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마루 밑 - 눈물이 찔끔 가슴이 두근 005
심상우 지음, 한병호 그림 / 디자인하우스 / 2001년 6월
절판


은별이는 근정전 문 틈으로 옛날에 왕이 앉는 자리였던 옥좌를 들여다보았다. 옥좌 뒤에는 일월오봉산도가 그려진 화려한 병풍이 둘러쳐져 있었다. 해와 달, 산과 강 등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려져 있다는 그 병풍은, 모든 세상을 다스리는 주인이 바로 임금이라는 것을 말해 주는 거였다.
그러나 은별이가 좋아하는 것은 그 병풍이 아니었다. 은별이가 근정전에 올 때마다 꼭 들르는 곳은 따로 있었다.
"히히, 이곳에서 황룡을 볼 수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고나 있을까? 아무리 근정전 앞문에서 올려다보라지, 대들보에 가려진 황룡을 볼 수 있나……."
은별이는 근정전 옆으로 돌아가서 옆문 옆 칸을 통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천장에는 발가락이 일곱 개인 두 마리의 황룡이 꿈틀거리듯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금으로 만들어진 황룡 두 마리는 마치 천장이라도 뚫을 듯한 기세였다.

=> 이 동화의 가장 큰 매력은 경복궁의 숨어있는 매력을 일러준다는거겠지요.-.쪽

붉은 벽돌을 쌓아올려 만든 육각형의 아미산 굴뚝에는 험상궂은 불가사리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불가사리는 쇠를 먹고 불을 잡아먹는다는 전설 속의 동물이었다.
'이런 동물을 굴뚝에 새겨 놓으면 화재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지? 우리 나라 보물 제 811호라…… 아무튼 정말 특이하게 생긴 굴뚝이야.'
은별이는 아미산 굴뚝 옆의 작은 문을 지나, 이번에는 자경전쪽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얼마 가지 않아 소나무, 매화, 국화, 모란꽃 등이 새겨진, 아름답게 치장된 긴 담장이 나타났다. 임금의 어머니나 할머니가 살았다는 자경전의 꽃담장이었다.
자경전 뒤쪽으로 가자 아미산 굴뚝보다 더 크고 화려한 자경전 굴뚝이 나타났다. 이곳에도 역시 아미산 굴뚝처럼 험상궂은 불가사리와 함께, 임금의 어머니나 할머니의 장수를 기원하는 열 가지 동물 모양의 십장생 문양이 아름답게 새겨져 있었다.
은별이는 하찮은 굴뚝 하나에도 정성을 다한 궁궐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다. -.쪽

"여러분, 유네스코 즉,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가 있다는 건 지난 학기 때 배웠지요? 그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 문화 유산 가운데 우리 나라 문화재 중에는 어떤 것이 포함되어 있는지 아는 사람?"
"석굴암이요."
"네, 맞았어요. 그리고 또 뭐가 있지요?"
"종묘요."
"네. 그리고 또?"
"팔만대장경이요."
"경복궁이요."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생각나는 대로 시끄럽게 말하자, 선생님은 빙긋이 웃으며 다시 말을 시작했다.
"석굴암, 종묘, 팔만대장경은 모두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어요. 하지만 이번에 여러분이 조사한 경복궁은 안타깝게도 세계 문화 유산에 포함되지 않았어요. 그 대신 창덕궁이 포함되었지요."
선생님의 말에 은별이는 깜짝 놀랐다. 경복궁이 창덕궁보다 더 크고 오래되어서 당연히 경복궁이 세계 문화 유산에 포함되어 있는 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복궁은 600여 년 전에 세워진 조선의 정궁 즉 으뜸 궁전이면서도 세계 문화 유산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요. 그것은 옛날에 몇 번 궁궐에 불이 나서 모두 새까맣게 타 버린 적이 있었고, 몇십 번의 전쟁을 겪으면서 창덕궁보다도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게다가 한일합방 뒤에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전각이 마구 파괴되어 버렸어요. 지금 남아 있는 경복궁의 전각은 옛날 모습의 10분의 1 정도도 되지 않아요. 오늘날 형체나마 우리가 경복궁을 볼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궁궐을 보존하려는 조상들의 노력 덕분이었어요. 비록 이렇게 수많은 수난을 겪었지만, 우리들은 우리의 아름다운 경복궁을 온전하게 후손들에게 물려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해요. 우리의 문화 유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외부의 침략에도 용감히 맞설 줄 알아야 하겠죠. 알았지요?"-.쪽

"근정전도 그렇고 강녕전이나 교태전을 가 보아도 그렇고, 앞마당에 나무나 꽃이 하나도 없어서 너무 삭막한 느낌이 들어요. 왜 나무나 꽃을 안 심었죠?"
"예부터 우리 나라의 궁궐이나 큰 기와집을 지을 때는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으로 건물을 배치했어. 그런데 이런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 건물 안에 나무를 심으면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있단다. 한자 가운데 '곤(困)'이라는 글자가 있지? 사각형 안에 나무가 들어 있는 글자인데, 이 '곤'이라는 글자는 '곤궁하다'라는 뜻이야. 곤궁하다는 것은 가난하고 궁핍하다는 뜻이잖니. 그래서 네모난 집 한가운데 나무를 심으면 가난해진다고 믿어서 나무를 심지 않았다는 말도 있단다."-.쪽

"그래서 무학대사로도 불리는 자초 스님이 다시 찾은 곳이 한양, 즉 지금의 서울 땅이지. 태조 이성계는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고 백악산 밑, 인왕산 동쪽에 경복궁을 지었어. 그 뒤 몇 년에 걸쳐 330동이 넘는 전각과 부속 건물을 지었지. 처음 정도전이라는 유학자가 왕명을 받들어 궁, 전, 누, 문 등의 이름을 지어 올렸는데,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는구나. '궁궐이란 임금이 정사를 다스리는 곳이요, 사방이 우러러보는 곳이요, 신민들이 다 나아가는 곳이므로 제도를 장엄하게 해서 위엄을 보이고 이름을 아름답게 지어, 보고 듣는 자에게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라고 말야."
"그래서 바로 '경복궁'이라는 이름을 붙인 거군요."
"그렇지. 경복궁에 있는 건물의 위치와 이름 하나하나는 우리 조상들의 수많은 학문과 연구를 통해서 이루어진 거란다. 다리 하나, 돌 조각이 놓인 위치 하나까지도 모두 그 의미가 있었지. 경복궁을 고칠 때마다 그림으로 남겨 둔 자료가 오늘날까지도 전해지고 있단다."
"정말이지 경복궁에 들어간 우리 조상들의 정성이 어마어마했네요."
"그렇지. 당시는 경복궁으로 들어가거나 나오는 성문도 네 개나 있었단다. 동쪽에는 건춘문, 서쪽에는 영추문, 남쪽에는 광화문, 북쪽에는 신무문 등이 있었지. 그리고 왕과 가족들이 살고 있는 전각이며 그들을 모시고 있는 궁녀와 내관들의 처소만 해도 아주 많았어. 그러다가 명종 임금 때 큰 불이 나서 근정전만 남고는 거의 다 타 버렸단다."-.쪽

"으? 경복궁이 몽땅요?"
"그래. 그때 강녕전, 사정전, 흠경각이 불에 타고 왕실의 귀중한 보물과 책, 왕과 왕비의 옷들마저 다 타 버렸다는구나. 명종은 이듬해 봄부터 불탄 경복궁 건물을 다시 세우기 시작했어. 그런데 경복궁의 수난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단다. 명종의 뒤를 이은 선조 임금 때인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일본의 왜병들이 경복궁을 또 불태웠어. 참 안타까운 일이지. 그래서 그 뒤부터 경복궁은 무려 273년 동안이나 버려진 궁궐이 되었단다."
은별이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럼 경복궁은 언제 다시 지은 거죠?"
"선조 임금이나 훨씬 뒤의 임금인 현종, 숙종, 영조 임금 등이 경복궁을 새롭게 지으려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구나. 조정 대신들이나 백성들 사이에서 경복궁의 터가 좋지 않다는 소문이 돌았대. 하는 수 없이 임금들은 경복궁 곁에 있는 창덕궁을 대궐로 대신 사용하고 있었지. 그러다가 고종 임금 때인 1865년에, 임금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새롭게 세워 1868년부터 다시 왕궁으로 쓰였단다. 지금부터 약 130년 전의 일이구나.-.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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