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떨기 시작한다, 저기 생명이, 삶이 있다, 생명은 내 안에서 방울방울 새어 흐르더니 방 밖으로 흘러나가 작은 웅덩이가 된다, 그리고 나는 생명 없는 빈 껍데기로 남는다, 공기처럼 가벼워진 나는 열려진 창문틀을 꽉 붙잡는다, 그리고 우연히 방으로 날아 들어온 봄 새처럼 탐색의 눈으로 방 안을 둘러본다. 저기, 벽에 커다란 옷장이 서 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여름 옷가지를 내리고 겨울옷을 정리해 넣은 것이 바로 어제였다, 두꺼운 겨울옷을 이제 다시는 겨울이 오지 않기라도 할 것처럼 깊숙이 밀어 넣어버렸다, 언제나 그렇듯 제 방에서부터 문장 하나를 입에 달고 노가가 달려왔다, 아빠 언제 와? 그리고 밥은 언제 먹어요? 아빠는 네가 잠들고 나서야 오실 거야, 그러니까 내일 아침이면 아빠를 볼 수 있단다. 그럼 아빠가 날 학교에 데려다 줄까? 아이는 기대와 기쁨으로 부풀어올랐고 나는 선선히 대꾸했다, 아마 그러시겠지, 며칠 서로 떨어져 있고 나면 그의 부재가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 유일한 틈이었던 것처럼 되어버린다, 마치 그가 돌아오기만 하면 우리 사이의 심연이 저절로 메워지기라도 한다는 듯-.쪽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의 앞에 벗고 서 있다. 도발적인 나신이, 어느 한때 전라의 동물처럼 자연스럽고 당당하던 그 나신이 아니다, 머쓱해하는 듯한 인간의 나신,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는 아름답게 비칠 테지만 그의 눈은 이미 사랑하는 사람의 그것이 아니다, -.쪽
대책 없이 돌아나오며 복도의 계단에 서서 나는 두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아이를 그녀에게서 데려오거나 아니면 계속 그 곁에 두거나, 그 둘 다 끔찍하긴 매한가지였다, 마침내 입양을 주선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심의를 맡은 판사는 내가 왜 그리 오래 이 사건의 결정을 유보해왔는지 오히려 이상하게 여기는 눈치였다. 그녀는 아이를 무척 사랑해요, 그녀와 나를 동시에 변호하기 위해 나는 그렇게 말했다, 사랑을 하고 안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지요, 어떻게 사랑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라고 대꾸하는 판사의 말에 나는 그가 마치 나에 대해, 나와 우디에 대해 말하고 있기라도 한 듯 마음 안 쪽 깊은 곳으로 움츠러들었다, 오랜 세월 나는 스스로를 타일러왔다, 그는 나를 사랑하잖아, 라고, 그러나 그의 사랑의 방식에 대해, 그의 사랑이 나에게 흡족한가에 대해 묻기를 주저해왔다. 답을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이 그 질문 던지기를 주저하게 하던 진짜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너를 사랑하는 남편이 있다는 사실을 기쁘게 생각해, 그런 사랑이라도 아예 없는 것에 비하면 얼마나 다행이야? 라는 말로 나는 스스로 입을 막아왔다,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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