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랫말 아이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어른을 위한 동화 12
황석영 지음, 김세현 그림 / 문학동네 / 2001년 1월
구판절판


멀리 비행장에서 시동을 거는 프로펠러 소리로 모랫말의 겨울 아침은 시작된다.
잠이 깨어 코까지 둘러썼던 이불 사이로 내다보면, 제일 먼저 성에가 두텁게 낀 유리창이 마주 보였다. 여름에 누나들이 창살에 실을 매주어 타고 오르던 나팔꽃은 시들어 말라버려 바람에 불려서 날아가고, 창문마다 예리한 얼음의 꽃이 매달렸다. 비스듬히 쏟아지는 아침 햇볕에 창문의 귀퉁이가 녹아내리면서 작은 얼음의 입자들은 무수한 빛 조각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어린이 잡지에서 숨은 그림을 찾을 때처럼, 우리는 유리창 위에서 갖가지 동물과 수풀을 보았다. 어느 때는 깊은 바다에서 자라는 음산하고 아름다운 물풀이 가득 피었고, 그 사이의 허공 위에서 뿔 돋친 고기들이 날아다녔다.
겨울날의 모랫말 동네를 떠올리면 비행기가 엔진을 데우느라고 시동을 거는 소리, 두터운 성에의 그림, 만두 파는 소년, 배추 꼬리, 양지 쪽에서 머리의 서캐를 잡는 모녀들, 코크스 줍는 아이들의 기억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른풀에 질러놓던 쥐불놀이로 겨울 풍경이 완전해진다.-.쪽

전쟁이 온 마을과 거리를 휩쓸고 있을 때에는 사람들이 죽건 말건 아직은 두려울 겨를이 없었다. 차츰 산과 들판과 강이나 나무 숲에 대한 눈길이 되살아나고 어느 정도 아이다운 생활이 시작될 무렵에야 우리는 그때를 악몽처럼 깊숙이 간직하고 있는 걸 알아차렸다. 깊은 못에 가라앉은 돌처럼 그것은 묵직했다. 들판 가운데 음산하게 서서 가끔씩 불길한 연기를 뿜어올리는 반쯤 부서진 벽돌 건물은 전쟁 때 그대로였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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