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릭스님과 휘모리님이 한국 추리 소설에 대해서 알고 싶다고 하셨는데 제가 지식이 짧은 관계로 제 글을 올리지않고 황금 가지에서 나온 한국추리스릴러단편선 뒷 부분에 실린, 박광규 씨가 쓴 [한국 추리, 스릴러 소설의 계보]라는 글을 소개토록 하겠읍니다.
서양의 추리 소설사는 몇편이 국내에 소개된바는 있지만 국내의 추리 소설사에 대해서 쓴 책은 거의 없는것 같고 박광규 씨가 쓴 [한국 추리, 스릴러 소설의 계보]는 비록 짧은 글이지만 내용이 충실하여 국내 추리 소설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분이 읽으셔도 한국 추리 소설의 흐름을 쉽게 알수 있을것 같아서 글을 올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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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추리, 스릴러 소설의 계보
박광규 (추리소설 평론가)
1984년 발간한 [한국 우수 추리 단편 모음집]의 서문에, 당시 한국 추리작가협회 이가형 회장은 다음과 같이 썼다.
"한국 신문학(新文學)의 역사에 비하면 추리소설의 역사는 너무나 짧다. 김내성(혹은 김래성)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활동한 추리작가의 수는 더구나 적다. 그러나 10년 주기로 나타나 활동한 작가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그 끈질긴 생명력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말 그대로 현대 한국 추리소설의 역사는 영미권이나 일본에 비해 짦으며 작가의 숫자는 외국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지만, 인기와 작품성을 가진 작가, 작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추리소설을 범죄 해결이라는 관점에서 정의한다면 우리나라의 추리소설의 역사는 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데, 고대소설 중에서 '공안소설'(公案小說) 혹은 '송사소설'(訟事小說)로 일컫는 형태를 찾아볼 수 있다. 개인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억울한 일을 관청(혹은 절대자)에 호소해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인 줄거리로, 설화 수준까지 포함한다면 고조선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형태를 갖춘 것은 조선 중기 이후부터인데, 소재는 실화인 경우도 있고 허구인 경우도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암행어사 박문수(朴文秀, 1691-1756)를 주인공으로 한 설화. 그에 대해서는 여러 문헌으로도 전해질 뿐 아니라 구전설화가 전국적으로 넓게 분포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 억울하게 범죄자의 누명을 쓴 사람은 구해 주고 진범을 찾아내는 명탐정과도 같은 활약상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수많은 무용담 전체가 그의 실제 행적으로 보기는 어려운데, 그가 워낙 암행어사로서 잘 알려진 인물이었기 때문에 다른 암행어사의 일화마저 그의 이야기로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개화기에는 [박문수전](작자 미상)이 나왔으며, 비슷한 시기에 나온 [삼쾌정](三快亭)은 박성수라는 암행어사가 세 가지 사건을 해결한 뒤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삼쾌정'이라는 정자를 세운다는 줄거리인데, 박문수 설화에서도 [삼쾌정]의 세 사건과 비슷한 사건을 볼 수 있다.
이외에 살인사건이 나와 관가에서 해결되는 작품으로 조선시대에 [정수경전](鄭壽景傳)(작자, 연대미상)과 [장화홍련전](작자, 연대미상) 등이 있다.
한국 소설은 개화기 이전(1894)의 고대소설, 개화기(1894-1917)의 신소설, 개화기 이후(1918-)의 현대소설로 발전 단계를 거치는데, 개화기에 활동한 이해조(李海朝)는 추리소설의 선구자로 볼 수 있다. 그는 1908년 제국신문에 [쌍옥적](雙玉笛)을 연재했고, 1912년 매일신문의 연재를 통해 [구의산](九疑山)을 발표했다. 줄 베르느(Jule Verne)의 [인도 왕녀의 5억 프랑](Les Cinq Cents Millions de la Begum)가 일본에 [철세계](鐵世界)라는 제목으로 번안되자 다시 우리말로 번안해 발표할 정도로 서구 소설에 관심을 가졌던 이해조는 [쌍옥적]에 '정탐소설'(偵探小說)이라는 명칭을 붙였을 정도로 추리소설임을 표방했는데, 전기적인 면이 있고 구성에도 미흡한 점이 많아서 '송사소설'과 차이가 없다고 여기는 쪽이 있는가 하면, 범죄-사건수사-해결이라는 추리소설적인 구성을 갖추고 있어 한국 최초의 추리소설로 보기도 한다.
이로부터 몇년 후 해외의 추리소설이 우리나라 독자들과 만나기 시작했다. 첫 작품은 1918년 태서문예신보에 아서 코난 도일의 단편 [충복]으로 번역이 아니라 번안이었다(이 무렵 우리나라에 도입된 외국 추리소설은 번안물이 적지 않았는데, 이것은 초기 일본 추리 문학계에서 지대한 활약을 보인 구로이와 루이코의 영향이 크다. 그가 일본어로 번안한 소설은 원작보다 더 재미있다고 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으며, 그의 번안물이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다시 번안될 정도였다.). 당시 한국에 소개된 작가로는 아서 코난 도일을 비롯하여 에드거 앨런 포, 모리스 르블랑, 반 다인 등이 있으며, 번역자로는 방정환, 양주동, 김유정 등 순문학계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 눈에 띈다.
번역, 번안 일색이었던 국내 추리소설계에 창작물이 다시 등장한 것은 이해조의 등장 이후 10여 년이 지난 1920년대 중반부터였다. 1926년 박병호가 [혈가사](血袈裟)를 울산 인쇄소를 통해 출간했는데, 연재가 아닌 단행본으로 발표했다는 것이 특색이었지만 출간 즉시 경찰에 압수당하는 바람에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묻혀지고 말았다. 최독견은 [사형수]를 1931년 <신민>에, 김운정은 1933년 <중앙>에 '대중소설'이라는 명층 아래 [괴인](怪人)을, 채만식은 '서동산'이라는 필명으로 1935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염마](艶魔)를 연재했다. 한편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람은 아동문학가 방정환이다. 그는 비록 아동물이었지만 [동생을 찾으러](1925), [칠칠단의 비밀](1926) 등을 발표했으며, '북극성'이라는 필명으로 외국 작품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