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 덕혜 옹주를 읽으면서 망한 나라의 왕족이나 백성들의 삶은 얼마나 불행한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덕혜 옹주는 경술국치(1910) 뒤인 1912년 덕수궁에서 출생하였다. 고종의 고명딸로서 5살때 준명당에 유치원이 만들어질 정도로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고 전해진다.태어나서부터 총독부에 의해 왕족으로 대우받지 못하다 겨우 왕족으로 인정을 받아 덕혜 옹주가 되었으나 강제로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되고 어머니의 죽음으로 정신병을 앓게 되다가 대마도 도주인 소 다케유키와 강제로 결혼을 하게되고 이후 1953년에 남편에게 버림받고 정신 병원을 전전하다 62년 귀국하여 89년에 타계하게 된다.참으로 나라를 잃은 왕족의 고달픈 삶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마치 청의 최후의 황제인 부의의 일대기를 그린 마직막 황제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덕혜 옹주의 삶은 참으로 서글퍼 보인다.임금을 아비로 둔 정말 금지 옥엽 같은 귀여움을 받은 딸이었지만 망한 왕조의 후손이기에 아버지의 죽음뒤에 펼쳐진 일련의 사건들은 그녀의 마음을 피폐하게 만들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이후 딸과의 갈등과 남편의 버림으로 그녀는 한 남자의 부인으로도 딸의 어머니로서도 실패했다는 자각은 그녀의 정신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고 게다가 해방된 내 나라에서 조차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이 그녀를 더욱 절망스럽게 했을 생각이 든다.

덕혜 옹주의 일대기를 다룬 이책은 잊혀진 왕가의 후손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어찌보면 이미 흘러간 시간에 대한 일종의 노스탈지어가 아닐까 싶다.작가 자신도 이 책이 이처럼 베스트 셀러가 될줄 몰랐다고 하니 어찌보면 우리 마음속에 있던 이씨 왕조에 대한 푸대접에 대한 부끄러움이 무의식중에 나타난 것은 아닐까 싶어진다.

이 책은 픽션이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 보면 논픽션90%+픽션 10%가 가미된 책이다.무슨 말인가 하면 작가인 권비영이 유일한 덕혜옹주 평전으로 평가받는 <덕혜희-이씨 조선 최후의 황녀>를 쓴 일본 여성학자 혼마 야스코의 책을 읽고 소설로 구상했기 때문이다.
작가 스스로도 밝혔듯이 혼마 야스코의 책을 많이 참조해서 소설 <덕혜옹주> 초안을 썼다고 털어놓았고 평전이 국내에 출간되자 재 창작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게다가 초안을 그냥 출판했다면 표절 시비에 휘말렸을 거라고 했을 정도다.
하지만 혼마 야스코가 국내 일간지를 통해 "소설 <덕혜옹주>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무단차용했다"고 주장했는데 그녀는 덕혜 옹주의 남편인 소 다케유키의 시를 비롯하여 많은 내용을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무단차용하면서도 표현을 바꾸는 식으로 표절을 했다면 소송에 들어가 있다.

솔직히 혼마 야스코의 책을 읽어보지 않았기에 표절인지 아닌지 알수는 없으나 자자 본인이 그런말을 할 정도면 상당히 베꼈음이 거의 틀림 없다는 생각이 든다.물론 덕혜 옹주에 대한 자료가 그녀의 책 한권 밖에 없기에 작가의 고충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나 경술 국치 100년의 시점에서 비운의 덕혜 옹주에 대한 소설을 쓰면서 일본인 작가에게 표절 의혹을 제기 받는 것 자체가 너무 아이러니 하면 덕혜 옹주에게 창피한 일이 아닌가 싶다.

작가 권비영은 처음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운명이라고 생각했고 이 책은 그녀를 위한 진혼곡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는데 표절 시비를 걱정할 정도라면 다른 쪽으로 조사를 하고 이야기를 전개했으면 어떨까 싶다.

단순히 판매를 위해 한 여인으로 비극을 다루었다면 할 말이 없지만 조선 왕조의 마지막 후예에대한 글을 쓰고자 했다면 다른 것도 많기 때문이다.일제하를 거쳐 대한 민국이건군 후에 조선 왕조의 마지막 후예들의 서글픈 삶은 이루 말할 수가 없지만 우리는 이를 전혀 알 수가 없다.왜냐하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조선 왕실이 매우 무능하게 일본에게 병합된줄 알지만 고종은 상하이 은행에 거액의 돈을 예치해 일본과 싸울 군자금으로 쓰려 했고, 1910년 한일합병 직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을 하려 했다. 순종은 붕어하기 직전에 "병합은 역신의 무리들이 제멋대로 선포한 것으로 나를 유폐하고 협박하여 명백히 말을 할 수 없게 한 것으로 내가 한 게 아니다"라고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순종의 동생인 의왕도 국권회복을 꿈꾸며 삿갓 모양의 방갓을 쓰고 상주(喪主)로 위장해 상해로 망명을 시도하다 만주 안동에서 일본 경찰에 붙잡혀 온 이후 철저한 감시대상이 되어 술로 한세상을 보냈다고 하지만 일제의 거짓 선전탓에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독립 운동을 하려던 의왕은 12남 7녀를 낳았지만 왕실 가족수가 늘어나는 것을 반대한 일제는 큰아들(이건)과 둘째아들(이우) 2명만을 황실족보에 넣었다.
이들 역시 덕혜 옹주 못지않은 비극적인 삶은 살았는데 첫째 이건은 제2차 댄전 후 시부야역 인근에서 단팥죽 장사로 연명하다가 쓸쓸히 숨졌고 둘째이우는 일본에 끌려가 일본군 대좌가 되었으나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떨어지면서 희생되고 평생을 독신으로 산 여덟째 이경길은 일본 순사가 혈통을 끊으려고 강제로 고자를 만들어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고 하는데 해방이후 덕수궁에서 쫒겨나 호텔 보이, 막노동꾼을 전전했고 비둘기 집으로 유명한 11번째 이석은 1979년 궁에서 쫓겨난 뒤 미국으로 건너가 10년간을 수퍼마켓 등에서 일하다가 귀국했다.

이처럼 우리가 어찌보면 일부러 무시했을지도 모르는 고종과 순종의 후예들은 우리 주변에서 이처럼 비참하게 살고 있다.아마도 조선의 마지막 왕들은 그들 역시 조선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음을 후대의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랐을지도 모른다.민주 국가인 현재의 대한 민국에서 조선 왕조의 후예라고 너무 우대할 필요도 없지만 얼마 남지 않은 그 후예들을 이처럼 홀대할 필요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표절 시비에 휘말린 권비영 작가가 덕혜 옹주의 이야기가 아닌 차라리 이분들의 이야기를 썼을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쉬운 마음이 든다.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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