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르수 우잘라 - 시베리아 우수리 강변의 숲이 된 사람
블라디미르 클라우디에비치 아르세니에프 지음, 김욱 옮김 / 갈라파고스 / 2005년 11월
품절


"다른 슈거들이 여기까지 찾아오면 그땐 어떻게 할 작정이죠?" 내가 물어보았다.
"다른 곳을 또 찾아봐야겠지. 우린 집을 튼튼하게 짓지 않아. 애초에 한곳에서 5년 이상 살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지."
"그럼 또 헛수고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이렇게 계속 떠돌다간……."
"헛수고는 아니지. 집과 땅은 나중에 오는 자들에게 팔아버리면 돼."
"그래도 그때마다 경작할 땅을 다시 갈아야 되잖아요? 돈도 돈이지만 힘도 많이 들 것 같고요."
"우리에게는 많은 땅이 필요하지 않아요." 옆에 있던 젊은 구 신도가 대꾸했다. 이번에는 노인이 나섰다.
"여름을 버틸 수 있는 빵만 있으면 충분해. 우린 주로 사냥을 하는데, 오두막을 떠나 아주 먼 곳까지 가지. 검은담비에 대해 우리만큼 잘 아는 사람들도 없고. 물론 사냥말고도 할 일이 많아."
"주로 어떤 일이죠?" 내가 다시 물어보았다.
"그야 한두 가지가 아니지." 노인이 싱겁게 웃으며 대답했다.-.쪽

"땅을 갈 때는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돼. 필요한 만큼 조금씩 갈아야지. 그래야 땅도 많은 것을 주거든. 여긴 그럭저럭 지낼 만할 것 같은데, 그저 다른 무리가 오지만 않으면 좋겠어. 우린 부자가 될 생각도 없어. 금도 싫고, 좋은 옷도 필요 없어. 그냥 우리끼리 아이들 키우며 살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해. 새로운 땅은 돈을 요구하지 않지. 마음 내키는 대로 고르면 되니까. 한번 둘러보라구. 땅은 끝도 없어. 물고기도 얼마든지 있고. 사냥할 짐승도 많고 집 짓는 데 쓸 나무도 충분해. 게으름만 안 피우면 어디서든 살 수 있어. 먹을 만큼 뿌리고, 거둘 수 있는 만큼 거두면 어디서든 아이들을 키울 수 있지."
실제로 많은 중국인들이 지기트 만에 살고 있었고, 다들 도회지 사람들보다 행복해 보였다. 이 아름다운 대지에 적응하지 못하는 부류는 러시아에서 온 이민자들뿐이었다. 그들은 정부의 지원과 보호를 받는데도 항상 가난하고 무질서한 삶을 살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구 신도의 견해는 정확했다. 문제는 환경을 자신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을 환경에 맞추는 데 있다.-.쪽

유럽살쾡이는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짐승이다. 녀석들은 주로 바위틈이나 깊고 어두운 수풀에서 산다. 조심성이 많지만, 위험이 닥쳤다고 판단되면 맹수로 돌변한다. 그동안 많은 사냥꾼들이 살쾡이를 새끼 때부터 길들이려고 애써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유럽살쾡이는 아무리 새끼 때 잡아오더라도 결코 사람의 방식대로 길들여지지 않는 독특한 습성을 타고났다.

=> 사람들은 야생을 그대로 두지 않고 왜 그리도 길들이려하는지...-.쪽

서쪽 하늘에 드문드문 남아 있던 노을의 자취도 완전히 사라지자, 주위는 다시 어둠에 잠겼다. 그곳에서 전기기상학과 관련한 무척 재미난 현상이 관찰되었다. 어둠 너머로 보이는 바다와 은하가 똑같은 색으로 빛났던 것이다. 파도 역시 근래 들어 제일 조용한 것 같았다. 잔물결조차 일렁이지 않았다. 해변을 차분히 어루만지는 파도에서 희미한 빛이 보였다. 가끔은 바닷물결이 거대한 은하수처럼 보이기도 했다. 바닷물결의 섬광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번뜩였다. 수평선 너머까지 은하수가 이어진 것처럼 아름답게 빛났다. 우리는 그토록 멋진 광경을 구경하느라 밤 늦게서야 잠이 들었다.-.쪽

저녁 늦게 일기를 썼다. 데르수는 사슴고기를 꼬치에 꿰어 모닥불에 굽고 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 고기조각을 모닥불에 던져넣었다. 그러자 또 데르수가 불에서 끄집어내 집밖으로 던졌다.
"대장, 아까운 고기 왜 버려?" 데르수가 나무랐다. "우리 내일 떠나. 여기 딴 사람 와. 그리고 먹어. 근데 대장 불에 던졌어, 고기 없어졌어."
"여기에 우리말고 누가 또 온다는 거야?" 나는 데르수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누구 오는지 모르나, 대장?" 데르수는 깜짝 놀랐다. "너구리 와. 오소리 와……. 까마귀도 와. 까마귀 없으면 쥐 와. 쥐 없으면 개미 와. 타이가엔 '사람' 많이 산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잘 알았다. 데르수는 개미 같은 작은 곤충도 늘 염려했다. 그는 타이가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을 친구로서 사랑했다.
조금씩 달이 기울어갔다. 데르수가 먼저 꾸벅꾸벅 졸았다. 나는 수첩을 정리한 후 모포를 둘렀다. 금세 잠이 왔다.-.쪽

저녁을 먹은 병사들이 이런저런 괴담을 주고받았다. 서로 유령을 만났다며 자신들의 경험담도 털어놓았다.
병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봤다. 이른바 문명인들은 자신의 세계에 존재하는 악마는 인정하면서도 토착민들이 두려워하는 악마는 믿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신들의 악마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지만, 토착민들의 악마는 번개와 같은 자연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종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문명인은 토착민의 신앙이 아니라 신앙의 대상을 문제삼는다. 우리가 야만인으로 규정한 우데헤들은 다른 종교에 대해 유럽인보다 훨씬 너그럽다. 오히려 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한다. 우데헤들은 결코 타인의 신앙을 경멸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각자의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듯, 삶에 영향을 미치는 신앙도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데르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여태껏 러시아 인이나 중국인의 신앙을 궁금해한 적이 없다. 자신이 중국인과 러시아 인의 삶을 이해할 수 없듯이, 그 신앙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병사들이 여러 가지 괴이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데르수는 담뱃대를 문 채 잠자코 듣기만 했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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