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고장원'님 글입니다.
http://www.pyroshot.pe.kr/sf/arc/990704c.htm
하이퍼링크가 안되시면 불편하시더라도 복사하신후 인터넷 주소창에 붙인후 엔터치시면
본문으로 들어갑니다.ㅠ.ㅠ
혹 글이 안보이시면 아래를 클릭하세요
>> 접힌 부분 펼치기 >>
삼류 독자에게 비위 맞추기
Dumbing Down
글쓴이: Robert Silverberg
옮긴이: 고장원
자료원: Reflections & Refraction by Robert Silverberg, Underwood Books, Grass Valley, California, 1997, pp 8~10
원문이 처음 게재된 곳: [Amazing Stories] 1985년 9월호
우리말로 옮긴 날: 99년 4월 21일 ~ 22일
과학소설도 문학인 이상 독자/소비자와 출판사의 욕구와는 상관없이 작가 개인의 성취 목표가 있기 마련입니다. 레이 브래드버리 같은 작가는 과학소설을 주로 쓰지만 일반문학계에서도 상당한 인정을 받고 있고 컷 보네것은 아예 장르의 경계를 벗어나버렸지 않습니까? 대부분의 재능있는 과학소설 작가들은 자기들 역시 같은 대접을 받고 싶어합니다. 단순히 과학적인 아이디어나 사회적 비전의 참신성 못지 않게 문학적인 재능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60년말의 뉴웨이브 운동이 일어났고 페미니즘 SF도 탄생한 것 아닙니까?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우리나라는 언급할 꺼리도 별로 없지만, 미국에서조차 과학소설은 일부 작가들을 제외하면 게토문학 취급을 받지 않습니까? 더구나 21세기를 눈 앞에 둔 시점에서 대중은 갈수록 더 말초적이고 시각적인 취향으로 쏠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할리우드 SF영화는 광적으로 보면서도 과학소설을 읽는 것은 또다른 차원의 노동(?)으로 생각하죠. 그래서 히트한 SF영화를 소설화하는 작업이 과연 과학소설계의 시장확대에 도움이 되느냐 않느냐를 두고 미국에서도 논쟁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불필요할 지는 모르나 제가 이렇게 미리 사설을 늘어 놓는 이유는 로벗 실버벅이 쓴 다음 글을 위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가 보기에 근 백년이 넘는 역사를 지난 과학소설 문학이 그 세월에 걸맞는 질적 성장을 거듭해야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먹고 사는 문제(작가로서의 출판시장에서의 생존) 때문에 그 반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의 평생을 바친 분야가 쇠락의 기미를 보이는 현실을 못내 아쉬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래에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빛의 왕>이나 <불사신> 같은 비교적 우수한 과학소설을 썼던 로저 젤러즈니 같은 작가조차 <앰버>시리즈 같은 무협지를 무려 10권씩이나 쓸 정도로 정력을 소모했던 사례는 실버벅이 우려하는 풍조와도 맥이 닿지 않나 생각됩니다. 자, 그럼 실버벅의 의견을 직접 들어보도록 하지요.
얼마 전에 --- 이 잡지의 1984년 11월호였다. --- 나는 현재 과학소설에 만연해있는 새로운 클리케이cliches(진부한 요소들)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때 구체적으로 인용한 예는 여자가 악당을 맡는 경우였다. 성질이 못된되다 독설을 일삼는 우주 해적, 현상금 사냥꾼, 마약상 또는 그 어떤 캐릭터이건 간에, 펄프 잡지 소설이 주축이었던 부끄러운 옛 시절에는 늘 남성이 악한 역할을 맡았지만 이제 3류 페이퍼백판 과학소설이 판치는 부끄러운 현재에는 그러한 악역의 반 수 이상을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로벗 노월 Robert Nowall이란 이름의 한 독자는 1985년 3월호에 실린 독자의 편지난 에서 나의 위와 같은 입장을 두고 다음과 같이 책망했다.
"악역을 맡은 여성 캐릭터들에 대한 그의 논의를 읽어보니, (실버벅은) 여성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악당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암시하는 듯하다. 왜 여성들은 악당이 될 수 없는가? 그들이 남성들 만큼 못되고 사악하지 말란 법이 어디 있는가? (또는 좀 더 세련된 과학소설에서 남성 주인공에 맞설 만큼의 비중있는 인물이 되지말란 법이 어디 있는가?)"
솔직히 나로서는 노월과 나의 생각이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나의 요점을 놓치고 있거나 적어도 샛길로 빠진 듯한 느낌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긍정적인 활동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출판된 과학소설의 질적 수준에 관련된 모든 것들이었다. 분명히, 노월씨, 여성도 남성들 못지 않게 반칙을 일삼고 폭력적인데다가 도덕적으로 얽매이지 않을 자격이 있소. 만약 어떤 여성이 자신이 차세대 히틀러나 차세대 앗틸라 왕 또는 차세대 칼잡이 잭처럼 되고 싶어한다면 어느 누가 감히 그러한 역할들은 남성들의 몫이라고 하겠소? 우리의 여성들보고 언제까지고 당신들은 보호의 대상이니 아기나 낳고 부억에서 감자나 깍으라고 해야 하겠소? 오로지 남성들만이 거짓말을 일삼고 사기치고, 남을 해치고, 약탈하고 파괴를 밥먹듯이 하는 동안 말이오.
그러나 --- 여성들이 남성들 못지 않게 악한 역을 맡을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되--- 내가 지적하고 싶은 바는 우주해적, 항성간 마약 중개상, 양심에 털난 노예상인 그리고 그밖의 악역들이 나오는 소설들 대부분의 수준히 함량 미달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너나 할 것 없이 유치한 작품들이라도 분명히 좋아했다. 이것이야말로 만화가 아무리 세대가 바뀌어도 늘 인기를 유지하는 비결이다. 내가 꼬마이던 시절에 [행성 이야기Planet Stories]라는 과학소설 잡지가 있었는데, 이 잡지는 일부러 만화같은 문장을 사용했으며 고함지르는 악당들과 퉁방울 눈을 한 괴물들에 대한 시시껍질한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었다. 아이잭 애시모프와 레이 브래드버리 그리고 폴 앤더슨이 그러한 이야기들 가운데 일부를 썼고 (내가 보탠 것은 그보다 좀 나았다.) 내가 첫번째 원고를 팔려했던 그 당시에 만약 그 잡지가 폐간되지 않았더라면 나 역시 그러한 이야기들을 쓰는데 일조 했을지 모른다. 우리 모두 [행성 이야기]를 사랑했다. 이러한 애정은 여전하다. 우리들은 그것을 보며 성장했다. 우리는 서로 "야, 이건 진짜 [행성 이야기] 같은데." 라고 말하기 좋아하는데, 우리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인생에는 ---또는 문학에는, 심지어 과학소설에서조차--- 영원히 12살에 머무는 것 이상의 차원이 있다. [행성 이야기]를 사랑했던 우리 대부분은 1950년대 와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어른들의 흥미를 끌만한 과학소설을 만들어내고자 오랜 동안 무던히 애를 썼다. 1970년대에 들어, 우리는 이러한 운동이 화려한 결실을 맺는 것을 보게 되었으니, 우수한 과학소설들이 어슐러 K. 르귄, 진 울프 Gene Wolfe, 제임스 팁트리, 케이트 윌헬름, J. G. 밸러드, 브라이언 올디스 그리고 그 밖의 많은 재능있는 작가들에 의해 상당히 많이 씌여졌다. 그러나 현재 1980년대에 와서는 문학에 대한 식견이 전혀 다른 독자층이 과학소설계로 대거 밀려와 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스타 트랙>이나 <스타워즈>에 매혹된 수많은 젊은 독자들이 몰려와서, 예전처럼 [행성 이야기]류의 내용들이 담긴 페이퍼백판들을 찾아 두리번 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류의 이야기들은 팔리고 팔리고 또 팔린다. 놀랄 게 하나도 없다. 삼류 통속물은 언제나 잘 팔리니까. 그러나 1970년대에 이 분야에 뛰어든 총명한 여류 작가들 상당수가 요즘들어서는 위와 같은 통속물들을 쓰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는 세태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아프지 않을 수 없다. 이 여류 작가들이 창조한 악당들이 여성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페미니스트적으로 서술되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상 그녀들은 약간 더 세련되게 수정했을 뿐 본질적으로는 예전의 삼류 쓰레기들과 다를 바 없는 작품들을 재생산하고 있지 않은가. 노월씨, 바로 이것이 내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은 바였다오.
일종의 그레샴의 법칙 Gresham's Law이 통화(通貨) 뿐만 아니라 소설에서도 통용된다. ("악화가 양화를 몰아낸다." 학교 다닐 때 다 배우셨죠?;역자주) 삼류소설은 쉽게 쓸 수 있다. 출판업자는 한 달에 수많은 책들을 찍어낼 수 있고 그것들을 진열해놓을 서점의 공간도 충분하다. 따라서 1970년대에 두각을 나타냈던 뛰어난 작가들 가운데 일부는 불과 몇주마다 새로운 작품을 써내야 하는 상황에 녹초가 되어 있고 심지어 그중에서 아주 자의식이 강하고 개인적인 작가들은 미국에서 책을 출판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영국과 프랑스의 상황은 또 다르다.)
지금 이 땅에서는 학자들에게 "교육수준의 질적 저하 dumbing down" 로 알려진 과정이 한참 진행 중이다. 역사나 문법, 예술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고 현재의 팝 음악과 히트 영화, 그리고 아마 최신판 인터액티브 컴퓨터 게임에만 관심이 있는 신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물론 그들은 바보가 아니다. 그저 머리 속에 이렇다할 쓸모있는 지식이 들어있지 않을 뿐. 그들이 가정과 초등학교에서 받은 지적 훈련은 그들을 참을성 없게 만들었기에 뭔가를 새로 느긋하게 배우기란 쉽지 않다.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영문과 교수인 찰스 머스캐틴 Charle Muscatine의 말을 인용하면, "그들은 이전에 사용하던 것과 똑같은 교재임에도 불구하고 잘 읽지를 못하며, 그들의 집중력은 더 짧아졌고 어휘력은 더 떨어졌다. 추상적인 사고를 할 능력은 예전 학생들보다 2년 정도 뒤떨어진다."
그래서 현실을 꿰뚫어보는 선생들과 교과서 집필자들은 이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좀 더 쉽게 가르치고 교과서를 좀 더 단순하게 만드느라, 그리고 갖은 수단을 동원해서 이 난관을 헤쳐나가느라 고초를 겪고 있다. '만일 학생들이 제임스 조이스나 윌리엄 포크너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면 과학소설 강좌를 열라. 만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어슐러 르 귄이나 J. G.밸러드의 소설까지도 좇아가지 못한다면, [행성 이야기]에 실릴만한 것들을 읽게 하라.'하는 식으로 말이다. 현재 젊은 세대의 교육의 질이 이처럼 절로 떨어진다면 그들이 부모가 되고 선생이 될 때는 얼마나 끔찍할 것인가!
내가 요즘의 펄프 SF에서 여자가 악당 역을 맡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는 악당이 여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들이 맡는 악당 캐릭터가 단지 시커먼 속마음을 가진 악의 화신으로만 그려지고 있을 뿐, 너무나 정형화되어 있고 따분하며 어줍잖은 클리케이의 리바이벌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소설이건 간에 갈등이 필요하다. 그러나 갈등은 얼마든지 여러가지 변형이 가능하다. 주인공과 악당 사이의 갈등은 지극히 단순하고 세련되지 못한데다 별로 재미도 없지 않은가. 특히 과학소설에서는 더욱 그러한데, 여기서 서로 맞대결하는 개념들의 상호작용은 제1의 목표이자 목표였다. 문학에서 악(惡)은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묵시론적이지만 ---나로서는 단지 이아고Iago와 리챠드 2세를 인용할 필요가 있다.--- 대개의 경우 플롯에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 철저하게 악한 존재에 의존하는 것은 주로 비교적 자아관이 아직 확립되어 있지 않은 어린이들에게 훌륭한 모범이 되는 모험담을 들려줌으로서 흥미를 유발하려는 소설을 낳는다.(다시 말해서 지나치게 선악 구도를 극단적으로 가져가면 어린이들에게나 알맞는 유치한 소설이 될 우려가 있다는 뜻이다.;역자주)
12살짜리 소년이 과학소설을 읽도록 유도하기 위해 [행성 이야기]를 권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그 이상의 나이가 되는 우리들에게는 너무 진지하지는 않더라도 우리 나이에 맞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좀 더 세련되고 매력적인 과학소설 잡지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35년 전의 일이었다. 현재는 우리나라(미국) 학생들의 질적 수준이 계속해서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보니 과학소설 또한 삼류 쓰레기들이 판을 치던 초창기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고, 더구나 갈수록 태산인 것은 그렇게 타협한 작품들이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기 때문에, 나로서는 항성간 마약상들이 과학소설에 재등장하는 현실에 대해 불만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악당들의 성별이 무엇이건 간에 상관없이...
|
<< 펼친 부분 접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