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사는 언제 가나요?" 엄마는 슬픈 목소리로 글로리아 누나에게 말했다. "크리스마스를 지내고 그 다음다음 날부터는 이삿짐을 싸기 시작해야 할 거다." 엄마는 피로에 지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엄마가 몹시 불쌍해 보였다. 엄마는 태어나면서부터 일만 했다. 공장이 들어서던 여섯 살 때부터 일을 했다. 사람들이 엄마를 작업대 위에 올려놓으면 엄마는 쇠붙이를 닦고 훔쳐야만 했다. 너무 어려서 혼자 내려올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위에서 소변을 보았다. 학교에 다녀본 적도 없고 읽는 법을 배운 적도 없었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난 너무 마음이 아파서 내가 커서 시인이 되고 만물박사가 되면 꼭 내 시를 읽어 드리겠다고 맹세했다. 상점의 진열대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층 돋우고 있었다. 진열장 문마다 산타클로스가 그려져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상점들에는 혼잡한 크리스마스 당일을 피해 미리 카드를 사러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난 이번 크리스마스에 하느님의 착한 아기 예수가 내 안에 태어났으면 하고 은근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꼭 착한 예수가 내게 태어나기를. 아무튼 나도 철이 들면 좀 나아질 것 같기도 했다.
=>제제의 마음이 참 이쁜것 같아요.-.쪽
"좋아. 그렇다면 우리 집 식구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잖아. 그런데 왜 아기 예수는 우리한테 잘해 주지 않느냔 말이야? 파울랴베르 댁엘 가 봐. 그 큰 식탁이 먹을 걸로 가득 차 있는 거 봤지? 빌라스보아스네도 마찬가지야. 아다우뚜 루스네는 말할 것도 없고." 나는 그처럼 울상이 된 형을 처음 보았다. "그래서 난 아기 예수가 그냥 보이기 위해서만 가난한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해. 그 다음엔 부자들이 더 소용 있다고 깨달은 거야……. 이런 얘기 그만하자. 내가 한 말은 큰 죄가 될지도 몰라." 형은 풀이 죽어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했다. 고개를 숙이고 막대기만 쓰다듬을 뿐이었다. 있었다. -.쪽
얼마나 슬픈 크리스마스 만찬이었는지 나는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다. 모두들 아무 말없이 음식을 먹었다. 아빠는 빵만 조금 맛보았을 따름이다. 면도도 하지 않았고 자정 미사에도 가지 않았다. 그보다 더 슬픈 일은 아무도 이야기를 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라기보다는 죽음을 슬퍼하는 날 같았다. 아빠는 모자를 집어 들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간다는 말도, 성탄을 축하한다는 말도 없이 슬리퍼를 신은 채 그렇게 나가버렸다. 그래서 남아 있는 사람들도 서로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하지 못한 것 같았다. 진지냐 할머니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으며 에드문두 아저씨에게 돌아가자고 했다. 에드문두 아저씨는 또또까 형과 나에게 오백 헤이스짜리 동전을 주었다. 더 주고 싶었지만 그럴 돈이 없는 것 같았다. 아니면 우리보다는 당신 자식들에게 더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난 아저씨를 껴안아 주었다. 그것이 크리스마스 밤의 유일한 포옹이었다. 아무도 껴안으려고 하지 않았고 덕담도 해주지 않았다. 엄마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숨어서 울고 있는 게 분명했다. 다른 사람들도 울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랄라 누나는 에드문두 아저씨와 진지냐 할머니를 문간까지 배웅했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가는 두 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런 일을 견디시기에는 두 분 다 너무 늙고 지치셨어." 더 슬픈 일은 성당의 밝은 종소리가 밤을 채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폭죽은 하느님이 다른 이들의 행복을 굽어보실 수 있게끔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쪽
저를 놓아주세요, 샘물님 꽃이 울며 말했습니다 나는 산마을에서 태어났어요 나를 바다로 데려가지 마세요 그곳에선 하늘하늘 가지를 흔들었지요 그곳에선 푸른 하늘에서 청초한 이슬 방울이 떨어졌지요 차갑고 명랑한 샘물은 소곤소곤 속삭이듯 모래밭을 달리며 꽃들을 실어 갑니다
글로리아 누나 말이 옳았다. 이런 것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 나는 진정한 삶을 노래하는 시를 보았다고 누나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진정으로 삶을 노래하는 시는 꽃이 아니라 물 위에 떨어져 바다로 떠내려 가는 수많은 이파리들과 같은 것이었다. 이 강도 바다로 흐르는 걸까?-.쪽
"당신한테까지 거짓말하고 싶지 않아요. 정확히는 몰랐어요. 전 뭐든지 들으면 외우거든요. 정말 아름다운 노래였어요. 내용은 생각해 본 적 없었어요. 그런데 아빠는 날 자꾸자꾸 때렸어요. 뽀르뚜가, 걱정 마세요……." 나는 엉엉 울었다. "걱정 마세요. 죽여 버릴 거니까요." "무슨 소릴 그렇게 해. 네 아빠를 죽이겠다고?" "예, 죽일 거예요. 이미 시작했어요. 벅 존스의 권총으로 빵 쏘아 죽이는 그런 건 아니에요. 제 마음속에서 죽이는 거예요. 사랑하기를 그만두는 거죠. 그러면 그 사람은 언젠가 죽어요." "상상력 한번 대단하다, 너."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측은한 마음은 숨기지 못했다. "그런데 넌 나도 죽이겠다고 했잖아?" "처음엔 그랬어요. 그런데 그 다음엔 반대로 죽였어요. 내 마음에 당신이 다시 태어날 수 있게 그렇게 죽였어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어요. 뽀르뚜가, 당신은 내 하나밖에 없는 친구예요. 저한테 딱지랑 음료수랑 케이크랑 구슬 같은 것들을 사 줘서 이러는 건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아니다. 모두가 널 사랑해. 네 어머니나 아버지도. 글로리아 누나와 루이스 왕도 그렇고. 설마 네 라임오렌지나무를 잊은 건 아니겠지? 밍기뉴라고 했나? -.쪽
그 시절, 우리들만의 그 시절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먼 옛날 한 바보 왕자가 제단 앞에 엎드려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물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사랑하는 뽀르뚜가, 저는 너무 일찍 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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