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수(骨利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뼈에 이로운 물'이라는 뜻입니다. 지리산에 가면 고로쇠나무를 볼 수 있지요. 골리수란 바로 그 고로쇠나무의 수액이랍니다. 그냥 고로쇠물이라고도 하지요. 동파된 나무줄기에서 흘러나오는 그 물을, 사람들은 뼈에 이로울 만큼 값진 보약이라며 받아먹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저 줄기를 타고 흐르는 수액을 작은 통에 받아 마시는 정도였지요. 그런데 어느 해 봄, 저는 지리산에서 아주 기이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산길을 따라 천천히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윙 하는 기계 소리가 들리더군요. 깊은 산중에 웬 기계 소리인가 싶어 주변을 살펴보니 커다란 나무 앞에서 장정 서넛이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은 손에 드릴을 쥐고 있더군요. 그들은 이른 봄 나무가 뿌리로부터 물을 올리는 것을 틈타 고로쇠나무에 억지로 구멍을 내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고로쇠나무에 손가락 한 마디가 넘는 깊은 구멍이 뚫렸지요. 그리고 그 구멍엔 수액이 흘러내리도록 링거 줄이 꽂혔습니다. 그리고 곧 그들은 나무 앞에 무릎을 꿇더니만 링거 줄에 입을 대고 수액을쭉쭉 빨기 시작했습니다. 생각만큼 수액이 나오지 않았는지 이내 포기하고 말았지만 말입니다. 대신 줄 끝에 작은 양동이 하나를 걸어두더군요. 다른 고로쇠나무를 찾아낼 생각인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들은 곧 그곳을 떠났습니다. -.쪽
저는 한참을 그 자리에서 꼼짝할 수 없었습니다. 아마 그들은 양동이가 채워질 무렵 다시 나타날 겁니다. 그리고 그걸로 끝일 테지요. 뚫린 구멍에 벌레가 들어도, 빗물이 들어 썩어도……. 저는 문득 흡혈귀가 떠올랐습니다. 나무에게 있어 이른 봄 뿌리로부터 올라온 수액은 사람으로 치면 피와 같은 것입니다. 그걸 무작정 뽑아내는 건 사람 몸에서 억지로 생피를 뽑아내는 것과 다를 게 없지요. 더구나 사람과 달리 나무의 수액은 항시 생겨나는 게 아닙니다. 수액은 이른 봄 곡우를 전후해서 잠깐 생겨납니다. 그래서 나무는 그 잠깐 생긴 수액을 일 년 동안 아끼고 아껴가며 새순도 올리고 이것저것 많은 일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수액을 무참히 빼앗긴다면 결국 나무는 말라 죽고 말겠지요.-.쪽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나, 너 사람들이 가장 관심 있는 것:내 것, 네 것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내 것'이 '네 것'보다 많은 것
사람들이 사는 사각의 돌상자 안에는 그들 각자가 욕심을 내어 '내 것'으로 만든 수많은 물건이 있습니다. 그런데 살아감에 있어 그게 꼭 필요한가 봤더니 그렇지도 않더라고요. 살면서 몇 번 쓰지 않을 온갖 장신구와 주방을 가득 메운 식기들, 게다가 먹지 못해 버리는 음식은 또 얼마나 많던지……. 제 눈에 비친 사람들의 삶은 누군가의 말처럼 '죽도록 벌어서, 죽도록 사들인 다음, 죽도록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디에 쓸지 생각지도 않고, 그저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아우성을 치더군요. 그 결과 그들 곁에 있는 모든 사물은 하나같이 다 '누군가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합니다. 평생 가야 다 밟지도 못할 만큼 땅을 가진 이는 단 하룻밤 쉴 곳이 없는 이웃을 위해 한 평도 안 될 잠자리조차 내놓질 않습니다. 두 손 가득 빵을 안고 있으면서도 먹지 못해 버릴지언정 눈앞의 굶주린 사람은 못 본 척합니다. 그러면서 밤이 되면 그들은 불안에 떱니다. 밤사이에 자기가 가진 것을 누군가에게 빼앗기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며 말이지요. 그리고 다음날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지금보다 더 가지기 위한 방법을 찾아 길을 나섭니다-.쪽
본다고 다 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안 보인다고 보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진정으로 보는 것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무심한 눈으로 그저 보이는 것만을 좇고 있는 당신. 당신의 마음은 어디로 향해 있나요? 당신 눈에 비친 저는 어떤 존재인가요? 당신은 나무 키우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하는데, 저를 제대로 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나요?-.쪽
얼마나 괴로울까? 저렇게 많은 돌을 머리에 이고……. 더러는 베개만한 바윗돌을 가슴에 안고 있다.
장난 삼아 던진 것이겠지. 철모르고 한 짓이겠지. 그러나 이건 참 너무 심한 장난이다. 말도 못하고 달아날 수도 없고 대항도 아니하는 약한 자에게 생각 없이 던지는 돌장난.
인간은 풀보다 나무보다 못하다. 보아라, 그 무거운 골병감 돌들을 푸른 잎으로 덮어서 감추고 하늘 우러러 서 있는 학교 울타리 탱자나무를! -이오덕 님, <탱자나무 울타리>-.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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