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행 - 겁 없는 아줌마가 중국에서 좌충우돌 부딪치며 담아온 생생한 중국 이야기
박성란 지음 / 태동출판사 / 2003년 10월
절판


민석이는 불쌍한 할머니나 할아버지 거지를 보면 한국의 할머니들이 생각난다고 잔돈을 슬쩍 그릇에 던져 넣기도 했다.
그런데 한번은 민석이가 1위안을 거지에게 주는 것을 보고 옆에 있던 루어와 장번이 얼마나 크게 놀라는지, 나는 민석이가 무슨 잘못을 크게 한 줄 알았다.
그들은 너무나 큰 액수를 거지에게 주었다는 것이었다. 1위안은 공공버스를 한 번 탈 수 있는 작은 돈이지만, 거지들에겐 일주일 정도를 먹을 것 걱정하지 않고 지낼 수 있는 큰돈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뜨끔했다. 넉넉한 나라에서 온 너희들이지만 이곳에선 이곳의 경제 개념으로 살아야 하고 돈이 좀 있다고 해서 거만하게 굴지 말라는 경고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좀 못 산다고 해서 우리가 우쭐댈 이유는 없다는 교훈을 얻은 날이었다.-.쪽

제일 먼저 여행지로 선택한 곳이 산시성 북쪽에 위치한 다퉁(大同)이었다. 다퉁으로 가는 길 중간에 우리는 현공사(顯空寺)에 들렀다. 회오리 모래바람을 뚫고 도착한 현공사는 듣던 대로 '하늘에 달아놓은 절'이었다. 깎아놓은 듯한 절벽에 마치 거미집처럼 매달려 있는 절을 보니, 도대체 사람의 힘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가이드가 하는 말인즉, 사람의 힘이 아닌 종교의 힘으로 지어진 절이란다. 천 년이 넘는 세월을 벼랑 끝에 묵묵히 매달려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위대해 보였던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 감탄은 다퉁의 운강석굴(雲崗石窟) 앞에까지 이어졌다. 중국의 3대 석굴 중 하나라는 운강석굴의 위세 앞에서 나는 그만 기가 죽고 말았다. 같이 간 가이드가 석굴의 역사와 규모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지만, 내 귀에는 그 말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이 거대한 석불들을 보고 있다는 행복감만이 나를 감싸 안았다. 그렇게 날 놓아두었으면 했다.
옛날 통치자들이 몽매한 백성들을 통치하는 수단으로 삼기 위해 종교의 힘을 빌려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유적을 탄생시켰고, 그로 인해 무고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사실도 애써 외면하고 싶었다. 이전에도 여행객으로 두어 번 중국을 다녀갔지만 나를 이렇게 압도하는 기운은 운강석굴이 처음이다.

=>현공사는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네요.-.쪽

타이위엔은 날씨가 건조해서 새콤달콤한 음식을 많이 먹는다. 실제로 산시성 사람들은 '츄(醋)'라고 부르는 식초를 거의 모든 음식에 습관처럼 넣어 먹거나 간장처럼 찍어 먹는다. '자오즈(餃子)'라고 하는 만두를 먹을 때나 국수를 먹을 때도 츄는 어김없이 나온다.
산시성에 전해 내려오는 구전설화 중 츄에 관한 것이 있다.
총애하는 신하가 첩 없이 본처하고만 살자, 그것을 안쓰러워하던 황제가 신하에게 첩을 둘 것을 권했다. 신하는 아내 때문 에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황제는 부인을 불러서 남편에게 첩을 두게 하든지, 아니면 츄를 한 바가지 마시든지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그 아내는 츄를 한 바가지 마셨다고 한다.
그래서 츄는 '먹는다'고 하지 않고 '마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은유적으로 쓸 때는 '질투'의 뜻이 담겨 있다고도 한다.-.쪽

또 한번은 회교도가 운영하는 음식점에 갔다가 망신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조 선생 부인이 아이들에게 주려고 김치와 김밥을 가져왔는데, 종업원이 이걸 보고 기겁을 하며 놀라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김밥 속에 들은 햄 때문이었다. 회교도들은 전통적으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풍습이 있어서 돼지고기로 만든 햄을 보고는 먹지 못하게 한 것이었다. 그리고 신성한 식탁에 올려놓지도 못하게 해서 보관시켰다가 집에 갈 때 가져간 일이 있었다.
회교를 믿는 소수 민족들은 돼지고기를 먹다가 들킨 아이들에게 부모가 바늘로 입가를 찌르는 벌을 준다고 한다. 심한 경우는 식당에서 대화 중에 돼지고기 예찬론을 펴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방장이 칼을 들고 나와 덤비는 바람에 혼비백산했다는 얘기도 있다.

말이 나온 김에 산시성의 국수 이야기도 하고 가자.
산시성은 밀을 많이 재배하기 때문에 국수가 유명한 곳이다. 길거리 곳곳에선 국수를 만들어 파는데, 만드는 기술이 거의 묘기에 가깝다. 우리나라에서 손으로 반죽을 때려 만드는 수타면의 기술은 이곳 기술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펄펄 끓는 솥을 멀리에 두고 길게 늘어뜨린 국수를 솥으로 던지는 라미엔(拉麵), 커다란 칼로 반죽을 깎아서 만드는 버들잎처럼 생긴 다오샤오미엔(刀削麵) 등 만드는 모양에 따라서 200여 가지가 된다. 일반 집에서 배부르게 먹는 것은 토마토를 넣어 끓인 국물에 면을 비벼먹는 시홍쓰(西紅枾) 국수이다.
주식으로 밥을 먹지 않고 국수를 먹는다고 하니, 면의 발달이 어떠한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쪽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토요일 오후에 집으로 간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교라서 토요일 오후가 되면 교문 앞은 차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자동차의 행렬이 큰 도로에서부터 교문 앞까지 300미터도 넘게 줄줄이 이어진다. 학교 버스가 시내까지 태워주기도 하지만 극성스런 부모들이 아이들을 직접 데리러 오는 것이다.
알다시피 중국에서는 자녀를 하나만 낳아 기르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그래서 아이에게 쏟는 정성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남양국제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대부분 부유층 아이들이라서 기사 달린 고급 승용차로 아이들을 '모셔가곤' 한다. 토요일 오후에 교문 앞을 나가보면 마치 외제 승용차 전시장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경제적으로 아직 후진국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국 땅이라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부유층에 대한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상당히 심각해 보인다. 이 학교 선생님 한 분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아이를 같은 학교에 다니게 하고는 있지만, 아이들의 생각이 비뚤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전학을 고려하고 있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자신만 특별하다는 일종의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아이 한 명을 낳으면 최소한 여섯 명의 식구가 아이를 감싸고 정성 들여 보살핀다. 아이의 부모,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까지 말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버릇이 없을 뿐 아니라 자기만 아는 이기심 많은 아이가 된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아이에게 '샤오황띠(小皇帝)'라는 별명을 붙였을까?-.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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