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노한 음성이 회초리로 때리는 것보다 더 나를 아프게 했다. 물을 닦아 내고 깨진 그릇을 치우고 나서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벽에 기대 섰다. 나는 스스로 바싹 마른 옥수숫대 같다고 생각했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 와도 바삭바삭 소리를 낼 것 같았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명이도 미웠다. 내가 자라서 아이를 갖게 되면 큰아이와 작은아이를 똑같이 사랑하리라. 아니야, 아니야, 큰아이를 더욱더 많이 사랑하겠어. 아이들이 싸우면 형을 때리거나 나무라지 않을 테야. 대신에 얄미운 동생들을 혼내 줄 거야.
그런 생각들은 상처받은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무언가를 뭉쳐 놓은 것 같은 덩어리가 가슴 속에서 올라와 목이 메이고 뺨을 타고 내려온 눈물이 입으로 흘러들었다. 고통의 쓴 맛 끝에 향기롭고 달콤한 맛을 주는 눈물이었다. 나는 눈물을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방을 나왔다. 부엌 뒷문으로 해서 뒷마당을 빙 돌고 우물을 지나 방앗간으로 들어갔다. 방앗간에는 멍석, 헌 가마니, 새끼줄 들이 널려 있고 볏짚이 높이 쌓아올려져 있었다. 짚단 틈새에 숨바꼭질할 때 숨으려고 만들어 놓은 비밀 장소가 있었다.
나는 아무도 몰래 실컷 울 장소가 필요했던 것이다. 짚더미 속으로 들어가 자리잡고 앉았으나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거기까지 가는 동안 눈물이 말라 버렸고 슬픔도 날아가 버렸던 것이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슬픈 일을 생각해 내려 애썼다. 억지로라도 눈물을 짜내어 감미로운 기분에 잠겨 보려 했으나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쪽
언니와 형부와 나는 손을 잡고 나란히 수레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몸을 움츠리지 않고 고개를 뒤로 젖힌 듯한 자세로 걷고 있는 언니는 침착하고 으젓해 보였다. 언니에게서 처녀 시절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입술엔 바라던 선물을 가득 안은 아이처럼 만족한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언니는 한 송이 들꽃처럼 부드럽고 다정했으며 출구에서 비쳐 드는 빛처럼 환하고 눈부신 빛을 거느리고 있었다. 나는 알았다. 우리 식구들이 모두 와서 끌어당긴다 해도 언니는 결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을.
그늘 속에 핀 버섯 같은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수많은 여자들이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침울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러한 삶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가슴 뿌듯하게 차오르는 희망을 꼭 움켜쥐었다.-.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