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젊고 그도 젊었다. 그러나 밤의 공기가 감미로운 데도 그의 기분은 씁쓸했다. 징그러운 벌레라도 씹은 듯한 그의 표정은 꽤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가슴 속이 응어리져 아무래도 풀 길 없는 그런 울분이었다. 그것은 또 주위 모든 것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어 아주 볼썽사나운 느낌이었다. 부근 일대의 정경 속에서 그것만이 다른 음향을 내고 있었다. 5월의 어느 저녁, 슬슬 데이트할 시간이 되어 가고 있었다. 머리를 단정히 빗어넘긴 30살 전의 젊은이들이 지갑을 불룩하게 부풀려 가지고서 약속에 늦지 않으려는 듯 거리의 절반을 차지하고 발걸음도 가볍게 걸어가는 시간. 그리고 역시 30살 전의 여자들이 콧잔등에 분을 두드려 바르고 아껴 두었던 나들이옷을 차려입고서 같은 약속을 어길세라 들뜬 기분이 되어 거리의 반쯤을 차지하고 쏟아져나오는 시간이었다. 어디를 보나 이 거리의 절반은 만남을 향하여 가는 사람들로 넘쳤다. 거리 모퉁이, 레스토랑, 술집, 약국 앞, 호텔의 로비, 보석가게의 시계 아래, 어디를 가나 누가 누구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 곳은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산처럼 유구하고도 신선한 예부터의 일이 조금도 변함없이 되풀이되는 것이었다. "미안해요. 오래 기다렸지요?" "오늘 저녁엔 굉장히 예쁘군. 어디로 갈까?" 이런 인사를 나누는 어스름 저녁이었다. 서녘 하늘은 연지를 바른 듯이 붉었다. 이것 역시 데이트를 위해 차려입은 모양인지 두 개의 별을 다이아몬드 핀으로 꽂아 이브닝드레스를 장식하고 있었다.-.쪽
"피고는 본법정이 판결을 내리기 전에 무슨 할 말이 있는가?" "내가 아무리 살인은 하지 않았다고 해도 모두들 입을 모아 '네가 했다'고 하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혹 내 주장을 듣고 나를 믿어 줄 만한 사람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요? 당신은 지금 나더러 죽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려고 합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면 나는 죽어야 합니다. 나는 별로 죽음을 두려워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또 마찬가지로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도 그 못지않게 갖고 있습니다. 죽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오심으로 해서 죽는다는 건 더욱 괴로운 일입니다. 나는 내가 저지른 죄 때문이 아니라 그릇된 재판 때문에 죽게 되는 것입니다. 무릇 죽음이라고 이름하는 것 중에서 이토록 가혹한 죽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최후의 때가 오면 나는 어엿이 그것을 받아들일 작정입니다. 어쨌든 나로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것뿐이니까요. 그러나 이제 나는 내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또 내 말을 믿어 주지도 않는 모든 분들에게 분명히 말해 둡니다. 그것은 내가 한 짓이 아닙니다. 나는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배심에 의한 어떠한 평결도, 어느 법정에 있어서의 어떠한 심리도, 어느 전기의자 위의 어떠한 처형도-온 세계의 어디에서라도-하지 않은 것을 했다고 할 수는 없는 겁니다. 그런데 재판장 각하, 나는 이미 판결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아무런 미련도 없습니다."
도대체 나를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건지 저 여자에게 물어 봐 주십시오. 무엇이 목적인지! 저 여자는 벌써 며칠째 나를 쫓아다니고 있소. 낮이나 밤이나, 밤이나 낮이나! 더 이상 참지 못하겠어! 이제 나는." "뭐야, 저 사람! 술주정이로군." 한 여자가 업신여기는 듯이 옆의 여자에게 말했다. 그녀는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그가 마구 그녀를 걸고 넘어뜨리려고 소리소리 지르는 데도 태연한 얼굴이었다. 어딘지 위엄이 서려 있고 침착했으며,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깨끗하게만 비칠 뿐이었다. 그러나 남자 쪽은 추악하다못해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니 결과는 뻔한 일이다. 사람들의 동정이 여자 편으로 쏠리는 것은 당연했다. 아무튼 군중이란 잔혹한 것이다. 이쪽저쪽에서 쓴웃음이 새어나왔다. 쓴웃음이 비웃음으로 바뀌었다. 이윽고 비웃음이 폭소로, 나중에는 노골적인 야유로 바뀌었다. 마침내 모여든 사람들은 가차없이 그에게 야유를 퍼붓기 시작했다. 그 중에 오직 하나, 무감동하고 어느 쪽 편도 들지 않는 진지한 얼굴이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었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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