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법이다. 카프카에게는 법에 이르는 법정이란 무고한 사람들을 구속하고, 사람들을 억울하게 소송에 빠져들게 하는 혐오스럽고 부패한 강력한 조직일 뿐이다. 법정은 처형이며 즉결재판이다. 피고는 『소송』에서와 같이 개처럼 죽을 뿐이다. 카프카는 법정을 비판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있으나, 이는 작가의 몫이 아니다. 카프카 작품에는 법이 자주 등장한다. 해석자들은 카프카 작품에 나오는 법을 신의 명령, 신적 세계질서, 인간본성, 인간내부에 있는 파괴할 수 없는 것, 발전된 윤리체계, 정신세계의 빛, 자연법, 처벌하고 감시하는 명령체계, 계급 이데올로기 등으로 설명한다. 또한 노장사상의 도와 일치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카프카의 법은 법에 불과하다. 이러한 법을 카프카는 찬양하지 않는다. 해석자들은 카프카가 마치 법을 대단하게 보는 것으로 착각한다. 카프카가 생전에 출판하지 않아 사후에 유고집에 수록된 단편인 「법에 대한 의문」은 소설이 아니라 하나의 논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글은 당시에 풍미한 역사 법학파나 실정법학파에 대한 비판이자, 이러한 학설들을 넘어 법과 법률가 자체에 대한 비판이다. 즉 법이, 권력이 그런 소수에게 독점되어 있음을 비판한다.-.쪽
「법 앞에서」처럼 우리는 그것에 가까이 갈 수 없다 (『변신』, 554쪽). 그러나 사람들은 소수를 인정한다. 따라서 이 글은 국가권력에 대한 신봉과 정치적 미숙에 대한 풍자이자, 자신들의 지배를 합법화시킬 수 없는 권력을 공격하는 글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소설 『소송』을 문자 그대로 소송이 상징하는 권력에 대한 소설로 본다. 물론 법이란 카프카에게 권력의 일부에 불과했다. 따라서 법은 사회, 체제, 질서 자체를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카프카는 권력에 절망하고 그것을 투명하게 묘사하여 전복을 꿈꾸었다. 카프카의 작품에는 법정이 자주 등장한다. 카프카는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에서 부자관계를 소송에 비유한다. 여러 단편이나 편지에서도 그런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흔히 카프카의 장편소설 『소송』, 『실종자Der Verschollene』, 『성』을 카프카의 '고독의 3부작'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제 나는 '법의 3부작', '권력의 3부작' 또는 '저항의 3부작', 아니 '권력에 대한 투쟁의 3부작'이라고 부른다. 카프카의 다른 작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니 카프카의 삶을 그렇게 부른다. "카프카, 권력과 싸우다"라고.-.쪽
소수적인 문학 '소수적인 문학'이란 들뢰즈와 가타리가 카프카 문학에 붙인 것이나 더 광범하게는 프라하에서의 유태인 문학을 말한다(들뢰즈,『카프카-소수적인 문학을 위하여』, 43쪽). 그 특징은 첫째, '높은 탈영토화에 의한 언어의 변용'이라고 한다. 탈영토화란 기왕의 어떤 영토를 떠나는 것으로서 프라하의 유태인들은 프라하의 다수 사회에서 떠난 상태로 역시 자신들의 언어가 아닌 독일어를 사용한다는 점을 뜻한다(같은 책, 44쪽). 둘째 특징은 모든 것이 정치적이라는 점이다. 즉 카프카의 작품에 나타나는 가족 삼각형(부-모-자)이 그 의미를 규정하는 상업적, 경제적, 관료적, 법적, 민족적(독일인-체코인-유태인) 등의 다른 삼각형과 결부되어 정치성을 갖는다는 것이다(같은 책, 45쪽). 마지막 세 번째 특징은 모든 것이 집합적 또는 혁명적인 가치나 의미를 지닌다는 점이다. 카프카는 "문학이란 문학사의 문제라기 보다도 민중의 문제이다"라고 말했다(1911년 12월 25일 일기, 같은 책, 46쪽 재인용). 그래서 카프카 작품에는 언제나 개별 주체가 아닌 집단이 등장한다고 본다(같은 책, 47쪽). 이런 상황에서 쓰여지는 '소수적 문학'은 마이링크나 브로트처럼 독일어를 인위적으로 더욱 풍부하게 방법인 상징주의, 몽환주의, 신비주의 등을 택하기도 하나 이는 "민중과의 절연을 더욱 강화했고, 오직 '시온의 꿈'으로서 시오니즘 안에서만 정치적 출구를 발견할 수 있을 뿐이었다"고 들뢰즈는 설명한다.-.쪽
반면 카프카는 "독일어를 있는 그대로, 심지어 그 빈곤한 그대로 선택한다"고 한다. "간결함을 통해서 탈영토화를 향해 언제나 더욱더 멀리 나아가는 것이다(같은 책, 49쪽)"라는 점에서 들뢰즈는 앞의 바겐바하와 달리 카프카의 특수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러한 탈영토화가 카프카의 동시대인 예컨대 아인슈타인의 우주에 대한 표상의 탈영토화, 쉔베르크, 베베른, 베르크 등 빈 악파의 12음주의, 표현주의 영화, 정신분석학, 프라하 언어학 등에도 나타난다고 지적한다(같은 책, 63쪽). 이어 들뢰즈와 가타리는 "소수적이지 않은 위대한 문학이나 혁명적 문학은 없다"고 하며(같은 책, 67쪽), 민중문학,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모범으로 카프카를 제시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최근 모레티는 카프카가 표준 독일어를 사용했다는 이유 등으로 카프카가 결코 '소수적이지'않았다고 말하나, 이는 카프카를 전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탓이리라.-.쪽
카프카의 독서 편력 여하튼 우리는 카프카에게 미쳤던 중요한 영향으로 독서를 다시금 강조할 필요가 있다. 바겐바하 같은 이들이 전혀 주의를 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홀로 문학을 한 카프카에게는 독서 이상의 스승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이점을 더욱 중시해야 한다고 본다. 카프카는 책을 사랑했다. 손으로 책을 만지는 것은 물론, 책방에서 책 구경을 하는 것도 즐겼다(『사랑의 형이상학』, 79쪽(1910년 9월 3일자 일기)). 카프카는 독서 클럽의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 적은 없으나 골목의 구석진 서점 찾기를 가장 좋아했고 언제나 도서 목록을 뒤져 사치스러울 정도로 많은 책을 사서 읽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책 선물하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수집가로서 진귀한 책을 찾는 취미는 질색이었다. 독서에 대한 카프카의 철학을 알기 위해 앞에서도 인용한 카프카의 편지글을 다시 읽어보자.
나는 오로지 꽉 물거나 쿡쿡 찌르는 책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읽는 책이 단 한 주먹으로 정수리를 갈겨 우리를 각성시키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책을 읽겠는가? 자네 말대로 책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도록? 맙소사. 책을 읽어 행복할 수 있다면 책이 없어도 마찬가지로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책이라면 아쉬운 대로 우리 자신이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필요로 하는 책이란 우리를 몹시 고통스럽게 해주는 불행처럼,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처럼, 우리가 모든 사람을 떠나 인적 없는 숲 속으로 추방당한 것처럼, 자살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책이다. 한 권의 책은 우리들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이어야만 한다(바겐바하,『카프카』, 51-52쪽 재인용). -.쪽
앞에서도 말했듯이 카프카의 독서 편력은 유년시대의 동화로 시작되어 곧 이어 아동문학의 고전, 즉 파란만장한 모험소설과 탐정소설 및 탐험기로 코난 도일의 홈즈, 제임스 쿠버, 줄 베르느 그리고 농민소설 함순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는 끝없이 넓어졌다. 그러나 카프카의 독서는 흔히 나이에 따라 구별되는 것이 아니었다. 예컨대 카프카는 열 일곱 살에 니체를 읽고 마흔 살이 되어서도 동화나 소년 잡지를 읽었다. 카프카에게 독서는 마약이었다. 평생에 걸쳐 고뇌의 해독제로 복용했다. 그러나 카프카의 아편과도 같은 독서에 열중은 카프카만의 일이 아니라, 당대 유태인 청소년이나 지식인의 일상이었다고도 볼 수 있으리라. 결국 그런 지적 분위기에서 카프카 문학은 탄생한 것이었다. 그런 지적 분위기가 없는 사회에서는 어떤 문학도, 예술도, 학문도 있을 수 없다. 브로트는 카프카가 젊은 시절 좋아한 작가들을 열거한 바 있다. 즉 괴테, 토마스 만, 헤세, 플로베르, 그리고 19세기 독일의 헵벨, 폰타네, 슈딥터였다. 물론 이는 브로트가 나이가 들어 기억한 것이니 부정확할 수 있다. 대체로 카프카는 초기에 플로베르, 호프만슈탈, 디킨스, 도스토예프스키, 이어 후기에 괴테, 클라이스트, 키에르케고르를 좋아했다.-.쪽
1924년 6월 3일, 카프카는 죽었다. 카프카의 마지막 말은 이러했다. "나를 죽여다오, 아니면 너는 살인자다."-.쪽
. 나는 카프카를 아나키스트 작가라고 규정한다. 카프카는 예술의 사회적 의의와 국가의 포위를 명백하게 인식했다. 야누흐에게 카프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술가는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인간에게 다른 눈을 주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작가란 본래 국가의 위험한 요소입니다. 왜냐하면 작가들은 변혁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국가와 그의 모든 충복들은 그대로의 지속만을 원하고 있지요(『카프카와의 대화』, 183쪽).-.쪽
. 나는 카프카를 아나키스트 작가라고 규정한다. 카프카는 예술의 사회적 의의와 국가의 포위를 명백하게 인식했다. 야누흐에게 카프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술가는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인간에게 다른 눈을 주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작가란 본래 국가의 위험한 요소입니다. 왜냐하면 작가들은 변혁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국가와 그의 모든 충복들은 그대로의 지속만을 원하고 있지요(『카프카와의 대화』, 183쪽).
카프카는 사회주의에 공감했으면서도 사회주의자들을 믿지는 않았다. 혁명이 일어나도 결국은 국가에 관료제에 지배된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카프카의 모든 작품은 거대한 국가에 짓눌린 인간의 고뇌를 표출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카프카는 인간이란 병들고 힘없는 존재로 그런 인간을 둘러싼 세계는 두렵고 변할 수 없는 것이라는 허무주의를 견지했다. 카프카는 인간성의 타락, 이성의 말살, 보편적 진보에 대한 부정을 공감했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변신』이다. 그러나 카프카는 『아메리카』와 같은 작품에서 권력자와 권력자에 복종하는 하층민을 대비하고, 하층민에게 지지를 보였다. 『아메리카』를 쓸 무렵 카프카는 자신이 고용된 보험회사에 임금을 인상해 달라는 탄원서를 작성했다. 노사분쟁은 그 시대에 가장 보편적인 사회현상이기도 했다.-.쪽
카프카가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소외를 가장 절실하게 그려낸 작가로 이해하는 데에는 누구나 찬성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법을 비롯한 모든 외계와 단절되고 얼굴 없는 관료적 메커니즘의 지배를 받는다. 카프카는 야누흐에게 산업의 능률주의와 분업제는 노예화 이상의 문제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런 폭력적인 불법을 행하게 되면 결국에는 악에 의한 노예화밖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뻔한 사실입니다. 모든 창조물의 가장 숭고하고, 가장 범해서는 안 되는 부분인 시간이 불순한 기업적 이해의 그물 속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창조물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창조물의 구성요소가 되는 인간이 멸시와 욕을 보게 됩니다. 이런 능률화된 생활이란 소름이 끼치는 저주로서 여기서는 갈망했던 부와 이득 대신에 기아와 비참만이 생겨날 수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세계의 멸망으로의 진전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적어도 확신을 가지고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만, 확신은 조금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저 소리나 지르고, 더듬거리고, 헐떡거릴 수 있을 뿐입니다. 생활의 무한궤도가 인간을 어딘가로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인간은 생물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사물이고 물건인 것입니다 (『카프카와의 대화』 , 150쪽).-.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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