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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러비드
토니 모리슨 지음, 김선형 옮김 / 들녘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책을 읽고나서 바로 리뷰가 써지는것이 있는 반면에, 어떤 책은 읽고나서 리뷰가 잘 안써지는 책이 있는것 같아요. 점점 리뷰를 늦게 올리다보면 결국 리뷰를 적지도 못하고 그러다보면 왠지 그 책을 다 읽은것 같지 않은 찝찝함이 남아있답니다.
이 책은 읽을때 너무 재미있게 읽었는데, 막상 다 읽고 나니깐 리뷰가 써지지 않는 책이었어요. 그래서 계속 미루었는데 더 미루었다가는 리뷰를 못 올릴것 같은 기분에 지금에야 올리게 되었네요.
솔직히 이 책에 대한 정보도 모른채 그냥 읽게 된 책이예요. 읽고나니 저자의 책이 꽤 명성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우연히 찾아낸 보석 같은 책이네요.
언뜻 봤을때 빌러비드를 빌리브로 읽어서 뭔가 믿나?하고 생각했는데 원제는 'Beloved'더군요. '사랑하는 사람', '소중한 사람'이라는 뜻이죠. 그리고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이름이기도 하고, 뜻을 담기도한 제목이지요.
처음 책을 읽었을때, 독특한 전개가 이상하게 마음에 들더군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결과만 툭 던져놓고선 그 결과가 오기까지의 과정을 유령의 집에 남아 있는 사이드와 덴버의 대화로 알게 됩니다.
아무래도 유령의 등장으로 리얼리티는 떨어지지만, 한편으로 그런 환상적인 상황이 이 글속으로 몰입하게 됩니다. 그들의 유령부르기 행동은 왠지 우리의 무속신앙과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이기도 한것 같아요.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으로 목이 잘려 죽은 아이 '빌러비드'는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망령이 되어 어머니와 그녀의 가족을 괴롭히지요. 사실 처음에는 그 유령 때문에 사이드의 아이들이 집에서 도망갔다고 생각했지만 점차 이야기속으로 들어가보면 아이들은 그 유령 때문인 아닌 어머니 사이드의 사랑이 무서워 집에서 도망친것입니다. 그녀에게 마지막 남은 딸 덴버는 그녀로부터 도망치지도 못하고 도리여 세상과 인연을 끊고 어머니와 살아가지요.
사이드와 덴버, 빌러비드라 불리는 유령을 통해 흑인 노예제도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노예시절 흑인들에게는 아이를 나아도 아이에게 정도 주지 못하고 빼앗기게 되고, 그럼으로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없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출생이란 세상에 태어남에 기뻐해야하는 삶이 아닌 그냥 가축들의 출생처럼 재산을 불려주는 것에 불과한것이지요.
모든것을 잊고 던 사이드 앞에 갑자기 남편의 친구이자 자신의 친구인 '스위트홈'에서 생활했던 할리가 등장하게 됩니다. 스위트홈에 속했던 사이드와 그녀의 남편 할리. 이름이 무척이나 달콤하지만.. 달콤하지 않은 추억을 담고 있는 곳이지요. 오히려 쓰디쓴 추억을 가지고 있는 그들이지만 추억이라는 이름아래 과거를 안고 살아야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른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그들을 대했던 스윗트홈의 농장주 가이너씨. 하지만 그 역시 백인과 흑인의 경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자 그의 부인 또한 흑인에 대한 경계심으로 새로운 사람을 고용하지만 그것이 스윗홈의 불행의 씨앗이 될줄 누가 알았을까요? 농장주가 바뀌면서 기존의 노예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는 스위트홈 사람들은 탈출을 감행합니다.
그리고 그 탈출속에서 살아남은 자는 사이드와 할리뿐이었지요. 그 과정에서 사이드도 큰 불행을 겪지만 할리 역시 인간으로써 느껴보지 못한 수치심과 고통을 느낍니다. 그가 가장 수치스러웠던 바로 농장의 닭이 가지고 있는 자유조차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한다는 현실이었겠지요.
할리의 출연으로 유령은 집에서 사라지지만, 그와 동시에 '빌러비드'라는 이름을 가진 정체불명의 여자가 그들 앞에 나타나지요. 그러면서 그들의 잊혀졌던 과거의 상처가 터져나옵니다. 그동안 감추어졌던 진실과 ㅇ해들이 점점 퍼즐처럼 맞춰나가지면서, 그들은 자신앞에 나타난 그녀가 바로 사이드의 손에 목 잘려 죽은 '빌러비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한 여인의 큰 모성애 때문에 한 아이는 죽고 두 아이는 도망가고 남은 아이는 집밖에도 못 나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것이 그녀의 잘못이었을까요? 그녀가 빌러비드를 죽이는 순간 모든 그녀가 가졌단 모든 인간관계는 단절되고 맙니다. 어쩜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이 자식을 죽여야했던 어머니의 마음일테지만 죽은 아이조차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세상 사람들은 이해할수 없었던 것이지요.
자신처럼 노예로 살게 할 바에는 죽음으로써 자유를 선택하게 한 어머니. 하지만 아이의 삶을 엄마가 대신 결정한다는것이 과연 옳은건지... 사실 사이드 말고도 최근에 불치병에 고통받는 아이를 죽이고 따라 죽은 어머니에 관한 기사를 읽으면서 수많은 부모들이 그런 선택을 하는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예전에 시튼의 동물기에서 자유가 없는 여우새끼가 엄마 여우로부터 독이 든 음식을 먹고 죽는 것을 보며 동물이기 때문에 가슴을 울리는 모성이라 말했지만 사람은 같은 행동을 했을때 지탄을 받아야하는 상황들..
다 읽고 나서야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여진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서 더 슬프네요. 노예 제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만 그들을 옭아매는 현실적인 제도외에도 보이지 않는 제도에 대해서 말합니다. 사이드와 그 가족을 옭아매고 있는 자식에 대한 지나친 모성애, 이웃이 고통 받아도 먼저 손을 내밀기보다는 내밀었을때 도와줄수 있다는 그들의 태도는 어쩜 자기 만족이고 위선이지요.
아직도 인종차별로 고통받는 흑인들도 있고, 노예제도라는 것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물질에 노예가 되어버린 사람들 그리고 없어져야할 악습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사이드를 도와주었던 백인소녀나 어머니의 틀에 벗어나 먼저 손을 내민 덴버의 행동은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그 작은 움직임이 시작되어 세상이 변화되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