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코스모스는 비가 싫은 모양입니다.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에 코스모스는 이내 고개를 땅으로 돌렸습니다. 이런 꽃의 마음을 외면한 채 비는 세차게 내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빗방울이 꽃잎에 매달려 있어 코스모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하는 듯합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가을의 전령인 모습을 세상에 내놓은 지 겨우 보름 남짓인데 가을비에 잎을 떨어뜨려야 하는 코스모스의 처지가 왠지 불쌍해 보입니다.
꽃이 그렇듯 사람도 그럴 것입니다. 이런 게 윤회가 아닐까요. 씨앗으로 있다가 잎을 내고 한때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였다가 어느새 져버리는 일이 반복되는……. 꽃 뒤에 아련히 뭉개져 있는 흰 배경은 '극락전極樂殿'입니다. 코스모스의 유한성에 비교되는, 영원히 받들어져야 할 것들이 있는 법당의 이름입니다.
햇살을 받아 화려의 극치에 있는 꽃을 찍지 않고, 비 오는 날 카메라를 들이댔던 이유는 다시 한번 유한성을 생각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화면의 전체적인 이미지는 아름다움입니다. 비애미悲愛美로 보일 수도 있고 자연미自然美로도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역시 저 또한 멀리 있는 도道를 향해 가는 평범한 인간인 모양입니다.-.쪽
벌개미취
토요일 새벽 길상사를 찾은 저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경내에 핀 벌개미취입니다. 아름다웠습니다. 한여름인데도 불구하고 가을을 느끼게 하는 벌개미취가 경내에 무리지어 피어 있으니 보기에 참 좋았습니다. 어떻게 찍을까 하루를 고민하다가 오후 늦게서야 비로소 벌개미취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찰나의 아름다움과 영원한 아름다움의 비교. 꽃은 물론 아름답지만 변하는 것입니다.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법당을 보고 꽃의 미감美感을 느끼기는 힘들지만 그곳에는 영원히 변치 않을 부처님의 진리가 있습니다. 여기에 진정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벌개미취는 이리저리 흔들렸습니다. 부처님이 계신 법당은 그대로였습니다.-.쪽
맞절
이 모습을 카메라 모니터에서 확인한 후 땅을 쳤습니다. '조금 일찍 밥을 먹을걸……. 물을 먹지 말고 그냥 나올걸……. 주지스님과 보살님이 얘기할 때 빨리 계단을 내려와 자리를 잡을걸……. 왜 코스모스는 때맞춰 흔들려 할머니 얼굴을 가린 거야' 등등. 절호의 장면을 놓친 욕심쟁이의 한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진은 살아났습니다. 기술적인 결함이 많았기에 버려졌지만 사진이 주는 뉘앙스가 아름답기 때문에 빛을 본 것입니다. 처음 이 사진을 본 후 핀트도 안 맞고 코스모스가 할머니의 얼굴을 가려서, 아쉽지만 포기할 작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난 후 불과 1~2초밖에 보지 않았던 사진의 잔영이 자꾸 뇌리에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등이 불편해 보이는 늙은 보살님이 주지스님께 온몸을 던져 바치는 예禮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스님의 자애로운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불법승佛法僧 3보의 하나인 스님을 여든은 되어 보이는 노인이 극진히 공경 하는 모습에서 경전의 가르침을 넘어선 그 무엇을 봅니다. 사진에 드라마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 감동을 주는 드라마가 아닐까요.
신문 사진에서 뉴스밸류가 모든 것에 우선한다면 제가 찍는 길상사 사진에서는 인간의 내면에 있는 '부처의 모습'이 최우선입니다. 저는 스님과 보살님의 맞절에서 부처의 아름다운 모습이 두 분을 통해 보여졌다고 느꼈습니다.-.쪽
돌절구 속의 단풍
대야만한 돌절구 안에 길상사의 단풍이 다 들어왔습니다. 둔하고 우직한 모습이라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돌절구는 안성맞춤으로 단풍을 담아냈습니다. 돌절구는 여름 내내 연뿌리를 품고 있다가 소담스런 연꽃을 피워내더니, 가을이 되자 이렇게 아름다운 만추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에 비친 하늘과 단풍은 실제의 그것과 어울려 훨씬 더 아름답습니다. 길상사 단풍의 진가는 돌절구 속에 있었습니다.
돌절구는 넘침도 모자람도 없이 있는 그대로를 담아냈습니다. 왼쪽에서 보면 범종각이 보이고 오른쪽에서 보면 설법전이 보이며 반대쪽에서 보면 극락전이 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면 돌절구 속의 낙엽 몇 개만을 보나 무릎을 꿇고 가까이 보면 '우리세상'이 담겨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기에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듯 돌절구 속에 담겨 있는 '것'들을 보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돌절구의 제자리는 농가 한 켠임에 분명하나 세상을 담는 거울로서 절집에 있는 것도 그럴 듯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쪽
비질하는 마음
그냥 마당을 쓰는 줄 알았습니다. 설마 마당에 '줄을 그릴 줄'은 몰랐습니다. 3백여 평 남짓 되는 길상사 경내를 스님은 40여 분에 걸쳐 조심스럽게 쓸었습니다.
비질하는 모습을 예상했으나 전혀 다른 '줄긋기'가 시작되자 스님의 속내가 참 궁금했습니다. 이말 저말 여쭤보면서 스님의 속내를 가늠해 봤습니다. 왜 이렇게 그리는가에 대한 질문은 아니었고 좀 둘러서 물었습니다. 재미가 좀 덜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스님은 비질을 멈추고 친절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스님은 제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았던 눈 쌓인 길을 걸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경험이 있지만 언제인지 가물가물해 대답이 좀 늦어지자 스님은 "그런 길은 함부로 가는 게 아닙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마음자리가 보이기 때문이지요……." 스님의 말씀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눈길도 눈길이지만 스님의 비질이 '줄긋기'가 된 연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스님의 줄긋기는 경내에 눈을 수북이 쌓이게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지런한 저 줄이 바로 아무도 밟지 않는 눈인 것입니다. 함부로 신발을 끌고 마당을 걸어갈 수는 없습니다. 뒤를 돌아보면 내 발자국이 너무도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이것뿐입니까. 밟을 때도 줄의 결을 따라 조심조심 밟아야 합니다. 보일 듯 말 듯한 발자국을 남기며 길상사 경내를 왔다 갔다 할 수는 없지만 그런 마음으로 걷는다면 한참 지나 절을 찾은 이들에게 혹 줄의 의미가 보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당에 그어진 비질이 남긴 줄의 의미를 알고 난후 길상사에 갈 때마다 마당을 보게 됩니다. 줄이 잘 보이면 왠지 제 마음도 환해집니다. 청소하는 스님의 모습을 찍으러 갔다가 더 깊은 겸손의 마음을 배우고 왔습니다. 꼭두새벽에도 한 번씩 일어나 길상사에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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