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란 게 정말 할아버지 말씀처럼 그렇게 미리 정해져 있는 걸까요? 그럼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단 말이에요?"
그러자 노인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돌멩이 하나를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교장실 창문을 겨냥해 돌멩이를 던지는 시늉을 했다.
"자, 이 돌멩이가 날아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노인의 돌발적인 행동에 안절부절못하며 다급히 지로가 대답했다.
"아이 참, 조심하세요, 할아버지! 그러다 유리창이 깨지겠어요……."
"그래, 너는 지금 아직 도래하지 않은 이 돌멩이의 미래에 대해 예측을 했다. 하지만 네가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면, 이 돌멩이가 날아가는 것을 막을 수도 있을 게야!"
말을 채 맺기도 전에 교장실 창문을 향해 냅다 노인은 돌멩이를 던져버렸다. 깜짝 놀란 지로가 노인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날카로운 파열음만큼 날카로운 유리파편들이 겨울 햇살 속에 반짝이기 시작했다.-.쪽
비장하게 금빛 비단 보자기를 휘 휘 풀어헤치신 할아버지께서, 내친 김에 아예 보도의 자루와 칼집을 동여매고 있는 무명 천을 풀기 시작한 것이다. 이 장면에서 지로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며 바야흐로 집안에서 내쫓길 순간이 되었다는 것을 절감했다. 보도를 감싸고 있는 그 무명천은 을씨 집안의 가훈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칼을 빼기 전에 덕으로써 적들을 굴복시키라"는 깊은 가르침이 담긴 것이었다. 그리고 그 가훈은 을지문덕 장군 시절 이래로 내내 그 후손들에게 이어져, 여태껏 그 누구도 보도를 칼집에서 뺀 일도 없거니와 보도에서 무명 천을 풀러본 역사마저 없었던 것이다.-.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