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상
이진우 지음 / 여러누리 / 2006년 5월
절판


현실 앞에서 나는 다름 아닌 금치산자였다.
현실이 나를 괴롭힐 때마다 나는 아주 먼 도피 여행을 꿈꾸곤 했다. 때로는 현실에 맞서 싸우기도 했다. 내 식으로 현실을 우습게 만들어버렸다.
그림이 현실로부터 나를 해방시키는 역할을 했다면, 낙서와 글쓰기는 현실의 약점이 무엇이고 어떻게 공략할 것인지를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산꼭대기에 올라서서 현실을 조망하는 비현실적인 기쁨을 그림이 준 것과 달리 글쓰기는 현실에 대한 저항을 현실화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타인은 해독하지 못할 나만의 언어가 무기였다. 그런데 나의 무기는 현실 앞에서 무기력했다.
봉목골의 가난은 정도가 심해져만 갔다. 개선될 여지가 없었다. 나는 가난의 질곡에서 이미 선택된 자였다. 내게는 선택된 자에 합당한 생활을 누릴 권리가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큰아버지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어떤 세상이 온다 하더라도 기술자는 끝까지 살아남았다. 큰아버지가 살아 있는 증거였다. 조선이 망하기 전에는 궁내부에, 이후에는 총독부 상공과에 재직했다.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총독부를 그만두기는 했으나 큰아버지의 가산은 그런대로 남아 있었다. 다만 찢어지게 가난한 친부모와 어린 형제들에 대한 부양은 내 몫이었다.
선망하는 총독부 건축과 기수가 된다면 그들에 대한 부채를 탕감할 능력이 생길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최소한 채무자의 입장에서 채권자의 입장으로 돌아설 수도 있을 듯하였다.-.쪽

나의아버지가나의곁에서조을적에나는나의아버지가되고또나는나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고그런데도나의아버지는나의아버지대로나의아버지인데어쩌자고나는자꾸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니나는왜나의아버지를껑충뛰어넘어야하는지나는왜드디어나와나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노릇을한꺼번에하면서살아야하는것이냐-.쪽

나의 운명은 오이디푸스의 그것처럼 출생에서부터 버림받음으로써 자신의 세계를 열어가는 모순을 지녔다. 그런 모순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쪽

나는 더 이상 사실적인 풍경은 그리지 않았다. 상상으로 풍경을 그리려 하지도 않았다. 대신 내재된 의식과 감정의 복잡한 지적도를 그리려고 했다. 그런 작업을 통해 나를 정리하고 싶었다.
내 얼굴이 그림의 대상이었다. 갸름한 얼굴, 흰 피부, 검고 깊은 눈, 앙다문 입술. 벽에 걸린 거울을 통해 얼굴을 바라보다가 낯설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그 얼굴은 교묘하게 나를 닮았지만 절대 내 얼굴이 아니었다.
어디서 툭 튀어 나왔는지 모를, 그래서 나를 현혹시키는 그 얼굴. 나는 거울에 비친 낯선 나를 보이는 대로 그렸다. 그렸다고 생각했다.
날이 지날수록 그 얼굴의 윤곽은 뭉개지면서 연막에 가려졌다. 점점 더 낯설어져 갔다. 거울에 비친 얼굴이 눈에 익을수록 캔버스 위의 얼굴은 기묘한 형상으로 변했다. 전체적으로 드러난 노란 색조가 주는 나른함과 확실하지 못한 윤곽이 주는 기괴함으로 인해 놀라기도 했다. 그러나 그 그림에서 손을 뗄 수 없었다. 어떤 힘이 나의 손을 붙들고 놓아주질 않았다.
그림 속의 그 얼굴과 내가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은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서서히 그림 속의 얼굴을 닮아가고 있었다. 거울 속에 비친 내가 바로 그림 위의 얼굴이었다. 갸름한 얼굴은 핼쑥했고, 흰 피부는 황달에 걸린 사람의 것처럼 누렇게 떴으며, 검은 눈동자는 흐려져 있었고, 입술에서는 윤기가 사라져버렸다.
여러 공사가 한꺼번에 시작되어 책상에 일이 밀렸다. 사무실에서는 한눈을 팔 시간조차 없었다. 그리고 퇴근하기가 무섭게 방에 틀어박혀 얼굴을 그렸다. 그것도 지겨우면 한쪽 벽에 기대어 글을 썼다.
그러다보니 몸이 말이 아니었다. 때도 없이 미열이 났고, 무기력해졌다. 자꾸만 눕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더욱 나를 일으켜 세웠다. 지금 쓰러지면 영원히 쓰러질지 모른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쪽

"사실 박군이 이형의 시를 처음 보여주었을 때 나는 이형이 일본인인 줄로만 알았소. 조선인이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지 상상도 못할 거요. 혹 조선어로 쓴 시가 있으면 내게 몇 편 보여주시오. 가톨릭 청년지와 연분이 있으니 게다 실어보게 말이오."
정지용은 나보다 열 살이나 연상이었지만 그의 시처럼 차분하고 따뜻한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그가 조선어로 쓴 시를 내놓으라고 했을 때 난감했다.
내게 조선어는 이미 사어死語였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쓰는 언어 이외의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당대의 지식인이라면 당연히 국어인 일본어를 써야 마땅하다고 여겼다.
내 생각에 구시대의 유물인 조선어로 현대적 감성을 표현하기란 불가능했다. 20세기의 감성을 표현하는 일본어를 19세기 감성을 지닌 조선어로 번역해내야 한다는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어차피 조선 문단에 얼굴을 드밀려면 조선어로 쓴 시를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금홍에게 보여주려고 내 시를 조선어로 번역해본 적도 있고 해서 조선어 시를 주겠다고 약속했다.-.쪽

"사실 박군이 이형의 시를 처음 보여주었을 때 나는 이형이 일본인인 줄로만 알았소. 조선인이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지 상상도 못할 거요. 혹 조선어로 쓴 시가 있으면 내게 몇 편 보여주시오. 가톨릭 청년지와 연분이 있으니 게다 실어보게 말이오."
정지용은 나보다 열 살이나 연상이었지만 그의 시처럼 차분하고 따뜻한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그가 조선어로 쓴 시를 내놓으라고 했을 때 난감했다.
내게 조선어는 이미 사어死語였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쓰는 언어 이외의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당대의 지식인이라면 당연히 국어인 일본어를 써야 마땅하다고 여겼다.
내 생각에 구시대의 유물인 조선어로 현대적 감성을 표현하기란 불가능했다. 20세기의 감성을 표현하는 일본어를 19세기 감성을 지닌 조선어로 번역해내야 한다는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어차피 조선 문단에 얼굴을 드밀려면 조선어로 쓴 시를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금홍에게 보여주려고 내 시를 조선어로 번역해본 적도 있고 해서 조선어 시를 주겠다고 약속했다.-.쪽

조선중앙일보 7월 24일자에 첫 시 오감도/시제1호를 실었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시제1호가 나가자마자 사방에서 난리가 났다. 기대하던 바였다. 드디어 나는 세인의 주목을 받는 문인의 반열에 올랐다.
낙랑팔라에 들어서서 만나는 문인들뿐만 아니라 안면이 있는 사람마다 내 시에 대해 한마디씩 던졌다.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충격적이라는 게 대체적인 반응이었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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