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 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158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남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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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문명인으로서 수치스런 행위'라고 법률로 엄히 금지되던 문신이, 황태자 사건을 계기로 유럽 선진국의 각 왕실에 널리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반드시 아이러니만은 아니었다. 일본 문신의 예술성을 최초로 이해한 것은 우키요에(浮世繪. 에도 시대의 서민 풍속화 및 판화) 등과 마찬가지로 당사자인 일본인이 아니라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문신 기술이 일본에서도 진정한 예술로 불릴 정도로까지 진화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백 몇십 년 전인 에도 시대 덴포(天保. 1830. 12~1844. 12) 연간이 최초였다.
풍류를 즐기고 앞다퉈 멋을 내던 그 시절, 에도 남녀의 살갗에서 섬세하게 혹은 호방하게, 화려하고 현란한 고운 그림이 다양하게 꽃을 피웠던 것은 일본 풍류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특이한 화제로 다뤄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지금에 와서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 당시의 명작이나 걸작은 허무하게도 진토로 화했거나 혹은 연기와 함께 사라져 우리는 그 편린조차도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인생은 짧으며, 예술의 생명 역시 짧다.
문신사라는 덧없는 숙명의 예술가에게는 자기 이름을 백 년 후세에까지 알리기 바라는 것은 어차피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물론 의학의 진보로 문신 작품의 면모를 후세에 전하는 불가능한 일도 지금은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하나는 사진 촬영이며, 또 하나는 인체의 문신 피부를 사체에서 벗겨내 특수한 가공을 해서 보존하는 방법이다.-.쪽

메이지 이후 엄격한 통제의 시선을 벗어나 누추한 곳에서 간신히 목숨을 잇는 생활을 하면서도 불세출의 기술을 지키고 이어온 문신사라고 한다면, 초대와 2대 호리우노(彫字之)를 비롯해 호리카네(彫簾), 호리킨(彫金), 호리고로(彫五郞), 호리야스(彫安) 등을 들 수 있을 뿐이다. 그 외에는 먹말고는 붉은 먹을 새기는 기술도 모를 정도의 풋내기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달인이라 불릴 정도의 그러한 문신사라도 비단을 마주하고 감흥이 이는 대로 붓을 놀리는 그림과는 달리, 회심의 역작이 완성되느냐 마느냐는 온전히 상대에 달려 있다. 뽀얗고 흠집 없는 고운 살결에 윤기가 흐르는 보드라운 피부, 작더라도 점이 있거나 흉터가 있으면 문신사의 감흥은 깨지고 만다.
그들의 꿈은 너무도 높다. 그 꿈을 이루기도 너무나 어렵다.
그렇다고 그러한 피부의 소유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문신을 할 마음이 있겠는가? 상류사회 사람들이라면 꿈에도 생각지 않았으리라. 거기에는 완고한 사회적 편견이 있다. 고통에 대한 공포가 있다. 일단 밟고 넘어서 버리면 다시는 뒤돌아서지 못할 금 하나를 넘는, 비록 아름답기는 해도 평생 지우지 못할 낙인을 자기 살갗에 지니는 결심을 그리 쉽게는 하지 못할 일이다.
그럴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온몸에 미치는 훌륭한 문신은 어지간한 노력으로는 이뤄내지 못한다. 몇 달 동안을 매일 몇 천, 몇 만 개의 바늘로 살갗에 찔러 먹과 그림 도구를 집어넣는 극심한 통증, 그에 수반되는 발열과 백혈구 감소로 인한 체력소모, 결코 적지 않은 경제적 부담, 모든 것들을 다 감안하면 미완성인 채로 끝나는 문신이 많은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완성된 예술적 문신은 몇 만 명에 하나의 비율로 존재할 뿐이다. 그것을 찾아내는 것도 어지간한 노력으로는 하지 못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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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문신 표본 수집에 매달렸던 F박사는 몇 십 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목욕탕을 찾아다녔다. 야쿠자, 뜨내기장사치, 막노동꾼, 그 밖에도 문신이 있을 법한 직업의 사람들을 물어 물어 연고를 찾아 다녔다. 그 가운데 계속 돈을 댈 수가 없어서 미완성인 채로 끝난 문신이 있으면 자기 돈을 들여서 해 줄 정도로 그 완성에 적극 협력했다.
F박사 역시 문신이 지니는 기괴한 매력, 아편 같은 그 매력에 매료된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으리라.
그러한 노력 끝에 걸작을 하나 찾아낸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두 번째로 가로놓인 난관은 문신의 양도계약이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는 구태여 강조할 필요도 없다.
아무리 살림이 궁핍하다 하더라도 설마하니 자기 등판에 새겨진 문신 가죽을 벗겨서 먹고살려는 미치광이 인간이 있을 턱이 있겠는가. 그러니 골백번도 더 찾아가서 원래 미신도 깊은 그 사람들에게 차분하게 이치를 따져 들려주고서야 간신히 사후 해부와 문신 양도계약을 맺고 선금을 준다. 이것 역시 무한한 끈기와 외교적 수완을 필요로 한다.
그런 다음에는 마지막으로 당사자가 죽기를 기다려야만 한다. 10년 뒤가 될지 20년이 걸릴지, 혹은 30년 뒤일지 전혀 짐작도 하지 못할 앞날의 얘기다. 그렇다고 기다림에 지쳐서 견디지 못하고 독약을 먹이거나 하는 비상수단을 취할 수도 없거니와, 그 장구한 세월 동안 문신이 무사히 남아 있을지 여부도 예측을 불허한다. 천재지변, 전쟁, 실종 등, 사고는 수도 없이 생각할 수 있으므로.
이곳 몇 십 장의 표본에는 한장 한장에 그러한 고심이 담겨 있다. 나중에 문신 박사라 불리며, 일본 전역의 지인들로부터 감사 표시로 석등을 받았을 정도의 F박사의 정열이 없었더라면, 비록 도쿄대학 의학부의 권위라 하더라도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한 이 수집에 성공하기는 매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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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고심과 노력을 기울여 수집한 표본도 문신이 지니는 특이한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살아 있는 살갗에서는 진한 남빛으로 보이는 먹도 검어지고, 선명한 빨간색도 바랜 것처럼 이상하게 검붉게 보인다. 그러한 색소의 변색과 탈색은 잠시 제쳐두고라도 그 무늬에도 어딘가 부자연스런 과장이 있다. 이것은 물론 미묘한 굴곡과 요철을 지닌 인간의 피부를 평면으로 펼쳐놓은 데 따르는 결함이다.
문신사를 찾아가 밑그림을 보여 달래서 들여다보면 쉽게 알 수 있지만, 그림첩에 그려진 인물의 각 부분은 어느 것이나 연(鳶)그림처럼 균형이 일그러져 있다. 얼굴은 크고 팔다리는 작으며, 부조화에 언뜻 치졸하게 보이는 그 자태가 종이를 떠나 인간의 살갗으로 옮아갔을 때, 얼마나 생생한 광채를 발하는지 모를 것이다. 그러한 예에 나는 수도 없이 놀랐다. 실제로 한 문신사가 적절하게 표현한 대로 문신은 평면적인 그림으로 볼 것이 아니라 입체적인 조각으로 바라보아야만 할 것이다.
F박사 같은 권위자가 이 점을 몰랐을 턱이 없다. 이곳 표본실 중앙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몇 개의 동체가 최후의 해답이다.
문신이 들어간 살가죽을 원래의 인체 모양대로 성형을 해서 입체감을 부여한 이런 류의 표본에는 과연 벽에 액자처럼 보관되어 있는 살가죽 같은 부자연스런 느낌은 자취를 찾을 수 없다. 그러나 그곳-.쪽

예를 들면 이 가운데 한 장은 유명한 독부(毒婦)인 다카하시 오덴의 가죽이라고 한다. 그러나 F박사의 권위로도 이것은 증명하지 못했다. 오사카 의대에 남아 있는 여자 도둑 가미나리 오싱의 것이라던 가죽도 잘못된 것임이 증명되었다.
그처럼 권위 있는 논지로 몇 번이나 부정되었는데도 좀처럼 그런 소문이 사그라지지 않는 것은, 역시 사람들의 마음 밑에 깔려 있는 억누르지 못할 호기심이 무의식 속에서도 집요하게 이러한 표본을 남기고 사라진 사람들의 자취를 추구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전설은 잠깐 잊기로 하고, 이 표본 가운데 한 인물, 아니 한 동체에 대해 나는 그 문신에 감춰진 무시무시한 사건을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가운데 책상 위에 정교함과 오묘함의 극치를 다한 오로치마루(大蛇丸. 큰 뱀) 문신.
도가쿠시 산 깊은 곳에서 지라이야와 쓰나데히메라는 이름의 두 괴인과 둔갑술을 다퉜다는 이 구렁이로 둔갑한 요술사는, 지금도 갑옷 속에 받쳐입는 옷과 가발 차림으로 비웃음을 띤 채 동체 등판에서 주문을 외며 서 있다. 그 주위에는 겨드랑이 밑 옆구리 언저리까지 흑청색 속에 음산하고 요염한 빨간 불길이 타오르고, 이끼가 낀 듯한 흑청색 등비늘과 빨간 배를 뒤틀며 구렁이 한 마리가 왼쪽 어깨로 꼿꼿이 머리를 쳐들고 있다. 팔꿈치께에서 절단된 팔에는 벚꽃과 붉은 낙엽이 흩어져 있고, 무릎까지만 남아 있는 허벅지에는 커다랗고 농염한 모란꽃이 몇 송이 선명하게 피어 있다.
섬세한 바늘 자국, 표현도 못할 색조는 수많은 표본 가운데서도 빼어나게 주위를 압도하고 있다.
"호리야스 작, 1941년 2월."-.쪽

"자넨 교묘한 거짓말 방법을 아는가? 남을 속이려고 한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지어낸 거짓말만 해선 안 되네. 100 가운데 99까지는 진실을 말하라. 마지막에 하나의 거짓말을 하라. 그것이 마키아벨리식 외교철학이라네. 99의 진실의 힘에 압도되어 하나의 거짓말이 도외시되는 것이지. 이것은 심리학의 공식이네만, 범인은 다른 부분을 필요 이상으로 드러냄으로써 반드시 감춰야만 하는 비밀을 철저하게, 끝까지 감추려고 했던 것일세."-.쪽

3자견제
-뱀(오로치마루)은 개구리를 잡아먹고, 개구리(지라이야)는 괄태충을 잡으며, 괄태충(쓰나데히메)은 뱀을 녹인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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