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너무너무 읽고 싶어서 후다닥 사가지고는, 같이 온 박스 중에서 이 책만 먼저 읽었다. 나는 사실 딱히 추리소설에 그다지 매력을 느끼는 편이 아닌데, 그래서일지 홈즈랑 루팡도 꼬꼬마 시절에 읽고 성인이 되어서는 다시 읽지 않았더랬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도 마찬가지. 성인이 되어 몇 권 읽었을 때 그다지 재미있게 기억에 남아있질 않아서 읽을 생각 못하다가, 마침 영화도 개봉했다 하니 읽어볼까,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데는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거야, 하고는, 오만년만에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읽게 된거다.
그러나 이 책을 거의 다 읽어서 범인이 누구인지 알게 됐을 때, 탐정이 다다다닥 자신의 추리를 말하면서 범인을 찾아냈을 때, 나는 이렇게 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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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나는 당황스러웠던 거다. 추리 소설에서 추리를 하고 범인을 잡아내는 과정에서 내가 같이 '아, 이런 단서가 있었군!' 하고 그 추리에 감탄하거나 놀라거나, 내가 놓친 것에 아쉬워져야 할텐데, 그게 아니라, '뭐여, 이건 좀 너무하잖아, 자기 혼자 다 해먹는데??' 이렇게 된거다. 뭔가 추리가 끼워맞추기 같기도 하고, 이걸 독자인 내가 어떻게 알아차린담 싶기도 하고. 좀 거시기했던 거다. 차라리, '우타오 쇼고'의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쪽이 더 반전매력이 있달까. 그래서 추리 소설로는 좀 실망했던 거다. 그러면서 기억났다. 맞아, 내가 이래서 안읽었었지... 하고.
그러나 이야기는 훌륭하다. 어린아이를 납치해 살인한 범인에 대해 모두들 응징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그런 놈은 죽어도 싸다고 말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충분히 의미 있었던 거다. 그 과정에서 '내 잘못'이라고 자책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다루는데, 이야기 자체는 충분히 좋았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내 경우엔, 《봄에 나는 없었다》시리즈 쪽이 훨씬 좋았던 것 같다. 추리는 넘나 내 스타일 아닌 것이여... 추리 소설로 이렇게 명성이 자자한 분이신데도...
그런데 이렇게 이 시리즈 링크하다 보니...내가 안읽은 책들이 있구나! 또 사야겠네...
어쨌든 그런 감상을 안고, 나는 서민 교수님의 새 책, 《서민 독서》를 읽었다.
이것은 무슨 우연일까, 이 책을 읽는데 내가 바로 전에 읽었던 《오리엔트 특급살인》이 언급되는 거다. 이 책에 언급되는 책이 한 두권이 아니니 그 책 언급됐다고 뭐가 대수일까 싶지만, 하하하하, 감상이 완전 나랑 똑같은 거다!!
추리소설의 핵심은 범인이 밝혀졌을 때 정의가 승리했다는 카타르시스와 함께 "나도 맞출 수 있었는데……"하는 아쉬움이 공존해야 한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들이 욕을 먹는 이유도 단서를 주인공인 푸아로 혼자 가지고 있다가 범인을 잡을 때 갑자기 쏟아 냄으로써 독자가 동참할 기회를 박탈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오리엔트 특급살인』에서 푸아로는 방 안에 모인 한 명, 한 명을 상대로 이런 말을 한다.
"당신은 그 집의 운전기사였지요?" "당신은 가정부였지요?" "당신은……" "당신은……"
사전 정보나 힌트가 전혀 없다보니 배신감만 느낀 채 책을 덮었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위험한 비너스』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범행 동기에 전혀 공감이 안 갔다. (p.343-344)
앗, 그래 내가 느낀 게 바로 이거였어! 어떻게 운전사인줄 알고 어떻게 가정부 인줄 아느냔 말이야!!! 우앗!!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나 뿐만이 아니었구나!! 아아 속이 다 시원해.....
《서민 독서》얘기가 나온 김에 내가 빵터졌던 부분은 바로 여기였다. 중학생 아이들과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대하여 토론을 하는데, 토론할 당시에 서민 교수님은 이 책을 읽어본 적 없었다는 일화다.
그런 수준 높은 대화 와중에 학생들은 대화가 막힐 때마다 나를 봤다. 뭔가 토론의 중심을 잡아달라는 간절한 메시지였다. 난 당황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난 태어나서 『데미안』이란 책을 읽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중2때 담임선생님은 한 달에 한 번씩 독서 토론을 하자면서 우리에게 매달 책을 한 권씩 할당해 줬는데, 첫 회를 장식한 『인형의 집』에 이어 두번째로 선정된 책이 바로 『데미안』이었다. 어머니에게 돈을 타서 서점으로 간 나는 주인에게 이렇게 물었다.
"'개미알'이라는 책 있어요?"
주인은 그런 책은 없으며, 제목도 처음 듣는다면서 황당해했다.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집에 왔고, 결국 책을 읽지 않은 채 학교에 갔다. 다들 책을 못 샀겠구나 싶었는데, 다들 책을 들고 있었고, 제목이 『데미안』이었다. (p.369)
아아... 서둘러 서점으로 달려가 개미알 있어요? 묻고, 그런 책을 모른다는 서점 주인을 뒤로 하고 돌아서며 고개를 갸웃하는 서민 교수님의 모습이 너무 생생하게 눈앞에 그려진다. 개미알 ... 아 나 넘나 빵터진 것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개미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리고 이 시점에 깨알홍보 하자면, 이 책에 '이유경'의 《독서공감 사람을 읽다》도 언급된다. 각주에 보면 이 책 있다. 재미있는 책은 역시 재미있는 책에서 인용이 되야되는 것이야.... (응?)
그리고 이 책도 읽었다.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들어서 읽고 바로 팔았는데, 내가 느끼는 복잡한 마음을 어제 유부만두님이 그대로 다 리뷰해주셨다. 이 책 읽으면서 '길예르모 델토로' 감독의 《판의 미로》생각도 강하게 났다. 그 영화에서도 어린아이 주인공이 마지막에 죽어버린다. 나는 그것을 '아이가 죽는 비극'으로 봤는데, 어딘가에서 글을 읽어보니, 아이는 이제야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로 가, 여왕과 임금의 자녀인 공주가 되었다... 라는 게 아닌가. 아이 입장에서는 이게 비극이 아니라는 글이었다. 아, 그럴 수도 있구나... 자기 아빠랑 엄마를 만나러 간거니 비극이 아닐 수 있는 거구나... 하고 되게 인상적인 영화로 남아있었는데,
이 책, 《사자왕 형제의 모험》에서도 비슷한 감상이 생겨버리는 거다. 초반부터 그냥 애들 둘을 죽이고 시작한다. 아이들이 죽고 나서 도착하는 곳이 낭기열라 라는 곳인데, 거기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그런데 현실 세계에서는 집에서 불이나 형이 동생을 들춰업고 창밖으로 뛰어내려 형이 죽는 거다. 동생은 병을 앓고 있다가 형의 죽음을 맞닥뜨리고 얼마 뒤 자신도 죽는데, 죽고나서 낭기열라로 가 형을 만나 사이좋게 지내다가 악의 무리를 소탕하고 평화를 되찾고... 그러다가 다시 절벽으로 떨어져 그 다음엔 낭길리마..로 가버리는 거다.......
이들이 낭기열라에 도착하고나서는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그러다 악의 무리를 소탕하니, 이것은 그저 모험이 가득찬 신나는 이야기인가... 하려다가, 낭기열라 에서부터 언급되지 않는 현실의 '엄마' 생각이 너무 나는 거다. 현실의 엄마인 나는, '아이들은 낭기열라에 가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가 되나... 자꾸 이런 생각이 드니까 미쳐버리는 거다. 어쩌면 내가 너무 속세에 찌든 어른이라 그런건가..하는 생각도 당연히 여러차례 들었다. 아니, 어떻게 절벽으로 떨어지면서 그 다음에 더 좋은 세상에 간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그건.. 아이이기 때문에, 순수하기 때문에 가능한걸까.
나는 이 책을 사두고 읽기 전, 다 읽고 조카 줘야지, 했었는데, 도무지 조카에게 읽으라고 할 수가 없다. 이 오지라퍼 이모는, 혹여라도 아이가 이 책을 읽고 '나도 낭기열라에 갈테야' 같은 말을 할까봐 너무 겁이 나는 거다 ㅠㅠㅠㅠㅠㅠㅠㅠ 쓸데없는 걱정이겠지만, 아이도 아이 나름의 판단을 하겠지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도무지 읽힐 자신이 없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내가 아이보다 더 약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동화를 동화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인 것 같다 ㅠㅠ
영화로 나온다면 차라리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웅장한 자연과 불을 뿜는 용..을 보는 재미는 대단할 듯.
사실 글 쓸 의욕이 전혀 없었고, 그래서 아무데도 글을 쓰지 못했는데-라고 해봤자 고작 이틀;;-, 오늘 누군가의 페이퍼를 읽으니 갑자기 막 글이 쓰고 싶어졌다. 글을 쓰게 하는데는 여러가지 동력이 필요하지만, 좋은 글을 읽는 것에서도 비롯되는 것 같다. 세상 재미있는 글을 읽으니 나도 막 글을 쓰고 싶어지는 거야. 그래서 부지런히 읽어야 하는가보다.
지금 읽고 있는 책에 대해서도 쓰고 싶은데, 한 페이퍼 안에 다 쓰자니 너무 길고 그러면 읽는 사람들에게 불편을 줄 터, 또 하나의 페이퍼를 따로 쓰도록 하겠다. 글 포텐 터짐 퐝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