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미남과 여전사 1 - 21세기 남과 여
이명옥 지음 / 노마드북스 / 2006년 7월
품절


남자와 여자가 하나가 되면서 완벽하게 소통하는 순간이 있다.
바로 사랑에 빠질 때이다. 사랑하는 남녀는 기꺼이 자신과 상대의 속성을 맞바꾼다. 남자는 남성을 벗고 여성적 마음과 감성을 입는다. 나비의 촉수처럼 부드럽고 섬세해지면서 스치는 바람에도 눈물을 흘린다. 여자 또한 여성을 벗고 남성적 정신과 행동을 입는다. 등나무 넝쿨처럼 강인하고 용감해지면서 사랑을 위해 목숨도 불사한다. 한마디로 남자에게 여성이, 여자에게 남성이 빙의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 남녀는 모두 사랑에 빠진 것일까? 남자는 여성처럼 감성적이며 여자는 남성처럼 강인해졌으니 말이다.-.쪽

영혼의 자웅동체, 아니마ㆍ아니무스 이론 

다음은 세계적인 정신분석학자 융 박사가 연금술에서 받은 영향을 추적할 순서이다. 평소 융 박사는 신화가 인간에게 내려준 은총인 상상력을 고갈시킨 주범은 경험주의 과학이라고 생각했다. 그로 인해 현대인들은 더 이상 신비를 체험하지 못한 삭막한 영혼을 갖게 되었다고 확신했다. 융은 연금술사들이 그토록 갈구했던 현자의 돌은 자아의 상징이라는 것, 또 우주에는 상반된 두 속성이 있으며, 양극화된 요소들을 결합하면 완전한 존재가 된다는 연금술의 기본 철학과 사상에도 동감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연금술은 융의 인생에 최고의 선물을 안겨주었으니 바로 자신의 심리학적 모델인 아니마, 아니무스 개념의 실마리를 찾은 것이다. 아니마, 아니무스 이론은 융 정신분석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다. 그는 이 독창적인 이론으로 단숨에 정상에 올랐다. 그렇다면 융의 정신분석학적 특허라고 할 수 있는 아니마, 아니무스란 과연 무엇일까? 융에 따르면 인간은 비록 깨닫지 못할지라도 자신의 영혼에 반대 성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남성의 내면에는 여성적 속성이, 여성의 내면에는 남성적 속성이 깃들어 있다. 남성의 내부에 잠재한 여성적인 요소는 아니마, 여성에 내재된 남성적 요소는 아니무스로 부른다. 대체 왜 남자와 여자의 무의식 속에는 아니마, 아니무스라는 다른 성이 자리한 것일까? 바로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부족한 반대 성을 벌충해서 영혼의 균형을 잡으려는 성향을 지녔기 때문이다.-.쪽

따라서 남자와 여자라는 외형적 성별은 단지 겉모습에 불과할 뿐, 영혼은 남녀양성이다. 그럼 먼저 남성 속의 여성인 아니마를 몸 밖으로 불러내보자. 아니마는 긍정과 부정의 두 얼굴을 지녔다. 긍정적인 아니마는 남자의 영혼을 구원하는 이상적인 여인을 가리킨다. 시인 단테의 우상 베아트리체, 괴테 <파우스트>의 여주인공 그레첸,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 등장한 소냐가 바로 긍정적 아니마를 상징하는 여인들이다. 사랑과 구원의 여신 긍정적 아니마는 남성의 불안한 영혼을 이끌어 바람직한 삶의 길로 인도하는 안내자 역할을 한다.

그런 반면 부정적 아니마는 남성을 파멸시키는 나쁜 표 여자이다. 요부와 독부, 악녀 즉 팜므 파탈이다. 부정적 아니마는 남성을 타락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데 세례자 요한의 목을 요구한 살로메, 죽음의 노래로 남성을 홀린 세이렌, 삼손을 배신한 들릴라 등이 부정적이 아니마의 전형이다.
남성은 내부의 여성인 아니마를 잘 다스려야 한다. 긍정적인 아니마와 사이좋게 지내면서 부정적인 아니마와는 즉각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 그런데 만일 남성이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어떤 현상이 생길까? 아니마 콤플렉스라고 부르는 전형적인 일들이 벌어진다.-.쪽

그리스인들은 왜 남자 신들 중 하필 아폴론을 이상적인 남성 누드의 전형으로 선택했을까? 아폴론의 신적 특성이 그리스 국가적 이상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독자들도 익히 알고 있듯 아폴론은 태양과 의술, 궁술의 신이며, 음악과 시를 후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따라서 이 특별한 신은 필연적으로 서구문명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될 숙명을 지녔다. 그리스인들은 만장일치로 아폴론을 완벽한 남자 모델로 찜할 수밖에 없었다.-.쪽

데카당스란 심미적인 퇴폐를 뜻하는 용어이다. 1886년 정기 간행물 <데카당스>는 신조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새 시대의 표상인 남성의 얼굴은 수염이 없고 순결하다. (……) 데카당스들은 완벽한 이상형에 근접한다. 남성은 세련되고 여성화되고 신성화되었다.'
한편 폴 부르제는 <현대인의 심리에 관한 에세이>에서 데카당스의 특성을 염세주의, 진보와 과학의 부정, 보들레르 찬미, 팜므 파탈, 무의식과 꿈의 세계로의 도피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병적일 만큼 예민한 감수성이나 퇴폐, 악덕, 타락의 의미로 사용된다. 당시 유럽 지식인과 예술인들 사이에 데카당스가 크게 유행한 까닭은 무엇일까? 존재에 대한 불안감에, 도덕성은 붕괴하고 마지막 희망인 과학문명마저 기대를 배신했기 때문이다. 현실에 염증을 느낀 예술가들은 신화와 꿈의 세계로 도피해 위안을 얻었다. 남녀양성과 성적 일탈, 사디즘과 마조히즘, 악마주의, 신비주의, 화려한 장식미를 새로운 시대의 미학으로 선포했다. 그러나 데카당스 미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남녀양성이다.-.쪽

초현실주의 여성 미술가 피니의 작품이다.
고양이 같은 여자가 눈을 부릅뜬 채 잠든 남자를 훔쳐본다.
남자의 양 다리는 벌어져 있으며 나뭇잎으로 성기를 가렸다. 잠자는 남자의 누드라. 이는 실로 충격적인 미술의 반전이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누드 작품에서 모델은 여성, 화가는 남성의 차지였기 때문이다.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누드화는 남성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화가도 감상자도, 고객도 남자였기에 누드화의 공식은 '여성은 알몸을 진열하고 남성은 훔쳐본다'였다. 이를 입증하듯 미술사가 존 버거는 저서 <보는 방법>에서 남성은 구경꾼, 여성은 볼거리의 대상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는 누드화가 '남성은 여성의 지배자이며 권력자이며 더 우월하다는 표식이다'며 다양한 사례를 들어 이를 증명했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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