 : 군가산점제, 여성들만 피해자일까?, 그저 토론에 참가했을 뿐인데….)
  
  하지만 '군 복무 가산점제'에 대한 찬반 입장에 따라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져 있는 양쪽이 똑같이 인정하는 생각도 있다. "원치 않는 군 복무로 인한 고생과 피해가 크다"는 점, 그리고 "제대 군인들이 겪는 피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전원책 변호사는 당시 토론에서 "세상에 가고 싶은 군대가 어디 있나. 돈 100만원을 줘도 군대 안 간다", "군대는 폭력을 가르치는 집단이다"라는 등의 발언을 했다. 그리고 송호창 변호사도 "제대 군인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책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든다. 전 변호사의 직설적인 발언에 대해 열렬히 호응했던 누리꾼들이 '제대 군인들이 겪는 피해'의 대표적인 사례인 '예비군 훈련'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이나 장애인에게 불이익을 주는 방식의 '보상'을 요구하기에 앞서, 제대 군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피해'에 해당하는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리고 개인 사정에 대한 고려 없이 소집하고,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불참할 경우에도 과도한 벌금을 매기는 예비군 제도는 이런 피해의 대표적 사례다.
  
  김신조 청와대 습격 사건 등을 계기로 박정희 정권이 1968년 창설한 향토 예비군은 창설 당시부터 "국가 안보와 전력 증강에 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이중 병역'을 강요해 '위헌' 소지가 있다. 또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국가를 전체주의적 분위기로 몰아간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김영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도 이런 비판에 동참했다. 이들은 대통령 선거 공약 등을 통해 '예비군 폐지'를 주장해 큰 호응을 얻었다. 여기서 '이중 병역'을 강요당하는 대상, 기본권을 일차적으로 침해당하는 대상은 모두 '제대 군인'들이다.
  
  하지만 '제대 군인들이 불필요하게 겪는 피해'를 우려해 '예비군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1971년 대통령 선거를 끝으로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이런 목소리를 냈던 김영삼, 김대중 씨가 대통령에 당선돼도 마찬가지였다.
  
  오랫동안 잊혀졌던 '예비군 폐지' 주장을 다시 공론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 나왔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36년 전의 '예비군 폐지' 공약을 다시 반복한 것만은 아니다. '예비군 폐지'를 통해 '제대 군인'들이 겪는 피해를 해소할 뿐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는 군사독재와 냉전의 흔적을 지우는 계기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군사 문화는 '제대 군인'들에게만 남아 있는 게 아니다. 군 복무 경험의 유무와 관계 없이 거의 대부분에게 내면화돼 있다. 따라서 '예비군 폐지' 주장은 우리에게 내면화된 군사 문화에 대한 성찰로 이어질 때, 의미가 온전해진다.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강성준 씨도 이런 목소리를 내는 이들 중 한 명이다. 강 씨의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
  
  한국사회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 배경에는 수십 년에 걸친 국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지킨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있다. 그리고 2000년 이후 종교적 신념에서 정치적 신념으로 병역거부의 지평을 확대하면서 지금도 감옥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사회운동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현역의 벙역거부에 비해 예비군의 병역거부는 상대적으로 덜 조망받은 것이 사실이다.
  
  군사쿠데타 정권에서 태어난 예비군 제도
  
  지금은 누구나 당연하게 여기는 예비군은 정부 수립 당시부터 있었던 제도가 아니다.
  
  예비군의 역사는 5.16 군사쿠데타 직후인 1961년 12월 향토예비군설치법(아래 향군법)이 제정되면서 시작되지만 소요 예산 등의 문제로 당시에는 부대 편성까지 이르지 않았다. 예비군이 소집훈련을 받고 무장하게 된 것은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의 지시로 1968년 4월 1일 예비군이 창설되면서 부터다. 이 해는 1월 21일 김신조 등 북한 특수공작원 31명이 청와대 뒷산까지 접근한 이른바 '1.21사태'와 그 이틀 뒤 발생한 이른바 '푸에블로호 나포사건'으로 한반도에 긴장이 감돌던 때였다. 박정희는 2월 7일 경전선 개통식에서 250만의 무장을 천명했고, 2월 20일 각의가 향군법 시행령을 의결하면서 예비군의 창설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유신이라는 영구 집권을 도모하던 쿠데타 정권이 '북괴'라는 외부의 위협을 빌미로 수백만에 달하는 사람들을 '군대'로 편제한 것이 예비군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곧바로 나왔다. 당시 야당이던 신민당은 향토예비군 무장에 대해 반대의견을 내놨다. 국방차관을 지냈던 박병배 의원은 "현 군경의 해이한 기강과 부패가 1.21사태의 교훈을 낳은 것"이라며 "전면전이 아닌 공비침투에 대처하기 위해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향토예비군 전면무장을 할 필요는 없다"고 반대했다.
  
  같은해 6월 17일 김영삼 의원 등 의원 41명은 향군법 폐지안을 내놨다. 이들은 △향군조직과 무장이 아니라도 기존군경의 강화 및 장비개선,정신무장의 쇄신강화 등으로 적의 침략도발을 방어할 수 있고 △만 40세까지의 남자는 사실상으로 항상 정부에 대하여 소위 특별권력관계를 형성하는 까닭에…국민의 의무를 지나치게 확대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여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한 국가의 의무를 저버리고 △전국민을 비민주적 전체주의로 몰아 넣는 결과가 되므로 위헌이라 할 수 있고 △향군조직과 무장등은 국가안일의 위압분위기를 조장하여 전국민을 전체주의체제 속으로 몰아 넣어 비상사태를 이유로 위기의식과 전쟁의 공포감을 조성시켜 국민으로 하여금 불안감을 초래케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폐지안은 같은달 27일 국회 본회의 표결 결과 34대81로 부결되었다.
  
  이어 1970년 11월 19일 대통령 후보 김대중은 "현 향토예비군은 이중병역의 의무를 강요한 위헌적인 것이며, 경찰의 보조기관으로 전락되고 지휘계통이 국방장관과 내무장관에 이중으로 되어 있어 정치적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고 생업에 지장을 초래할 뿐 아니라 민폐를 조성, 부정부패를 가져올 뿐"이라며 향토예비군 폐지를 공약했다.
  
  하지만 예비군을 폐지하자는 본격적인 논의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폐지를 주장한 두 사람은 대통령이 된 후 복무연령제를 복무연한제로 바꿔 훈련기간의 형평성을 높이거나(1994년) 훈련시간을 줄였을 뿐(1999년) 예비군 제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지금, 예비군이 없었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예비군은 병영국가의 표지
  
  향군법에 따르면 예비군은 "전시·사변 기타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하에서 현역군부대 편성이나 작전수요를 위한 동원에 대비"해 △적이나 무장공비의 침투 또는 무장소요가 있거나 그 우려가 있는 지역안에서 적이나 무장공비의 소멸과 무장 소요를 진압하고 △중요시설 및 병참선을 경비하며 △기타 민방위기본법에 의한 민방위업무의 지원업무를 수행한다.
  

▲ 예비군 제복과 모자. 평범한 사회인 혹은 학생으로 지내던 이들이 옷장에서 이 옷과 모자를 꺼내는 순간, 과거 군 복무 시절의 기억도 함께 끄집어내게 된다. 그리고 편하게 보낸 '말년'의 기억을 떠올리면, 억울하고 서러웠던 '졸병'의 기억은 금세 아스라한 '추억'이 된다. 하지만 이렇게 '고생의 추억'에 젖어드는 일이 '내면화된 군사 문화에 대한 성찰'을 대신할 수는 없다. ⓒ프레시안


  예비군 복무 기간은 창설 이후 1988년까지는 전역시기와 관계없이 35세까지, 1989년부터는 33세까지 복무하는 '복무연령제'가 실시되었다. 1994년 이후 지금까지는 전역 후 8년동안 복무하는 '복무연한제'가 실시되고 있다. 전역 이후 1년차부터 4년차까지는 동원지정자의 경우 연간 28시간(2박3일 입소), 동원미지정자의 경우 연간 36시간(출퇴근 방식)의 훈련을 받아야 한다. 5년차와 6년차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향방기본훈련과 향방작계훈련을 합해 연간 20시간 정도의 훈련을 받는다. 7년차와 8년차는 별도의 훈련이 없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약 200시간의 훈련을 강제받고 있는 것이다.
  
  전역한 사람 모두를 대상으로 하다보니 예비군의 숫자는 현역보다 더 많다. 2005년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예비군의 수는 창설 다음해인 1969년 222만5384명이었다가 1976년 300만명을 넘어섰고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6년에는 483만2822명으로 최고에 달했다. 이후 증감을 거듭한 예비군의 수는 2004년 말 기준으로 304만625명에 이르렀다. 이 가운데 장교는 14만6388명, 부사관은 12만215명, 병은 277만4022명으로 이뤄졌다.
  
  지난해 국방부가 발행한 <2006 국방백서>에 따르면 2006년말 현재 예비군의 규모는 304만 명에 달하며 임무별로는 향방예비군 151만 명, 동원예비군 153만 명으로 이뤄진다. 또 편성형태별로는 지역예비군 238만 명과 직장예비군 66만 명으로 나눠진다. 육·해·공군을 합친 현역의 규모가 60만 명 남짓인 점을 감안하면 현역의 5배에 달하는 사람들이 부대로 편성되어 연간 군사훈련을 받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645만 명의 민방위 대원을 합치면 전체 인구의 1/5을 넘는 약 1000만 명이 전시에 대비해 군사훈련을 받거나 부대에 편제되어 있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병영국가라는 말이 어울리는 상황이다.
  
  한편, 예비군은 전역한 장교들의 일자리로 기능하고 있다. 2005년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예비군 관련 예산은 2001년 2412억 원에서 2005년 3011억 원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은 인건비로 2534억 원에 이른다. 이는 예비군 지휘관 5152명(지역예비군 3804명, 직장예비군 1348명)의 임금으로 돌아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휘관은 1년에 2번 공개선발 되는데 응시자격이 △예비군 여단장·연대장·대대장은 대대장 경험이 있어야 하고 △예비군 중대장은 중대장 경험이 있어야 하며 △행정담당 군무원은 부사관 등 장기복무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
  
  즉 예비군 제도는 국가가 장교로 복무했다 전역한 사람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일자리를 제공하는 측면도 있는 것이다.
  
  거듭되는 처벌과 강제 동원
  
  1939년 이래 한국에서는 1만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양심적 병역 거부로 처벌을 받아 왔고 지금도 900여 명이 수감되어 있다.
  
  그런데 예비군 병역거부자에게 가해지는 처벌은 현역 병역거부자에 비해 결코 약하지 않다. 예비군 훈련에 불참할 경우 병역법과 향군법에 따라 동원훈련은 6개월 이하의 징역, 200만원 이하의 벌금, 일반훈련은 1년 이하의 장역, 2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게다가 전역 후 예비군 복무 기간인 8년간 수십 차례 벌금형에 처해져 수백에서 수천만 원의 벌금을 납부한다. 경찰과 검찰, 법원에 거듭 출석하는 사이에 직장을 잃기도 하고 변호사 비용으로 수천만원을 쓰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예비군 훈련은 '전과자'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예비군 훈련을 거부해 처벌받은 첫 사례는 향군법이 제정되기 전에 이미 벌어졌다. 1956년 초 전역자에 대해 5주간의 '병무소집'이 시작되면서 예비군 훈련에서 종교적 신념에 따른 집총거부로 실형을 받고 복역하는 사례가 발생한 것이다. 그해 7월 안식교 신자 김응호, 박해종, 김창호 씨가 70여일 동안 구금당했고 3년형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양심적 병역 거부 수형자 가족 모임'(아래 가족모임)에 따르면 예비군 창설 이후 2007년 5월말까지 누적된 예비군 거부자 숫자는 모두 1359명에 달하고 이 가운데 예비군만 거부한 사람은 739명, 현역과 예비군 모두를 거부한 사람은 620명이다. 2000년 이후만 해도 145명이 예비군 병역거부를 결심한 것이다. 이들이 낸 벌금 납부 총액만 해도 3억3926만 원에 달한다. 가족모임의 집계에 따르면 현재 명단이 확인된 예비군 거부자는 71명으로 이 가운데 60명이 벌금형을 받았다.
  
  하지만 양심에 따른 거부자들만 처벌 받는 것은 아니다. 2005년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예비군 훈련에 불참해 고발당한 사람은 2000년 2만4955명에서 2003년 4만9247명으로 두 배 가량 증가했다. 2004년에는 3만2114명으로 줄어들었지만 2001년 이후 매년 3만명 이상의 사람이 예비군 훈련 불참을 이유로 고발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 무혐의로 처리된 수백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벌금형을 받고 있다.
  
  이들의 경우 예비군 제도가 자신의 양심에 반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생계 문제 등으로 정해진 훈련 일정을 지키지 못했을 수 있는데 단지 국가가 소집한 훈련에 불참했다는 이유로 일괄적으로 처벌받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예비군 거부가 벌금형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가족모임의 집계에 따르면 3명이 집행유예형을, 1명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향군법 위반으로 기소된 윤장운 씨는 지난 3월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에서 열린 재판에 출석했다 법정 구속되기도 했다.
  
  한편 예비군 훈련에 불응할 경우 한 번 처벌받은 후에도 계속 훈련 소집되어 이를 또 거부하면 반복 처벌받는 점은 큰 문제다. 즉 1년에 2~3회 훈련에 불응할 때마다 기소되므로 전체 8년에 걸쳐 10~20차례 처벌받게 된다. 이 때문에 벌금 액수도 늘어나며 초범이 아니라는 이유로 처벌도 가중되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유엔자유권위원회는 지난해 11월 3일 한국정부가 제출한 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에서 병역 거부자들이 재소집될 수 있고 새로운 처벌을 받게 되는 횟수에 대하여 입법적으로 제한이 전혀 없다는 점을 우려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위원회는 이들이 정부나 공공기관의 고용에서 배제되며 전과자 낙인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을 우려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예비군은 언제나 '불평'과 '개김'의 대상이지만 '거부'의 대상이 되지는 못한다. 그것을 지탱하는 강력한 힘은 법적 처벌이라는 물리력이다. 앞서 소개한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훈련 소집에 응하는 비율인 '응소율'은 2000년 이후 줄곧 95%를 넘어섰을 정도로 예비군의 '충성도'는 높다.
  
  예비군의 존재 의미를 묻자
  
  지난 4월 18일 울산지법 송승용 판사(형사5부 단독)는 전역 이후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되어 교리에 맞지 않는다는 양심상의 결정에 따라 예비군 훈련 소집에 2차례 불응해 기소된 신동혁 씨의 향군법 위반 사건에서 향군법의 일부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송 판사는 결정문을 통해 "현역병 입영대상자와 현역복무를 마친 예비역과 사이에 실제로 그 복무형태, 복무기간, 훈련의 정도 및 내용 등에 현저한 차이가 있으므로…예비역의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함에 있어…우리나라의 안보상황, 징병의 형평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 대체복무제를 채택하는데 수반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제약적 요소 등을 보다 완화하여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고, 국가안보라고 하는 중대한 공익의 달성에 미치는 영향도 훨씬 가볍다고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위헌법률심판제청은 예비군 훈련 불참을 범죄로 여기고 처벌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상식'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미 1985년 대법원은 향토예비군 훈련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에 대해 "종교의 교리를 내세워 법률이 규정한 병역의무를 거부하는 것은 헌법에서 보장한 종교와 양심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 따라서 헌재가 다른 판단을 보일지는 주시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번 위헌법률심판제청은 현역의 병역거부와 마찬가지로 대체복무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 즉 헌재가 긍정적인 결정을 내리고 국회가 예비군 대체복무제를 도입한다 하더라도 이는 속성 상 양심 즉 신념을 가진 소수를 대상으로 할 뿐이며 따라서 예비군 제도는 상처입지 않는 것이다.
  
  즉 예비군이라는 병역 의무가 왜 필요한지를 묻는 질문은 누락된다는 말이다.
  
  선도적 군축으로서의 예비군 폐지
  
  흔히 지적되는 것처럼 예비군은 군대에서의 경험, 즉 일상화된 폭력과 명령에 대한 복종, 애국심 따위를 상기시킨다.
  
  특히 현역 복무를 마치고 각자 다른 생활공간에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획일적인 인식을 부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가 예비군 제도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주입할 수 있는 '안보교육'은 매 훈련마다 빠지지 않는다. (☞관련 기사 : 의외로 '빡센' 예비군 훈련)
  
  국방부가 예비군 훈련 항목 중 다른 훈련은 수임 군부대장에게 위임하면서도 사격 훈련과 함께 '안보교육'은 '통제 과목'으로 틀어쥐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예비군의 목표는 '사회의 병영화'라고 할 수 있다.

▲ 교육을 받고 있는 예비군들ⓒ국방부


  국가가 겉으로 내세우는 예비군 제도의 명분은 한반도의 군사적 대치 상황을 고려할 때 현역 뿐만 아니라 '예비전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006 국방백서>는 북이 △교도대(17~50세) 62만 △노농적위대(17~60세) 572만 △붉은청년근위대(14~16세) 94만 △인민보안성 등 기타 42만 등 770만의 '예비전력'을 가지고 있다고 밝힌다. 즉 국방부 통계는 인구의 30%를 위협적인 '예비전력'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노농적위대는 남측의 민방위대, 붉은청년근위대는 남측의 고교 학도호국단 성격을 가지며 인민보안성은 남측의 경찰에 해당하므로 남측의 예비군 성격을 가지는 것은 교도대 뿐이다.
  
  그리고 남북 양측이 서로를 빌미로 군비를 확충하는 상황을 타개하기 힘들다면 남측에서 먼저 예비군을 폐지하는 선도적 군축, 즉 무력의 포기를 통해 평화체제를 선도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특히 '예비전력'은 일상의 군사화를 초래하는 계기가 된다는 측면에서 예비군 폐지는 국방과 안보에 대한 민중적 통제를 강화하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이를 요구하는 사회운동은 일방적 군비축소라는 적극적 평화주의의 미덕을 실현하게 될 것이다.
  
  40년 강제 동원의 역사, 이제 끝내자
  
  현재 국회에는 3건의 향군법 개정안이 제출되어 있다. 현대전 양상의 변화에 따라 예비군 복무기간을 현행 8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는 강창일 의원안, 급식비와 소득획득 기회의 박탈에 대한 보상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이근식 의원안, 그리고 훈련 소집통지서 수령 의무를 분명히 하고 벌칙을 규정해 '훈련회피'를 방지하려는 정부안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들 법안은 그동안 국가가 예비군 훈련에 대한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훈련 시간을 단축하거나 급식비용 등을 증액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선'한 연장선상에 있다.
  
  오히려 국방부는 '국방개혁 2020'을 통해 예비군 중대의 수를 줄이는 대신 훈련의 질을 높이는 '정예화', '상비군의 대체전력화'로 나아가고 있다. (☞관련 기사 : 국방부, 500명 이하 예비군 중대 통폐합 계획, "예비군 제도, 이제 작별을 이야기할 때" )
  
  돌아보면 그동안 예비군에 대한 개인적인 불평과 불만은 넘쳐났지만 예비군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품고 그 불만을 사회운동으로 조직한 적은 없었다. 제도 자체를 폐지하자는 논의는 검토된 적도 없을 정도로 예비군은 성역에 머물러 있다.
  
  내년 4월 1일은 향토예비군이 창설된지 40년이 되는 날이다. '불혹'의 나이를 맞는 예비군 제도가 그 말처럼 '흔들리지 않기' 전에 예비군 폐지 운동이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이 글은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발행하는 <인권오름> 최근호에도 실렸습니다.

 강성준/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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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npix 2007-07-05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비군 훈련 아직 받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받게 될 텐데, 이런 폐지 운동에 관해서 최근 들어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던데,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나갔으면 좋겠군요.^^

멜기세덱 2007-07-05 23:05   좋아요 0 | URL
예비군을 흔히들 '야비군'이라고 하는데요, 정작 야비한 건 예비군을 이용하데 자기들의 입맛대로 사회를 통제하려는 세력들이 아닌가해요. 윗글에서 말하는 것처럼, 예비군제도의 폐해를 잘 아는 세력들이 집권을 하고도 없어지지 않고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겁니다. 우리 사회가 보다 진보하기 위해서는 군사주의에 짙게 물든 사회체제를 변화시키는 것이겠습니다. 예비군을 다 받은 사람이나, 아직 받고 있는 사람이나, 이제 받을 사람들이 그저 단순이 무비판적으로 순응하기보다는 그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계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해 나가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봅니다. twinpix님까지는 아직 고생하셔야 될 듯 하지만요.ㅎㅎ

마늘빵 2007-07-08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입니다.
 

 

오늘자 중앙일보에 반가운 기사가 있어 옮긴다. 올해는 우리나라 기독교계에 있어 무척이나 뜻깊은 해다. '평양대부흥' 100주년을 맞이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아무래도 이 100주년 맞이가 그리 달가운 것만은 아닐 것이다. '평양대부흥'이 씨앗이 되어 우리 기독교계는 기하급수적 팽창을 이룬 것은 사실이나, 어쩌면 이 '부흥'의 시나리오를 새로 쓰는 원년이 되어야 할지 모르겠다. 양적 성장은 분명 '흥'함의 요소일 수 있겠습니다. 질적 성장을 동반하지 못할 때에는 공해가 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현재의 기독교가 이런 질적 '부흥'의 상태인가에 대한 문제 지적과 반성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 안에서의 반성과 성찰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교회의 이런 반성과 자기 비판을 통해 오롯한 '부흥'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교회도 `건강검진` 받고 영성으로 치유하자" [중앙일보]

107년 된 서울 종교교회, 교회의 생존 묻는 포럼
`사회의 소금이 되지 않고 신앙만 외쳤다`
성장 못해도 하나님 기뻐하는 교회 돼야

  3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의 종교교회에서 ‘종교교회-새로운 미래’란 주제로 포럼이 열렸다. 왼쪽부터 발제를 맡은 이덕주(감신대) 교수, 정구현 삼성경제연구소 소장, 이원규(감신대) 교수, 유성준(협성대) 교수. 최승식 기자
 

서울 종로구 도렴동의 종교(宗橋)교회(기독교 대한감리회)는 그리 큰 교회가 아니다. 교인 수는 1800여 명에 불과하다. 교인이 수만~수십만 명에 달하는 대형교회에 비하면 왜소할 따름이다. 그러나 역사는 깊다. 올해 107년째를 맞는다. '1907년 평양 대부흥'의 불씨 역할을 했던 로버트 하디 선교사가 종교교회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지난 주일 이곳에서 매우 '파격적'인 행사가 열렸다. 교회가 교회를 돌아보고, 신도가 신앙을 돌아보는 '용감한' 포럼을 담임목사와 장로들, 평신도들이 뜻을 모아 개최한 것이다.

3일 오후 2시, 종교교회 2층 예배실. 주일 오전 예배는 이미 끝난 뒤였다. 그런데도 200명이 넘는 교인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포럼의 주제는 '종교교회, 새로운 미래'였다. 그러나 토론 내용은 '한국교회'와 '세계교회', 그리고 이들의 '미래'를 겨냥한 것이었다.

사회를 맡은 홍기화(KOTRA 사장)장로는 "교회가 교회 본래의 모습을 잃고 있진 않은지, 우리가 하나님의 꿈을 '우리의 꿈, 혹은 나의 꿈'으로 바꾸고 있진 않은지, 이번 포럼을 통해 '건강검진'을 한번 받아보자"며 포럼을 마련한 배경을 밝혔다.

발제자로 나선 이원규(감리교신학대)교수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 기독교가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1960~2000년, 이 40년 동안 한국의 교회 수는 5000개에서 6만 개로 늘었다. 또 교인 수는 60만 명에서 900만 명으로 15배 급성장했다. 그러나 이런 성장세가 2000년부터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교인이 몇 명이고, 교회 예산이 얼마이고, 건물이 얼마나 큰가를 모범적인 교회, 성공적인 목회의 척도로 삼는 '성장 제일주의'와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신앙만 강조하는 모습 등이 전통적인 한국 교회의 패러다임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래적 생존을 위해선 새로운 패러다임이 절실하다고 했다.

구체적인 대안도 제시했다. 이 교수는 "양적 성장 대신 질적 성장에 무게를 둔 '성숙주의 교회', 신앙 중심이 아닌 '삶 중심의 교회', 개별 교회 중심이 아닌 '지역사회 중심 교회', 그리고 조직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의 교회'로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제 내내 고개를 끄덕이던 청중은 큰 박수로 화답했다.

이어서 이덕주(감리교신학대)교수는 '권위'의 의미를 되짚었다. "'예수님의 설교는 권위가 있었다'고 한다. 히브리어로 '권위'의 원어는 '엑수시아'다. 그건 '본질로부터'란 뜻이다. 신학이나 설교를 따로 배운 적이 없는 예수님의 설교가 왜 권위가 있었겠는가. 바로 본질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그는 "교회의 본질은 '영성'이며, 지금은 회개를 통한 자기갱신에 치중할 때"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영성 회복과 치유를 위한 목회 프로그램이 절실히 요청된다는 것이다.

발제 중간 이 교수가 사이먼&가펑클의 팝송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틀 때는 청중도 따라 불렀다. 그는 "험한 세상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교회가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위로해주고, 치유해주고, 회복해주길 꿈꾸자"고 덧붙였다.

미국에서 23년간 목회 활동을 하고 돌아온 유성준(협성대)교수도 "이 시대 교회의 최우선 순위는 '영성'이며, 이게 목회의 근원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고, 참된 교회의 본질이 있을 때 교회는 성장한다. 설사 성장하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교회다"라고 말했다. 이 말끝에 청중석에선 박수와 함께 "아멘!"하는 공감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종교교회 교인이기도 한 정구현 삼성경제연구소 소장은 '지난 20년'과 '앞으로 20년'의 한국 사회 변화와 종교와의 연결 고리를 여러 도표로 예를 들며 짜임새 있게 설명했다.

발제가 끝나자 청중석에선 목이 말랐다는 듯 질문이 쏟아졌다. "이런 토론이 가능하다니 종교교회 교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이렇게 통로가 생겨서 너무 반갑다"는 얘기부터 외국인이 아닌 해외 한인만 대상으로 한 '생색내기 해외선교'에 대한 비판, 기존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 등 격의 없는 물음에 신랄한 답이 이어졌다.

뿐만 아니었다. 이날 교회 측은 모든 평신도에게 '담임 목사의 설교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나''우리 교회의 예배 스타일에 대한 생각''새로운 교회로 거듭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등 과감한 내용을 담은 설문지까지 돌렸다.

토론 말미에 최이우 담임목사는 "한 술 밥에 배 부를 순 없다. 그래도 오늘 토론을 통해 교회에 필요한 방향, 구체적인 길을 짚을 수 있었다. 앞으로 제2, 제3의 토론도 가능하리라 본다"고 말했다. 예수님 당시로 돌아가려는 교회, 107년 전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교회, 그곳에서 교회의 미래가 보였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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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풀러신학교 리처드 마우 총장이 방한했다. 한겨레 신문에 그 인터뷰 기사가 실렸는데, 눈의 띄는 대목들이 있어 옮겨온다. 최근 김용옥 논쟁으로 한국기독교계가 들썩거렸고, 순복음교회의 권력세습 및 재정비리 의혹 제기 등이 잇달아, 한국기독교에 대한 여러 모습으로의 비판들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제까지의 한국기독교 비판은 광신적 이단의 문제 등에 국한된 측면이 강하다. 한국기독교의 인식, 철학, 교회운영, 교회권력세습 등의 보다 본질적인 비판은 거의 없었지 않나 생각된다. 리처드 마우의 이 부드러운 비판적 시각이 우리 기독교에 주는 의미를 새삼 되새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김용옥 식의 과격한 '까대기'가 아니라 세심하고 친절한 외부자의 시각, 혹은 저 멀리 복음주의의 본토에서 넘어온 현자의 부르러운 목소리에 우리 기독교계는 보다 따사롭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예수천국 불신지옥 전도 당혹스럽다”
미 복음주의 본산 풀러신학교 리처드 마우 총장
“교회가 한 건물 안의 절 간판 치우는 건 비문화적“
한가족 안 다른 종교인들 섞어있을 때 해법도 제시
 
 
한겨레 조연현 기자
 
 
» 미 복음주의 본산 풀러신학교 리처드 마우 총장
 
한국 목사들 가장 많이 유학한 학교
“종교 다르다고 남 화나게 하는 건 옳지 않아”

미국의 저명한 신학자 리처드 마우(67) 풀러신학교 총장을 만났다. 풀러신학교 한국총동문회가 열린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양재2동 교육문화회관에서였다. 풀러신학교는 미국 개신교 복음주의권의 총본산이자 한국 목사들이 가장 많이 유학한 학교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을 지낸 박종순, 길자연 목사와 서울 강남 소망교회 곽선희 목사, 광림교회 김선도 목사,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 광성교회 김창인 목사 등 내로라하는 교회의 주요 목회자들 상당수가 이 학교를 거쳤다. 얼마 전 한국을 찾은 릭 워런 목사도 이 학교 출신이다.

마우 총장은 복음주의권 목사들을 길러내면서도 〈무례한 기독교〉와 〈왜곡된 진리〉 등의 저서를 통해 “이 세상에서 복음의 진리가 영향력 있게 전파되게 하자면 성도들은 타인을 향해 일반적인 정중함을 뛰어넘어 그리스도를 닮은 정중함을 지녀야 한다”고 설파하고 있다. 자신을 적대하는 사람까지도 품을 수 있는 친절하고 온유한 정신, 즉 시민교양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도심의 경우 한 건물 안에 교회와 절이 함께 있을 만큼 세계 유일의 다종교 사회인 한국만큼 그의 종교적 ‘시민교양’이 필요한 곳은 없다. 그래서 “며칠 전 서초구 방배동의 한 건물에 입주한 교회가 기존에 있던 절의 간판을 치워버린 적이 있는데, 이를 어떻게 보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교회 교인들이 비문화적인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며 이교도들을 전도했던 바울 이야기를 해주었다. “바울은 이교도에 대해 우상을 섬기고 있다고 비난하기보다는 종교성과 영성을 인정하면서 대화에 나서 ‘당신의 종교 시인 가운데도 이런 말을 한 분이 있지 않으냐’면서 예수의 복음을 함께 전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 “한 가족 내 다른 종교인이 모여 있는 경우”에 대해서도 그 나름의 방법을 제시했다.

“풀러신학교에 온 한 한국인 학생이 ‘가족의 장례식 때 불교도인 가족이 향을 피우려고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고민을 상담해 좋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런 예식뿐 아니라 휴일에 가족이 모일 때 종교가 다르다고 참석을 하지 않아 가족들을 화나게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다른 종교를 가진 가족들이 자기들 나름대로 기도를 하게 한 이후 기독교의 기도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얘기해줄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게 좋다.”

그는 또 거리와 지하철, 버스 등에서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며 전도하는 이들에 대해선 “미국에서도 새해 첫날 거리에서 꽃차 행렬을 벌일 때 어떤 사람들이 그런 피켓을 들고 뒤따르는 것을 보면 너무나 당혹스럽다”며 “풀러신학교에선 올해 슬로건을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으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복음주의권에서 강렬히 반대하는 동성애자 문제도 짚었다. 마우 총장은 “풀러신학교에선 신학적으로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전제하면서도 “목회자적 견지에선 성적 소수자들을 긍휼히 여기고 이해하려고 하는 자세가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인내와 겸손, 느림을 강조하는 복음주의 정통 신학자의 ‘복음’이 승리주의에 매몰된 우리나라의 복음주의 목회자들로부터 어떤 반응을 불러올지 주목된다. 마우 총장은 신촌성결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 제자교회와 서울신대, 한세대, 백석대, 총신대 등에서 설교한 뒤 오는 9일 출국한다.

글·사진 조연현 기자 (한겨레 2007년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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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기세덱 2007-05-03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66억님 "안 믿는 놈은 때려 죽여라'라는 말이 성경 어디에 나오는지는 전 잘 모르겠네요. 적어도 기독교의 본질은 '복음', 즉 기쁜 소식의 선포에 있습니다. 복음의 실체인 예수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죠.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폭력적, 이분법적 협박은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과는 너무나도 멀리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 한국기독교에서 예수의 새로운 언약(신약)인 '사랑'이 실종되어가고 있는 듯 한 느낌도 들구요. 리처드 마우 총장의 '당혹감'은 그런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요?

마늘빵 2007-05-03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하철에서, 명동거리 한복판에서, 그러는 분들 참 불쾌합니다. 대놓고 니들 지옥간다, 얼른 믿어라, 이런 메세지를 날리고 있죠. 이건 저주에요.
 

며칠전 서울시교육청에서 초중등 남자 교사를 일정비율 임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에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민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나 여성들의 불만이 만을 것이다. 사실 나같은 사람에게는 희소식이긴 하지만, 과연 별다른 문제는 없을까?

일단 일반 공무원 채용에서 적용되고 있는 이 방법이 교사 선발에까지 적용되는 것이 타당한가를 따져봐야 할 듯하다. 사법시험 이나 특수 공무원 선발 등에는 적용되고 있지 않은데, 교사의 정체성이 다시 한 번 고려되어져야 하지 않을까?

역차별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수급 불균형에 있는 것은 아닐까? 아래는 <한국일보> 기사를 스크랩한 것이다.


 

“신규교사 30% 남성 채용” 논란
서울시교육청 추진에 임용시험 女준비생 반발

 

서울시교육청이 신규 교사 임용 때 남자 교사 비율을 일정 수준 이상 늘리는 방안을 추진해 논란이 일고 있다. 시ㆍ도 교육감이 초ㆍ중등 교원 신규 임용시험에서 남자 교사 비율을 30% 내에서 자율 선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조만간 열리는 전국 시ㆍ도 교육감협의회에 이 방안을 올려 정식 안건으로 다루도록 할 방침이다.

조학규 서울시교육청 교원정책과장은 8일 "갈수록 남녀 교사간 불균형이 심화하고 있다"며 계획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올해 초등교사 임용고사에 최종 합격한 여성 비율만 봐도 ▦서울 88.0% ▦부산 97.0% ▦대구 91.6% ▦인천 82.0% ▦대전 95.3% ▦광주 95.0%다. 서울 한강초교의 경우 교장부터 평교사까지 모두 여교사로만 구성돼 있다.

남자 교사 비율을 높이겠다는 방안에 대해선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교사가 한쪽 성으로 지나치게 쏠린 현재 상황은 분명 문제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남자 교사가 학생들에게 올바른 성 역할이 무엇인지 보여 주거나, 여교사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학교 업무를 분담하는 차원에서 여교사들의 지지도 적지 않다. 서울 은평초교 이영숙(46ㆍ여) 교사는 "여성화를 무조건 나쁘게 볼 수는 없지만, 어린 학생들이 남자 교사에게서 교육 받는 경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 봉현초교 김선경(53) 교감은 "무척 반가운 소식"이라며 "아무리 사정을 해도 체육부장을 맡겠다고 나서는 여교사가 없어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다. 올해 중등교사 임용시험에 응시 예정인 박모(31ㆍ여)씨는 "가뜩이나 '독립 유공자 후손 가산점'이다 뭐다 해서 일반 교대ㆍ사범대생들이 교직에 진출하기가 힘들어지고 있는데, 남성들에게 별도 혜택을 준다면 여성은 교사 되기를 포기하라는 말과 다름 없다"고 주장했다.

입력시간 : 2007/04/08 18:31:


박원기 기자 o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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