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고장원'님 글입니다.
http://www.pyroshot.pe.kr/sf/arc/990704f.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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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과학소설
SF in Japan
글쓴이: John G. Cramer
자료원: SF & 환타지 잡지 [Analog]의 컬럼 "The Alternate View" columns AV-58 of John G. Cramer
원문 인터넷 주소: http://www.npl.washington.edu/cgi-bin/counter.cgi?av_58
원문 작성일: 92년 9월 17일 ([Analog]誌에는 93년 4월호에 게재)
옮긴이: 고장원
번역일: 99년 4월 12일 ~13일
다음 글은 미국의 물리학자이자 과학소설 작가인 존 G. 크레이머가 우연한 기회에 일본에 들렸다가 일본 과학소설계에 대해 느꼈던 바를 [아날로그]지에 실었던 컬럼입니다. 그는 현재 [아날로그]지에 과학과 과학소설에 관한 정기적인 컬럼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국 과학소설계의 소식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면서도 정작 바로 곁에 있는 또다른 과학소설 시장인 일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비록 미국인의 시각을 통해 한 다리 건너서 바라보는 것이기는 하지만 일본 과학소설계 정황을 피상적이나마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 글이 씌여진 시점이 92년이어서 밀레니엄을 코 앞에 둔 현재에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따를 지도 모른다는 한계입니다. 또한 이 컬럼에는 원래 쯔꾸바의 일본 국립 고에너지 연구소를 방문한 내용도 있으나 너무 딱딱하고 전문적인데다가 과학소설과는 거리가 있는 내용이라 판단되어 옮긴이가 임의로 삭제하였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일본은 새로운 산업, 과학, 교육 그리고 미래에 대한 설계에서 만사를 제대로 처리하고 있는 국가로서 미국이 보기에는 거의 신화적인 상태에 도달해 있다. 대부분의 일반화처럼, 이러한 청사진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감이 없지 않다. 일본은 복잡하고 매력적인 나라이다. 무엇보다도 일본은 흥미로운 방식으로 다르다.
92년 말 내 아내와 딸 그리고 나는 호카이도에서 치루는 내 아들의 결혼식 때문에 일본에 보름 간 머무른 적이 있다. 이왕 일본에 들리는 김에 우리는 마침 때 맞춰 열린 일본 SF대회 Japanese National Science Fiction Convention에 참석했다. 이번 컬럼은 내가 당시 일본의 과학소설에 대해 느낀 바를 담고자 한다.
도쿄
나리따 공항에서 도쿄 시내까지 90분 가량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먼 발치에서나마 일본의 디즈니랜드가 보였고 고가도로 위로는 도쿄의 사무실 빌딩들을 여러가지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오전 여섯시 반 이었지만 우리 눈에 보이는 사무실마다 붐비고 있었는데, 미국 같으면 앞으로도 한 시간 이상은 텅텅 비어있을터였다. 일본 노동자들은 장시간 일하고 있었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며 온종일 일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편 일본 문화에서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남성들은 지적인 업무에 종사하고 여성 근로자들은 유니폼을 입고서 사소한 사무보조일을 하거나 남성들에게 차 시중을 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전통은 궁극적으로 일본의 생산성을 제약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일본의 잠재 노동력의 반이 방치된 셈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남성들만의) 장시간 근무로는 이것을 벌충하는데 부족하다.
8월말 도쿄는 거의 참을 수 없으리만치 덥고 축축하다. 도시 인구가 9백만에 육박하기에, 교통체증도 끔직한 수준이다. 도쿄 여행을 능률적으로 하는 유일한 방법은 거대한 지하철 시스템과 일부 지상철을 이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하철보다는 지상철을 선호했는데, 이는 당연한 얘기지만 바깥 구경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가철로에서 바라본 밤 풍경은 <블레이드 러너>에 나오는 방대한 메트로폴리스처럼 멋지고 기괴했다.
이러한 인상은 아끼하바라 역 부근에 있는 도쿄의 "전자도시 Electronics City"를 방문했을 때 더 강해졌다. 이 광장의 한쪽편은 몇 블럭에 이르도록 소비자에게 전자제품, 전자 장난감, 전자부속, 테스트 기기 등을 파는 수천의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팔리고 있는 전자 제품들의 깊이와 다양성은 실로 놀라웠다. 일본인들은 전자계기류를 좋아해서 국내 내수 시장만으로도 그처럼 다양한 제품군의 생산을 뒷받침해준다. 그중 대다수가 일본 밖에서는 팔리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나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최종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제품들이 아니라 전자 부속과 부품의 엄청난 시장 규모였다
나는 복잡한 전자기기의 설계자이자 사용자로서 풍부한 경험을 지닌 실험 물리학자다. 아끼하바라에는 콘덴서, 접속자, 저항기, LSI칩, 전원 장치, 회로판 그리고 그밖의 온갖 부품들을 파는 고만고만한 상점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이 시장이 보여주는 바와 같은 기술적인 전문성의 집중과 활동 수준이 시사하는 바는 내게 여전히 놀라웠다. 미국에서는 이와 견줄 만큼의 지역적인 집중과 활동 수준을 보여주는 곳이 단 한군데도 없다. 심지어 실리콘 밸리에서조차. 도쿄의 아끼하바라 지역에는 비단 도소매 상점들만 몰려 있는 것이 아니라 전자기기를 설계하고 제조하는 많은 기업들이 모여 있다. 일본 경제의 방대한 주류가 이 작은 데에 모여 있는 셈이다. 이러한 산업의 활기는 무엇보다도 아끼하바라에서 체험할 수 있다.
일본 SF대회 HamaCon
요꼬하마는 항구이자 산업도시로서, 약 3백만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도쿄 중심가에서 5달러 정도 주면 기차로 올 수 있는 멀지 않은 곳이다. 최근 몇년 간 요꼬하마는 순수한 산업 지역에서 만남이나 박람회를 위한 매력적인 장소로 탈바꿈해왔다. 철도를 갈아타기도 쉽게 되어 있고 커다란 컨벤션 센터가 있으며, 세계 일류급 호텔들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가 머문 요꼬하마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The Yokohama Grand Intercontinental Hotel은 도쿄만 끝에서 육중하게 휘어진 상어 지느러미처럼 솟아오른 멋진 건축물이다.
여기서 바로 올해 일본 전국 SF대회 Japanese National Science Fiction Convention인 하마콘 HamaCon이 열렸다. 회의실들은 큼직큼직했고 대규모 대회를 치루기에 걸맞도록 공간이 널찍했다. 그 호텔은 어느 면에서 보거나 SF대회를 치루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단 참가비가 꽤 비쌌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이 대회의 참가비는 미국에서 열리는 같은 성격의 대회보다 약 세배쯤 되었으니, 하마콘은 상당히 비싼 대회였던 셈이다.
이 대회에는 수천명의 일본 팬들이 참여했다. 내 딸 캐쓰린Kathryn과 나는 이 대회에 프로 자격으로 참가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유일한 미국인들이었다. 이번 참가는 우리에게 두말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고 일본의 팬들과 프로들을 만나볼 수 있는 풍부한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일본어를 주로 사용한다는 차이만 빼면, 하마콘은 기구나 운영 구조 면에서 미국의 대규모 SF대회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멀티 트랙 프로그래밍, 아트 쇼, 비디오 게임방, 대형 딜러 룸, 레이저 장식, 롤 플레잉 게임에 관한 회의 등등... 언어장벽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고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심지어 우리는 인상적인 폐회식에서 청중에게 (즉석에서 통역되는) 연설을 해달라는 부탁까지 받았다. 하마콘은 규모가 크고 잘 운영되는 대회였고 우리 모두 거기서 보람있는 한 때를 보냈다.
나는 글로 쓰여진 SF, 다시 말해서 과학소설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하마콘에서는 미디어와 관련된 SF가 훨씬 더 강조되었다. (물론 미국의 SF대회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강하다.) 한편 일본인들은 애니메이션을 높은 수준의 예술형식으로 끌어 올렸다. 일본어로 씌여진 표의문자는 아주 시각 지향적인 문화를 낳는다. 기차와 지하철에서 내가 살펴본 바에 따르면, 일반 서적을 읽는 직장인의 수와 만화책을 보는 직장인의 수는 거의 똑같았다. 도쿄에서 만화책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비해 과학소설의 전시는 드문 편이다. 그러므로 하마콘 대회 프로그램에서나 아트 쇼에서, 만화 캐릭터를 흉내낸 가장행렬에서 그리고 딜러 룸에서 만화책과 만화 주인공들을 유달리 강조하는 현상은 이해가 갈만했다. 하마콘 폐회식은 정교하게 컴퓨터 애니메이션 처리된 비디오 화상이 그 호텔에 비쳐, 그 건물이 우선 거대한 우주선으로 바뀌고 이어 다단계 로켓을 발사하여 우주로 진입한 다음 궁극에 가서는 <스타트랙>의 우주선 엔터프라이즈 호로 바뀌면서 절정에 다다랐다. 나로서는 아직까지도 SF대회를 위해 이처럼 값비싸고 정교한 비디오 영상을 준비한 까닭을 명쾌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과학소설
나의 하드SF 장편소설 <Twistor>는 일본에서 번역 출간되어 있었는데, 내 작품의 출간으로 야기된 새로운 국면은 일본의 과학소설 편집자들과 작가들에게 이런저런 논의를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그러한 논의의 결론은 일본의 과학소설은 위축된 쇠퇴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이었다. 십년 전만 해도 다섯개의 SF/환타지 잡지가 일본에서 출간되었다. 지금은 단지 하나 뿐이다. 서점에서 과학소설들은 추리소설이나 국제적인 음모를 다룬 소설들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있는 실정이다. 과학소설 전문 서점은 일본에 단 한 곳도 없다. SF는 만화책 형태로는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소설 형식으로는 훨씬 기대에 못미친다. 만화책을 보는 청소년들이 어른이 된다해서 장편소설이나 잡지로 시야를 넓히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을 듯하다.(이 점은 미국이나 한국도 마찬가지인 듯하다.;옮긴이 주)
미국 작가의 번역 작품들은 일본에서 꽤 인기가 있다. 특히 하드SF의 경우에 그러하다. 호건Hogan, 로벗 포워드Forward, 그리고 B자로 이름이 시작되는 세 작가(그렉 베어Bear, 그레고리 벤포드Benford, 데이빗 브린Brin)는 하마콘에 참가한 팬들과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장 두드러지게 거론된 작가들이었다. 환타지의 번역 작품들 또한 일본에서 인기가 있는 편인데, 이쪽은 일본 작가들이 외국 작가들과 거의 대등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의 과학소설을 영어로 번역하는 사례는 여전히 극히 드물다. 내가 이야기를 나눠본 일본 편집자들의 말에 따르면, 몇몇 신진 일본작가들이 미국에서도 먹힐만한 흥미로운 작품들을 내놓았으며 번역이 훌륭하고 마케팅만 따라준다면 한번 해볼만 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역시 실행계획은 전무한 상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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