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하면 어떨까요." 언젠가 시어머니에게 말했던 적도 있다. "그럼 뭐 하니?" 그게 베이비 석스의 대답이었다. "이 나라에 죽은 깜둥이 원한이 서까래까지 들어차지 않은 집이 하나라도 있는 줄 아니? 이 귀신은 그래도 애기니까 좀 낫다. 우리 서방 혼령이 여기로 돌아온다고 생각해봐. 아니면 네 서방이나. 말도 마라. 넌 재수가 좋은 거야. 자식이 셋이나 남았잖니. 치맛자락에 매달리는 것들이 셋이나 되고 저승에서 난리를 부리는 건 하나밖에 없잖아. 고마운 줄 알어, 이것아. 나는 여덟이나 낳았어. 한 놈도 남은 놈이 없다. 네 놈은 빼앗기고, 네 놈은 달아났지. 그리고 그것들 전부, 틀림없이 어디 다른 사람 집에 붙어서 속을 시꺼멓게 끓이고 있을 게야." 베이비 석스는 눈썹을 비볐다. "우리 큰딸 말이다. 지금 기억나는 건 그애가 시커멓게 탄 빵바닥을 얼마나 좋아했나 하는 것뿐이야. 너 그게 상상이나 가냐? 자식을 여덟이나 낳았는데 기억나는 건 그것뿐이라니." "다른 건 기억하기가 싫으신 모양이죠." 시어머니한테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이제 시이드에게도 남은 자식은 하나뿐이었다─그러니까 살아 있는 자식 말이다─아들들은 죽은 딸한테 쫓겨 달아났고, 뷰글러에 대한 기억은 한시가 다르게 희미해가고 있었다. 최소한 하워드는 한 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두상을 하고 있었다. 나머지로 말하자면, 최대한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으려 애쓰며 시이드는 죽도록 일을 했다. 그러는 편이 안전했다.-.쪽
"남자는 어쨌든 남자일 뿐이야." 베이비 석스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하지만 아들? 글쎄, 그건 대단한 거지." 그 말이 두루두루 일리가 있었던 것이, 시이드는 물론이고 베이비의 평생을 둘러봐도 남자와 여자들은 체스판의 말들처럼 제 뜻과 상관없이 이리저리 옮겨져 다녔기 때문이다. 베이비 석스가 사랑했던 남자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그녀가 알던 남자들 중에서, 달아나거나 목이 매달리거나 임대되거나 다른 데서 빌려가거나 팔려가거나 다시 끌려오거나 저장되거나 장기 할부로 넘겨지거나 상으로 주어지거나 절도를 당하거나 포획당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베이비의 여덟 아이들은 아버지가 여섯이었다. 베이비가 인생이 더럽다고 말했던 건, 바로 자기 자식들도 말들에 포함된다는 이유로 느닷없이 체스 놀이가 중단되는 법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때의 충격 탓이었다. 할리가 그나마 가장 오래도록 곁에 둔 자식이었다. 20년. 평생이나 다름없는 시간. 젖니도 다 갈지 않은 어린 두 딸이 미처 작별인사도 못하고 팔려갔다는 이야기를 남의 입으로 들어야 했던 그녀에게 주어진 보상이었다. 셋째아들을 데리고 있게 해준다는 조건으로 노예 감독 조수한테 넉 달이나 몸을 주었는데, 보람도 없이 아들은 이듬해 봄에 목재 값으로 팔려갔고 그녀는 한 입으로 두 말을 했던 남자의 아기를 임신한 자신을 발견했다. 그녀는 그 아이를 사랑할 수 없었고, 나머지 자식들은 절대 사랑하지 않겠다고 작정을 했다. "하나님 마음이 내키시면 데려가는 게지." 그러자 하나님은 정말로 데려가셨고, 또 데려가셨고, 또 데려가시더니, 그녀에게 할리를 내려보내 자유를 주었지만 이미 자유는 그녀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쪽
시이드는 6년간 그 '대단한' 아들과 결혼생활을 하면서, 자식 모두를 그 한 남자에게서 얻는 어마어마한 행운을 누렸다. 그녀는 무모하게도 그 축복을 당연하다고 여기고, 마음 깊이 그에 의존했다. 마치 스위트 홈이 정말 스위트 홈이라도 되는 것처럼. 백인 여자의 문을 괸 다리미 손잡이에 한 줌의 도금양을 꽂아놓으면 정말 제 집이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입 속에 물고 있는 민트 한 줄기가 입내를 가려줄 뿐 아니라 아예 사라지게 해주기라도 하는 양. 그리 어리석은 바보 천치가 또 있을까.-.쪽
"시간에 대해 말하고 있었단다. 나는 시간이란 걸 믿기가 너무 힘들어. 어떤 것들은 사라지지.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버려. 어떤 것들은 그냥 머물러 있어. 전에는 그게 내 기억력과 상관이 있다고 생각했어. 어떤 일들은 까맣게 잊게 되지만, 또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기억도 있다고. 하지만 그렇지가 않아. 장소들, 장소들은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거야. 집이 불타서 터만 남으면, 집은 사라져버리지만, 그 장소는─그 장소의 잔상은─는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무르거든. 단순히 내 기억 속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저 밖에, 세상 속에 정말로 남아 있단 말이야. 내가 기억하는 건 내 머리 밖 저 바깥에서 떠돌아다니는 그런 풍경들일 뿐인 거야. 그러니까 내가 생각을 하지 않아도, 심지어 내가 죽어버려도 내가 한 일들, 내가 아는 일들, 내가 목격한 장면들은 여전히 저 바깥에 존재한단 말이야. 그 사건이 일어난 곳 바로 그 현장에." -.쪽
"다른 사람들 눈에도 보이나요?" "아, 그럼 물론이지. 물론, 물론이야. 길을 걷다가 어떤 소리가 들린다거나 눈앞에 어떤 장면이 펼쳐지는 게 보일 때가 있잖아. 너무나 선명하게. 그러면 우리는 머릿속에서 꾸며낸 환각이라 생각하지. 머릿속의 그림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단다. 그럴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재기억rememory을 우연히 만나게 되는 거야. 얘야, 여기 오기 전에 내가 있던 곳 말이야, 그 장소는 실재한단다. 절대로 사라지지 않아. 농장 전체가 나무 하나, 풀잎 하나 남기지 않고 다 죽어버린다 해도. 그 잔상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더더구나 무서운 건, 네가 그곳에 가면─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던 네가 말이야─네가 거기 가서 그 자리에 서면, 똑같은 일이 일어날 거라는 사실이야. 그 자리에 있다가 너를 덮칠 거야.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덴버야.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거기 가면 안 된다. 절대로. 이제 전부 과거지사가 되었어도, 다 끝난 일이라도, 항상 그 자리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 내가 자식들을 다 빼냈던 거야.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덴버는 손톱 밑의 때를 팠다. "그 자리에 그대로 기다리고 앉아 있다는 건, 세상에 죽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잖아요." 시이드는 덴버의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죽는 건 아무것도 없단다."-.쪽
"미스터도?" "금방 볼 수는 없었어. 하지만 스무 걸음도 못 가서 그 녀석도 찾아냈지. 울타리 기둥에서 내려와서 물통에 앉아 있더군." "그 녀석 그 물통을 얼마나 좋아했는데." 시이드는 이 말을 하면서 생각했다. 그래, 이젠 더 이상 멈출 수는 없는 거야. "그래, 그랬지? 그게 왕좌나 되는 것처럼. 그 녀석 알껍질을 깨준 게 바로 나였잖아. 내가 아니었으면 죽었을 놈인데. 암탉은 알에서 깬 병아리들을 꽁무니에 줄줄 달고 일어나서 걸어가 버렸거든. 그런데 알이 하나 남아 있더라고. 속이 빈 달걀처럼 보였지만, 움직이는 게 보이길래 손으로 두들겨서 열어줬지. 그랬더니 미스터가 나왔어. 다리도 부실하고 시원찮았지. 하지만 그 빌어먹을 자식이 자라서 결국 악바리처럼 달려들어 마당을 평정하는 걸 지켜봤어." "녀석은 항상 악에 받쳐 있었어." "그래, 악바리였지. 살벌하기도 했고, 사악했어. 그 구부러진 두 발을 퍼드덕거리면서. 내 손바닥만큼 큰 빗처럼 생겼는데 뭔가 시뻘건 색이었지. 그 녀석은 물통에 떡 앉아서 날 바라보았어. 맹세컨대 놈은 틀림없이 나를 보고 웃었어. 내 머릿속은 얼마 전에 본 할리의 모습으로 가득했지. 재갈 생각은 하지도 않았어. 그저 할리와, 그 전에 본 식소 생각뿐이었지. 그런데 미스터를 봤을 때 나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녀석들만 그런 게 아니라, 나도 그렇다는 걸. 하나는 돌고, 하나는 팔려가고, 하나는 실종되고, 하나는 불타버리고 나는 손이 등 뒤로 묶인 채 쇠재갈을 핥고 있었지. 스위트 홈 남자들 중 마지막으로 남은 내가. -.쪽
미스터, 그 녀석은 너무나 뭐랄까…… 자유로워 보였어. 나보다 훨씬 나아 보였지. 강인하고, 더 터프하고. 그 시원찮은 자식은 제 힘으로 알을 깨고 나올 힘도 없었는데, 그 녀석은 그래도 왕이었고…… 나는……." 폴 디는 말을 멈추고 오른손으로 왼손을 으스러져라 움켜쥐었다. 그렇게 두 손이 진정할 때까지 그리고 세상이 다시 고요히 가라앉을 때까지 한참을 잡고 있더니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스터는 생긴 대로 살도록 허락받고 또 그렇게 살았던 거야. 하지만 나는 나 자신으로 존재하고 살아가도록 허락받지 못했지. 그 녀석을 잡아서 요리를 해먹어도, 결국 미스터라는 이름의 수탉을 먹는 거지만. 나는 죽든 살든, 다시는 폴 디가 될 수 없었어. 학교선생이 나를 속속들이 바꿔버린 거야. 나는 뭔가 다른 존재였고, 그건 햇빛을 받으며 물통 위에 앉아 있는 닭 한 마리보다도 못했어." 시이드는 그의 무릎을 쓰다듬었다.-.쪽
폴 디의 두 팔이 만드는 우물 속에 꼭 끼어, 시이드는 거리에서 아기를 낳아달라고 부탁하던 그의 얼굴을 기억해냈다. 깔깔거리고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긴 했지만, 시이드는 와락 겁이 났었다. 폴 디가 아기를 원한다면 섹스가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이 잠깐 스치긴 했지만, 한 번 더 아기를 갖는다는 것에 겁이 났다. 다시 엄마 노릇을 할 만큼 좋은 사람이 되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하고, 강인해져야 하고, 또 그만큼 마음을 쏟아야 하고─또다시. 그렇게 오랫동안 세상에 살아 있어야 하고. 오, 하나님, 저를 구원해주소서, 시이드는 생각했다. 만사태평 걱정거리가 없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모성애는 사람 잡는 감정이었다.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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