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열린 땅 티베트.타클라마칸 기행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여행 1
서화동 글.사진 / 은행나무 / 2006년 6월
품절


다시 길을 따라 3km쯤 올라가자 왼편 야산 언덕에 독수리 500여 마리가 떼 지어 앉아 있다. 이들 중 일부는 도끼를 든 사람이 잘라주는 '고기'를 받아먹느라 머리를 한껏 도끼 앞에 들이민다. 도끼를 든 라마승 두 사람이 '훠이, 훠이' 소리치며 쫓아내도 다시 모여들고 금세 먹이 다툼을 벌인다. 도끼를 든 사람은 독수리가 먹기 좋게 '고기'를 잘게 자르고 부숴 던져준다. 그때마다 독수리들은 날개를 퍼덕거리며 먹이를 낚아채느라 부산하다. 이 독수리들이 이렇듯 다툼을 벌이며 먹는 것은 바로 죽은 사람의 '몸'이다.

끔찍하다. 아무리 이곳의 전통적인 장례 방식이라지만 사자死者의 육신을 저렇게 참혹하게 다룰 수 있을까. 사람이 사람의 몸을 부수고 쪼개는 장면을 직접 보게 될 줄이야……. '문화 상대주의'라는 말로도 얼른 스스로를 추스르기 어렵다. 하지만 이것은 장족의 오랜 장례문화인 천장天葬이다. 조장鳥葬이라고도 하는 천장은 사자의 시신을 산에 뿌려 신성한 새인 독수리의 먹이가 되게 함으로써 바로 승천하거나 부귀한 집안에 다시 태어나게 하는 장례의식이다. 장족의 눈에는 독수리가 신성한 새이기 때문에 독수리를 통해 죽은 이가 천계로 들어간다고 믿는 것이다. 또한 불교의 윤회사상에 따라 육체는 없어져도 영혼은 없어지지 않으며 육체를 보시함으로써 영혼이 해탈을 얻는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무서운 풍습같지만 그들의 문화를 탄압하려하기보다는 이해해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쪽

무릇 종교란 이런 것이다.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한 이후 티베트의 사찰이 이처럼 퇴락하고 승려들을 관광산업을 위한 부속품으로 전락시키고 있지만 사람들의 마음속까지 바꿔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모든 것을 다 바쳐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 단 한 번이라도 성스러운 사찰을 참배해야 업을 씻고 다음 생에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고 믿으며 자신을 기꺼이 내놓는 그 정성이 모여 티베트 불교를 만들고 지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강고한 티베트 불교도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인구의 대부분이 불교신자이던 예전과 달리 한족이 대거 이주해오고 외부문물이 유입되면서 불교신자의 비율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조캉 사원에서 멀지 않은 시짱대학 앞 식당에서 만난 영어과 1학년 완인 양萬銀ㆍ18세은 "학생들 중 불교신자는 40%가량 되는데 점차 줄고 있다. 지식이 늘면서 종교란 믿어도 되고 안 믿어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인과 기성세대에겐 불교가 여전히 정신적 의지처이지만 젊은 세대에겐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관심사는 유행과 취업이다. 영어 가이드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는 그녀는 "지금 젊은이들이 가장 관심 있는 것은 복장패션"이라며 "화장을 하고 학교에 오는 여학생도 많다"고 덧붙였다. 시간이 나면 나이트클럽에도 가고 춤도 춘다고 한다. 요즘 유행하는 춤은 장족 춤과 현대 춤을 섞은 퓨전 댄스란다.
하기야 티베트라고 언제까지나 변함없이 있을 것인가. 길이 뚫리고 인터넷으로 온 세상의 정보를 다 받아들이며 위성TV로 '대장금'을 시청하는 지금, 변화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이며 또한 과정이다.-.쪽

나무춰 호숫가.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그 하늘보다 더 푸른 물이 저 멀리 녠칭탕구라의 설산과 함께 빛나고 있다. 물빛이 하늘보다 더 푸른 건 시린 하늘이 물에 비친 탓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가까이서 보니 파도가 출렁이고 있다. 그냥 잔잔한 파도가 아니라 제법 세찬 파도다. 과연 이곳이 해발 4700m를 넘는 고원 위의 호수란 말인가. 하지만 최고 깊이가 33m에 이르는, 칭하이 성의 칭하이 호에 이어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염호鹽湖라는 사실을 알고 보면 과연 바다와 같은 호수라는 사실이 이상하지 않다. 나무춰는 신생대 제3기에 일어난 지각변동으로 생긴 호수라고 한다. 원래 바다가 호수가 됐으니 물이 짤 수밖에……. 원래는 지금보다 호수면적이 훨씬 넓었으나 기후변화로 인해 축소됐다고 한다.
사람은 대자연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고 순응한다. 티베트처럼 척박한 자연환경에선 더욱 그렇다. 나무춰 주변 바위마다 타르초가 걸려 있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100km에 이르는 호수 둘레를 돌며 '옴마니반메훔'을 외우고 오체투지를 한다. 이방인들은 숨쉬기도 힘든 해발 5000m 이상의 고원에서 티베트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자연 앞에 던지며 머리를 숙인다. 해마다 4~5월경이면 수많은 불교신자들이 찾아와 호숫가를 돌고 나무춰 주변의 사찰들은 향 연기와 촛불로 가득 찬다고 한다. 특히 티베트에서는 양띠 해에는 성호를 돌고 말띠 해에는 수미산須彌山을 돌고 원숭이해에는 산고개를 도는 풍습이 있어서 양띠 해가 되면 나무춰를 도는 인파가 더욱 늘어난다는 설명이다. 나무춰의 장관을 보러오는 외국인들도 연간 수만 명에 달한다니 티베트의 손꼽히는 관광자원이기도 하다.-.쪽

초모랑마는 이제는 고인이 된 고상돈 씨가 1977년 한국인으로선 첫 발을 디딘 이래 허영호, 엄홍길, 박영석 등 숱한 한국 산악인들이 당찬 기개를 폈던 산이다. 아무에게나 아무 때나 허락하지 않는 신들의 땅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히말라야 등정에 성공했던 이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이 히말라야에 오른 것이 아니라 히말라야가 자신들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티베트어 '초모랑마'는 '대지의 여신'이란 뜻이고, 네팔 이름 '사가르마타'는 '세계의 어머니 여신'이라는 뜻인 게 결코 우연이 아닌듯하다.
그들이 겸손으로 대했던 저 산들에 경의를 표하며 봉우리 하나하나를 소중한 보물처럼 카메라에 옮겨 담고 하산한다. 내려가는 길은 S자형의 지그재그다. 인간들이 거대한 자연의 품에 안겨 곡예하듯 내려오는 모양을 초모랑마가 내려다보고 있다. 숱한 지그재그와 바위터널을 지나자 비로소 초모랑마 방문객들이 쉬어가는 자시쭝札西宗 마을에 도착한다.-.쪽

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풍요롭게 사는 사람의 눈에는 이게 무슨 행복일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빠쌍 씨에게는 이것이 행복이다. 그는 "아홉 살 때 티베트가 해방돼 참으로 변화가 많았다"면서 "옛날에는 토지가 없는 노예제였으나 해방 후 정부에서 땅을 줘서 생활이 좋아졌다"고 했다. 중국의 티베트 침략에 대해서는 양측의 논란이 많다. 중국은 가혹한 노예제도에서 티베트 인민을 해방시켰다고 하지만 티베트 쪽에선 부당한 침략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빠쌍 씨의 입장에서 보면 누가 지배를 하든 자신과 가족들이 굶지 않게 만들어주는 것이 선善이다. 그는 "농민은 토지만 있으면 산다"면서 곤궁했던 옛날보다 나아진 생활여건과 수준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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