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와 아줌마 사이
야마다 구니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큰나무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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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헝겊조각 위로는 단련을 거쳐 둘로 갈라진 복근이 좌우대칭으로 배치돼 있고, 좀 더 위로는 두툼한 가슴팍이 펼쳐진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연상시키는 멋들어진 역삼각형의 육체다. 오랫동안 물과 싸워 온 성과일까, 체모는 한없이 부드럽고 피부는 유리창으로 비치는 햇살에 반짝반짝 빛을 반사하고 있다.
수영선수였던 남편도 젊은 시절에는 이런 육체를 갖고 있었을 텐데, 하고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이미 기억은 낡다. 지금은 불룩한 배가 허리띠 위에 얹혀 있는 전형적인 중년비만형 남편의 몸매가 18년 전에 어땠는지 평소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그 시절에는 나 역시 젊었다. 젊은 여자가 젊은 남자의 몸에 일일이 '젊고 싱싱한 몸'이라고 감탄할 리 없다.-.쪽

맞선을 보고 내가 도시오 씨에게 품은 첫 감상은 이랬다.
제법 뭘 아는 사람이네.
제라늄은 나의 꿈이었다. 내가 그리는 나의 모습을 상징하는 꽃이었다.
처음 이 꽃을 받았을 때부터, 나는 제라늄의 이동성을 동경했는지도 모르겠다.
제라늄은 어디든 쉬 이동하여 그 땅에 뿌리내린다. 그렇게 이동한 곳에서도 누군가 조금만 애정을 쏟고 손질해 주면 무럭무럭 자라 예쁜 꽃을 피우고,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며 산다.
그에 비하면 인간은 어떤가. 아니, 나는 어떤가.
나는 이 좁은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36년이란 긴 세월 동안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꼼짝하지 않는다. 그럴 만한 기회를 놓쳤는지, 기회 따위 애당초 없었는지, 결국 결혼도 못 하고 이사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혼자 독립한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이 스가모란 땅에서 답답함에 시달리고 있다. 바깥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하는 마음은 굴뚝같은데, 결혼은커녕, 눈에 보이지 않는 얇은 막을 주위에 쳐놓고 그 너머와 교류하는 일마저 주저하고 있다.-.쪽

메일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인 반면 하루라도 답장이 늦어지면 답답하고 짜증이 난다. 편지 같으면 한 일 주일이나 열흘 답장이 오지 않아도, 아니 끝내 답장이 오지 않는 경우에도 그럭저럭 포기가 된다.
어쩌면 편지가 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답장을 부치러 나갈 틈이 없는지도 모른다, 하고 말이다. 하지만 메일은 그렇지 않다. '왜 이렇게 대답이 늦는 거지' 하고 안달하게 된다. 메일이 수신되었는지도 확인할 수 있고, 집에서 컴퓨터로 답장을 쓰면 그만이니까 부치러 나갈 틈이 없다는 변명도 성립하지 않는다. 답장을 기다리는 초조함, 그건 정말이지 건강에 좋지 않다. 그것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고통이었다.-.쪽

원래부터 혼자 사는 방에서 혼자 지내는 것하고, 둘이서 살기 위한 집에서 혼자 지내는 것하고는 의미가 다르다. 정적의 스케일이 다르다. 고독도 그 수치가 전혀 다르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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