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돼지는 슬프다! 푸른문고 20
린데 폰 카이저링크 지음, 엄영신 그림, 현미정 옮김 / 푸른나무 / 2001년 10월
절판


바퀴는
바퀴 살로 버팁니다.
그러나 정작 바퀴가 구를 수 있는 이유는
살과 살 사이의 빈 공간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흙으로 그릇을 만들지만,
그 그릇을 사용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속이 비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나무를 가지고 집을 만들지만,
그 집에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이유는
그 안이 비어 있기 때문입니다.-.쪽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요

렘스탈 마을에 로자라는 여자아이가 살았다. 아침마다 로자는 이웃 목장으로 우유를 가지러 가곤 했다. 한번은 로자가 가져온 우유 주전자를 식탁에 올려놓았는데, 고양이가 식탁 위로 뛰어 올라 주전자를 엎질렀다. 바로 그 때 로자의 엄마가 문을 열고 나오더니 소리를 질렀다.
"로자, 좀 조심하라니까. 넌 왜 그렇게 칠칠맞지 못하니? 냉큼 행주 가지고 와서 닦아."
로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점심 시간에 로자는 엄마 심부름으로 유치원에 간 동생 토마스를 데리러 갔다. 개구쟁이 토마스는 집에 오면서 웅덩이마다 발을 디디며 장난쳤다. 로자가 그러지 말라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토마스의 바지는 금세 흙탕물로 범벅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문 앞에 선 아빠가 대뜸 야단을 쳤다.
"로자, 동생을 좀 더 잘 돌볼 수 없겠니?"
로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번은 바느질 시간에 장난꾸러기 쿠르트가 선생님이 안 보는 사이에 로자의 바느질 상자를 마구 흩뜨려 놓았다. 마침 선생님이 와서 꾸짖었다.
"로자! 정리를 해 놓지 않으면 빵점을 주겠다."
로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로자는 나이에 비해 작고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다. 친구들은 종종 로자를 놀렸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덩치가 큰 레기네와 에밀이 로자를 떠밀고 도망갔다.
"바보, 멍청이!"-.쪽

로자는 넘어져 스타킹에 구멍이 나고 무릎이 깨졌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엄마는 야단쳤다.
"네 무릎은 저절로 낫겠지만, 스타킹은 어떡할 거니?"
로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토요일 저녁이면, 할머니는 일요일에 먹을 과자를 구웠다. 로자는 할머니를 도와 그 과자를 찬장에 넣어 두었다. 그런데 쥐가 그 과자를 몰래 갉아먹었다. 과자에는 아기 이빨자국 같은 것이 생겼다. 할머니가 다음 날 식탁을 차리다가 그것을 봤다.
"할머니가 어렸을 때는, 몰래 과자를 훔쳐 먹지 않았다."
로자는 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모두 모여 과자와 코코아를 먹고 있을 때, 로자가 갑자기 소리치며 울기 시작했다. 양쪽 코에서 콧물이 줄줄 흘러 내렸다.
그 때 할아버지가 로자를 무릎 위에 앉히고, 코를 닦아 주면서 물었다.
"무슨 일이지, 로자? 이 할애비한테 말해 보렴."
그제서야 로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고양이, 엄마, 토마스, 아빠, 못된 쿠르트, 바느질 상자, 선생님, 레기네와 에밀, 무릎과 스타킹, 쥐, 과자와 할머니. 갑자기 모두들 당황해서 눈을 크게 뜨고 서로를 쳐다보다가 로자에게 일시에 눈길을 돌렸다.
"그럼, 도대체 왜 말 안 했니?"
그러나 그 물음에 로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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