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오리새끼의 출근
메트 노가드 지음, 안진환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4월
품절


안데르센이 「미운오리새끼」와 「나이팅게일」이 수록된 소책자를 출간한 것은 1843년 11월이다. 그때 그는 처음으로 책의 표지에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라는 표현을 삭제했다. 그때부터 스스로 아이와 어른 모두를 위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로 인식했고, 아이들에게 흥미를 주는 줄거리로 어른들에게도 숨은 의미와 감동을 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던 것 같다. 이 책으로 안데르센은 드디어 문학적 성공과 상업적 성공을 양손에 거머쥔다.
「미운오리새끼」는 안데르센의 수많은 작품들 가운데서 자전적 향취가 가장 강렬하게 풍기는 작품이다. H. 토프쉬 젠슨이라는 학자는 이 이야기에 대한 연구서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다.
"저자는 미운오리새끼와 마찬가지로 불쌍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몇몇 후견인들에 의지해서 살아야 하는 처지였는데, 그들은 대부분 이해심이 부족한 사람들이어서 그를 학대하고 못살게 굴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그는 열등감에 빠졌고, 자기 자신의 가치에 대한 의심으로 고통받는 길고도 힘겨운 시간을 견뎌내야 했다. 그러나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언젠간 인정받게 되리라는 비밀스런 확신이 움트고 있었으니……"
주인공 미운오리새끼처럼 안데르센은 자기 연민과 자기 비하의 경향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는 강인한 근성과 용기를 키워나갔다. 이러한 성향들은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부분이다. 낭만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말이다. 그의 부모는 너무나 가난했다. 「성냥팔이 소녀」이야기는 동냥을 다녔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썼을 정도이다. 그리고 볼품 없는 외모 때문에 번번히 사랑에 실패해서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장점을 인식한 안데르센은 장성하여 코펜하겐으로 진출했고, 황실의 후원을 얻어냈으며, 당대의 가장 사랑받는 작가가 되었다.-.쪽

남과 다른 것이 뭐가 나쁜가?
놀랄 것도 없이, 미운오리새끼는 자아에 대한 연민을 마음속에서 계속 키운다. 한 떼의 새들이 날아오르는 모습만 봐도 자기가 너무 흉측하게 생겨서 피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사냥개가 자기를 물어가지 않았을 때에는 '얼마나 혐오스러우면 사냥개조차 나를 물고 싶어하지 않을까'하며 절망한다. 이런 미운오리새끼처럼 우리 가운데도 자신의 내면에 혹독한 비판가를 키우며 끊임없이 자기의 단점을 상기하고 스스로의 자긍심을 깎아내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가 하면 이와는 정반대의 문제점이 있어서 늘 내면의 정력적인 목소리로 자신의 지나친 자부심을 치켜세우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 경우든, 이러한 내면의 목소리는 우리가 우리의 필수적인 본질에 연결되는 것을 방해한다. 우리는 이런 그릇된 목소리를 떠나야 비로소 우리 자신의 진정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쪽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만의 전문적인 힘을 길러라
전문 지식 또는 기술은 곧 자기 브랜드의 핵심이다. 왕의 말이 금 편자를 달게 된 까닭은 단순히 자신의 업무를 '수행'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전장에 스스로를 던졌으며 또한 눈부신 활약을 보였다. 자신이 단순히 유능한 존재가 아니라 비범한 존재임을 입증해 보인 것이다. 우리 역시 사람들이 가치 있게 여기며 그것을 얻기 위해 기꺼이 대가를 치르고자 하는, 그런 지식을 터득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배우고, 자신의 능력을 연마하며, 부단히 전문성을 쌓아야 한다.-.쪽

사람답게 살기 위해 버터와 책은 모두 필요하다

"이젠 두 사람 모두와 함께 있어야겠군!
아무래도 포리지가 있으니 가게 주인을 포기할 수는 없잖아."
그것은 상당히 인간적인 생각이었다!

식료품점 주인은 가게의 삶을 즐긴다. 사람들의 왕래와 흥정, 무게를 달고 돈을 주고받는 행위 등등, 이것은 활기찬 삶이다! 우리는 대부분 재물에 우위를 두고 있으므로 불이 나면 귀걸이나 채권부터 챙긴다.
이와 대조적으로 학생은 다락방에서 고독하게 생활하며 위대한 지성들과 벗삼는 쪽을 좋아한다. 이것은 생각이 깊은 삶이다. 그러나 이런 생활은 '현실 세계'에서 너무 동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면, 큰 불이 거리를 휩쓰는데도 학생은 창가에서 조용히 지켜보기만 한다. 그는 그저 방관자일 뿐이다.
난쟁이 니세는 양쪽 세계에 모두 속해 있다. 처음에는 가게 안에서 편안해 하지만, 그의 지성이 위대한 사상들에 강하게 이끌린 이후로는 더 이상 가게에서 만족하지 못한다. 그는 안락함을 원하지만 다락방의 불빛에도 끌린다. 화재 중에 니세는 포리지 생각을 까맣게 잊는다. 그 대신 그는 다락방으로 뛰어올라가 자신의 빨간 모자 속에 낡은 시집을 쑤셔 넣고, 지붕을 타고서 굴뚝까지 쏜살같이 올라간다. 그리곤 굴뚝에 걸터앉아 두 손으로 모자를 부여잡는다. 그는 이제 자신의 마음을 안 것이다. 그러나 화재가 진압되고 마음이 안정되자 자신이 얼마나 포리지를 좋아하는지 생각한다. 이곳, 가게와 다락방을 모두 딛고 선 이 위에서 모든 것은 명백해진다. 어느 한쪽만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양쪽 모두와 함께할 것이다.-.쪽

막연한 희망과 진지한 열정을 구분하라
우리는 흔히 높은 보수와 지위가 보장되는 직장에 유혹받는다. 당신이 유명한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그곳에 가면 보수가 좋고 승진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출세의 기회다. 그러나 그 프로젝트는 기간이 여러 달 걸리고 완성하기 위해서는 주거지를 옮겨야 한다. 당신 안의 황제와 궁정 악장은 이것이 현실적인 이동이라는 데에 동의하고 당신은 귀가해서 식구들을 설득한다. 그러나 이럴 때 당신은 충분히 시간을 두고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이동이 나를 진정으로 강하게 만들 것인가? 이럴 때는 나이팅게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게 좋다.
"프로젝트 자체가 나의 흥미를 돋우는가?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몇 달 내내 그 흥미가 식지 않을까? 나는 같이 일하게 될 사람들을 존중하는가? 가족들까지 일정 부분 대가를 치를 만큼 가치가 있는 일인가?"
우리는 또한 희망에 근거한 생각과 진정한 열정을 구분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행복해지려면 반드시 직장을 그만두고 위대한 소설을 쓰거나 식당을 개업하거나 평화봉사단에 가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몇몇 사람에게는 그것이 천직이 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에게는 환상에 불과하다. 이는 직장생활의 행복을 우리 자신의 열정이나 헌신이 아닌 거짓 시나리오에서 찾는 것에 불과하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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