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안도현 / 열림원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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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살, 나도 이 세상에 대해 책임을 좀 지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열일곱 살이 되었을 때 나에게는 책임질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쪽

나는 깜짝 놀랐다.
손끝에 미세하게 양파 냄새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양파는 가슴속에 아무것도 감추고 있지 않으며,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존재였다.
짜장면 속에 들어가서는 자기가 양파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그대로 짜장면 냄새가 되는 게 양파였다. 내 손끝에 남은 양파 냄새도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었다.-.쪽

여러분은 노랑머리로 염색한 중국집 배달원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대로변이나 마을 골목길을 위험하게 질주하는 노랑머리들을 보며 보나마나 미친 놈이군, 하고 증오를 퍼부었거나 아니면 제 부모 속 꽤나 썩이는 놈이겠군, 하고 혀를 차며 동정을 보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좋다. 다만 평소에 여러분이 노랑머리 중국집 배달원에 대해 크게 잘못된 선입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여기서 분명히 말씀드리고 넘어가야겠다. 여러분은 중국집 배달원을 도저히 구제할 수 없는 문제아로 본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말이다.
우리 나라의 모든 중국집 배달원들의 이름을 걸고 말하건대, 그들은 여러분이 걱정하실 만큼 문제적 인간이 아니다. 그걸 증명하기 위해 나는 열일곱 살 무렵에 내가 사귄 중국집 배달원 전부를 모아놓고 그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려줄 수도 있다.
하지만 여러분이 싫어하실 것 같다. 여러분 중 어느 누구도 중국집 배달원들이 한꺼번에 모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모이는 것을 싫어한다. 가령, 어른들이 오토바이 폭주족을 귀찮아하거나 두려워하는 까닭도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 함께 모여 움직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어쨌든 어른들의 말대로 내가 문제아라면 나는 부모 중의 한 분이 계시지 않거나 고아여야 한다. 학교에는 다니지 않고, 다니더라도 밥먹듯이 결석을 해야 하고, 툭하면 친구들하고 싸워 자나깨나 얼굴에 상처 딱지가 앉아 있어야 한다. 씀씀이가 헤퍼서 용돈이 떨어지면 아무런 죄책감 없이 도둑질을 해야 한다. 옷차림이 단정하지 못해야 하고, 긴 손톱 밑에 낀 때를 씻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른들이 거의 광적으로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학교 성적이 형편없어야 한다.
그런데 나야말로 그런 비극적 요소와는 상관없는 아이였다는 게 오히려 비극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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