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살아 있기 때문에 집을 짓는다. 그러나 죽을 것을 알고 있기에 글을 쓴다. 인간은 무리를 짓는 습성이 있기에 모여서 산다. 그러나 혼자라는 것을 알기에 책을 읽는다. 독서는 인간에게 동반자가 되어준다. 하지만 그 자리는 다른 어떤 것을 대신하는 자리도, 그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다. -다니엘 페나크, 『소설처럼』 중에서-.쪽
무라카미 하루키는 말했다.
시인은 스물한 살에 죽고 혁명가와 로큰롤 가수는 스물네 살에 죽는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시인도 혁명가도 로큰롤 가수도 아니다. 술에 취한 채 전화 부스 안에서 웅크리고 자거나 얼이 빠지도록 술을 마시거나 새벽 네 시에 도어즈의 레코드 볼륨을 소리 높여 듣거나 하는 일도 그만두었다. 생명보험에도 들었고 호텔의 바에서 술을 마시기도 하고 치과 의사의 영수증도 잘 챙겨서 의료비 공제를 받게 되었다. 이제는 스물여덟 살이니까.
그래, 이제 나는 스물여덟 살이다. 그러므로 며칠씩 정신없이 거리를 쏘다니지 않고, 48시간씩 내리 잠만 자지도 않는다. 또 일주일씩 비디오와 책만 끼고 방구석에서 뒹굴거리지도 않는다. 그러나 앞으로도 생명보험에 들지는 않을 거고 의료비 공제를 받을 일도 없을 것이다. 스물여덟 살에는 누구나 정신을 차리고 살아남을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스물여덟 살이 되어서도 여전히 술 취한 채 아무 데서나 자고 새벽까지 잠도 안 자고 미친 듯이 영화를 보는 못 말리는 인간도 있다. 그런 인간이 내 친구라니.
유희는 심심하다는 말을 아주 자주 한다. 재미를 위해서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 재미를 위해서 바쳐지는 인생이란 것은 경사가 있다. 더 높은것, 더 나은것, 더 많은것 과잉이 필요한 것이다. 나라고 내 인생이 완전히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심심하거나 하지는 않다. 심심해지면 책을 펴면 된다. 그 속에는 무궁무진한 다른 세계가 있고 그 세계를 상상하는 시간만으로도 나는 지루하지 않다. 진짜 지루하고 심심한 건 심심해하는 인간들과 함께 있을 때이다.-.쪽
언젠가 책에서 읽었는데 너처럼 큰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사람이 묘한 정서 상태가 된다고 하더라. 그 책의 저자는 그것을 충만함의 우울이라고 표현했었지. 불행스럽게도 난 그것이 어떤건지 잘 모르지만. 충만함의 우울. 아름답고, 어감이 좋은 말이다. 요셉이 말했더 '생기 부족증'보다는 인간적인 면이 더 느껴진다.
마르쿠스 베르너의 '아버지의 연인' -.쪽
하루에 한 가지 일만 하면서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다지 다르지는 않지만 이제는 한 가지 일을 제대로 하기도 얼마나 어려운가를 생각한다. 마음에 꼭 드는 만족스러운 책 한 권을 고르면서 보내는 시간의 여유. 그렇게 고른 책을 읽으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내는 하루. 무언가를 읽고 있으면 행복하고, 세상의 어떤 것을 하는 것보다 만족스럽다. 쓸데없이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는 기대도 하지 않고, 그저 내게 주어진 현실을 담담히 걸어 나갈 수 있는 힘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실망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책을 읽는 나를. 이 하루가 다 지나고도 여전히 그러할 나를 생각하면 흐뭇하다. 그래서 지금도 계속해서 읽는다.
무언가를 하염없이 읽었나 보다. 2백 개도 넘는 문장에 밑줄을 그었는데 난 아직 그 부분을 다시 읽지 않았다. 다시 읽다니. 아마 그럴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소설 쓰기란 결국, 하찮은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거나 진지한 것을 하찮게 생각하기 둘 중 하나다.' 소설을 위해 궁구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는 따위가 다 그렇다. 그렇다, 고 생각했다.-.쪽
구효서의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이란 소설을 읽고 있다. 소설가가 쓴 소설가 이야기인데 누군가가 삶을 위해 매일 노동을 하는 것처럼 소설가들도 매일 소설을 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소설가가 그렇게 성실히 열심히 소설이란 걸 매일 써주면 참 좋을 텐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하다. 다작하는 소설가라고 해도 1년에 한 권쯤 내는 것이 고작이니까. 1년에 한 권이라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다리는 맛은 딱 거기까지이고 2년쯤 되면 초조해지고 3년이 되면 포기가 된다. 읽는 데는 하루도 걸리지 않는 책이 쓰는 데는 그렇게 오래 걸리다니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살아 있는 소설가, 나와 동시대를 숨 쉬며 살아가는 작가를 더 선호하는 나로서는 기다림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어쨌든 내가 한 권이라도 그 작가의 책을 읽었고 다음 책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소설가라면 어디선가 무언가를 쓰고 있다면 고맙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다음 책을 쓸 생각이라고는 아예 없는 소설가도 있으니까. 세상에 나온 소설책이라고는 딱 한 권뿐이긴 해도 우리 외할머니도 소설가이고, 내가 그녀를 알아온 시간 동안 소설은커녕 무언가를 끼적거리는 것도 보지 못했다. 그녀가 혹시라도 소설을 쓸 수 없는 소설가라면 화가 나서라도 소설책이라고는 안 볼 것 같은데 지금도 꾸준히 소설책들을 사들이고 읽고 있는 걸 보면 자발적인 절필일 가능성이 크다.
나는 하나하나의 책을 끝까지 다 읽었을 뿐 거기에 대해서 판단을 내리려고 하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하나하나의 책은 다른 모든 책들과 똑같았고, 하나하나의 문장은 똑같이 옳은 숫자의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하나하나의 단어는 정확히 있어야 할 곳에 있었다. 그것이 내가 외삼촌을 애도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었다. 하나씩 하나씩 나는 모든 상자를 열어 한 권씩 한 권씩 모든 책을 다 읽었다. 그것이 내가 나 자신을 위해 설정한 과업이었고, 맨 마지막까지 나는 그 일에 매달렸다.
채린의 책들 중에 한 권을 골랐다. 에쿠니 가오리의 『울 준비는 되어 있다』. 이 책을 빠른 속도로 다 읽었을 때 마침내 채린이 왔다. ―너 진짜 바람이라도 났니? 무슨 일이야? 흥분해서 소리치는 나를 바라보지도 않고 채린은 내가 읽던 책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 ―이 책에 이런 대목이 있어. '하지만,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물론 돌아갈 장소를 잃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면 나를 이해하겠니? 물론 이해 못한다. 똑같은 책을 읽고도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구절을 기억한다. 내가 기억하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자유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고독한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채린은 사랑을 읽고, 나는 자유를 읽었다. 어차피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쪽
누군가를 일평생 사랑하겠다는 일종의 서약으로 받아들여지는 결혼 이후 찾아온 다른 사랑은 감당하기 힘든 결과를 낳는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 이루어 놓은 것 중에 내어놓아야 할 것이 생겨나는 것이다. ―너희 남편은 좋은 사람이야. 그런 사람한테 네가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좋은 사람이라고 나한테도 좋으란 법은 없어. 그리고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냐, 아니냐는 사랑이랑 관계없어. ―그렇지만 좋은 사랑과 나쁜 사랑은 분명히 있어. ―처음이야. 이런 기분은. 이런 기억만으로 평생을 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더 욕심이 나는 거야. 왜 기억만 가져야 하지. 왜 그를 가지면 안 되는 거니? ―넌 이미 남편이 있는 여자야. ―그래서? 내가 이미 그것을 가지고 있어서 나한테 더 나은 것이 있는데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니? 누구든 더 나은 것을 선택할 권리가 있어. ―이건 쇼핑이랑은 다른 거야. 더 나은 물건이 나타났다고 이전의 것을 버리고 새것을 사면 되는 게 아니란 말이야. ―쇼핑? 인생이 사랑이 쇼핑이랑 뭐가 다르니? 가질 수 있으면 가져도 돼. ―그래서 그 남자를 가질 수 있을 거 같니? 그 남자도 너랑 그리 다를 바 없잖아. 처자식 다 버리고 너한테 온대? 채린은 대답하지 않고 약속이 있다며 나갔다. 채린은 알고 있을 것이다. 답은 몰라도 이미 알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어리석게도 나는 그 문제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사랑에 빠진 자를 설득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 사랑에 빠진 자들은 정상이 아니다. 사랑 때문에 살고 사랑 때문에 죽는다. 그들이 자신들 이외의 것을 살필 수 있다면 그들은 사랑에 빠졌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 그러나 그 사랑도 유효기간이 있다.-.쪽
행복한 영화를 보면서 우는 사람은 아마도 불행한 사람일 것이다. 나는 왜 이제야 채린이 불행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인가. 바보처럼. 책을 이해하는 것은 쉽다. 책은 이미 한 사람을 완전히 통과해서 정리된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쪽
―무슨 걱정 있소? ―아니오. ―걱정 있는 거 같아 보이는데. ―아니라니까요. ―왜 화를 내고 그래요? ―화 안 냈어요. ―아무 걱정이 없어서 평생 그런 얼굴 안 할 거 같은 사람이 그러고 있으니 내 기분까지 좀 그러네. ―제가 왜 아무 걱정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세상일에 관심이 없잖소. 아가씨는 몸만 이 세상에 있고 정신과 마음과 머리는 책 속에 있지 않소. 그런 사람은 걱정이 없는 법이오. ―책 속에도 세상이 있어요. 상처 주고 상처 입히고 싸우고 설득하고 오해하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배신하고 떠나고 죽는 것이 세상이라면 그런 세상 따위는 알고 싶지 않다. 책 속에도 너무 많은 죽음이 있고 너무 많은 사랑이 있고 너무 많은 이별이 있으며 너무 많은 슬픔과 분노와 기쁨이 있다. 나는 날마다 그런 것들을 겪는다. 때로는 나인 것처럼, 때로는 완전히 타인인 것처럼. 독서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세상이다. 책을 탁 하고 덮는 순간 그 세상의 문이 완전히 닫히는 건 아니지만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어둠 정도는 견딜 수 있을 만큼 나는 강하다.-.쪽
유희는 쓰고 나는 읽는다. 이제 이것이 우리의 방식이다. '나는 내 친구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라고 말한 이는 『백년 동안의 고독』의 작가 마르케스였다. 마르케스의 어떤 말보다 그 말이 사랑스럽다. 나는 마르케스처럼 글을 쓸 수 없으나 내 친구는 친구인 나를 위해 글을 쓸 수 있다. 어떤 편이 더 좋은가를 묻는다면 나는 언제나 기꺼이 독자가 되기를 원한다. 너의 글을 읽는 것이 내 인생 최대의 기쁨이다-.쪽
나한테는 이미 익숙해진 읽기와 이해의 방식이 있다. 책을 읽듯 사람을 읽는다. 그는 한 번 읽는 걸로는 충분하지 않은 책이다. 처음 읽으면 이야기가 보이고, 두 번 읽으면 인물이 살아나고, 세 번 읽으면 배경이 그려지고, 네 번 읽으면 움직임이 읽히고, 다섯 번 읽으면 낱말 하나하나가 다르게 다가와서 세월을 두고두고 읽어야만 하는 책. 나는 그를 다시 읽게 될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 나에게 다른 건 몰라도 시간은 있다. 서른 살이 되었지만 내 인생은 여전히 미궁 속이다. 내가 아는 건 시간이 함부로 지나가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나는 세상의 속도를 무시한 나 자신만의 속도를 갖고 있다. 그것은 책과 마주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속도이다. 같은 페이지의 책도 저마다 다른 속도로 읽을 수밖에 없다.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빠르게. 그리고 원한다면 언제나 다시, 또 새롭게. 누군가 예수를 믿고 부처를 믿듯 나는 책을 믿는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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