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느 곳엘 가도 브라질만큼 불평등한 나라는 없다. 어떤 전문가들은 다가올 미래를 묘사하면서 세계의 브라질화를 이야기한다. 브라질화라는 말은, 물론 보기만 해도 즐거운 축구라든가, 굉장한 볼거리인 카니발, 죽은 자마저 깨워 일으키는 음악 등 최고 수준의 광채를 발하는 분야의 국제적 확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불평등과 인종차별에 뿌리를 둔 사회 모델이 세계적으로 강요되는 현상을 말한다. 브라질화의 사회 모델에서는 경제성장이 가난과 소외를 증폭시킨다. 벨린디아(Belindia)는 브라질의 또 다른 이름이다. 소수의 사람들이 벨기에(Belgium)의 부자들처럼 소비하는 뒷마당에서 대다수는 인도(India)의 가난한 사람들처럼 살아간다고 해서 경제학자 에지마르 바솨(Edmar Bacha)가 이름 붙인 것이다. 사유화와 자유시장의 시대에 돈은 중개업자 없이 스스로 통치하고 지배한다. 그런 시대에서 국가가 할 수 있는 기능은 무엇인가? 국가는 손에 쥘 것도 없는 임금을 받는 값싼 노동력을 훈련시키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위험해진 노동력 부대를 진압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다시 말해 재판관과 헌병의 역할 외에 국가는 달리 할 일이 없다. 세계 각국에서 사회정의는 형사상의 정의로 축소되었다. 국가는 공공의 안녕을 책임지고 나머지는 시장에 맡긴다. 경찰이 가난-가난한 사람들, 가난한 지역-에 대해서 손을 쓸 수 없는 경우에는 신께서 돌보실 것이다. 정부가 자비심 많은 어머니의 가면을 쓰고 싶을지라도 이미 기운이 쇠진했다. 이젠 감시하고 처벌하는 일만 남았다. 오늘날의 신자유주의 시대에 공권(公權)은 권력이 베푸는 은혜로 전락해 버렸고, 권력은 선거 전날 자선을 베풀기라도 하듯이 국민 보건과 공교육에 관심을 가진다.-.쪽
아메리카와 유럽에서 경찰은 정형화된 인물을 사냥한다. 얼굴을 달고 다니는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다. 백인이 아닌 용의자는 우리의 집단의식 깊은 곳에 보이지 않는 잉크로 쓰인 법칙을 분명하게 드러내준다. 즉, 범죄는 검은색이거나 밤색, 아니면 최소한 노란색이다. 세계사를 들춰보면 이러한 악마 만들기는 오래전부터 무수히 자행되어 왔다. 최근 5세기 동안만을 한정하여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백인이 저지른 범죄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르네상스 시대에 백인은 세계 인구의 5분의 1을 넘지 않았으나, 자신들이 신의 의지를 구현한다고 벌써 떠들어 대고 있었다. -.쪽
신의 이름으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얼마나 많은 인디언의 씨를 말렸는지 어찌 알겠으며, 얼마나 많은 흑인을 아프리카에서 납치했는지 누가 알겠는가. 노예의 자식들이 광산과 농장에서 다시 노예로 태어나게 하기 위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 세습 노예제를 수립한 왕과 인디언 착취자, 흑인 노예 매매업자는 모두 백인이었다. 이어지는 그 다음 여러 세기에도 천지 사방에 제국주의 권력을 무자비하게 심어 놓기 위해 문명이 저지른 무수한 야만행위의 장본인들도 모두 백인이었다. 일본의 도움을 등에 업고, 20세기에 6,400만 명-대부분 민간인-의 목숨을 앗아간 두 번의 세계대전을 실행에 옮긴 국가원수들과 호전적 우두머리들도 백인이었다. 나치 수용소에서 빨갱이와 집시, 동성애자를 포함한 유대인 대학살을 계획하고 이행한 자들도 백인이었다. 지구상에 존재했던 모든 제국의 갈 길을 인도한 것은, 어떤 이들은 자유롭게 살기 위해 태어나고 다른 어떤 이들은 노예가 되기 위해 태어난다는 확신이었다. 그러나 인종차별주의가 유럽의 배부름을 위해 도덕적 면죄 체계로 정립된 것은 르네상스 시기와 신대륙 정복 때부터였다. 백인들은 식민지에 살던 다수의 사람들을 내쫓고, 소수자를 소외시켰다. 인종차별주의는 그때부터 세계를 지배했다. 식민지 시대에는 화약만큼이나 인종차별도 필요했다. 로마에서는 신이 싹쓸이 약탈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라며 교황들이 줄줄이 신을 모욕했다. -.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