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이란 또는 고전이란 아마도 이런 책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약 3세기 전, 당시 우리와 전혀 무관했던 (지금도 거의 마찬가지이지만) 나라에서 쓴 책이 그 후 지금, 나에게 평생을 두고 여러 번 새롭게 읽힌다는 점 때문에 그야말로 고전다운 고전이리라.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읽히고 개인적으로도 언제, 어디에서도 읽을 수 있는 책이 고전이 아닐까? 그렇지 않고 그냥 오래된 책에 불과하다면 누가 그것을 지금 다시 읽고, 또한 고전이라고 할 것인가? 가령 나는 고전 중의 고전이라는 단테의 《신곡》이나 밀턴의 《실락원》을 몇 번이나 읽어보려고 수십년 간 노력했으나,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한때는 나 자신에게 대단히 절망한 적도 있으나 이제는 깨끗이 포기했다. 적어도 그것은 나에게는 고전이 아니다. 이 세상에는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한 책이 너무나 많다. 우리 인생은 그것들만 읽는데도 너무 짧고 너무 바쁘다. 그리고 그런 좋은 책은 몇 번이나 다시 읽게 된다. 나에게는 《걸리버 여행기》가 바로 그렇다. 나는 그동안 몇 번이나 걸리버와 함께 한 세계 여행에, 걸리버와 함께 한 지적 여행에, 그리고 세상을 비웃는 그 통쾌한 여행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작가의 말이예요. 어떤이에게는 삼류이지만 어떤이에게는 일류가 될수 있는것들이 세상에는 아주 많습니다. 편견과 고정관념을 가지고서는 제대로 평가를 할수 없답니다. -.쪽
풍자의 주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이고 스위프트의 경우 특히 그러하나, 그것을 살펴보기 전에 또 하나의 주제인 여성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도록 한다. 《걸리버 여행기》는 여성을 주된 풍자의 대상으로 삼은 작품은 물론 아니나, 그런 묘사가 자주 나와서 페미니스트들의 심사를 긁는 점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성공회 목사라고 하는 종교적인 인물인 스위프트 개인의 성향은 물론 당시 여성이나 성에 대해 중세적인 기독교의 도덕주의에 젖은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하여 평가되어야 할 문제이다. -.쪽
한편 정치가 풍자의 가장 중요한 대상이 되는 이유는, 정치가 인간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기에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 문학이나 예술에서는 정치가 주된 주제가 아닌 듯한데, 적어도 풍자는 정치와 직결된다. 풍자는 정치문학의 가장 일반적인 형식일 뿐만 아니라, 문학이 시민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한에서는 모든 문학 중에서 가장 정치적인 것이 풍자이다. 그러나 정치나 풍자나 사람들에게 결?좋은 인상을 주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언제 어디에서도 정치나 정치가는 인기가 없었고, 입이 험한 정치풍자가도 사람들에게 반드시 좋은 인상을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나 그 둘은 필요악이다. 왜냐하면 언제 어디서나 개혁은 필요하고 그 개혁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정치이며, 개혁을 방해하는 정신 상태를 타파할 수 있는 자극을 부여하는 유일한 것이 풍자이기 때문이다.-.쪽
위대한 풍자가란 당연히 정치에 관심을 갖기 마련이고, 특히 그 대부분은 당대의 정치권력에 반대하기 마련이다. 역사적으로 풍자를 가장 싫어한 정치세력은 전제정권과 지방호족이었다. 독재치하에서 풍자문학이 있을 수 없고, 전통적인 지방 질서를 숭상하는 곳에서도 풍자문학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따라서 정치적 풍자문학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표현의 자유가 있어야 하고, 도시라는 배경이 필요하다. 또한 그 독자들은 정치과정을 어느 정도로는 이해하고, 작가는 유머를 통해 현실정치로부터 어느 정도 초월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런 것이 완전히 갖추어진 시기는 놀랍게도 기원전 5세기의 아테네였다. 바로 그때 소크라테스나 플라톤과 함께 아리스트파네스와 같은 풍자작가가 탄생했다. 여기서 그들의 작품을 읽어보며 풍자문학의 전형을 고찰해 볼 필요가 있으나, 제대로 번역되지 못해 이 책의 독자들에게는 대체로 읽기 쉽지 않은 작품들이기 때문에 생략한다. 풍자문학에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표현의 자유가 고대 그리스 시대보다 로마 시대에는 적었고, 로마 제국에서 풍자문학은 위험한 것으로 취급되어 풍자작가들은 끊임없이 중상, 추방, 투옥, 처형의 위험에 처해졌다. 따라서 앞서 말한 루키아누스를 제외하면 로마 시대에 풍자가란 없었다.-.쪽
서양문학사에서 18세기에 영국의 스위프트와 프랑스의 볼테르라고 하는 위대한 정치적 풍자작가가 나타난 것은, 그것에 필요한 최소한의 표현의 자유가 사회적으로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1695년 출판물 검열법이 폐지된 것이 그 중요한 계기였다. 그렇다고 해서 물론 그 시대를, 표현의 자유가 허용된 민주주의 시대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는 반드시 당대의 정권이 그런 자유를 허용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반대자를 탄압할 힘을 상실한 경우에도 어느 정도로는 가능하다. 아니 검열관을 속일 정도의 능력이 작가에게 갖추어졌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오스트리아 최고의 풍자작가 클라우스Karl Klaus(1874-1936)가 "검열관에게 이해될 정도의 풍자는 금지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듯이 스위프트나 볼테르는 검열관에게 검열 당하지 않을 지혜를 발휘했다. 그러나 그런 경우조차 최소한의 양식 있는 검열관을 낳을 수 있는 사회적 교양을 필요로 한다. 우리의 군사독재 시절처럼 전혀 그렇지 못한 시대도 있었기 때문이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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