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령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공화국의 통일을 요구하는 반()군사조직.
구분 군사조직
설립연도 1919년
소재지 영국 북아일랜드
설립목적 영국령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공화국의 통일 요구
주요활동 테러

창설자는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주의자인 마이틀 콜린스이다. 아일랜드공화국군(Irish Republican Army:IRA)이라는 명칭은 이미 19세기의 급진파 페니언에 의하여 쓰였으나, 1913년에 조직된 군사조직 아일랜드자원군의 후신으로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더블린부활절봉기(1916) 때부터이다. 아일랜드 국민의회의 수립(1919) 이후 민족주의자에 의하여 공식 명칭이 되었다.

IRA의 실체는 영국으로부터의 완전독립을 목표로 하는 의용군이었다. 아일랜드 자유국(Irish Free State)의 성립(1922)과 함께 분열하였고, 아일랜드자유국→에이레→아일랜드공화국으로 이어지는 체제의 과정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무력투쟁을 계속하는 세력이 IRA의 명칭을 계승하였으나, 이들은 자체분열을 되풀이하여 현재는 프로비조널(Provisional)과 오피셜(Official)의 2파로 갈라져 있다.

북아일랜드 분쟁은 1949년 아일랜드공화국 독립 이래 소수파인 로마가톨릭교회 계열의 주민과 다수파인 프로테스탄트교회 계열이 대립하였다. 1969년 이래 유혈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1969년에는 영국군이 출동하기도 하였다.

아일랜드 전국토의 통합을 요구하는 로마가톨릭교회 계열의 IRA는 북아일랜드의 로마가톨릭교도와 함께 1969년 이래 북아일랜드에 주재하고 있는 영국군을 대상으로 테러활동을 전개하였으며, 가톨릭교도들의 과격파도 보복테러를 감행하여 정치문제로 발전하였다.

즉, 1921년 아일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프로테스탄트 교도가 수적으로 많은 북아일랜드 지역이 영연방에 잔류함으로써 비롯되었다. 영국이 무력으로 통치를 기정사실화하자 아일랜드계 과격조직인 IRA가 1969년부터 영국에 대한 테러활동을 시작하였다. 이 결과로 1969년 이래 1991년 하반기까지 약 2,000명의 시민을 포함한 경찰, 군인 2,911명이 죽었다.

1975년 프로테스탄트교회와 로마가톨릭교회 계열은 대표자 78명을 투표로 선출하고 양측이 수용할 수 있는 헌법을 작성하여 정부를 조직하는 책임을 위임받았지만 합의하지 못하고 10개월 후에 해산하였다. 이후 1985년 11월 아일랜드공화국과 연합왕국간에 북아일랜드 문제를 위한 회담이 열려 아일랜드공화국에는 북아일랜드 문제에 대해서 결정권한이 없는 자문만을 부여하기로 합의하였다.

1994년 8월 IRA의 신페인당이 영국에게 무조건 전면 휴전을 선언하고 영국이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250여 년에 걸친 분쟁이 평화적으로 해결될 실마리가 되었다. 이후 1998년 4월 10일 런던, 더블린 당국 및 북아일랜드의 로마가톨릭교회와 프로테스탄트 정파들이 합의한 평화협정의 찬반을 묻는 투표에서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공화국 주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자치의회, 정부구성 및 북아일랜드가 영국에 속해 있다는 것을 재확인하였다.

이어 1999년 북아일랜드 자치정부가 수립되고, 2001년 현재 IRA가 무장해제를 선언함으로써 그동안 교착상태에 있던 북아일랜드평화협정 이행에 돌파구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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