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 대한민국이 선택한 역사 이야기
설민석 지음, 최준석 그림 / 세계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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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이란 표현은 너무나도 익숙하다. TV의 다큐나 드라마, 각종 잡지와 신문. 서적 등 그러나 정작 '조선왕조실록'이 무엇을 말하는지 정확한 실체를 떠올려보진 못했다. 일종의 고서의 하나로만 상상될 뿐.

 

친절하게도 이렇게 무지한 독자를 위해 설민석 강사께서 먼저 '조선왕조실록'이 어떤 책인지 부터 차근차근히 소개해준다. 조선시대 왕들이 승하(타계)한 뒤 모든 생전의 모든 기록물들을 모아 검토하여 편집된 책이란 것. 그리고 다른 나라의 왕조실록과 달리 왕의 기침, 화냄, 어명 등 모든 것이 속기처럼 기록된 것도 함께 다루고 있고, 단지 정치실록만 담은게 아닌 민초들의 삶도 아울러 다루고 있기에 더욱 사료적 가치가 높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덧붙여 실록을 쌓으면 아파트 12층 규모의 두께라고 한다. 놀랍다. 아 그런 책이었구나^^

 

책을 읽다보니 학창시절 배웠던 내용들이 떠올랐다. 익숙한 사건들 말이다. 그런데 크게 도움이 되었던게 당시에는 단지 사건 위주로 배우다보니 그 사건의 개연성과 인물들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전무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당시 그 사건들이 어떤 동기와 개연성을 갖고, 어떤 인물들의 상관관계를 통해 다양한 사건들이 연계되어 있는지 살펴볼 수 있어 매우 유익했다.

 

그리고 역사는 반복된다는 교훈을도 확인할 수 있다. 태조 이성계가 장군이었던 고려말, 최영장군이 이성계의 머리를 세워준 사람이었는데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통해 최영 장군에게 죄목을 붙여 죽인 일. 최영 장군은 내게 죄가 없다면 내 묘에 풀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유언했는데, 정말 최영 장군의 묘에는 풀이 자리지 않아 적분이라고 불렸다 한다. 온건파 사대부 정몽주의 고집과 저돌적인 야심가 이방원의 살인사건. 흔히 단심가와 하여가로 유명한 사건이다. 훗날 세조가 단종을 사실상 폐위시키고 왕위를 찬탈한 뒤 사육신 성삼문과 변절의 아이콘이 된 신숙주의 대립된 모습. 성삼문은 세조에게 끝까지 '나으리'라고 하며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세조가 내가 주는 녹을 먹으며 어찌 배반하느냐고 하자 성삼문은 녹을 먹지 않았다고 집에 가서 확인해 보라고 했는데 실제 죽은 후 가산을 몰수해보니 세조 이후로 받은 월급이 모두 쌓여있었다 한다.

 

정치와 권력. 그 테두리 안에서 삶과 죽음이 나뉘는 사람들의 모습은 계속 반복된다. 그리고 무엇인 옳은 삶인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된다. 신념과 정의인가. 실리와 시대적 흐름을 인정하는 것인가 말이다. 오랜만에 읽는 너무나 유익한 책이었기에 두고두고 반복해서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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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 4차 산업혁명의 미래 - 전 세계를 뒤흔드는 위기와 기회
미래전략정책연구원 지음 / 일상이상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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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영화로만 보아왔던 것이 차츰 현실에 반영되어가고 있다. 그냥 반영만 되어가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매우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일이 될 날이 불과 몇 년 남지 않았다고 하니 아직도 실감이 되질 않는다. 세상이 그만큼 변화하는 속도가 빨라진 탓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4차 산업혁명이 무엇인지 잘 몰랐던 사람도 어렵지 않고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렵지 않게 현재 어떻게 4차 산업혁명이 우리의 현장에 다가오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각 챕터마다 '10년 후 세계리포트'를 통해 좀더 구체적으로 세계 각 분야에서 적용되고 이뤄지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현상들을 알 수 있어 좋았다.

 

다만, 한국의 경우 인터넷 인프라가 세계 최고수준이었던 것에 비해 4차 산업에 대한 준비나 인공지능과 관련된 특허와 기술. 응용수준이 74~5%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그럼에도 삼성전자나 엘지전자와 같이 후발주자로 시작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던 저력과 한국인 특유의 빨리문화를 잘 시너지낸다면 충분히 승산도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드러낸다.

 

앞으로는 아이들의 인재상에도 변화가 예측된다. 자기가 잘하는 한 가지를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충분한 지식을 두루 갖춘 인재가 되어야 한다. 우리 세대가 먼저 이러한 미래를 좀 더 잘 이해하고 준비할 수 있다면 우리 아이들에게도 좀더 나은 길잡이 역할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 4차 산업혁명으로 많은 일자리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고, 인공지능의 경우 개발이 어렵고 오래걸리지만 개발이 완료되면 무한 복제가 가능한 문제로 인해 많은 일자리가 없어질 위험이 예상된다. 그래서 자칫 부의 편중이 극대화 될 우려와 폭동이 야기될 수 있는 만큼 로봇세와 인공지능세와 같은 새로운 조세제도의 개편도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이렇나 부의 재편이 잘 이뤄진다면 오히려 미래에 인간은 적은 노동으로도 평균적인 삶을 보장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미래는 두렵다. 그러나 너무 두려워하지는 말자. 인간은 해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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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미래, 무엇이 바뀌고 무엇이 오는가 - "5년 뒤 당신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
선대인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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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의 시대 도래와 함께 축적된 기술로 부터 발생되는 거대한 변화. 즉, '빅뱅파괴'현상을 기반으로 현재 산업구조의 변화와 인구밀도의 변화를 통해 앞으로의 세상을 예측한 책이다.

 

특히, 주목해야될 부분은 다가오는 '인구절벽'의 문제이다. 책에서도 기술되지만 인구의 변화가 변화의 가장 큰 동력이라 할 수 있다. 이미 한국사회가 현 시점을 정점으로 인구절벽을 향한 내리막으로 들어섰다. 생산가능인구가 지속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로 인해 소득의 상당부분이 소비를 통한 원활한 흐름을 발행하고 침체와 저성장을 되풀이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예측가능한 문제에 대해 정책적인 대안이 필요하지만, 지금까지의 경기부양책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따는 문제점과 '정책적 관성'이라는 표현되는 절박한 변화가 이뤄지기 어려운 점을 감안할 때 분명 걱정스러움이 앞선다.

 

다가올 미래는 기술의 폭발적 발달. 기업과 서비스의 우위가 끊임없이 변화되는 가운데 안정성을 기대하기가 더욱 어려운 시대로 다가서고 있다. 당연히, 비관적인 전망이 드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희망이 없지는 않다. 책에서도 언급되었듯 과거에도 혁명은 있었고, 산업혁명으로 인해 기계가 인간의 육체적 노동을 대체하자 노동계층의 강한 반발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산업화가 가져온 풍요로운 물질문명의 발달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이때와 다른 4차 산업혁명의 다른 양상과 면모가 비록 있을지라도 인간은 인간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표어가 생각난다.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랫듯이' 그렇다. 그것이 인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인류가 무한한 발전과 번영을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른 여러 환경적인 문제들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적어도 인간이 만들어가는 문명과 문화에 있어서 만큼은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규범과 규칙. 질서가 마련되고 사람들은 스스로 생존하기 위해 대책과 타협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직은 4차 산업혁명의 전초전에 있다. 미래가 어둡다고 하지만 아직 절박하지는 않다. 정말 절박해지면 인간은 살기위해 발악하는게 본성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정말 기술의 혁명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고 인간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가 된다면 인간 스스로 규칙과 규범을 통해 인간이 기술과 공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되는 것이다. 단지 기업이 고용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인공지능을 대체하는 것을 그냥 허용하지는 않을 것이란 것이다. 일종의 쿼터제라고 할까? 물론 극단적인 예의 하나이지겠지만.

 

또는, 일은 기계가 다하고 인간은 정부의 부의 균형정책을 통해 그냥 삶을 누리고 최소한의 일만하면서 정부의 지원 아래 대다수의 평민은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결국 목적인 인간인 우리 자신들의 행복과 더 나은 삶의 질을 위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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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 터졌다. 희대의 스캔들이라며 '디젤게이트 사건'으로 까지 회자되고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폭스바겐. 독일의 명차 브랜드이며 도요타와 함께 세계 1위를 다투는 자동차그룹이다. 특히 아우디, 포르쉐, 람보르기니, 부가티, 벤틀리 등 잘 알려진 고급 브랜드를 소유한 자동차 거대집단인 셈이다.


이 거대 자동차회사가 전세계를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였다는 사실에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발단은 폭스바겐이 개발한 Clean Diesel. 디젤엔진의 경우 질소산화물이 다량 발생되는데 이 물질은 수분과 반응해 산성비가 되고, 오존층을 파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수입차에 대한 배기규제를 유럽보다 2배 더 강화하고 있다. 결국 디젤엔진의 배기정화기술이 더 요구되는 셈이다. 사실 배기가스 정화만 놓고보면 어려운 것은 아니다. 문제는 정화장치가 강화될수록 자연히 공기배급도 불편해지기에 결과적으로 엔진성능이 크게 떨어지게 된다. 그런데 폭스바겐은 이러한 기술적 한계를 뛰어넘었다며 Not a concept car를 표방하며 클린 디젤을 미국에 수출해왔다.(참고로 현대차는 기술이 없어 디젤차를 미국에 팔지 못했음.) 하지만 이것은 조작이었던 것이다.


폭스바겐은 기술적한계를 뛰어 넘었던 것이 아니라, 배기가스 검출을 위해 정차중일 때는 테스트모드가 작동해 정화장치가 가동되게 했고 실제주행모드에선 정화장치가 꺼져 엔진이 원래성능을 발휘하도록 프로그래밍했던 것이다. 그 결과 실제주행시에는 기준치의 40배에 달하는 질소산화물이 발생되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사기였던 동시에 클린 디젤은 여전히 컨셉의 영역이었던 셈이다.


사건이 터지자 폭스바겐의 시가총액은 무려 40조원이 증발해버렸고, 미국은 최대 21조원에 이르는 벌금을 내릴 수도 있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리콜대상차량은 전세계 1100만대를 웃돌고, 집단소송 움직임까지 보이면서 사실상 폭스바겐은 폭망했다고 말한다.


폭스바겐의 이번 사건은 지난 도요타 리콜사태와 더불어 우리에게도 많은 교훈을 준다. 도요타의 경우 '마른 수건도 다시 짠다.'라는 기치 아래 철저한 원가절감을 통해 이윤을 극대화해왔고, 모든 제조업체의 표준이 된 '도요타 웨이'가 있다. 그러나 지나친 원가절감으로 품질에 누수가 생기기 시작했고 리콜비용을 막고자 로비로써 해결하려다 들통이나고 말았다. 원가절감이라는 新이 안전이라는 최고의 가치 위에 올라서 주객이 전도되면서 위기를 겪었던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하나님 제일주의라는 신앙적 가치를 잃으면 다른 신들이 우리 가치의 최상위에 오르게 되고 우리 신앙은 오래지 않아 무너지고 만다. 시험당한 가룟 유다처럼 말이다. 또,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윤리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충족한다는 것은 쉬운 일만은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러한 윤리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서도 겉으로는 Clean Diesel 인냥 스스로를 과장하고 자신과 상대방까지 기만하곤 한다는 것이다.


바리새인과 세리가 함께 성전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바리새인은 종교적 윤리에 최선을 다하는 의로운 사람이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도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만큼 의롭지 않고서는 천국에 못 갈 것이라고 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세리가 더 의롭다함을 받고 돌아갔다고 하였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윤리가 외적인 행위에만 기반된 것이 아님을 일깨워준다. 바리새인의 행위기반 윤리는 천국에 들어갈만큼 의로왔다. 그러나 내면과 양심과 겸손에 있어 자기죄를 보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자기를 의롭게 여기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주는 것이라고 하셨다.


우리도 꽤나 우리가 그리스도인다워졌다고 생각하면 자칫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고 마음이 높아지기 쉽다. 아이러니같지만 사람이 얼마나 행위중심적인 사고기반 위에 있는지 생각해보면 정말 그러하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십계명도 지켜야 한다. 그걸 지켜서 천국을 가는 건 아니지만 못 지킬걸 지키지 말라고 주신것도 분명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Not a concept car' 라고 지나치게 과장하고 있다는 것일 거다. 우리 역시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사람들 앞에서 테스트모드일 때와 주행모드일 때가 다르다. 더더욱 우리 양심은 아예 그런 구분된 프로그래밍이 필요치 않을 정도다.


그러나 백보좌 심판대 앞에 설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는 그날. 스스로 속이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신다라고. 그날 내 신앙의 시가총액은 얼마나 폭망하게 될까. 내 신앙에 세리가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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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기반아래_2015.06.19

(Subject: 그리스도인의 정체성-나는 그리스도인인가80.)

 

(요한복음65~9)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찌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빌립과 안드레의 대조적인 모습 속에서 믿음의 기초가 어디에 기인하는지 발견한다. 무리가 시장하고 먹을 것이 필요한 시점에서 예수님께서 특별히 시험하실 목적으로 빌립에게 질문을 던졌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빌립은 예수님의 질문 앞에서 현상을 매우 현실적으로 직시하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이백 데나리온의 큰 돈으로도 이 많은 무리를 먹일 수 없다는 것이다.

 

빌립이 암울한 답변을 하였을 때, 또 다른 제자 안드레가 물끄러미 끼어들었다. 그리고 작은 도시락 하나를 예수님께 건넸던 것이다. ‘이거 한 아이가 건네준 도시락인데, 이게 아무 것도 아닌 건 압니다…’

참 놀라운 일이다. 이백 데나리온의 떡으로도 모자랄 판에, 어린 아이야 그 순진함에 자기 도시락을 내놓을 수 있었다지만 안드레 마저 그 도시락을 예수님께 내놓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때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보이신 것이다.

 

상황을 바꿔보자. 만약, 그 아이가 자기 도시락을 빌립에게 가져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얘야, 이건 너나 먹으렴. 지금 이걸 가지고 나노조각으로 나눠서 주란 말이냐

 

빌립과 안드레의 차이가 무엇이었을까. 안드레 역시 도시락 하나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적어도 도시락을 예수님께 가져다 드릴 믿음의 순수함 정도는 있었다. 어째서 예수님께서 빌립을 시험코자 하셨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예수님은 빌립과 안드레의 대조되는 모습을 통해 믿음의 기초에는 당위적으로 순수함이 수반하여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신 것이다.

 

우리가 믿음의 삶에 있어 범하기 쉬운 오류는, 성경에서부터 교회운영과 교회생활에 이르기까지 너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위에서 이해하려 든다는 것일 거다. , 신앙이 논리 위에 있어야 하는데 논리가 신앙을 지배하려는 것이다. 그것을 쉽게 자기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표현으로 대신하곤 한다.

 

그렇다. 우리가 성인이라면 아이처럼 순진하긴 어려울지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 믿음의 기반 아래에는 안드레처럼 초라한 도시락을 예수님께 의탁시킬 수 있는 만큼의 그냥 그런 순진함과 순수함은 바탕 되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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