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알

다락방님이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읽으시고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신것을 보았습니다.댓글을 달려다가 글이 너무 길것 같아서 먼댓글을 남깁니다.

 

나는 당황스러웠던 거다. 추리 소설에서 추리를 하고 범인을 잡아내는 과정에서 내가 같이 ', 이런 단서가 있었군!' 하고 그 추리에 감탄하거나 놀라거나, 내가 놓친 것에 아쉬워져야 할텐데, 그게 아니라, '뭐여, 이건 좀 너무하잖아, 자기 혼자 다 해먹는데??' 이렇게 된거다. 뭔가 추리가 끼워맞추기 같기도 하고, 이걸 독자인 내가 어떻게 알아차린담 싶기도 하고. 좀 거시기했던 거다.

 

그리고 이 책에 대한 마태우스님의 의견도 올리셨지요.

추리소설의 핵심은 범인이 밝혀졌을 때 정의가 승리했다는 카타르시스와 함께 "나도 맞출 수 있었는데……"하는 아쉬움이 공존해야 한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들이 욕을 먹는 이유도 단서를 주인공인 푸아로 혼자 가지고 있다가 범인을 잡을 때 갑자기 쏟아 냄으로써 독자가 동참할 기회를 박탈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오리엔트 특급살인』에서 푸아로는 방 안에 모인 한 명, 한 명을 상대로 이런 말을 한다.

"당신은 그 집의 운전기사였지요?" "당신은 가정부였지요?" "당신은……" "당신은……"

사전 정보나 힌트가 전혀 없다보니 배신감만 느낀 채 책을 덮었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위험한 비너스』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범행 동기에 전혀 공감이 안 갔다. (p.343-344)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읽으시고 다락방님과 마태우스님이 공히 언급하신것은 바로 불공정성 인것 같더군요.사실 추리소설의 저자가 독자들보다 여러면에서 우월한 정보를 갖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합니다.저자가 소설속 여러가지 트릭을 창조하기 때문이죠.추리 소설 저자는 자신이 창조한 트릭을 독자들이 쉽게 알아 차리는 순간 그 추리 소설을 추리 소설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기에 독자들이 쉽게 진실(혹은 범인)을 알아차라지 못하게 여러가지 함정을 설치 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른바 본격 추리 소설에서 작가와 독자가 서로 동등한 여러 정보를 가지고 두뇌를 겨루는 것이 보통이지만 아가사 크리스티가 활약하던 30~40년대 영미를 중심으로 한 이름바 본격 추리소설의 황금시대에는 이런 공정성이 훨씬 더 엄격하게 지켜졌던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여러가지 규칙들이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녹스의 10계와 반다인의 20측입니다.

<녹스의 십계>

1. 범인은 이야기 초부터 등장해야 한다. 그러나 독자가 알아채게 해서는 안 된다.

2. 탐성소설에 초자연적인 능력을 도입해서는 안된다.

3. 비밀의 방이나 은밀한 홀, 통로 같은 것은 하나 정도로 자제해야 한다.

4. 아직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독극물이나 과학적 설명이 필요한 장치는 사용하지 않는다.

5. 명백히 인종차별적인 수상한 캐릭터의 등장은 피해야 한다.

6. 우연한 사건 덕에 사건을 해결하거나 탐정이 직관적인 판단으로 진상을 밝히는 것은 피

   해야 한다.

7. 탐정이 범행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8. 탐정이 단서를 발견한 경우 곧 독자에게도 제시해야 한다.

9. 탐정의 친구나 조수 격인 인물의 생각을 독자에게 숨겨서는 안 된다. 또 친구나 조수의

    지능은 독자보다 약간 낮아야 한다.

10. 쌍둥이나 1인 2역의 인물은 미리 독자에게 알려두어야 한다.


<반다인의 20측>

1. 사건의 수수께끼를 푸는 단서는 작품 속에 모두 기술되어 있어야 한다.

2. 작가는 등장인물이 장치한 트릭 이외에 독자를 속이기 위한 서술을 해서는 안 된다.

3. 미스테리 속에서 지적인 추리를 방해하는 연애 요소는 불필요하다.

4. 탐정이나 형사 등 사건을 수사하는 사람이 범인으로 변모해서는 안 된다.

5. 우연이나 돌발적인 자백이 아니라 논리적인 추리로만 범인을 밝혀야 한다.

6. 탐정소설에서는 탐정 역할이 반드시 있어야 하며, 사건은 탐정을 맡은 이의 추리와 수사

    로 진행되야 한다.

7. 장편 작품에서는 사체가 반드시 있어야 하며, 살인보다 가벼운 사건은 피해야 한다.

8. 범죄의 진상을 밝히는 데 점이나 심령술 등 오컬트 요소를 사용하면 안 된다.

9. 탐정 역은 한 사람인 것이 바람직하다. 여러 탐정의 존재는 추리를 분산시켜 독자에게

   공평하지 않기 때문이다.

10. 작품에서 중요 주변 인물이 범인이어야 한다. 단역이나 갑자기 나타난 인물이 범인이

    되는 것은 작가의 무능함을 선전하는 것이다.

11. 집사나 가정부 등 고용된 사람을 범인으로 하는 안이한 수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12. 공범자가 있어도 좋으나 진범은 반드시 한 사람이어야 한다.

13. 비밀 경사나 마피아 등에 속하는 인물은 조직의 보호를 받으므로 범인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불공정한 미스테리이기 때문이다.

14. 살인 방법이나 트릭, 탐정 역이 조사하는 과정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미지

    의 독극물이나 SF 수단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15. 사건을 해결하는 단서는 최종적으로 탐정이 추리를 펼치기 전 모두 독자에게 제시되어

    야 한다.

16. 집요한 풍경 묘사나 문학적인 장문은 피해야 한다.

17. 범인 역에 암살자 같은 프로 범죄자를 두는 것은 피해야 한다. 범죄에 미숙한 사람이 저

    지른 범죄가 매력적인 미스테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8. 살인사건의 결말로 사고사나 자살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이는 독자를 속이는 것이다.

19. 범죄의 동기는 개인적인 것이 좋다. 국제적 음모나 정치적 동기라면 탐정소설이 아니라

     스파이소설이 되기 때문이다.

20. 탐정소설의 작가라는 자존심을 걸고 과거에 사용된 진부한 트릭을 사용하는 것은 피해

     야 한다.


추리소설 애독자라면 한번은 들어보았을 내용들 이지만 읽다보면 참 고리타분해서 현대 독자들에게는 맞지않는 부분들도 많지만 30~40년대 추리 소설가들은 이 법칙을 대부분 충실하게 지켰습니다.

그중에서도 극단적으로 소설속의 동일한 추리 단서를 가지고 독자와의 추리 대결을 벌였던 작가가 바로 제가 좋아하는 앨러리 퀸이 아닌갓 싶습니다.앨러리 퀸의 추리 1기라고 할수 있는 이른바 국명 시리즈 9권은 책속에 독자에게의 도전이란 장을 마련하고 책속에 독자들이 범인을 추론할수 있는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저자 역시 그 정보로만 범인을 탐정이 추리하기에 독자들 역시 탐정의 추리에 수긍하지 않을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물론 이 방법은 작가 역시 플롯을 짜기 매우 어렵기에 국명 시리즈 이후에는 독자와의 도전을 더 이상 전개하지 않게 되지요.

 

 

 

앨러리 퀸처럼 극단적이지 않지만 추리 소설 황금기의 작가들은 대체로 독자들과의 공정한 승부를 겨루게 되는데 이런 방법을 싫어한 추리 소설가들중의 일부가 하드 보일드 추리 소설을 창조하게 됩니다.

 

하지만 본격 추리 소설가중에서 이런 독자와의 공정한 대결을 하지 않은 작가가 등장하게 되는데 가장 유명한 이가 바로 추리소설의 여왕이라고 불리우는 애거서 크리스티 입니다.그녀의 소설을 읽어보면 예를 들면 반다인의 작품과 비교하면 아주 쉽게 읽을수 있어 좋아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지요.

애거서 크리스티는 살아생전 단편집을 포함해서 80권의 추리 소설을 발표할 정도로 전 세계의 많은 이들이 사랑한 추리 작가지만 살아 생전 그녀의 독특한 작품 스타일로 추리 소설가들한테 많은 비판을 받지요.

그녀의 대표작이라고 할수 있는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의 경우 의외의 범인과 결말로 독자를 속였다는 비난(대표적인 이가 앨러리 퀸)이 많았는데, 현대의 독자들에게는 어떨지 모르지만 추리 소설은 독자들과의 공정한 지적 대결이란 생각이 만연했던 30~40년대에는 매우 충격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녀의 또다른 대표작이라고 할수 있는 오리엔트 살인 사건 역시 범인의 의외성이란 관점에서 볼떄 황금 시대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보면 매우 파격적이며 불공정 하다고  할수 있습니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30~40년대 영미의 본격 추리 황금시대에 활약했던 대표적인 작가중의 한명이지만 당시 다른 추리 소설가와 달리 공정한 단서를 주고 독자와 지적 추리 대결을 겨루기 보다는 오히려 독자들이 아무런 고민없이 자신의 소설을 즐길수 있도록 재미있고 쉽게 읽을수 있도록 책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다락방님이나 마태우스님이 오리엔트 특급살인을 읽은후 느낀 낭패감과 당혹감은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데 이것 역시 크리스티가 노린 점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크리스티의 작품을 읽고 추리소설이란 독자와 저자의 지적 추리 대결을 하는 장르야라고 생각하신다면 위에 적은 앨러리 퀸이 국명 시리즈를 읽어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퀸의 국명 시리즈는 정말로 동일하게 제시된 단서를 가지고 독자와 저자가 머리를 맞대고 추리를 대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ㅎㅎ 물론 읽다보면 느끼시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6대 4 정도로 저자가 더 유리하단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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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7-12-23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추리소설의 규칙을 안지키는 작가들이 여럿 생각나네요. 그런 책들은 리뷰쓰기도 꺼려지더라고요...😐

카스피 2017-12-27 22:49   좋아요 0 | URL
ㅎㅎ 요즘은 추리 소설 규칙을 지키는 작가들이 그닥 없지요^^

다락방 2017-12-26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게 있군요. 저는 전혀 몰랐어요. 그렇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이야기 적으로는 꽤 흥미롭고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이야기에 중점을 두었다는 생각을 했어요. 긴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거 알게 되었네요. 고맙습니다.

카스피 2017-12-27 22:50   좋아요 0 | URL
ㅎㅎ 별말씀을요^^

비로그인 2020-03-10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스피씨는 대체 누구신데 온통 감상평, 논설? 들로 가득찼는지... 애매모호~;;

카스피 2020-03-13 09:51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