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의 사각지대 동서 미스터리 북스 147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김수연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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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은 수사 자료의 보고라고 하듯, 그 자료의 가치는 시간적으로 사건 발생 시각과 가까울수록 좋다. 현장에 일 분 일 초라도 빨리 도착하는 것이 범인을 쫓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동시에 현장의 원형이 관찰의 진행과 더불어 변형되는 일, 때로는 없어지는 일도 미리 방지할 수 있다. 현장 수사관에게 민첩함과 함께 신중함이 요구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쪽

사장의 죽음은 관계자 이외에겐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서비스 대량 생산 공장이라 할 거대한 호텔의 꿈틀거리는 아침 활동을 보고 있노라니까, 아무리 거물이라 할지라도 일개 인간의 죽음이란, 조직의 존속에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조직은 인간이 만든 것이면서도 인간을 초월한다.
지금 이 거대한 호텔은, 그 주인이라 할 사람을 참혹하게 잃고도 그 주인이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이, 아니 그 이상으로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두 형사는 조직의 비정함을 절실히 느낀 듯했다. -.쪽

히라가는 이 수사를 통해 현대의 호텔이란 곳이 얼마나 거대한 '인간 처리 공장'인가도 깨달았다. 거기에서는 서비스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역할마저도 양산되는 메커니즘에 지배되고 있으며, 손님 편에서도 마치 자동판매기에서 인스턴트 식품을 사듯 호텔의 손님이 되었다.
서비스가 나쁘다거나 저질이란 말이 아니다. 그들은 지불한 돈에 상당하는 만큼의 서비스는 반드시 제공한다. 요컨대 서비스의 내용이 기능 본위라는 점이다. 원래의 상품에 덧붙인 '경품'과 같은 서비스나 설비, 요리 등에서의 저질적 서비스를 저자세의 애교로 대충 얼버무리는 따위의 애매함은 손톱만큼도 없다.
명시된 요금을 지불하고 규격적인 서비스를 산다. 현대에는 인간적인 애매함을 위한 여유가 남겨져 있지 않은지도 모른다. 종종 야간에 걸친 수사 중에 히라가는 대도시의 밤하늘에 불야성처럼 우뚝 솟은 호텔들을 돌면서, 자기 자신도 그 애매함을 허용하지 않는 거대한 기계의 아주 작은 부분 같다는 생각이 드는 때가 있었다. 밤하늘에 치솟은 호텔은 아름다웠다. 거대한 바윗덩이 같은 벽면에 규칙적으로 배치된 창문이 불빛을 한껏 품고 떠올라 있는 모습은, 그 불빛 아래에서 어떠한 추잡스러운 삶이 영위되고 있다 하더라도 보는 이의 눈엔 다이내믹한 아름다움으로 나타났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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