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는 힘이 세다 - 기형도에서 왕가위까지
김용희 지음 / 청동거울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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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우울로 가득 찬 현실 세계에서 영화적 환각을 꿈꾸지 않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영화의 이미지는 현실의 이미지와 매우 흡사해서 우리는 영화 속에서 시뮬라시옹된 자신의 모습을 보곤 한다. 현대인들은 이러한 환각을 쫓으며 살아갈 뿐이다. 검은 빌로드 커튼을 열어 젖히면 그 속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다. 그 어둠 속에서 빛나는 화면이 현대인이 발견한 신세계인 것이다.
현대에 있어 영화라는 문화 매체만큼 영향력 있는 매체는 없을 것이다. 영화라는 가짜 현실이 대중을 설득하고 울게 하고 웃게 하며 대중을 현실 밖으로 이끌어낸다. 이것은 현대 사회의 지배적인 담론인 영화가 대중들의 문화, 역사, 경험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영화가 현실과 문화를 반영하며 현실 속에서 상호작용하는 유기체로서 인식되는 것은 그만큼 영화가 현실 속에서 하나의 힘으로 '확장된 텍스트'임을 보여준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우리는 영화 속에서 현대 문화를 읽고 우리 자신을 독해할 수 있다.-.쪽

가부장적 제도의 남성들은 말없이 곱게 앉아 있는 새색시에게 귀머거리 삼 년, 벙어리 삼 년을 명한다. 그러한 생각 속에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고등한 남성들의 몫이라는 생각이 내포되어 있다.
『삼국유사』에서 유화는 해모수에게 버림받은 후 허락없이 잉태하였다는 이유로 그녀의 아버지인 하백에 의해 입이 석자로 늘려져 쫓겨난다. 알영부인은 다른 데도 아닌 입에 부리를 달고 태어난다. 서양 동화에서 마법에 걸린 오빠의 마법을 풀기 위해 어린 여동생은 침묵 속에서 옷을 짜야만 한다.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 형벌이다. 인어공주는 사랑하는 왕자와 결혼하기 위하여 마녀에게 자신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준다. 여성에게 요구되는 심리적인 인내와 상실은 여성 영화, 동화, 전설에서 매순간 나타나고 있다.
프로이드는 희생의 쾌락이라는 형태의 마조히즘을, 다소 정상적인 여성성의 요인으로 기술한 바 있다. 이때 말하는 정상적인 여성성에는, 성교와 출산에서 생기는 육체적 고통에의 '굴복'과 사회적 열등감에서 나오는 심리적인 수치감에 대한 에로틱한 '굴복'의 개념이 포함된다. 이러한 견해는 여성의 마조히즘이 남성의 자기 방기적이며 돌진하는 특성보다는 양보하고 항복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여성의 마조히즘은 육체적ㆍ심리적 고통에 대해 성공적으로 인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는 상실(꼬리, 가정, 목소리의 상실)과 육체적 고통(걸음을 걸을 때마다 칼날 위를 걷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낀다)이 결합된, 여성으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에서 겪는 고통스러운 요소들을 강조한 작품이다. 여성의 마조히즘은 남성에 의해 부가되어진 여성다움을 이루기 위한 과정인 것이다.-.쪽

그러나 여성에게 언어를 빼앗는 가부장적ㆍ폭력적 억압을 제인 캠피온은 오히려 역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진정한 여성 언어를 건져 올린다. 영화 『피아노』에서 아다의 침묵은 그녀의 선택이다. 그녀는 침묵함으로써 언어의 세계에 대항한다. 크리스테바는 어머니 중심적인 상상계의 담론이 상징언어 속에서는 모순, 파열, 침묵, 부재의 형태로 존재하는 무의식적 혁명세력이 된다고 본다. 영화 속에서 아다는 상징계의 언어를 떠나 피아노로 매개되는 예술에 집착함으로써 현실계에서는 해석될 수 없는 무수한 발화를 투사하고 있다. 피아노의 음감은 현실적이며 물질적인 매체인 언어를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음으로 승화해낸다. 그런 점에서 아다의 굳게 다문 입술, 검은 눈동자, 검은 피아노에서 흘러 나오는 음감은 여성 내면의 침묵의 세계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며 예술적 형상화를 이룩해낸다.-.쪽

1980년대와 1990년대 사이의 프랑스 영화의 새로운 혁명으로 일컬어져 온 것은 바로 '누벨 이마쥬'이다. '누벨 바그'에 비해 통일된 집단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렇게 분류되는 감독들간의 공통된 특징이 뚜렷한 것도 아니다. 그 완성이나 가치에 대해 아직 평가하기 힘든 것이 '누벨 이마쥬'이다. 그 이름 속에 묶여져 있는 대표적 감독으로는 『디바』, 『베티블루』의 장 자크 베네와 『지하철』, 『니키타』, 『그랑부르』, 『레옹』의 뤽 베송 그리고 『소년, 소녀를 만나다』, 『나쁜 피』, 『퐁네프의 연인들』의 레오 까락스를 들 수 있다. 이들 중 뤽 베송은 최근에 『제5원소』란 새로운 영화를 들고 나와 아직 정리될 수 없는 '누벨 이마쥬'의 또 한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 중 범상치 않은 성장 시절부터 뛰어난 영화적 재능까지 무리하게 신화화되어 버린 레오 까락스가 있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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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 2006-08-19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한번 읽어봐야 겟네요

보슬비 2006-08-20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에 대한 책은 아니고요. 대중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책이예요. 그래도 대중문화에 영화가 차지하는 부분이 많아서 60%는 옇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나머지는 광고, 가요,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