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글자 쓰고 나간다.

그동안 여러가지로 바빴고... 심란했고... 지금도 바쁘고... 심란하다.
덕분에 알라딘에 눈팅도 제대로 못하는 3주가 훌쩍 지나버리고 이제 봄기운이 만연한 3월의 마지막주다. 방금 밥먹으러 다녀오는데, 아... 봄이구나. 춥다춥다 해도 봄이구나... 라는 생각에 괜스레 스산한 마음이 들어 알라딘에 오랜만에 들어와보았다.

다들 바쁘신지.. 조금은 썰렁한 서재들. 사람 사는 게 왜 이리 늘 바쁘고 늘 죽겠고 늘 지치는 건지. 우리가 살고자 하는 인생이 원래 그러했던 건지. 그런 건 생각해보지도 못한 채 그저 내몰리고만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하는 중이다. 맨날 생각해봐야 해답은 없지만, 그냥 마음이라도 청명하게 유지해보고자... 이것저것 다 끊고 혼자 조용히 '잘' 지내고 있다.



그 와중에도 책은 읽고 있다. 어제부터는 김훈의 '흑산'을 읽고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잘 쓰긴 잘 쓰는구나. 그리고 이 사람, 나이들어 삶의 덧없음을 느끼고 있구나... 라는 걸 전해받고 있다.

 

사람의 신념이 무엇이건데 종교의 이름으로 목숨을 던지고 가족과 생이별하고... 그리고 종교 때문에 탄압하고 분노하고 다른 사람을 죽이고... 다 부질없는 짓이었던 게 아닐까. 흑산도에 유배갔던 정약전은 그런 것들을 느끼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

 

 

 

 

여기까지. 다음에 좀더 마음결이 정돈되면 다시 들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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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3-26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심란하셨군요... ㅠㅠ.
겨울이 늦게 지나가니, 저는 더욱 심란하고 여유가 없는거 같아요.
뭐랄까, 봄만 오면 다 해결될거 같은 느낌이랄까요... 아무 근거 없이.

빨리 마음결이 정돈되시기를. 마음결이란 단어가 참 예쁘네요... 고와요.

비연 2012-03-27 09:30   좋아요 0 | URL
마고님도 심란하시군요...웅...우리 어떻게 하면 이 심란함을 떨칠 수 있을까요? 환한 봄날의 빛을 받으면 정말 나아질거야..라고 저도 위안하고 있답니다.
 

 

그러니까... 후배가 선배 위의 직책으로 올라가면 안된다는 거. 정말 안된다는 거 절감하고 있다. 자세히 말하자면 길고 긴 얘기고. 암튼 나의 직속 상사(A상사 라고 하자)와 같은 직급의 분(B팀장이라고 하자)이, 작년 말에 前팀장이 보직해제라는 걸 당하게 되면서 그 자리를 꿰차게 되었는데. 그게 나의 직속 상사 A님보다 나이도 한참 아래고 경력도 좀 아래인 사람이었다 이거다. 그 인사가 난 날, 싸아~ 했던 분위기. 워낙 A상사가 표를 안 내는 분이기도 하고, 예전 팀장에게 엄청난 구박을 당하면서도 반항 한번 안 하고 꿋꿋이 버티기까지 했던 분인지라 그렇게 지내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거지..ㅜㅜ

 

A상사와 B팀장이 서로 맞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같은 직급일 때는 공통의 대응해야 할 상대(前팀장!)가 있었기에 서로 그럭저럭 지내는 것처럼 보였었다. 그런데 이게 상하의 구별이 생기자, B팀장의 말에 A상사는 껀껀이 맘에 안 드는 기색을 보이고 급기야는 언성을 높이고 급기야는 못하겠다고 화를 내는 판국에까지 접어들었다. 자기네들끼리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지만, 그게 내가 우연챦게 맡게 된 과제 때문이라니 할 말 다 했지 뭔가.

 

물론 그 과제로만 부딪히는 건 아니지만, 이게 아주 좋은 빌미인 것이 B팀장은 이걸 굳이 하고 싶어하고 A상사는 이게 절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데에 있다. 따라서 둘이 긴장국면을 조성하니까 나는 중간에서 어떤 의견도 피력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어서 회의때마다 아주 미칠 노릇이다. 게다가 A상사는 하극상, 이런 거 절대 용납 못하는 분이라서 내가 B팀장의 이야기에 동조하는 기색이라도 내비치면 "맘대로 하세요"라든가 "그러던가 말던가" 이런 식으로 나오기 일쑤고. 그럼 나는 허걱. 해서 가만히 있게 되고. B팀장은 자꾸 의견 말하라고 나를 다그치고.

 

며칠 전, 결국 그런 분위기 조성되다가 불꽃이 튀기는 일이 벌어지고 나서는...소화도 안되고 밥맛도 없고. 오늘 B팀장은 날 불러서 애로사항 없냐 이러고... 내가 이번에 맡게 된 다른 과제에 대해서 은근히 불만을 표출하면서 그거 좋으냐? 하고 싶냐? 뭐 이런 걸 물어보시고. 나는 성격에 안 맞게, 조용한 목소리로 "A상사님이 시키시는데 해야죠. 괜챦습니다" 이딴 소리나 해야 하고.

 

일로 스트레스 쌓이면 아주 편한 거로구나. 이런 걸 느끼고 있다. 사람 사이에 끼여서 '찌부' 상태가 되어버리니 아주 못할 노릇이다 싶고. 앞으로 태도를 분명히 해야하겠구나 싶고. 어쨌거나 스트레스는 많이 쌓이고 있고. 얼굴빛이 노랗게 변하고 있다니까 정말..=.=;;;

 

회사에서는 정말이지 제대로 승진하고 제대로 그 나이에 맞는 자리에 가 있어야 마음 좋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

 

그래서 심란도 하고 해서 오늘은 점심시간에 점심을 포기하고(심지어 내가!) 강남 교보문고로 향했다. 한시간 남짓 돌아보고 부랴부랴 빵 한 쪽 사다들고 돌아왔지만 기분은 좋더군. 그래. 이렇게라도 위안을 삼아야지 어쩌겠는가. 스트레스 받지 말자.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그러면서 사고 싶은 책들을 아이폰으로 찰칵찰칵 찍어왔다. ㅎㅎㅎ

 

 

 

 

 

 

 

 

 

 

 

 

 

 

 

 

 

헤닝 만켈과 스티그 라르손의 뒤를 잇는 스웨덴 스타작가라니. 스티그 라르손의 뒤를 이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말인가. 믿을 수 없다는 심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번 보긴 봐야겠다. 요즘 북유럽이나 아이슬란드 작가들의 맹활약이 아주 신나게 느껴지기도 하고.

 

 

마츠모토 세이초의 이 책들은 이전부터 탐을 내고 있었지만, 실물로 off-line에서 맞닥뜨리니 으으으. 이 하얀 표지에 흑백 그림과 한자, 일본어, 한글이 적절이 조화된 이 책들을 확 사고 시포라~ 라는 마음이 불끈불끈. 요 책들은 게다가 보지도 않은 책들이기에 더더욱 마음이 간다. 곧 사게 되겠지...ㅜㅜ

 

 

디자인과 사진책이라. 잘 어울리지 않는가. 슬쩍 뒤적거려보니, 요것들은 나의 취향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느낌이 드는 책들은 사서 장서용으로라도 꽂아둬야 한다..큭큭. <그날들>의 사진작가는 꽤 유명한 사람인데, 에세이와 사진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런던디자인산책>은 현재 국립박물관문화재단 문화상품개발팀장으로 일하는 필자가 런던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경험한 것들을 생생하게 쓴 책이라고.

 

 

 

아무래도 회사라는 곳을 다니다 보면 이런 책들을 끊임없이 읽어주게 된다. 다 아는 내용일 수도 있고 모르는 내용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나의 현재를 '유지'라도 시켜주는 '리마인드' 내지는 '강화' 역할은 해주는 것 같으니까. <글로벌 노마드>는 사실, 제목이 맘에 들었다. 내용까지 봐야 할 지는 아직 미지수다. 앞으로는 노마드형 인간이 대세를 이룰 것이고 우리가 시야를 좀 넓게 가지고 세계를 상대로 일을 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더 큰 세상이 펼쳐질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언리더십>은 펼쳐보니, 팀도 필요없고 신분도 필요없고 경영자도 필요없고...그를 대체할 다른 것들을 12가지 분야에 걸쳐서 제시하고 있다. 좀 다른 시각으로 조직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길 지도 모르겠다.

 

................................................

 

잠깐의 점심시간이라 부랴부랴 보고 와서 몇 권 못 찍어왔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게다가 더욱 찝찝한 건, 내가 오늘 아침에 무려 10권의 책을 주문해버렸다는 거지..ㅜㅜ 따라서 조금 있다가 다시 책쇼핑을. 이거 읽지는 못하고 계속 쌓이기만 하는데도 끊임없이 책을 사대는 건, 책읽기 중독이라기 보다는 "책쇼핑 중독" 이 아닌가 한다. 엄마의 째림을 각오해야 할 것 같다...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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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2-02-29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휴 10권이요. 예전에 저도 그렇게 주문했는제 지금은 많아야 3권인 것 같아요. 그래도 불안한 것이 작년에 일반회원이고 올해들어와서 1월엔 실버더니 요 며칠전에 골드회원 되었다는 이멜 와 있더라구요. ^^

b란 분이 a보다 나이가 많이 적나요? 울 나란 나이가 몇 살이라도 어리면 이상하게 생각도 짧고 일도 복종해야한다는 불문율같은 게 있어서.. 비연님만 힘드시겠어요. 아, 저는 직장생활 하라고 하면 다시는 못 할 것 같아요.

비연 2012-02-29 11:01   좋아요 0 | URL
저도 주문 권수를 줄이고 싶은데...매번 잘 안 되요..ㅜㅜ
B팀장님이 A상사님보다 나이가 다섯살 정도 어리세요. 좀 극복하기 힘든 나이 차이 같기도 하구요...직장생활 정말 어려워요, 하면 할수록.

카스피 2012-02-29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회사에서 그런 인사를 단행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나가란 이야기인데 요즘 경제 사정이 어렵다보니 그냥 주저 않은것 같군요.A상사님도 버틸려면 얼굴에 철판깔고 죽어있어야 하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질 않나 보네요.아무래도 화가 치밀어 오르니 괜히 비연님만 갈구는 것 같군요.
참 비연님만 힘드시겠네요.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물흐르듯이 유연하게 헤쳐나오세요^^

비연 2012-02-29 11:02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힘내서 잘 헤쳐나가야겠죠?^^;;;; 힘내보렵니다!
 
옷차림새

 

마태우스님 글을 보니 문득 나의 옷차림새에 대한 평 아닌 평들이 떠올랐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테헤란로. 아마도 정장 잘 빼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곳 아닐까 싶다. 여자들의 옷차림새는 가끔 부러울 지경이다. 호오. 어떻게 저렇게 말쑥하게 하고 다니는 걸까.

 

그에 비해 나의 옷차림. 흠. 원래 캐주얼한 걸 선호하는 나라고 박박 우겨대지만 사실은 살이 너무 쪄서 정장이 잘 안 맞는다는 게 비극의 시작이다. 정장 옷을 입으면 바지가 넘 배기고, 마이는 안 잠겨서 뱃살이 고스란히 다 드러나니 이거 입을 수가 있는가 말이다..(말하면서도 느무나 슬퍼진다. 언제 내가 이리 살이 찐 거지? ㅠㅠ) 예전에 사두었던 옷들은 입을 때마다 화가 나서 내팽개쳐둔 지 오래이고, 최근에 산 옷들은 어쩔 수 없이 펑퍼짐한 것일 수 밖에 없다.

 

어느날, 집에서 나오는데 엄마가 나를 위아래로 쳐다보더니 한 말씀.

"넌 어떻게 된 게 푸대자루 같은 옷만 좋아하냐?"

 

푸대자루..ㅜ 네모로 자른 천 두 장을 맞닿아 바느질을 하고 목 뺄 자리와 팔 뺄 자리만 둥그렇게 잘라내면 그게 내 옷이란다. 그러고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어느날, 내 후배와 함께 백화점을 함께 걷는데 내가 좋아라 하는 옷들을 잘도 집어내길래 내가 어떻게 나의 취향을 그렇게 잘 아느냐고 물었더니 후배 왈.

"언니는 간단해요. 그냥 푸대같은 거 고르면 되거든요."

 

여기서도 푸대. 그래서 그날 집에 와서 겨울 옷 가지고 있는 걸 다 펼쳐보니..할 말이 없었다. 거의가 다 그런 스타일임을 인정. 그런데 다른 옷은 안 맞는 걸 어쩌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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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날 2012-02-28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똑같은 제목으로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는 것 같아요.
재미있어요. 저는 청바지좀 그만 입으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요.

비연 2012-02-28 11:35   좋아요 0 | URL
좋은날님, 반가와요^^
전 청바지마저 안 맞는 지경에 이르고 있답니다..ㅜㅜ

마태우스 2012-02-28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랙백 타고 왔어요
살빼는 데 성공한 사람으로서 배살에 대한 님의 고민이 더 절절하게 느껴지네요.
푸대자루라니, 너무 슬퍼요. 흑흑.

비연 2012-02-28 11:36   좋아요 0 | URL
살 빼는 데 성공한 마태님의 글을 보면서...느무느무 부러웠다눙.
저도 요즘 다이어트 좀 하려고 하는데..으으. 왜 이렇게 맛난 게 많은 거죠? 크..

2012-02-28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28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월 5일 이후로 여기에 글을 한 자도 못 올렸음을...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물론 들어와서 책구경도 하고 다른 분들 서재도 보고 했었는데..내가 내 얘기를 올릴 여유는 없었나 보다...보다?

 

그동안 뭐 했지? 되짚어보니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 일도 없는데 그저 바빴다. 회사일이 좀 바빴고 저녁마다 오지랖넓은 인생 뒤처리 하느라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대느라 바빴다. 그런데 딱히 뭘 했다 라고 말하기는 뭣한 세월이었나보다. 머릿 속이 텅텅 빈 느낌? 에궁.

 

책도 많이 못 읽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밖에 있다가 밤에 들어와 책 펴놓고 그대로 잠든 게 여러 날이었던 것 같다. 일어나보니 새벽이고 전깃불도 켜진 채고 나의 책은 구겨져서 내 팔 밑에 놓여 있다거나 뭐 그런 거였지.

 

 

.........................................................


 

요즘 읽고 있는 책 중의 압권은 이거다. 제목도 재미나다. <먹고, 쏘고, 튄다>. 린 트러스의 말하자면, 문장부호에 대한 책이다. 문장부호? 그러니까 우리가 영어에서 흔히 쓰는 쉼표(comma), 어포스트라피, 마침표(period), 세미콜론(semicolon), 콜론(colon) 등에 대한 책이다. 이런 책도 있었어? 라고 말하면 무지하게 섭섭하다. 이 책은 영국에서 완전 베스트셀러였으니까. 도대체가 문장부호에 대한 책이, 그러니까 굳이 분류하자면 문법 관련 책이 베스트셀러라니. 이해불가이겠지만, 일단 읽어보면 아하! 라고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우선 번역, 훌륭하다. 서울대 영문학과 장경렬교수의 번역과 주석은 압권이다. 그리고 내용도 영국 사람 특유의 위트와 유머가 번뜩인다. 문장부호계의 닉혼비를 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제목에 대한 우화도 훌륭하다. 팬더 한 마리가 카페에 들어와, 샌드위치를 시켜 먹고 나서는 총을 꺼내 허공에다 대고 두 방을 쏘고 나가려고 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웨이터가 말했다. 왜 그러냐고. 그랬더니 팬더가 야생동물 안내책자를 품에서 짠~ 꺼내어 던지면서 말했다. 나는 팬더인데, 책자에 뭐라고 설명되어 있는 지 보시오.

 

"팬더, 검은색과 흰색의 털로 덮인 곰같이 생긴 거대한 몸집의 포유동물. 중국이 원산지. 먹고, 쏘고, 튄다 (Eats, shoots and leaves)"

 

웨이터는 금새 이유를 알게 되었다. 쉼표가 잘못 들어간 거다. Eats shoots and leaves (죽순과 잎을 먹는다)에서 쉼표를 넣는 바람에 팬더가 그런 생쑈를 하게 되었더라는 거지.

 

이 얘기가 어찌나 웃기던지. 이런 류의 내용이 책 전반적으로 펼쳐져 있다. 반 정도 읽었는데 추천이다. 문장부호에 대한 내용을 이렇게 재미있게 그러나 담을 내용 다 담아서 펴낸 책이 몇 권이나 될라나 싶다. 아니 이거 하나 유일무이하다고 본다. 우리가,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이, 문장부호를 아무데나 찍거나 아무렇게나 생략하는 건 영어권이든 한국어권이든 비슷한 모양이다. 글을 이해하기 쉬우라고 찍는 문장부호로 인해 오히려 오독을 유도하는 이 다양한 사례라니. 작가의 글솜씨 덕분에 더더욱 감칠맛을 느끼며 보고 있다.

함께 보고 있는 책은 이희수 교수의 <이슬람>이다. 이희수 교수의 이름을 굳이 넣은 이유는, 이 책이 다른 사람이 아닌 전문가 이희수 교수의 책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겠지. 어쨌거나 술술 잘 넘어가는 책이다. 우리가 이슬람 문화권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과 편견을, 그리고 그들에 대한 무례한 과소평가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인류 문명의 대부분에서 번성했으며 지금도 그 영향력이 확고한 이슬람권의 문화를, 우리는 듣는 순간 9.11 테러부터 떠올리도록 세뇌당해있으니까. 이슬람 문화를 연구한 저자로서는 애석한 일임에 틀림없을 것이고 그래서인지 어떻게든 'fact'를 전달하고 싶다는 사명감이 글 곳곳에서 절렬하게 배여나고 있다. 그래도 지루하다거나 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 책이다. 세상을 보는 관점을 달리 하기 위해서 고른 책이고 특히나 미국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적대감을 가지게 되는 나라들, 혹은 문화에 대해 생각을 고쳐먹게 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지난 주말이던가. 너무 지쳐서 드러누워 보겠다고 고른 책이었던 것 같다. 물론, 마이클 코넬리의 책은 하루 정도면 다 본다. 그것은 나의 독서력이 왕성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해리 보슈와 테리 메개일랩이 동시에 등장하는 맛이 있다. 그러니까 마이클 코넬리가 만들어낸 두 인물이 같이 나와서 이야기를 꾸려간다는 것이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었다.

 

특히나, 마지막 몇 장은 아찔할 정도로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다. 더이상 얘기하면 스포일러가 될 테니까 이 쯤에서 스톱. 살인사건은 한번만 일어나고 대부분이 법정 장면이라는 것도 다른 해리 보슈 시리즈와는 다른 류의 느낌이다.

 

마이클 코넬리는, 그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은 작가 중의 하나이다. 도대체가 어떤 뇌구조를 가졌기에 이런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하게 튀어나올 수 있는 것인지. 작품 하나하나가 실망감을 주는 적이 없음에 심히 놀라와하고 있는 중이다. 대부분의 시리즈물들은 뒤로 갈수록 그 힘이 빠지기 일쑤고 중간 정도에서는 권태기도 보이게 마련인데. 현재까지는 대부분이 좋은 감정으로 마지막장을 덮게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그저 자꾸자꾸 번역되어 나오세요..라는 생각만을 가지게 한다. 이 시리즈는 그래도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중간에 그만두겠다는 이야기가 안 나오는 걸 보면.

 

그에 반해 우리의 메그레 시리즈.

 

여기까지 나오시고 그 이후 작품들은 선별해서 내겠다고 출판사 홈페이지에 올라있다니. 급좌절 모드다. 아껴서 조금씩 읽겠다고 했으나 이제 3권 정도 만 더 읽으면 다 읽게 되니 말이다. 역시나 시리즈로 승부를 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메그레 시리즈처럼 약간은 일상적이고 약간은 담담한 소설 시리즈라면 더더욱.

 

그러나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메그레 시리즈의 책들을 잡고 커피 한잔 혹은 맥주 한캔 들이키는 (와인은 그러고보니 한번도 먹은 적이 없구나. 곧 시도해봐야겠다) 그 평온하면서도 즐거우면서도 여유로운 느낌을. 그런 것은 아무 책이나 붙잡고 앉아서 뭘 먹어댄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은 거다. 제발, 출판사에서 가급적 많은 책들을 선별해서 연도순으로 내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 있다. 아멘.

 

 

 

.........................................................

 

 

할 얘기는 많지만 여기까지. 주말 내내 쏘다니느라 쉬지를 못했더니 내일 회사로 나가는 길이 지옥행처럼 끔찍하게 여겨지는 일요일 밤이니 말이다. 좀 드러누워 쉬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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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2-02-27 0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고 쏘고 튄다, 저도 재밌게 읽었는데, 저 책은 가질고 있을만 해도 가지고 있긴 한데,,참 사람이 한번 읽은 책은 왜 이리 다시 안 보게 되는지 말입니다.

메그레 시리즈,두 권 전자책으로 다운 받아 읽고 그 다음부터는 이제 되었다, 라고 마침표 찍었는데,,저는 매그레란 인물에게 매력을 못 느끼겠더라구요.

비연 2012-02-27 09:4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책을 두 번 읽는다는 건 굉장한(?) 일이라는 생각이..
메그레 시리즈. 별로셨나봐요. 저는 꽤 좋아하는데..ㅎㅎㅎㅎ
어쨌든 시리즈물을 처음 기획할 때는 대부분 야심찬데, 중간에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아서 참 안타까와요..

마녀고양이 2012-02-27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어쩌지...
첫줄의 책부터 딱 걸려서, 그냥 넘어가질 못 하잖아요, 버럭! ^^
먹고 쏘고 튄다, 튄다라는 제목에서 픽 웃어버렸어요... 맘에 들어요.
그리고 이슬람 관련 책도 계속 필요성을 느끼는 중이구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코넬리나 할런 코벤 등의 영미권 작가에게 질렸다는 거 또는
매력을 그다지 못 느끼겠다는거..... 아니면 네권 몽땅 장바구니에 들어갈뻔한거잖아요.

비연 2012-02-27 15:51   좋아요 0 | URL
ㅋㅋ 제목 귀엽죠?^^
저는 할런 코벤은 첨부터 별로였는데 코넬리는 잘 안 질려요..ㅎ
네 권 모두...장바구니..으으. 알라딘서재에 들어오면 저도 늘 장바구니나 보관함만 빵빵해진다니까요..ㅜㅜ

꼬마요정 2012-02-27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희수 교수님의 명성에 이끌려 이슬람을 샀더랬죠... 조만간 읽어 줄 예정이구요~~^^
먹고,쏘고,튄다... 너무 귀엽고 재밌는 표현이에요~~ㅋㅋㅋㅋ
그 팬더 너무 귀여워요~~~~!!!^^
으으.. 일단 보관함에 넣었어요.. 아... 사고 싶은 책들이 자꾸 쌓여요..ㅠㅠㅠㅠ

비연 2012-02-27 15:52   좋아요 0 | URL
이슬람..읽고 있는데 재밌어요. 강의도 들어볼 생각이구요. ㅎㅎ
먹고, 쏘고, 튄다..제목만큼이나 유쾌한 책이에요. 추천!!!!!

종이달 2021-08-25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오늘 온종일 다시한번 일요일의 휴식을 맘껏 누리며 지냈다. 아 벌써 9시가 넘었는가. 일요일의 시계는 왜 이리 빨리 도는가. 요즘은 주말에도 책 진도가 슥슥 나가주질 않는다. 느즈막히 일어나 아점 먹고 엄마랑 수다떨다가 보면 11시쯤. 방에 들어와 커피 한잔에 책 펼쳐들고 조네마네 하다 보면 점심. 점심 먹고 다시 커피 한잔에 책 펼쳐들고 자네마네 하다 보면 저녁...흠.

 

사실 조는 시간 자는 시간이 길어져서 책을 어떻게 읽는 지도 모르게 일요일이 지나가고 있다. 금요일 저녁에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토요일엔 뭐를 하고 뭐를 하고 일요일엔 뭐를 하고 뭐를 하고 그래 보지만, 일요일 저녁에 돌이켜보면 그저 잔 기억 밖엔 없는 걸 보면..내가 너무 피곤하게 사는 걸까 너무 느슨하게 사는 걸까.

 

오늘 다 읽어낸 책은 <Born to run> 이다.

 

 

 

 

 

 

 

 

 

 

 

 

 

처음에 읽을 때는 달리기의 즐거움에 대해서 이야기한 책인 줄 알았는데 다 읽고 보니 이건 진화에 대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왜 마라톤을 하는 지 압니까?" 그는 브램블에게 질문했다. 달리기는 인류의 집단적 상상력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며, 우리의 상상력은 달리기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 예술, 과학, 우주선,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혈관 내 수술 등 모든 것은 인간의 달리는 능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달리기는 우리를 인간으로 만든 초능력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이 초능력이 있다.

 

사람의 몸은 '걷기' 보다는 '달리기'에 맞게 진화해왔다는 관점. 그리고 그 달리기를 하지 않게 된 것은 인류가 '운동화'라는 걸 신고나서부터라고 한다. 사람의 발은 인체공학적으로 아치형을 이루고 따라서 가장 압력에 잘 견디게 되어 있는데 푹신한 신발을 신으면서부터 부상도 잦아지고 탈도 많아졌다는 논리이다. (나이키가 지대한 영향을 했다고 한다)

 

서구의 십대 사망 원인인 심장병, 중풍, 당뇨병, 우울증, 고혈압, 각종 암 들이 조상들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약도 없었다. 하지만 마법의 탄환이 한 개 있었다. 아니, 브램블의 손가락을 볼 때 두 개일 수도 있다.

"이 한 개로는 우리를 쫓아오는 전염병을 멈출 수 없습니다." 그는 평화의 표시로 손가락 두 개를 치켜든 다음 천천히 아래쪽으로 돌려서 허공을 가위질했다. 달리는 사람이었다.

"간단합니다. 그냥 다리를 움직이는 겁니다. 자신이 달리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역사를 부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걷는 것도 싫어하는 나에게 이 얘기는 청천벽력이다. 달리기가 인간의 DNA에 깊숙이 박힌 내재적인 본성이라니. 아...맨발로 달려줘야 하는가. 발바닥 아플 것 같은데..OTL.

 

그리고 멕시코 코퍼 캐니언에 사는 신비로운 타라우마라족과 미국 최고의 울트라러너들이 코퍼 캐니언의 오지 중의 오지에서 경주를 벌이는 긴 장정을 묘사하고 있다. 타라우마라족이 엄청난 거리를 너끈히 달리는 이유는 달리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성인데, 우리가 문명세계 속에서 많은 다른 것들을 좇다 보니 잊어가고 있을 뿐이다. 인간은 달리기 위해 태어났다 (BORN TO RUN!). 이 속에서 일면 보면 미쳤다고밖에 할 수 없는 많은 개성만점의 미국인들이 나온다. 맨발의 테드, 젠과 빌리, 스콧 등등등. 이들은 타라우마라족과 함께 달리면서 다시한번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하고 함께 하는 달리기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는 살아오는 내내 알고 있었다. 우리가 경주하는 이유가 다른 사람들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스콧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타라우마라족 뿐만 아니라 미국인들도 달리기를 즐기면서 할 때 그 고된 여정이 하나도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음을 체험한다. 아주아주 옛날의 우리 조상들처럼.

 

그 미소는 이상하게 감동적이었다. 젠이 완전히 즐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지구상에 이보다 재미있는 일은 없으며 애팔래치아 황무지 한가운데 트레일보다 좋은 곳은 없다는 표정이었다. 방금 마라톤보다 8킬로미터가량 더 달려왔는데도 발은 가볍고 경쾌했으며 눈은 반짝거렸다.

 

어쩌면, 모든 일이 그럴 지도 모른다. 즐기면서 할 때 모든 고통은 고통이 아닐 수 있는 지도. 우리가 사는 모습 자체가 그런 지도. 그래서 이들은 더욱 달리게 되는 지도 모른다.

 

 

 

 

 

 

 

 

 

웃긴 건, 나처럼 걷는 거 달리는 거 움직이는 거 싫어하는 애가 달리기에 대한 책은 여러권 읽었다는 거다. 푸히히. 하루키가 마라톤 광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 (하루키는 도대체 없는 취미가 뭐란 말이냐. 야구도 좋아하고 와인도 좋아하고 여행도 좋아하고 글쓰기도 좋아하고 달리기도 좋아하고. 부러워 미칠 지경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런 생각을 많이 하는 요즘인지라, 그닥 재미있다고는 할 수 없는 이 책이 (이 책이 아마존 문화부문인가에서 베스트셀러라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이 소중한 휴일 내내 내 손에 달려 있을 수 있었는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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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12-02-06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실제로 달리기는 싫어하니까 책으로 달리신거지요?^^

비연 2012-02-06 23:02   좋아요 0 | URL
헉. 들켜버렸다..^^;;;;
그나저나, 진/우맘님의 정말정말 오랜만의 댓글을 보니..
감격해서 눈물이 찔끔~ (정말!) 자주자주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