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뉴브 강에 띄워 온 편지
박지연 지음 / 정은출판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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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남서를 거쳐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를 지나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가로질러 흐르는 유럽의 다국적 강. 숱한 음악가들의 많은 노래와 아름다운 왈츠가 출렁이는 다뉴브강물은 지금도 유람선이 떠가고 사랑과 낭만을 노래하며 흑해로 흘러가고 있다. 음악을 꿈꾸는 사람에게 다뉴브는 꿈의 강물이 되고 있다. 내 아이도 마침내 이 강물에 황홀한 꿈을 싣고 떠났다.
그러나 사랑과 미움은 같다고 했던가. 사랑의 관심을 벗어난 영역은 무관심일 수밖에 없다. -.쪽

동지(冬至)가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오후 5시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어슴프레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12월은 한 해를 마감하는 들뜬 마음만큼이나 집회도 많다. 그 날도 총회가 있었지만 양해를 구하고 일찍 나왔다. 성수대교가 붕괴된 이후 나의 귀가 코스는 중곡동에서 청계고가를 거쳐 서울을 관통하는 도로를 택했지만 길이 막힐 것 같아 종전의 영동대교를 넘기로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아직 '러시아워'도 아닌데 차는 시속 10킬로미터 이상 나가지 못한다. 짙은 어둠 속에서 건너다 보이는 성수대교는 마치 전쟁의 상흔인 양 애처롭게 서 있고 자동차마다 발산하는 빛의 물결은 온통 한강 물위에 넘실댄다.
참으로 아름다운 그림 같은 야경이지만 그에 취해 있을 여유가 없다. 시간은 자꾸 가는데 한 사람의 저녁 식사가 걱정 되면서 가슴은 죄지은 사람처럼 두근거린다. 차의 진행 속도는 더 느려졌다. 어느새 라디오에서는 7시 시보가 울린다. 장거리 여행도 아닌데 차 안에서 꼬박 두 시간을 갇혀 있다. 늦은 시간 때문에 갖가지 염려를 간절히 기도하는 사이 목동 아파트에 도착했다. 조바심 쳐지는 마음은 엘리베이터 속의 단 1분도 아쉽다. 귀걸이도 빼어 포켓에 넣는다. 시계도 풀고 윗저고리 단추도 푼다. 할 수만 있다면 몇 초라도 아끼자. 그런데 창문이 캄캄하다. 더욱 초조하다. 열쇠도 잘 열리지 않는다. 급하게 서둘수록 더 늦어진다. 황급히 들어 섰지만 안에는 인기척이 없다. 그만 거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삽시간에 힘이 쭉 빠져버려 마치 넋 나간 사람 같았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데 발을 동동 구르며 마음을 졸였던 자신의 모습이 그지없이 초라하고 억울했다. 나는 왜 이다지 자신에 대해 관용할 수가 없는 것일까. 날이 어둡기만 하면 꼭 누구에게 쫓기 듯 무엇인가 나를 꽁꽁 묶어놓고 옥죄는 것만 같아 늘 가슴이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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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남녀 불평등의 횡포 속에 희생을 미덕으로 살아 왔는데 조금 늦은 귀가가 어떤 죄가 되는지. 몇 십 년을 고스란히 보이지 않는 끈에 묶인 채 발목은 한 발도 땔 수 없는 부자유의 고통이었다. 한국의 가부장 제도를 하나 하나 짚어보면 한 인간의 삶을 회한과 절망으로 몰아 갔다.
어머니 걸어가신 발자국 쫓아 속울음 삼키며 자기를 숨겼던 날들, 일찍부터 익혀 온 인종지도(忍從之道)의 융통성 없는 길이 어쩌면 자승자박의 삶을 자초한 것은 아닌지. 아까운 시간, 무거웠던 삶, 지난 날은 돌이킬수 없는 시간이다. 나는 꽃이나 장식품이 아닌 할 일 많은 사람이다. 전족보다 더 가여운 허울 좋은 이조여인이라는 미명을 털어 버린다. 발목의 무거운 짐 거두고 소중한 삶의 가치와 보람을 찾을 것이다. 인식의 전환은 찬란한 빛이 되어 편안과 사랑이 가득한 평범한 삶을 위해 발목에서 새움을 곱게 틔워 낼 것이다.-.쪽

잠실에서 죽전으로 가는 이 버스는 늘 앉을 자리가 없어 서서 가지만 내가 내릴 곳은 5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옆에 앉은 어린이가 나를 보자 일어서려 한다. 전철을 수없이 탔지만 한번도 자리를 양보를 받은 적이 없었던 나는 이 아이가 기특하게 보였다. 하지만 빨리 달리는 차안에서 아이가 넘어질까 싶어 사양했다. 한 정거장쯤 지나서 아이는 다시 벌떡 일어섰다. 곧 내릴 것이라고 해도 아이는 앉으려하지 않았다. 순간 이 아이에게 보람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조금만 앉자" 막 앉으려는데 뒤에서 아이의 엄마인 듯한 젊은 여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얘, 왜 일어나" 아이가 나를 보며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재빨리 자리를 좁혀 둘이서 같이 앉으려다 그 아이의 엄마를 안심 시키려고 일어섰다.
요즈음 버스를 자주 타지 않지만 십 년 전만 해도 젊은 엄마가 아이들을 있는 데로 의자에 앉혀 놓고 어르신들이 서서 가도 자기 무릎으로 데려오는 엄마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근래 사회 의식이 많이 변하고 있는데도 이기적인 저런 엄마가 아직도 있구나싶었다.
어린이가 어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려는 착한 마음을 그의 엄마는 읽지 못하고 다만 서서 고생하리라는 단순한 것만 보았다. 그 엄마가 조금만 참고 아이의 모습을 지켜 보았다면 부모로서 퍽 보람 되었으리라. 뿐만 아니라 칭찬할 소재를 얻을 수 있었는데 그만 놓치고 말았다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의 깊은 생각보다 못 미친 젊은 엄마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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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차를 타면서 길을 걸으면서 세상의 지혜를 배운다. 고궁이나 전시회장에서만이 배우는 게 아니다. 바로 그것을 놓쳤다. 과보호라는 말이 실감났다. 우리가 어릴 때에는 지금과 다른 견해로 교육을 시켰다. 동생이 친구에게 맞고 들어오면 지는 게 이기는 것이라고 했다. 이기겠다고 남에게 상처를 주고 문제를 일으키는 것보다 차라리 지면서 참는 게 나은 것이라고 가르쳤다.
여기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마치 자리 얻기 경쟁에서 선점하는 것이 이기는 것이요, 그 자리를 지키는 것만이 승리자라고 가르쳐야 되는지. 혼탁한 세상에서 약삭 빠른 이기심은 가르치지 않아도 절로 배워 곤란하다. 그 어린이의 순수하고 곱고 예쁜 마음이 엄마들의 이기심으로 다치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쪽

현대인은 너 나 없이 바삐 살며 타인에 대하여는 철저하리만큼 무관심하다. 관심을 갖는 것은 귀찮고 때로는 간섭이라 하여 문제가 야기되는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 그 사이 잘못 자라 그릇된 일은 같이 숨쉬고 사는 우리사회에 악이 되고 있다. 인심이 각박해 요즈음 어른이 없고 권위도, 자리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어쩌면 어른들의 무관심이거나 너무 자율에 맡겨 만들어진 결과가 아닐지.
성서에서는 두 가지 죄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다. 하나는 법을 어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법이 요구한 것을 하지 않는 죄이다. 야고보서 4장 17절에는 '선을 알고도 행치 않는 것이 죄이니라.'라고 한다. 병약하고 버림받은 자, 굶주린 가난한 자, 헐벗은 자, 소외된 외로운 이들에게 잘 대하는 것이 곧 내게 하는 것이라 지적했다. 금지된 법을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매일 나를 필요로 하는 작은 이웃을 위하여 얼마나 관심을 가졌던가.
하지 않은 죄. 무관심한 죄. 작은 듯 하지만 소중한 사람의 도리를 외면한 것이다. 지금 그들이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 공부는 마쳤는지 바쁘다는 이유로 좀 더 보살피지 못한 일이 무관심한 죄가 되어 가슴 아파하고 있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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