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벅이 평가하는 로저 젤러즈니
Zelazny: This Immortal
글쓴이: Robert Silverberg
옮긴이: 고장원
자료원: Reflections & Refraction by Robert Silverberg, Underwood Books, Grass Valley, California, 1997, pp 294~298
원문이 처음 게재된 곳: [Introduction to the Press Edition]
우리말로 옮긴 날: 99년 4월 24일 ~ 28일
다음 글은 과학소설 작가가 또다른 과학소설 작가에 대한 평가를 한 글이라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젤러즈니가 등단할 무렵 실버벅은 이미 기성 문단에서 확고한 위치를 굳힌 작가였습니다. 실버벅 눈에 비친 젤러즈니의 어제와 오늘에 대한 평가는 직업 평론가들의 글과는 또다른 맥락에서 읽을만한 가치가 있거니와 솔직한 심정의 토로가 눈길을 끕니다. 과연 특정 작가를 두고 누구 누구보다 한 수 위라느니 하는 식의 평가를 지면을 통해서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 쉬운 일일까요? 로벗 실버벅은 위의 책 <Reflections & Refraction>에서 자기와 같은 과학소설 작가들 일부에 대한 평을 해서 모아놓았는데, 언제고 시간이 되는대로 짬짬이 다 번역해볼 참입니다. 아 참, 아래 글 가운데 [ ~ ]표기는 잡지명이고 <~>는 소설 명입니다. 이 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962년 8월 하순경 여러 해 동안 폐간되었다가 다시 기지개를 켠 군소 과학소설 잡지 [Fantastic]은 다음과 같은 놀라운 문단으로 시작되는 미지의 작가의 2쪽짜리 단편을 실었다.
그가 산야의 천둥이었을 때, 마을 사람들은 집 안에서 풍년을 꿈꾸며 잠을 청했다. 그가 무쇠같은 산사태였을 때, 소떼는 구슬피 울부짖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잠결에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발굽소리가 요란한 지진이었고 그의 갑옷은 별들에게서 훔쳐온 은화(銀貨)들의 어두운 면 같았으니, 마을 사람들은 개운치 않은 꿈이 산산조각남과 동시에 잠에서 깨버렸다. 그들은 창가로 달려가 셔터를 활짝 열어 재쳤다.
이제 그는 좁은 거리로 들어섰지만, 아무도 그의 투구 안에 자리잡은 눈길을 보지는 못했다.
When he was thunder in the hills the villagers lay dreaming harvest behind shutters. When he was an avalanche of steel the cattle began to low, mournfully, deeply, and chirldren cried out in their sleep.
He was an earthquake of hooves, his armor a dark tabletop of sliver coins stolen from the stars, when the villagers awakened with fragments of strange dreams in their heads.They rushed to the windows and flung their shutters wide.
And he entered the narrow streets, and no man saw the eyes behind his vizor.
이 얼마나 생생하고 직관적이며 독특한가. "그가 산야의 천둥이었을 때" --- 이같은 현란한 스타일을 찾아보기 어렵던 시절에 과감한 비유를 사용하다니... "마을 사람들은 풍년을 꿈꾸며 잠을 청한다."--- 이 또한 통상적이지 않은 구문론상의 선택 아닌가. 즉 문법상의 작은 연결이 엄청난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별들에게서 훔쳐온 은화들", "개운치 않은 꿈이 산산조각남" --- 이것은 경이와 공포에 관한 직관이 아니고 무엇인가. "아무도 그의 투구 안에 자리잡은 눈길을 보지는 못한다."--- 로맨틱하고 멜로드라마적인 이 부분은 랜슬롯 경 Sir Lancelot이나 혹은 세헤래자데 Scheheraezade의 세계를 마음 속에 떠올리게 한다. 이 작가의 이름은 로저 젤러즈니였고 당시 불과 스물 다섯살이었다. 그가 처음 발표한 단편의 단 몇줄만 갖고 그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자신의 방법을 정의내렸던 것이다.
이번에는 당시의 [Fantastic]과 같은 달 출간된 평범한 자매잡지 [Amazing Stories]에 실린 또다른 신인 작가 패션 플레이 Passion Play의 마찬가지로 짧은 단편 도입부를 살펴보기로 하자.
슬픔의 계절 막바지에는 환희가 찾아온다. 봄은, 기름이 잘 쳐진 시계의 솜씨처럼, 소란을 피우지 않고 슬그머니 시간을 알려준다. 어둠침침하고 축축한 나날은 갈수록 줄어들고 밝고 화창한 나날이 다시금 달력 안으로 끼어든다. 우기(雨期)가 우리 뒤로 지나가버렸으니 좋은 일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의 기계류가 녹슬고 부식되어버렸을 테니까. 기계류에는 아주 강도높은 위생처리법이 필요하다.
At the end of the season of sorrows comes the time of rejoicing. Spring, like the hands of a well-oiled clock, noiselessly indicates the time. The average days of dimness and moisture decrease steadily in number, and those of brilliance and coll begin to enter the calander again. And it is good that the wet times are behind us, for they rust and corrode our machinery: they require the most intense standards of hygiene.
또 다른 스타일로 쓰여진 이 구문은 앞의 것보다 더 차분하고 감정이 절제되어 있으며 화려한 수사학도 별로 많이 쓰이지 않았다. 지나치게 과장된 비유는 없으며, 그저 미소를 짓게 만든다. ("봄은, 기름이 잘 쳐진 시계의 솜씨처럼"이란 표현은 학생이 쓴 작문 같은 성실함이 배어있다.) 첫 문장의 계산된 힘과 미묘한 운율을 눈여겨보라. --- "슬픔의 계절 막바지에는 환희가 찾아온다." 그리고 다음 문장은 중세풍의 무게를 느끼게 해준다.--- "우기가 우리 뒤로 지나가버렸으니 좋은 일이다. 이 문장은 바로 뒤이어 오는 기계류에게는 적절한 '위생처리'가 필요하다는 재미있는 개념과 바로 맞아 떨어진다. 이 두편의 단편에 주목한 사람이라면 스토리텔링 기교의 대가와 산문 테크닉의 거장 두 사람이 나타났구나 하고 짐작했을 테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 작품들을 잡지에 실어줄 정도로 모험심이 왕성한 편집자 씰 골드스미쓰 Cele Goldsmith를 제외하고는 당시에는 이들의 출현에 주목한 사람들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아무도 1962년에는 로저 젤러즈니에게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1963년 내내 그의 작품들이 [Amazing Stories]에 실렸고 점차 주목을 얻게 되자 같은 해 11월 훨씬 더 독자수가 많은 잡지 [Magazine of Fantasy & Science Fiction]으로 옮겨가서 경이롭고 원기가득찬 중편 <솔로몬 서(전도서)에 바치는 장미A Rose for Ecclesiastes>를 발표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 작품의 진가를 알아보는 이가 없었다. 그것이 휴고 상에 후보로 오르자 마자 --- 네뷸러 상 트로피는 이미 받은 상태였다. --- 곧바로 몇몇 과학소설 선집들에 실렸다. 몇년 뒤에 미국 과학소설 작가 협회가 역사상 가장 훌륭한 SF단편들을 명예의 전당에 추천했을 때, <솔로몬 서에 바치는 장미>는 그 때 선정된 스물 여섯 작품 가운데 하나가 되었는데, 이 작품은 그 중에서 현대에 와서 쓰여진 과학소설 가운데 유일한 대표였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훌륭하지만 주목을 받지 못한 그의 가장 초창기 단편들을 둘러보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솔로몬 서에 바치는 장미>야말로 로저 젤러즈니가 과학소설계에서 자신의 초석을 다진 자리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로부터 십년 쯤 후에 젤러즈니가 털어놓은 바에 따르면, 실제로 <솔로몬 서에 바치는 장미>가 씌여진 시기는 그의 최초의 원고를 잡지사에 팔기 약 일년 전 쯤이었다고 한다. 1973년 메릴랜드 대학에서 젤러즈니의 작품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젤러즈니의 친구 토마스 몬텔리온 Thomas Monteleone에 밝혀낸 바에 의하면, 젤러즈니는 막상 원고를 탈고해놓고도 출판사에게 갖다주기까지 꽤 시간이 걸리는 편인데, 이것은 자신의 작품이 과학적으로 부정확하기 때문에 당혹스런 비판을 받을까봐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쨋거나 이로부터 미루어 볼 때, 우리는 젤러즈니의 독창적인 스타일과 내러티브 전개 방식이 이미 그가 이십대 초반일 무렵 완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솔로몬 서에 바치는 장미>를 뒤이은 몇년 간의 그의 비약적인 행보는 놀라울 정도였다. 1964년은 이 작가 개인에게 불행한 일이 많이 일어난 다사다난한 해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단편들과 장편 하나 (<The Graveyard Heart>)를 출간했다. 그러나 1965년에 들어서자 그는 중편치고는 길이가 비교적 길고 복잡한 <He Who Shapes>를 필두로 해서 몇달 후에는 인상적인 중편 <The Doors of His Face, the Lamps of His Mouth>를 내놓았다. 그 해에 미국 과학소설 작가 협회가 네뷸러 상the Nebula award을 처음 제정했는데, 젤러즈니에게는 다섯개의 트로피 중 두개가 돌아갔다. 하나는 <He Who Shapes>에게, 또다른 하나는 <The Doors of His Face>에게 돌아갔다.
<The Doors of His Face>는 휴고 상 후보에도 올랐는데, 아깝게도 수상하지는 못했다. (1965년 출간된 작품들을 대상으로 한 휴고상 시상식은 1966년 9월 클리블랜드Cleveland에서 열린 세계 과학소설 대회에서 치뤄졌다.) 위로 차원에서였을리는 없지만, 젤러즈니는 또 다른 작품으로 그 해 휴고상을 결국 받아내고야 말았는데, 그 작품은 그가 그 해에만 세번째로 상을 받게 해주었다. 그 작품은 그의 최초의 장편으로, [Magazine of Fantasy & Science Fiction] 1965년 10월호와 11월호에 "내 이름은 콘래드 Call me Conrad"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는데, 얼마 뒤에 좀 더 손질이 되어서 <불사신This Immortal>이란 이름으로 에이스 출판사Ace Books에서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이 같은 동시다발적인 수상은 극히 이례적이었다. 젤러즈니는 어디에서 있는 것 같았고 그의 어느 작품도 손색이 없었다. 내 생각에는 당시의 어떤 작가도, 마찬가지로 개인적이고 재능을 갖춘 신인 사무엘 R. 딜레이니 Samuel R. Delany를 제외한다면, 동료 작가들에 의해 이처럼 강도 높게 논의되고 분석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도 그의 작품 스타일을 흉내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이것은 그의 목소리가 워낙 그 자신만의 독특한 것이다보니 그의 방식을 응용해본들 잘해봤자 패스티쉬 pastiche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처럼 흥미롭고 실험적이었던 시대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었던 이라면 누구나 역동적인 그의 스토리텔링 방식과 그의 스타일의 힘과 취향을 조심스럽게 고려해볼만한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불사신>은 휴고상을 받은데서도 알 수 있듯이, 곧바로 세간의 인정을 받았다. (사실 이 작품은 프랭크 허버트 Frank Herbert의 <듄Dune>과 공동 수상했다. 이러한 기준은 이미 유명한 블록버스터였던 허버트의 작품에 버금갈 정도로 젤러즈니가 작가로서의 초기 시절에 벌써 독자 대중의 엄청난 인기를 누렸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 작품에는 결함도 있는데 이것이 그의 첫번째 장편임을 감안하면 그리 놀라운 것도 없다. 그렇지만 이 작품의 미덕(장점)은 정말 특출난 것이다. 그 당시의 과학소설 현실에서 그 것은 사실상 혁명적인 작품이었다.
앨지스 버드리스Algis Budrys는 [은하수Galaxy] 1966년 12월호에서 <불사신>의 결말에 대해 다소 불만을 토로했다. ("이 책에서 서술되고 있는 당면 문제---지구와 베가Vega 성(星)의 관계---는 너무 산뜻하게 해결되어버린다. 삶에 대해서 에게 문명적 관점Aegean view으로 접근한 장편소설이라면 직면한 주요 고민들을 기계에 기원을 둔 신a god from a machine으로 풀었어야 적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잘못된 길로 빠진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버드리스는 이 책을 "아주 재미있고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고 단언하면서 그 매력과 숨가쁘게 전개되는 속도에 대해, 그리고 특히 대부분의 젊은 과학소설 작가들이 힘이 빠져있던 시대에 낙관적인 조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이 불사신은 자신의 지력(知力)으로 철저하게 사물을 꿰뚫어 볼 수 있고 그 임기가 한도 끝도 없다...(콘래드Conrad는) 재앙을 인간의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연인이 지진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하늘에서 불같이 화를 내며 살인충동을 느끼기까지 하지만, 이 사건을 자신의 임무와는 별개 문제로 구분짓는다." 버드리스가 젤러즈니가 고대 신화를 사용한 데 대해 "상당히 퇴행적"이라고 꼬집었지만, 이것은 과학소설 독자들과 작가들 사이에 구시대에 대한 동경을 불러 일으켜 1980년대에 가서 중세풍의 환상소설이 붐을 이루는데 일조했다. 그는 <불사신>을 당시에 격찬을 받은 다른 과학소설과 구분했는데, 이는 문제 해결에 대한 젤러즈니의 근본적으로 긍정적인 접근방식 때문이었다.
그 무렵의 또다른 중요한 비평가로, 과학소설에 대한 접근방식이 상당히 정치적이었던 쥬디쓰 메릴 Judith Merril이 있는데, 그녀는 <불사신>이 퇴행적인 정도가 아니라 아예 반동적이라고 보았다. 그녀는 [Magazine of Fantasy & Science Fiction] 1966년 12월호에 다음과 같이 썼다. "(현대에 들어서 우리세대가) 신화를 상실했다는 공감대에 대한 젤러즈니의 반응은 반동적인 과정의 옛 형식에 광을 내려는 시도나 다름없다. 그러한 과정에서 고대 그리스 신화의 등장인물들이 자연스레 재등장 한다. 통상적인 옛 신화의 정당화나 검과 마법 이야기를 위해 낡은 그릇에 새로운 와인을 붓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그릇에 낡은 것을 부으려는 시도인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 작품의 시적인 측면, 뛰어난 기교 그리고 간혹 느껴지는 철학적인 통찰과 캐릭터의 묘사는 인상적이지만, 장편소설로서는 기본 개념과 구조면에서 실망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같은 호된 질책에도 불구하고 메릴은 스타일과 기교의 혁명적 성격에 대해서만은 좋은 점수를 주었다. "열렬하고 친근한 감성과 펄펄 끓는 분위기의 교차, 본질적으로 외향적이기 보다는 자아성찰적인 톤, 그리고 집단의 관심사나 행동보다는 개인적인 도덕과 윤리에 더 집착하는 경향은 해밋 챈들러 학파 Hammett-Chandler school에 가까운데, 이러한 방식은 흔치 않으며 어떤 과학소설에서도 찾아보기 쉽지 않다. 해밋이 가끔 입증해보였고 챈들러가 거의 늘 그랬듯이, 글쓰기 자체가 재잘거림에서 유려함에 이르기까지 온갖 다양한 우수성을 보여준다."
이 두 비평가의 현대적인 비평은 내가 보기에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고 있다. 버드리스는 어떤 장애에도 굴하지 않고 좌절을 모르는 불사신 콘래드 노미코스Conrad Nomikos의 굳건한 의지를 지적한다. 그의 지적처럼 단순히 그렇게만 묘사된 세계관이라면 통상적인 펄프 잡지의 주인공들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젤러즈니의 작품은 서정적인데다 여기서 콘래드의 심성은 우리와 1인칭 시점으로 의사소통을 나눈다. 우리는 콘래드를 단순히 베가 성인들에 맞서 지구를 위해 전투를 벌이는 캡틴 퓨쳐 Captain Future같은 용맹스런 초인이 아니라 복잡한 심리에다 실용주의 사고방식을 지닌, 실제로 현실성이 있어 보이는 인간으로 바라본다. 초인이긴 하지만 있을 법한 인물형인 것이다. 초인의 이야기를 1인칭으로 풀어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더구나 현실감까지 가미하려면 더욱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나로서는 젤러즈니의 경우 오히려 그보다 한 발 더 앞서 나가 있다고 감히 주장하고 싶다. <불사신>은 이 작품이 출간된 무렵 앨지스 버드리스와 쥬디쓰 메릴이 지적했듯이, 장편소설치고는 완벽성이 다소 떨어지는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완벽성이 작품을 즐기는데 반드시 앞서야 하는 전제조건은 아니며 사실 어떤 종류의 완벽성--- 융통성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완벽성---은 종종 즐거움을 방해하기도 한다. 즐거움이야말로 <불사신>이 지닌 최고의 미덕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즉흥적인 톤과 무의식적으로 흥겹게 쏟아내는 박학다식함 (동시에 조셉 콘래드Joseph Conrad{주7}와 프레이저J. G. Frazer{주8}를 인용하는 식인종 추장을 머리 속에 떠올려보라.), 그리고 펄프 대중 모험소설의 진부한 문구들을 교묘하게 끌어들여서 재배치하는 방식은 과학소설의 기존 틀conventions에서 경악할 정도로 이탈해 있는데, 이러한 이탈이 신선하게 느껴진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심지어는 가장 뛰어난 과학소설들조차, 다시 말해서 이 분야에서 아주 견실하고 사색적이며 고전이 된 작품들마저 젤러즈니의 자유분방한 활기와는 대조를 이루지 않는가! 단지 알프레드 베스터Alfred Bester의 두 작품 <파괴된 사나이The Demolished Man>와 <나의 목적지는 별들 The Stars My Destination>, 그리고 하인라인의 작품들 가운데 좀 더 내면적인 1인칭 소설들 일부만이 젤러즈니 스타일의 품격에 다가설 뿐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그나마 다가서는 것일 뿐 똑같은 수준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당신은 칼리칸자로스 Kallikanzaros예요." 그녀가 불현듯 말했다.
나는 왼쪽으로 돌아 누워서 어둠 속에서 미소지었다.
"내 발굽과 뿔은 사무실에 두고 왔는데."
"당신도 그 얘길 아는군요!"
"그 이름은 노미코스 Nomikos지"
나는 그녀에게로 다가가 그녀를 보았다.
"이번엔 이 세계를 파괴할 작정인가요?"
나는 껄껄 웃으면서 그녀를 끌어 안았다.
"생각 중이야. 그게 지구가 멸망하는 길이라면..."
부침이 있긴 하지만 젤러즈니는 결코 멈출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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