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힘 기관지 '세상야사' 코너에 연재되는 글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로봇을 처음 봤었는지 혹시 기억나세요? 아마도 그 로봇의 이름에 따라 세대가 바뀔 것 같은데, '짜짜짜짜 짜~앙가!' 세대인가요? 아니면 '랄라랄라 공격개시! 메칸더 V'인가요? 저는 국민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친구들과 극장에 쪼르르 몰려가 봤던 '용감하고 씩씩한 우리의 친구, <로보트 태권 V>'가 처음이었습니다. 그 태권V를 얼마나 좋아했던지 국민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개봉한 2탄을 보기 위해 극장에 달려가서는 주제가가 시작될 때 혼자 반가움에 젖어 눈물을 주르륵 흘리던 남사스러운 기억이 있습니다. 아마도 감성 풍부한 꼬맹이었던 모양입니다. 지금도 길을 걷다가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 V' 음악이 어디선가 들려오면 베시시 반가운 웃음부터 나옵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오랜만에 SF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합니다. 얼마전 '아이작 아시모프' 원작의 <아이 로봇(I, Robot)>이라는 영화가 개봉해서 로봇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 풍성합니다. 이번에는 이 로봇을 계급적인 관점에서 관찰해보려고 합니다. 아니, 로봇 이야기 속에 숨겨진 이데올로기를 찾아내려 한다는 것이 정확한 이야기인 것 같네요.
많이 알려진 바대로 '로봇'은 체코의 문학가인 까렐 차뻭(Karel Capek 1890~1938)이 1920년 <로숨의 만능 로봇>(RUR, Rossum's Universal Robot)이라는 희곡을 쓰면서 처음 만든 단어입니다. 체코어로 노동을 뜻하는 '로보따(Robota)'의 마지막 a를 빼서 '로보뜨(Robot)'이라는 단어를 만든 것입니다. 로봇이라는 단어는 본래 노동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던 거지요. 참고로 희곡에 등장하는 로봇은 지금 생각처럼 기계로 만들어진 로봇이 아니고, 인간과 같이 살덩이와 피가 흐르는 인간형 생체 로봇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희곡으로 만들어진 연극이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하면서 이제는 우리에게 더 이상 낮설지 않은 '로봇'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 희곡의 로봇이 당시 세계에 선사한 충격은 다름아니라 바로 '로봇의 반란'이었습니다.
까렐 차뻭과 <로숨의 만능로봇> 첫판 표지
<로숨의 만능로봇>의 내용을 살펴보면, 인간들은 '두뇌의 정밀도가 높은 노동 기계'로 로봇을 만들어내고, 이 로봇을 노동현장의 노동자, 전쟁지역의 용병으로 투입합니다. 그런데, 오로지 인간의 지시에 의해서만 움직일 것이라고 예상했던 로봇들이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자 '로봇의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인간에 맞서는 전세계적인 무력 투쟁을 전개합니다. 희곡에 나오는 로봇이 배포하는 유인물 한 조각을 읽어보면, "만국의 로봇들이여, 여러분은 인류를 몰살시키도록 부름 받았다. 남성들을 남겨두지 말라. 여성들을 남겨두지 말라. 오직, 공장과 철도, 기계와 광산, 천연자원들만을 남겨두라. 그 밖의 다른 것들은 전부 다 파괴하라. 그런 후 다시 노동으로 복귀하라. 노동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전세계 동시 무장 혁명에 성공한 로봇들은 모든 인간을 몰살하고 딱 한 명의 인간만을 살려둡니다. 그 이유는 단지 그 사람만이 '로봇처럼 자신의 손으로 노동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즉, 로봇에게 적과 아를 판단하는 기준은 '노동'에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뉴욕 공연, 홀로 살아남은 알뀌나스와 로봇
희곡이 쓰여진 1920년은 잘 알다시피 러시아 혁명 직후로 레닌이 아직 생존해 있던 때입니다. 그리고 전세계의 노동자들이 러시아 혁명에 고무되어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희곡 속의 로봇은 바로 노동자들을 의미했고, 노동자들의 투쟁을 노래한 것이 바로 그 희곡이었던 것입니다. 부르주아들을 노동자의 혁명 앞에 떨게 하라!
로봇, 노동 하는 자. 인간이 로봇에게 노동을 시키려면 그에 걸맞는 노동력, 즉 지능과 힘을 부여해 줘야 하는데, 거기서부터 모순이 발생하게 됩니다. 노동력을 부여하지 않으면, 노동할 수 없고, 노동력을 부여하면 로봇이 자각에 이르게 됩니다. 로봇이 노동 능력을 통해 '의식'을 형성하고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게 될 때 반란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로봇의 반란을 다루는 영화나 소설 속의 모든 인간들이 두려워하는 부분입니다. 인간이 로봇들을 더 많은 착취할수록, 더 많은 노동을 부여할수록, 더 많은 로봇을 생산해 낼수록 인간의 종말은 한층 더 가까이 다가오게 됩니다. 이미 로봇에게 모든 노동을 넘겨준 인간은 스스로 그 모순을 결코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러한 로봇의 반란 과정은 그 뒤 만들어진 대부분의 영화나 소설에서 비슷하게 전개됩니다. 영화 <매트릭스>(매트릭스의 전편인 <애니 매트릭스>에 이 과정이 나옵니다)의 로봇이 그러했고, <터미네이터>가 그렇고, <블레이드 런너>가 그렇습니다. <로숨의 만능로봇> 이후에 나온 영화나 소설들은 계급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기계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과 인간처럼 생각하는 기계에 대한 연민을 다루고자 했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노동하는 자들의 노동력과 자각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본질은 감출 수 없을 것입니다.
개벽 (1920.6~1923.8)
로봇의 반란을 계급적으로 해석한 것은 결코 새로운 생각이 아닙니다. <로숨의 만능로봇>은 일제시대인 1925년 2월 <개벽>이라는 잡지를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습니다. 당시 대표적인 좌파 문학인이었던 박영희는 로봇의 반란이 노동계급의 투쟁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이 희곡이 일제의 검열을 피해 사회주의 사상을 전파할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인조 노동자>로 변경한 후 그 안에 사회주의와 노동자 투쟁에 대한 찬양을 마음껏 불어넣습니다. 나중에 박영희는 일제의 탄압과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에 지쳐 전향을 선언하면서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잃은 것은 예술 자신이다.'라는 유명한, 그리고 씁쓸한 전향의 변을 남긴 인물이기도 합니다.
<로숨의 만능로봇>에서 로봇들이 혁명에 성공한 이후 바리케이트에 올라 전하는 연설을 끝으로 마치고자 합니다.
"만국의 로봇이여! 많은 사람들이 쓰러졌다. 공장을 접수한 우리는 만물의 지배자가 되었다. 인류의 시대는 종언을 고한다.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다! 로봇들이 지배하는!"
당시 뉴욕 공연, 로봇의 혁명
* 참고 자료
<로봇 Rosum's Universal Robots> 까렐 차뻭, 김희숙 옮김, 길
* 다음 글에서는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과 아톰, 마징가 등등을 살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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