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천적 기독교인이자 평화주의 지식인 지명관(82) 전 한림대 교수의 자서전 <경계를 넘는 여행자>(다섯수레. 2006)는 식민지 시대와 해방, 분단과 전쟁, 독재에 대항한 민중투쟁 한가운데에서 고뇌하고 실천하며 살아온 한 지식인의 가슴 아픈 증언이다.
저자 지명관은 1924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민족주의적인 교회의 영향을 받으면서 금기시되었던 우리말 소설과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정주보통학교에 입학해 만난 정품인 선생과 고단한 운명을 견디며 신앙심으로 살아간 어머니와 교회는 신앙인이자 올곧은 지식인으로 평생을 살아온 그에게 삶의 중요한 푯대였다.
그러나 북쪽 공산주의 체제의 실상에 회의를 거듭했고 투철한 공산주의자였던 정 선생과 치열한 논쟁을 벌인 후 결별한다. 북한 체제에 절망한 그는 1947년 3월 황해도 해주에서 배를 통해 삼팔선을 넘지만 미군이 진주한 남쪽 역시 이상향은 아니었다. 명목상으로는 독립 국가였지만 일제의 잔재가 청산되지 않고 남아 있었을 뿐 아니라 지배자들은 구질서를 유지하는 데만 골몰했다. 이상주의적인 젊은 청년들은 남에서는 북을 북에서는 남을 동경했지만 현실은 남쪽에서도 북쪽에서도 그들을 배신했다.
이때,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책은 군에 입대해 5년을 복무하며 겪은 비극적인 경험도 회고한다.
“전쟁이라는 극도로 비인간적인 행태 속에서 제 한 몸 보전해 살아남은 우리들이 온전한 정신일 수 있을까?”
4?19 혁명과 5?16 군사 쿠데타는 그에게 저널리즘을 통한 사회참여에 나서는 계기로 작용했다. 군사 쿠데타 이후 학교에서 쫓겨난 그는 ‘사상계’ 주간으로 일하며 군사정권과 더욱 날카롭게 대립했다. 군사정부의 탄압으로 궁지에 몰렸을 때도 ‘사상계’는 굴욕적인 한일협정에 치열하게 저항했다.
행간에 숨어 있는 사람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쓰러져간 이들, 4.19 혁명과 광주민중항쟁 등 민주화 투쟁 중 꺾인 사람들, 그늘에서 한평생 살아간 사람들 역시 저자의 삶과 역사를 이뤄온 피와 뼈 같은 존재들이다.
[북데일리 정미정 기자]