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보다 꽃을 봅니다. 처음으로 그 꽃을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마치 생전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생겼었구나." "아! 색이 이렇게 선명하고 이렇게 고운 모습이었구나." "어쩌면, 작은 꽃 속에 이토록 많은 주름과 움직임이 있을까?" "꽃잎이 이렇게 생겼구나." "이렇게 얇은 꽃잎이 어떻게 색을 담고 있을까?" "꽃술은 이토록 섬세하고 갸날픈 꽃가루들을 매달고 있었구나." 꽃을 들여다볼수록 신기하고, 궁금증은 자꾸 커져만 갑니다. 그동안 내가 꽃들을 제대로 본 적이 있었던 걸까요?-.쪽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이 모두 목판에 새겼다는 건 다 알고 있죠? 이 작품은 그와 같은 전통을 좀더 현대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꽃의 생김새는 실제처럼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크기도 다양하게 제작했습니다. 그런데 작가는 왜 꽃의 본래 색을 칠하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사물의 색을 다섯 가지로 분류했었습니다. 빨강, 파랑, 노랑, 그리고 흰색과 검정. 이 다섯 가지 색을 오방색이라고 불렀으며 이 오방색이 모든 우주를 포함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돌 때 입고 찍은 사진 속의 색동옷이나 신랑 신부가 양가 부모님께 폐백 드릴 때 입는 옷의 색깔 등을 생각해 보세요. 모두 이 다섯 가지 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물론 각각의 색이 가진 독특한 의미도 있습니다.-.쪽
오래 전 안혜경 선생님은 친구들과 백련사로 여행을 갔었답니다. 백련사 부도밭 입구에는 동백꽃들이 한창이었습니다. 겨울을 막 벗어날 무렵 바람도 매섭고 산 속 응달에는 아직 덜 녹은 눈도 쌓여 있는데, 유독 크고 붉은 동백꽃 무리가 장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푸른 동백 잎과 붉은 꽃은 추운 날씨도 아랑곳 않고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무에 붙어있는 꽃보다도 더 많은 동백꽃들이 땅위에 흩어져 마치 땅이 붉은 피를 흘리는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은 작업실에 돌아와 그 기억을 그림으로 옮겼습니다. 땅에 떨어져 피를 흘리는 동백꽃들의 죽음을 그렸다고 할까요? 그러나 꽃들의 죽음은 슬퍼할 일만은 아닙니다. 만일 모든 꽃들이 일년 내내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매달려 있다면 어떨까요? 더 이상 아무도 아름답다고 감탄하고 귀하게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지금 상태로 계속 살아간다면 어떨까요? 며칠은 즐거울 수 있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모두 큰 슬픔에 빠질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라서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야 하고 대학에도 다녀야하기 때문입니다. 또 멋진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결혼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쁘고 귀여운 아이들을 낳아 그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며 즐겁고 행복하게 나이를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 모습으로 계속 살아가야 한다면 그보다 슬프고 괴로운 일이 또 있을까요? 꽃들도 떨어진 그 자리에서 잎이 나고 열매가 맺힙니다. 만일 그 꽃들이 떨어지지 않고 계속 나무에 매달려 있으면 머지않아 나무는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버릴 지도 모릅니다. 이제부터 날아가는 꽃들을 만나면 "안녕~ 내년에 또 만나~"라고 기쁘게 손을 흔들어 줍시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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