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골리 단편선
니콜라이 고골리 지음, 오정석 옮김 / 산호와진주 / 2004년 3월
품절


머리를 떨어뜨리고 두 손을 늘어뜨린 채 마치 아주 값비싼 진주를 발견했다가 그것을 바다에 빠뜨리고 만 운수 나쁜 사람처럼, 그는 자기 방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그렇게 신성한 얼굴을 가진 여자가 그런 곳에 살고 있다니? 어떻게 그런 곳에서!"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사실 음탕하고 독성 가득한 숨결을 들이마신 아름다운 여자를 만날 때면 강렬한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된다. 추한 여자라면 몰라도 그처럼 아름다운 미녀가, 우아한 여자가……. 우리의 머리는 아름다운 여자라면 무조건 순수하고 순결하다는 것과 연관짓게 마련이다. 피스카로프를 이토록 매혹시킨 여자는 사실 너무나 아름다웠다.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여자였던 것이다. 또 그런 부류의 여자가 그처럼 비천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여자의 얼굴 생김새는 정말 너무도 맑아서, 그 여자의 아름다운 얼굴 표정은 실로 너무나 고상해 보여서 어떠한 음탕함이 무서운 마수를 여자에게 뻗치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 여자는 정열적인 남편에게는 실로 값진 진주가 될 수 있고, 전 세계가 될 수 있고, 낙원이 되고 또 전 재산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 여자는 남에게 알려지지 않은 가정의 단란함 속에서 아름답고 조용한 별이 되어, 아름다운 입술을 조금만 움직여도 즐거운 명령을 내릴 수 있을 터였다. 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커다란 홀의 모자이크 위에서 촛불의 빛을 듬뿍 받으며, 그녀의 숭배자들이 말없이 경건한 마음으로 발밑에 조아리는 가운데 마치 여신처럼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아! 그러나 그녀는 이 세상의 조화를 망가뜨리려는 악마의 무서운 계략에 의해 비웃음을 받으면서 이 무서운 나락에 내던져진 것이다.-.쪽

여기에서 밝혀 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은, 쉴러의 마누라는 보기에는 꽤 아름다웠지만 실상은 바보스러운 점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아내란 바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법이다. 자기 마누라가 바보인 것은 세상일에 닳지 않은 순수함 때문이라고 여기며 만족해하는 많은 남편들을 나는 알고 있다. 아름다움은 완전한 기적을 낳는 법이다. 아름다운 여자가 갖고 있는 모든 정신적인 결함은 혐오감을 일으키는 대신 어떤 묘한 매력을 불러일으킨다. 결함 그 자체조차도 아름다운 여자에게 있어서는 귀여움으로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럼 여자가 아름답지 않다면? 그런 여자는 사랑 받지 못할 경우 존경을 받기 위해서라도 남자보다 두세 배 현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하튼 쉴러의 아내는 우둔하기는 했지만 자기의 임무에 항상 충실한 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피로고프가 애를 써 봤지만 그의 계획을 성공시키는 것이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일을 극복한다는 것은 언제나 즐거움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에게 금발의 여자는 하루하루 흥미 있는 존재가 되어 갔다.-.쪽

"나를 좀 내버려둬요. 왜 이렇게 사람을 못살게 구는 거요!"
이렇게 말하는 그의 음성과 말투에는 뭔가 이상한 느낌이 있었다. 사람의 동정심을 이끌어 내는 그 무언가 말이다. 어느 땐가 그 관청에 새로 임명돼 왔던 어떤 청년 관리가 다른 친구들과 함께 그를 놀려대다가 갑자기 무엇에 찔리기라도 한 것처럼 마음이 바뀌어 장난을 그만둔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 청년의 눈에는 모든 사물이 갑자기 달라 보였다. 초자연적인 힘이라고 말할 수 있는 어떤 것이 그를 여태까지 교제해 왔던 사람들과 완전히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전까지 그 청년은 그들을 예의 바르고 사교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청년은 그 후 오랫동안 더할 나위 없이 유쾌한 시간을 보내다가도 갑자기 이마가 벗겨지고 키가 작달막한 어떤 관리의 모습을 떠올렸던 것이다. 그 모습과 함께 '나를 좀 내버려두시오. 왜 이렇게 사람을 못살게 구는 거요!'라던, 사람의 마음을 찌르는 듯한 애처로운 말소리가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곤 했다. 이 애처로운 말속에는 '나도 당신들의 형제요!'라는 또 다른 의미가 숨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럴 때면 이 가엾은 청년은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얼굴을 가리곤 했다. 그리고 그 후 평생을 통해 이 청년은 인간의 내면에는 얼마나 비인간적인 요소가 많이 숨겨져 있는가를 눈앞에서 보며 몇 번씩이나 무서운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교양 있고 세련된 상류 사회의 사람들, 심지어 고결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세상의 평가를 받고 있는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 사람들의 내면에도 그런 잔인하기 짝이 없는 거대한 야수성이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을 그는 지켜보았던 것이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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